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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과학자] NIH 이서구 박사...세포 신호전달체계 1인자

“한번도 명함을 판 적이 없습니다. 불편한 적이 없어요. 연구하는 사람의 명함은 논문 아닌가요.”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30여 년 간 근무한 세계적인 과학자 이서구 박사(62)의 첫 인상은 담백했다. 대덕연구단지 생명공학연구원을 찾은 이 박사는 명함을 요청하는 기자의 말에 ‘명함없이 사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가 속해 있는 NIH는 한해 연구예산이 22억 달러인 세계 최고의 생명과학연구기관 중 하나. 한국으로 말하면 규모는 다르지만 생명공학연구원과 보건연구원을 합친 형태다. 이 박사는 ‘세포신호전달체계’에 대한 연구로 한국인으로서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인사다. 특히 이 박사는 지난 30여년 동안 ‘셀’이나 ‘네이처’, ‘사이언스’ 등 세계적인 과학잡지에 수많은 논문이 실리기도 했으며 NIH에서는 실장 급 연구책임자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이다. NIH에는 현재 300여명의 한국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 박사는 지난 67년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72년 미국 가톨릭대에서 유기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NIH와 인연을 맺은 것은 75년이다. NIH 산하 국립심장연구소(NHLB)에 입소했다. 그리고 뛰어난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불과 4년만인 지난 79년 NIH 종신연구원으로 임명되어 지금까지 재직 중이다. 종신연구원은 한국과는 달리 정년 없이 자신이 원하는 동안 연구소에 머물며 연구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 박사는 한 우물을 판 과학자로도 유명하다. 세포의 신호전달체계를 연구하는데 한 평생을 바쳤다. 그는 지난 86년 세포내 신호전달체계의 기본 물질인 PLC(인지질분해효소)를 발견하고 그 역할을 알아내 세계 생명과학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세포는 외부 충격이나 침입에 반응하는데 이때 PLC가 나와 충격을 자각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가령 나쁜 바이러스가 체내에 침투했을때 이를 세포에서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 결과는 질병의 발현 현상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받아들여진다. 암 등 각종 질병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알 수 있는 지 이론적인 토대가 됐다. 그는 이런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NIH에서 최우수연구자상을 받았다. 또한 미국 과학정보연구소(ISI)가 과학기술분야 최다 피인용 논문저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환갑을 지난 나이에 연구 활동 무대를 고국인 한국으로 옮기고 있다. 한때 30여명의 연구원들로 북적이던 자신의 NIH 실험실을 폐쇄하고 마지막 연구를 한국에서 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의 실험실은 상당부분 한국으로 옮겼다. NIH 에는 6명의 연구원들이 지키고 있다. 이마저도 내년에는 접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고국에서 연구에 몰두할 베이스 캠프는 이화여대에 차렸다. 이화여대에는 NIH에서 연구를 한 제자들이 여러명 있다. 그는 현재 이화여대에서 박사급 7명으로 구성된 ‘신호전달체계연구실’을 운영중이다. “NIH의 실험실은 점진적으로 폐쇄할 생각입니다. 앞으로는 그동안 해외 생활을 하면서 배운 다양한 연구 경험을 나눌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한국인 과학자 답게 그는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과 과학기술의 요람이라는 대덕연구단지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우선 과학기술계가 생존하려면 우수한 사람에게 제대로 대우하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지금처럼 적당히 인력을 선발해서 적당한 임금으로 적당한 연구를 하도록 하는 것은 뛰어난 연구업적이 생명인 과학기술계를 좀먹게 한다는 뜻이다. 그는 NIH의 까다로운 선발 절차를 소개했다. 포닥(Post Doc)를 밟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종신연구원이 되기에는 굉장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업적에 대한 엄격한 심사는 물론 10여장 이상의 추천서가 있어야 하는 등 개인의 자질에 대한 철저한 검증 작업이 진행된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종신연구원이 되면 그는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한 연구를 자신의 책임 하에 연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고 그는 덧붙였다. 현재 NIH에 한국인 종신연구원은 이 박사를 포함 모두 5명 가량이다. “모든 게 사람이 하는 일 아닌가요. 미국의 방식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우수한 사람에게 확실하게 연구할수 있도록 하는 것은 본받을 만한 것 아닌가요. 우수하고 좋은 사람을 제대로 뽑아서 확실하게 지원하는 것이 한국의 연구소가 사는 길입니다.” 그는 한국과학기술의 요람 대덕연구단지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PBS제도(연구과제중심제도)의 폐단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PBS는 기관이나 기업에서 연구자가 과제를 구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는 이 시스템이 기초연구를 하는 한국의 정부출연연구기관에는 맞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PBS는 축적된 기술이 많은 연구소에 적당한데 우리나라의 출연연구소들은 이런 경지에 있는 연구소가 거의 없습니다. 우수한 인재들이 PBS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대학으로 이직을 하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 아닌가요.” 대덕연구단지의 연구개발 인프라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NIH의 경우 넉넉한 연구비지원과 치열한 경쟁 끝에 우수한 연구결과물들이 나오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는 약간 달라 보인다고 말했다. NIH의 실험실 공간 역시 오래된 연구소이기 때문에 낡고 비좁아 불편한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소개했다. 그곳에서도 연구원간 공간싸움이 치열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대부분 출연연들이 갖추고 있는 실험 장치 등 하드웨어적인 면에서는 NIH와 비교를 해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제는 우수한 연구자를 선발해 장기적인 연구를 선택하고 꾸준히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노벨과학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건이 성숙했다고 진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고 창의로운 연구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벨상은 새로운 컨셉이 들어가는 창조적인 연구에 주어지는 상인만큼 이래라 저래라하는 간섭보다는 훌륭한 과학자에게 믿고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본인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쳤다. 자신은 이미 상과는 멀어진 사람이라고 겸손해 했다. 이 박사는 한국과 다른 나라와의 공동연구에 관심을 보였다. 연구의 수준이 비슷하게 올라와있고 지구촌 시대인 만큼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연구가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이 박사는 현재 한국의 이화여대 실험실에서 1년의 절반 가량을 워싱턴 D.C 인근의 자택에서 절반 가량을 생활하면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가족은 아내와 두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연락처 e-mail: sgrhee@nih.gov phone: 301-468-2365 이화여대 연구실: 02-3277-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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