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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안병기 유학영업니다!!

상황 1. 미국에 초행인 당신이 버거킹에 들렸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어린애 머리만한 햄버거가 칼로리 덩어리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 조금이라도 칼로리를 줄여 먹으려면 어떻게 주문해야 할까. 요령 중 하나는 기름기가 주성분인 마요네즈를 빼달라고 주문하는 것. “I want a Whopper Jr. without mayo.” 라고 하면 된다. 상황 2. 몇년 지나 미국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 졌다. 가끔씩 미국 사람과 대화할 때 뭔가 재치있는 표현을 써서 놀라게 하고 싶다. 그런데 ‘중이 제머리 못 깎는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상황이 닥쳤다. “A monk cannot cut his hair by himself."라고 해야할까. 아니다. 걸맞는 미국 속담은 “A kitchen knife cannot carve its own handle.” 이다. 이런 얘기를 늘어놓았다고 필자가 갑자기 영어회화 강사로 직업을 바꿨다고 오해는 마시기를. 아마 당신이 단지 과학 정보를 얻기 위해서만 KOSEN 홈페이지에 들르는 회원이 아니라면, 지금쯤 눈치채셨으리라. 그렇다. 위의 내용은 KOSEN의 카페 ‘Soup or Salad?' 에서 따온 것이다. 아직 안 가 보셨다면, 홈페이지 위의 메뉴중 오른쪽 ‘Community'를 콕 찍어 보시라. 이 카페를 만들어 부지런히 글을 올리는 사람이 UTC 연료전지사(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에서 일하는 안병기(39) 박사다. ID hayne_2000의 주인공이다. ID는 여덟살박이 큰 딸 이름(혜인)에서 따 왔단다. 올초 문을 연 안박사의 인터넷 카페에는 그의 글 50여편이 올라와 있다. 차를 구할 때나 은행 계좌를 만들 때처럼 직접 부닥쳐보지 않으면 어떤 말을 해야할 지 모르는 영어를 가르쳐 주는 것은 물론, 유학가서 처음 지도교수를 정할 때 어떻게 하면 인터뷰에서 좋은 점수를 딸 수 있는 지 부터 싸고 좋은 중고차 사는 요령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미국 생활의 지혜들이 그의 글에는 담겨 있다. 심지어 햄버거나 피자 등 각종 음식의 칼로리, 그리고 이만큼의 칼로리를 소모하려면 얼마나 많은 운동을 해야 하는지 까지 올려 놓았을 정도다. 카페는 올초 개업했지만, 이런 ‘안박사의 미국생활 길라잡이’는 서울대 기계공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버지니아텍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94년에 이미 싹텄다. “미국에서도 e-메일이 그제서야 널리 쓰이기 시작할 때였죠. 1백50명쯤 되는 버지니아텍 한국학생회 부회장을 맡았습니다. 그때 막 유학온 후배들을 위해 e-메일로 미국생활에 적응하는 법들을 보내준 것이 시초였습니다.” 그게 좀 인기였다. 그래서 그뒤에 유학생들에게 재미있으면서도 도움이 되는 책을 쓸 꿈을 품게 됐단다. 그래서 97년부터는 3년 동안이나 수첩을 들고 다니며 다른 사람이 미국 생활 초기에 겪은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모인 미국 생활 경험담들이 안박사의 손끝에서 엮어져, 미국 생활에 익숙한 KOSEN 회원들에게는 “나도 그땐 그랬지”하는 추억과 웃음을, 또 정말 초보인 회원에게는 정보를 주고 있는 것이다. 카페 이름인 ‘Soup or Salad' 도 대부분 초기에는 식당에서 이런 주문을 받을 때 ’Super Salad'로 잘못 알아듣고 그저 ‘Yes’라고 답한다는 에피소드에서 나온 것이다. ( 안박사 자신의 경험이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이 용어를 미리 알고 미국에 왔기 때문에 그런 적이 없다고 한사코 발뺌(?) 했다.) “초중고 시절에 그 흔한 글짓기상 한번 못 타봤는데도 비교적 글이 쉽게 써지더군요. 주변에서도 재미있다고 하구요.저와 주변사람들의 생생한 경험을 있는 대로 전달하는 것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 글의 주인공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그가 올린 가족 사진도 수백 명-흔적이 ‘조회수’에 남아 있다-이 봤다. 그래서 길가다 누군가 알아보고 말을 건네지 않을까 한다는 데 미국 땅이 워낙 넓어서 그런지 아직 그런 경험은 하지 못했다고. “많지는 않지만 카페에 열심히 글을 올린 대가로 받는 사례는 따로 모아놨습니다. 수익은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고 싶습니다.” 종종 다른 회원들도 안박사의 카페에 추억담을 올린다. 미국서 태어난 아이가 한국 사극을 보고는 “왜 신하들이 임금님 보고 ‘telephone'이라고 하느냐”(‘전하’를 ‘전화’로 잘못 알아 들은 것)는 얘기 등이 올라오면 꼭 “나도 그런 경험 있다”고 맞장구치는 회원이 있다. 그러다보니 안박사의 카페는 정말 살아가는 얘기를 늘어놓는 사랑방이 돼 버렸다. 3년 동안 발로 뛰며 채록한 미국 생활 에피소드들이 그냥 묻어 버리기에는 아까워서였을까. ‘Soup or Salad?'는 안박사가 KOSEN에 이런 이런 내용의 글을 실을 수 있다고 먼저 제의해 만들어졌다. “조금 알려졌는지, 출판사에서 책으로 내자는 제의도 들어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의만 한 뒤 감감 무소식이네요?” 초기에는 매주 2편씩, 요즘은 매주 한편씩 올리는 글은 이미 1백20편까지 계획이 잡혀 있다. 그러지 50여편을 올린 지금은 절반 고개 꼭대기에 거의 다다른 셈. “처음 미국에 비행기타고 와서 필요한 것들을 장만하는 것 부터 시작해 직장을 잡고, 돈을 벌어 집을 장만하고, 직장생활에 완전히 적응하기까지 필요한 것들을 모두 담는 게 목표입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려 카페에 오른 그의 글들을 보니 상황마다 오가는 영어 대화들을 쭉 늘어놓은 것이 마치 80년대 초반 대히트를 쳤던 ‘○○○ 생활영어’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연락이 왔던 출판사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소식이 없다지만, 1백20편이 거의 끝나갈 때 쯤이면 뭔가 좋은 소식이 들릴 것도 같다. 그리고도 얼마가 지나 아침 출근 길에 승용차 라디오를 틀었을 때, 혹시 이런 목소리가 나오지는 않을 지 기대해 본다. “안녕하세요, 안병기 유학영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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