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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면 봄도 머지 않으리! (苦盡甘來)

1. 회원님에 대한 소개와 학창시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저는 지금은 공룡 발자국을 유명한 경상남도 고성군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랐습니다. 흔히 정치인이나 국회의원들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즐겨 사용하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란 말은 정말 저에게 딱 맞는 말 같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가난한 시골마을이 싫어서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부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막상 도시로 이사는 왔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신발공장(아버지는 지금은 부도가 나서 없어졌지만, 그 당시 타이거라는 신발로 유명했던 삼화고무란 회사에 주야 2교대로 다니셨다)에 다니는 가난한 노동자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 시절 가족이 모두 외식을 해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좀더 정확히 이야기 하면 외식이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 갔다 왔더니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가정형편은 더욱더 어려워 졌고, 이런 어려운 가정환경은 오히려 저에게 큰 자극이 된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공부에 집중하게 되어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성적이 크게 향상되어 반에서 1등과 2등을 번갈아 했었습니다. 그리고 고3 때 교육자의 꿈을 품고 서울대 수학교육학과에 응시했는데 주위의 기대와는 달리 시험을 크게 망쳐서 떨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길이 제가 가야할 길이 아니어서 그렇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한 해 재수를 해서, 부산대 기계공학과 94학번으로 입학하였습니다. 대학교 1학년을 다니면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면서 잠시 방황하다가 동아리 선배님의 조언으로 학부 2학년이 되면서부터 KAIST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학업에 매진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학부 4년을 졸업하면서 공대 전체 수석으로 졸업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는 대로 98 3 KAIST에 석사 과정으로 입학 할 수 있었습니다. KAIST 석박사 과정은 훌륭하신 교수님들과 뛰어난 선배 및 동기들과 함께 공부하고 경쟁하면서 새로운 연구에 도전하여 큰 성취를 맛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가르침을 얻은 때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한 가르침 속에서 저는 조금 더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좌우명은 “겨울이 오면 봄도 머지 않으리!(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입니다. 항상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이 글귀를 떠올리면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오는 대자연의 순리와 같이 고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올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 왔습니다.

 

 

2. 회원님의 연구분야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세요. 그간 이루어 놓은 연구실적과 앞으로의 연구 방향 및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KAIST에서의 석사 학위 과정은 제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많은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 시기 였습니다. 학부를 졸업하면서 스스로 많이 안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우물안의 개구리와 같은 생각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저 자신이 아는 것이 바닷가의 모래알 정도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석사를 마치고 바로 세상에 나가기 보다 비록 넓게 많이 알지는 못해도 한 분야에 대해서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2000 3 KAIST 박사 과정에 진학하였습니다.

  석사과정때와는 달리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지도 교수님의 적극적이고 열성적인 동기 유발에 부응하고자 자기 주도적으로 연구를 수행한 결과 3년만에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서 다시 한번 지도 교수님께서 저에게 가치있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 드립니다.

박사 과정을 수행하면서 저는 새로운 형태의 생산공정(VLM:가변적층쾌속조형공정) 설계 및 개발에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서 국제전문학술지에 15편의 SCI급 논문을 게재하였고, 국내전문학술지에도 22편의 논문을 게재하였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LG전자 생산기술원에서 LCD, PDP 장비 설계최적화 및 VR(Virtual Reality) 과제와 파주 LCD 신공장 Layout 설계 최적화 과제에 참여하여 좋은 성과를 올려서 2005년도 하반기에 올해의 연구원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후, 10여년의 연구개발 경험을 토대로 좀더 다른 분야로의 도전을 모색하다가 특허청에 5급 박사 특채로 합격하여 현재 특허청 자동차심사과에 심사관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특허청에 와서 자동차분야와 관련된 특허 심사뿐만 아니라, 자동차관련 국가과제 기획위원 및 특허전문위원으로 활동하였고, 최근에는 “Fuel-cell 그린카와 관련하여 지재권획득전략사업을 수행하였습니다.

 

3. 이 직업 또는 연구분야를 정말 잘 선택 했구나 싶었던 때는 언제인지?

98 3월부터 2003 2월까지 KAIST 기계공학과 정형가공연구실(지도교수님: 양동열)에서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박사 과정에서는 과학기술부의 자금지원에 의해 1998 12월부터 2003 9월까지 5년간 ‘주문적응형 쾌속제품개발시스템 사업단’의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새로운 쾌속제품개발시스템의 개발 및 3D CAD 모델로부터 새로운 공정에 맞는 공구경로데이터 생성 방법에 대한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기존보다 5배 이상 빠르고, 2배 이상 저렴한 새로운 개념의 쾌속조형장치(제품명 : 가변 적층 쾌속조형 장치)를 순수 국내 기술로 독자 개발 할 수 있었고, 현재 국내와 미국에 특허가 등록 되었습니다. 이 장치는 국내 10여 개 대학에서 CAD/CAM 교육용 쾌속조형장치로 판매되었습니다. 이러한 성취는 연구원이 아니면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4. 인생에 영향을 준 사람이나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계기가 있다면?

석사과정에서는 “가변 용착 쾌속조형공정”을 개발하였는데, 본인의 기본적인 역량과 경험 부족 등으로 인하여 사실상 공정 개발이 실패하였습니다. 많은 인력과 돈이 투입된 연구 과제 였기에 그 실패의 대가는 생각보다는 혹독했지만, 비온 뒤에 땅이 굳어 지듯이 결과적으로 박사과정에서 새로운 쾌속조형공정을 성공적으로 개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지금은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신 안동규 박사님이 33세의 작지 않은 나이에 실험실에 박사과정으로 들어오셔서 함께 연구개발을 하면서 곁에서 많은 조언과 격려를 해 주신 것이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모든 연구원들이 새로운 연구과제를 수행하여 성공하기까지가 다 그렇겠지만, 지난 박사과정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이 과제가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니 수십 번씩 하고 그 과정에서 당장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었는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인 것 같습니다. 이럴 때, 곁에 있는 동료 선배의 작은 말한마디가 정말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5. KOSEN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현재 KOSEN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중앙인사위원회 5급 박사특채로 함께 들어온 동기인 환경부의 김병훈 사무관이 쓴 글을 우연히 KOSEN에서 보고 저는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KOSEN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6. KOSEN 회원과의 교류와 관련해서 개인적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국내 과학기술자로서 KOSEN회원과 전 세계의 한민족 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와 관련하여 KOSEN에 바라는 점 혹은 KOSEN에 거는 기대나 발전 방향을 제시해주세요.

 행사정보분석자료와 같이 KOSEN에 여러 유용한 자료가 많이 있지만, 현재 KOSEN 전문가 중에서 특허청 심사관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연구하면서 다수의 특허를 출원하였지만, 실제 특허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정말 무지하였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연구원들의 특허제도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메뉴(예를 들면, 알기 쉬운 특허교실)를 하나 만들어서 특허에 대한 기본적인 질의 응답도 하고 특허관련 자료도 올리도록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7. 마지막으로 이공계 종사자 혹은 과학도에게, 또는 이 길로 접어들고자 하는 후학에게 힘이 담긴 격려를 해 주신다면.

지금은 연구원의 길과는 조금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엔지니어라는 것에 대해서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고3 , 서울대 수학교육학과에 합격해서 만일 거기를 다녔다면, 지금의 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KAIST에 진학해서 석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경험했던 것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이공계 기피다 뭐다 해서 여러 모로 이공계가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의 목표가 뚜렷하다면 참으로 한번 해 볼만한 것이 엔지니어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맨날 아픈사람들만 상대하는 의사나 맨날 범법자만 상대하는 변호사에 비해서 엔지니어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을 직접 상대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유용하고 편리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같습니다. 끝으로 겨울이 오면 봄도 머지 않으리!”라는 말을 꼭 해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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