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포드대 우주과학 및 천체물리센터 배태일 박사
2002-05-27
신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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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세계 속의 한국인 과학자' 취재 의뢰를 받아 샌프란시스코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날씨가 변덕스럽다는 것은 들었지만 여름에 이처럼 봉변을 당할 줄은 몰랐다. 얇은 옷을 입고 갔지만, 몸서리가 치도록 추운 데다 빗줄기까지 뿌려 하는 수 없이 두터운 잠바를 사 입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스탠포드대가 있는 실리콘밸리의 심장부 팔로 알토를 향해 남쪽으로 차를 한시간 가량 몰았다. 놀랍게도 팔로알토의 날씨는 무더워 옷을 벗고 팔까지 걷어붙인 채 다녀야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비록 한시간 거리지만, 팔로알토는 샌프란시스코와 전혀 다른 세상이라고 한다. 드문드문 높은 야자수 나무가 보이는 스탠포드대 교정은 열대지방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엄청나게 커다란 캠퍼스에서 간신히 배태일 박사의 연구실을 찾아냈다. 배 박사는 태양 플레어가 25.5일의 주기를 갖고 있다는 이론을 체계화한 재미 천체물리학자이다. 흰머리에 푸근한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이 풍기는 그가 연구실에서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과학자이면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우주와 종교에 대해서도 글을 발표한다. 또한 미국에서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만들어 80년대에는 군사 독재와 싸웠고, 지금은 재미 한국인 교포들의 인권 신장을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 보통 과학만 열심히 하는 다른 재미 과학자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그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언제 미국에 왔나?
=45년 전라남도에서 태어나 4.19가 일어난 60년 서울 숙부집으로 유학을 올라와 배재고등학교를 다녔다. 엄청난 혼란기를 겪으면서 사회의식을 갖게 됐고, 과학자이면서 사회 참여를 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였다.
한겨레 조정래의 한강 연재 소설을 인터넷을 통해 재미있게 보았다. 소설에 강진에서 많은 학생들이 올라와 고시 공부하는 장면 나온다. 당시 시골에서 성공하는 것은 고시 공부가 첩경이었다. 하지만 5.16 혁명 뒤 4.19를 주도했던 사람을 재판하는 것을 보면서 법관에 대해 환멸을 느꼈다. 이 때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읽으면서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법보다 하느님이 만든 자연의 법을 공부해 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과학자를 한번도 만나본 적도 없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아버님이 6.25 때 돌아가시고 대학 입학금을 낼 돈이 마땅치 않아 4년 동안 학비가 면제되는 경희대 물리학과에 특별 장학생으로 진학했다. 다행히 62년 전국고교생학력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ROTC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72년 매릴랜드대로 유학했고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좋아해 천체물리학을 선택했다. 우리나라는 천문학과 물리학이 분리돼 있지만, 70년대에 들어와 분광학이 중요해지고 전파로 우주를 관측하게 되면서 많은 물리학자가 천문학 분야로 들어갔다. 관측장비를 만드는 것도 역시 물리학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박사 학위는 무엇으로 했나?
=77년 매릴랜드대에서 천체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태양 흑점 주위에서 일어나는 솔라 플레어를 연구해 논문을 썼다. 흑점 주위의 에너지가 강한 자장에 의해 축적됐다가 갑자기 폭발하는 것이 솔라 플레어 현상이다. 이 현상이 일어나면 하전된 입자들이 마치 가속기에서처럼 가속돼 태양 표면 바깥으로 엑스선이 반사돼 나온다. 이 엑스선 발생 과정을 계산을 통해 밝혀내 전자의 흐름과 에너지 등을 해석해낸 것이 내 논문이다.
-천체물리학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요즘 태양 물리학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첫째 실용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태양에서 나오는 입자들은 지구의 통신에 지장을 준다. 오존층 파괴, 지구온난화 역시 태양의 활동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 89년 퀘벡에 대정전이 일어난 것도 태양풍 입자가 지구의 자기장과 상호작용하면서 전기를 발생시켜 갑자기 송전선과 변압기에 많은 전류가 흘렀기 때문이다.
태양을 연구하는 두번째 목적은 태양을 잘 이해하면 별과 우주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태양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현상을 관측함으로써 태양 바깥의 별과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즉 태양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점검하는 실험실이나 마찬가지이다.
-박사 학위 뒤에는 어디로 옮겼나?
=박사학위를 마친 뒤 나사의 가다드스페이스센터에서 6개월 동안 있다가 샌디에고 소재 캘리포니아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여기에서 82년까지 있으면서 인공위성 관측장비를 이용해 태양 바깥의 중성자별에서 나오는 엑스선을 연구했다. 그 뒤 지금 일하고 있는 스탠포드대 Center for Space Science and Astrophysics로 자리를 옮겨 연구원으로 20년 동안 일해오고 있다.
-현재 연구소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이 연구실은 태양 연구로 유명하고 나도 태양연구 그룹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 현재는 유럽과 공동으로 나사가 얼마 전 쏘아올린 소호(SOHO)라는 태양관측 위성을 갖고 연구를 하고 있다.
이 위성에는 8개의 관측장비가 있다. 이 중 마이켈슨 도플러 이미지 관측장비가 우리 연구팀이 록히드사와 함께 만든 것이다. 이는 도플러 효과를 이용해 태양 표면의 진동 등 물질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장치이다. 95년 12월에 쏘아올린 소호위성은 궤도에 진입해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인 1억5천만 km의 1백분의 1인 150만 km 지구로부터 떨어진 지점에 있다. 이 곳은 태양과 지구의 인력이 같아지는 지점이다. 정지궤도 위성과 달리 이 지점의 위성은 태양을 24시간 관측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태양풍이 지구의 자기장에 막혀서 보지 못하지만 지구의 자장권 바깥에 있는 소호위성은 지자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다.
마이켈슨 도플러 이미지 관측장치를 이용하면 태양 안에서 발생하는 음파를 알 수 있다. 이는 마치 지진파를 연구하는 것과 같다. 지구의 지진파는 일정한 장소에서 일어나지만, 태양에서는 사방에서 폭발로 음파가 발생한다. 발생한 음파는 밑으로 내려가면서 굴절이 된다. 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굴절이 많이 된다.
수많은 음파 중에서 간섭현상이 일어나 서로 상쇄되는 것도 있지만, 공진현상을 일으키는 경우에는 속도가 빨라진다. 수백만개의 이런 음파를 분석해 태양 에너지의 분출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연구다.
그동안 소호위성을 통해서 태양 내부의 밀도 변화와 성분 등 내부구조를 알아냈다. 이를 통해 태양 내부의 대류영역의 두께가 태양 전체의 30%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아냈고 복사영역도 정확히 알아냈다. 태양 외부의 온도가 더 낮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부와 외부의 온도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소호위성을 발사하기 이전에도 좋은 연구 결과를 많이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의 업적을 설명해 달라.
=1955년부터 1979년말까지 태양 관측 자료를 분석해 태양 플레어가 25.5일의 주기로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중요한 연구 결과였다. 그 이전까지 태양의 활동주기가 11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작은 근본 주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내가 알아낸 것이다.
-태양 플레어와 흑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쉽게 설명해 달라.
태양 플레어는 태양 대기 속에서 일어나는 폭발현상으로, 순식간에 1억 이상의 인구가 1㎾의 히터를 1000~10만 년이나 쓸 수 있는 다량의 에너지가 나온다. 플레어로 빛나는 영역은 지구의 표면적 정도에서 10배에 이르는 크기까지 있다. 발생빈도는 태양활동의 극대기에는 하루에 몇 개~수십 개, 극소기에는 수일~수십일 동안에 1개의 비율이다. 플레어가 발생하면 선 X선 자외선이나 플라스마 구름이 방출되며, 이 태양풍이 지구의 전리층에 부딪혀 전자밀도를 더욱 증가시켜 통신에 지장을 준다. 행성 사이에 방출된 플라스마는 1~2일 후에 지구에 도달하고, 지구 자기장에 영향을 주어 자기폭풍현상을 일으킨다. 또 극지역에 입자가 지구의 자기장과 충돌해 오로라를 발생시킨다.
-언제가 태양 활동의 극대기였나?
2000년도 태양 활동의 극대기였고, 1989년도 극대기였다. 보통 태양 활동의 극대기는 주기가 11년이다. 태양 활동이 극대기에 달하면 태양 플레어가 많아진다.
그런데 한 천문학자가 지난 84년 11년 주기 외에도 155일 주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여기에 흥미를 갖게 된 나는 수십년 동안의 관측자료를 조사해보니 55년부터 66년까지는 51일 주기의 태양 활동이 있었고, 70년까지는 127일 주기가 나타났다. 또한 흑점의 면적의 변화를 관측해 76일 주기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들 주기는 모두 25.5일의 정수배였다. 이에 따라 태양 활동의 근본주기는 155일이 아니라 25.5일이라는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주장을 담은 논문을 91년 네이처에 발표했다.
-왜 태양 활동에 이처럼 주기가 존재하는가?
=나도 그 사실에 큰 흥미를 가졌다. 그래서 플레어의 태양 표면 분포를 연구해 본 결과 주기적으로 태양 플레어가 어떤 곳에 결집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주기적으로 여러 개의 솔라 플레어 다발이 일정한 곳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이런 장소를 핫 스팟이라고 한다. 이 핫 스팟은 태양 주위를 회전하고 있는데 그 회전주기도 역시 25.5일로, 내가 말한 근본주기와 거의 똑같았다. 다시 말해 핫 스팟의 회전 주기가 태양 플레어의 발생 주기와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사실은 스카이 앤드 텔레스코프 잡지에 소개되는 등 주목을 받았다.
-요즘에는 무슨 연구를 하나?
요즘에는 소호를 연구하면서 흑점 근방에서의 플라즈마 흐름을 연구하고 있다. 소호에서 온 자료를 분석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현재 직책은 시니어 사이언티스트이다.
-평소에 일하는 습관이나 비결 또는 소신이 있으면 밝혀달라.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이란 용어를 써서 많이 대중화됐지만, 나는 패러다임의 변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많은 과학자들이 패러다임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개선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태양의 주기성을 발견한다든지 태양의 플레어가 한 곳에 모여있다든지 하는 것은 매우 새로운 아이디어여서 저항이 많았다.
예술가도 동시대에서 평가를 받지 않으면 불운하듯이 과학자도 패러다임 안에서 일하면 편하다. 설득을 해야 할 필요도 없고 연구비를 받기도 쉽다. 하지만 나는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려 했기 때문에 사실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가족은?
=딸 2명이고 아들이 하나있다. 집사람은 우체국에서 일한다. 아들은 23살인데 지진아여서 걱정이 많다. 큰 딸은 버클리대에서 외교학을 전공하고 막내는 최근 힐러리와 울브라이트가 나온 웰레슬리 컬리지에 들어갔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그래서 우주와 종교의 관계에 대해 글도 쓰고 고민한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소장 겸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어떤 단체인가?
=한국인권문제연구소는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에 망명했을 당시 그를 돕기 위해 1983년에 만들었다. 가장 큰 일은 군사 독재 아래 한국 내에서 박해를 당했던 사람들에 대해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었다. 이 단체는 지금도 계속 활동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미국에 있는 교포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동포법안이 한국에서 제정돼 이민을 한 뒤에도 주민등록번호를 가질 수 있고 한국 내에 재산을 가질 수도 있게 됐다. 미국에 200만, 중국에 200만, 일본에 60만, 러시아에 50만 등 세계 4대 강국에 한국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어 이들이 한국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장시간 인터뷰에 감사 드린다.
Taeil Bai
Senior Research Scientist, Center for Space Science and Astrophysics, Wilcox Solar Observatory, Standford University
Associate Investigator, Solar Oscillations Investig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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