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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찬수 박사의 ‘YES’ 이야기

“짠, 쭈 전화!!” 삼성 연구원으로 5년간 CAE 그룹의 TCAD (Technology CAD) 분야에서 일하던 시절의 연애담이다. 그 당시 전화기가 실장석에 한 대뿐이었기에 그에게 걸려 오는 현재 아내의 전화는 늘 이렇게 시작되었다. 후배의 소개로 만나 5년간의 열애 끝에 91년 결혼한 그에겐 이런 농담까지도 모두 행복으로만 여겨졌다. 중앙대 전자공학과 재학시절 삼성에서 장학금을 받고 병역특례로 삼성 반도체 기흥연구소에 입사한 윤찬수 박사 (KOSEN ID: csyun63)는 5년간 CAE그룹의 TCAD (Technology CAD) 분야에 있었다. 삼성이 256K DRAM을 개발할 당시 생소한 분야였던 TCAD를 처음으로 시작한 대한민국 TCAD 1세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96년 그가 삼성을 떠날 때까지 함께 해온 삼성전자 소자연구팀이 발족과 더불어 TD (Technology Development) 팀으로 확대되고, 256M DRAM 개발팀으로 성장해 세계 최초의 256M 개발이라는 큰 위업을 이루기까지 그의 노력과 힘은 엄청난 것이었다. “256M을 개발할 때는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아침 5시 40분에 집을 나서 회사에 도착하면 6시 30분, 과장 미팅을 시작으로 저녁 9-10시 경까지 잠깐의 여유도 없이 일에 열중했답니다. 그때 그때 투입된 Wafer의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문제가 생기면 뛰어다니며 풀어야 하고, 담당했던 Trasistor와 Isolation의 특성을 분석하고 개선해야 하고 말이죠. 토요일은 기본이고 일요일도 과장들이 돌아가며 한 달에 두 번은 출근을 했을 정도였답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비유가 떠오른다. “집에 다녀올께” 라는 인사말. 그들은 그렇게 젊음을 불태우며 ‘세계 최초의 256M DRAM 개발’이라는 대어를 낚았다. 물론 고생한 만큼 대가가 충분했다고도 볼 수 있다. 신문, 홍보용 영화에까지 출연을 하고 금전적인 보상도 함께 따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보상은 그의 마음 속 뿌듯함이었으리라. 256M 개발이 완료되고 포상으로 받은 제주도 휴가에서 던진 아내의 말 한 마디는 그와 그의 가족에게 일생일대의 전환점이 된다. “우리 계속 이렇게 살 거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함께 저녁을 먹고 일요일도 격주로 근무를 했으니 그런 말이 당연히 나왔겠죠. 그때야 비로서 저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답니다. 귀여운 예원이가 3살이 되도록 함께 한 시간이 얼마나 되었나. 일주일에 한 번 저녁을 먹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부부인가. 등등을 곰곰이 생각했답니다.” 그는 결국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고, 96년 스위스 연방공대인 ETHZ (Swiss Federal Institute of Technology, Zurich)를 향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스위스 연방공대에서는 다국적 기업인 ABB와 함께 IGBT Module 개발이 연구과제였습니다. 쮜리히에서 제네바까지 고속기차에 들어가는 고전압 IGBT였는데 기차가 주행 중에 발생하는 열이 IGBT Module 내에서 어떻게 분포되는지 분석하고 기차가 정지/출발을 반복하면서 생기는 신뢰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는데 그 연구과제가 저의 학위 논문이었습니다.” 그는 박사 후 연구원 동안 Hybrid 자동차에 들어가는 IGBT AD/DA converter를 유럽 프로젝트로 진행했다. 졸업 후 지도교수인 Wolfgang Fichtner가 세운 Spin off 회사인 ISE(Integrated Systems Engineering. Inc)에 입사해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현재는 산호세에 위치한 미국 지사에 있다. 그가 맡고 있는 주 업무는 TCAD를 활용한 소자, 공정, 회로개발 Consulting이다. “주로 TCAD tool을 이용하여 공정에서부터 소자까지의 특성이 측정 결과와 일치하도록 calibration하고 회로 파라미터 추출까지를 담당하고 있는데 요즘엔 TCAD tool을 활용한 manufacturing 분야를 담당해왔습니다. 즉, 공정 변수에 따라 소자의 특성과 회로의 어떤 특성이 얼마만큼 변화되는지를 분석하고 Yield 및 소자 특성 개선을 위해 공정의 어느 과정을 보다 엄격히 관리해야 하는 지를 분석하는 일입니다. 소자는 0.15um, 0.13um, 90nm CMOS를 일본, 한국의 회사와 함께 일했으며, RF 소자로는 SiGe HBT, Bipolar 등을 일본 회사와 함께 일했습니다.” 최근 그는 일본 T사와 함께 analogy 소자인 0.35um급 40V BiCD (Bipolar + CMOS + DMOS)의 공정을 set-up하고 소자의 특성 개선을 위해 연구 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주로 audio나 motor 드라이브로 사용하는 데 응용분야가 넓고 다양해 당분간 BiCD 분야로 1-2년간 더 일할 생각이라고 한다. 학위기간을 포함해 스위스에서 5년 이상을 생활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미국생활보다 유럽생활이 더 기억에 남는단다. 유럽의 중심인 스위스에 살다 보니 다른 나라를 마치 서울에서 경기도를 오가는 것처럼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행도 많이 다녔다.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를 샅샅이 훑고 다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게서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를 전해 들었다. 장을 보러 독일로 가고, 옷을 사러 프랑스나 이태리로 다닌다는 것이다. 정말 낭만적이고 여유로운 삶이 아닌가. 하지만 그들에겐 단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한 생활의 한 부분일 뿐이다. “스위스는 기후 탓인지 전반적인 색상이 대부분이 1-2도인 검정이나 회색이라서 옷을 사기 위해서는 프랑스나 이태리로 가고, 독일의 물가가 약 1/3 가량 쌌기 때문에 장보러는 독일로 간 거지요. 파리의 첫 인상은 지저분하고 보잘 것 없는 도시에 불과했답니다. 하지만 방문 횟수가 거듭될수록 그 속에서 살아 숨쉬는 역사가 느껴지다 보니 더욱 친근해지더군요. 그래서 가끔 금요일 밤 11시경 아내와 예원이와 함께 밤새 7시간을 운전해 새벽녘 뿌옇게 밝아오는 햇살을 받다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답니다.” 유럽의 휴게소에는 물건 파는 가게가 없고 화장실, 식탁과 벤치 그리고 어린이 놀이터는 반드시 있다고 한다. 오히려 그 점이 그들 가족에겐 좋은 식당 역할을 한 셈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라면을 끓여 먹어가며 호텔에서도 저녁과 아침 끼니를 직접 해 먹으며 여행을 할 정도였다. “유럽 예술의 시발점이며 결정판인 이태리, 강하고 화려했던 과거를 안고 살아 숨쉬는 문학의 나라 프랑스, 과묵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정교함의 나라 독일, 아름다운 음악과 낭만의 나라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를 다녔답니다. 태영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여러 곳을 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머무는 여행으로 방향을 바꾸었지요. 수많은 여행 덕분인지 고생도 함께 많이 한 예원이는 3개 국어를 할 정도로 재원이랍니다.” 예원이는 글솜씨도 뛰어나다고 아빠의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는 작년 스위스에서 머문 동안 있었던 좋지 않은, 하지만 그의 표현대로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주었다 좋지 않은 일까지도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처세술이야말로 그의 가족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렇기에 그들 가족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예원이와 둘이서 야간버스로 무박 3일간 프라하를 여행하면서 생긴 일입니다. 유럽과 아시아의 접경지역답게 역사적으로 번창했던 곳이라 그런지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한 도시였지요. 두루 구경을 마친 후 버스정류장으로 가보니, 저희를 포함한 세 팀의 명단이 빠져있는 거예요. 후진국의 시스템상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죠.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계시라 여기고 하루 더 프라하에 머물러 교외를 둘러보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지요. 그리고 기차시간에 맞추어 지하철을 타려는 순간, 소매치기를 당하고 말았답니다. 그런 경험이 처음이라 난감하긴 했지만 영어가 안 통하는 경찰서를 거쳐 인근 호텔에서 무사히 일처리를 끝낸 후 간발의 차이로 기차에 오르게 되었지요. 기차 안에서 밤새 어이없어 하며 웃고 떠들다 무사히 돌아왔지요. 미국에 돌아온 예원이가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답니다. 그날을 떠올리며 쓴 에세이가 바로 ‘프라하의 밤’이죠. 근사한 제목이죠?” 그가 사는 이야기 자체가 마치 한 편의 에세이를 읽는 듯하다.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인 그는 앞으로도 늘 이렇게 밝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한국인일 것이다. 그는 또 후학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빠뜨리지 않았다. “전공 분야에 대해서는 다들 고집과 신념이 있어야 과학도가 될 자격이 되겠죠. 전공분야에서만큼은 최고가 되려고 노력할 테니까요. 그대신 다방면에 걸쳐 경험을 많이 하라고 권하고 싶네요. 또한 여러 나라에 대한 문화적 차이도 접해보면 좋겠고요. 결국 과학이나 공학분야 역시 문화와 생활방식의 차이에 기인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간단한 예를 들자면 High Power 소자는 유럽이, 미국은 ASIC과 같은 디자인이, 아시아는 DRAM과 같은 제품 생산기술이 발달했듯이 말이죠.” 그가 언급한 대로 각 지역의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배경과 함께 공학이 필요에 의해 공생해왔다는 것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겠지만 공학도에게도 기술적인 방향과 연구 과제를 선정하는데 다양한 문화적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자신이 속한 분야의 바로 다음 단계만을 연구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 다음 다음의 연구 과제는 이러한 경험 속에서 찾는 것이 가장 합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미국, 유럽, 아시아를 각 축으로 놓고 기술의 발전 분야와 역사적 배경 등을 조합해보면 대한민국이 나아 갈 기술적 방향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단 저의 기술 분야에 대해서만 먼저 이러한 시도를 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TCAD 분야가 처음 미국에서 먼저 발전했고, 이제는 유럽으로 넘어갔으며 아시아는 아직도 초보 단계에 있는 이유를 문화적, 역사적 배경과 함께 포괄적으로 파악하는 중입니다.” 짧은 경험이지만 다양한 삶의 경험이 공학도로서 연구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뒤이어 오는 공학도들에게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직접 경험이든 간접 경험이든 많은 시간 투자를 아끼지 말라는 당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끝으로 KOSEN에 대한 기대와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을 한 곳에 어우를 수 있는 KOSEN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컨셉이 아닐 수 없으며, 또한 세계 각국의 기술 첨병들로부터 최신의 기술 동향, 연구 방향 등을 수집해서 DB로 구축해 나간다면 국가 전략 수립 및 각 대학이나 연구소의 연구 방향 설정에도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아직은 컨셉에 비해 내용이 부족하고 조금은 산만한 듯합니다. 각 분야별, 나라별, 혹은 주요 연구소 별로 과학기술자를 묶어서 이들이 일정 기간에 정보를 제공하는 채널을 만든다면 좀 더 체계적인 자료수집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제 경우를 들어보자면 저희 회사가 TCAD 관련 3대 Vendor 중 leading회사이다 보니 Intel, AMD, IBM, TI 등이 최근 어느 분야 연구를 집중하고 있는지, 어떤 문제를 TCAD tool을 통해 분석하고자 하는지를 회사 CRM을 통해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직접 담당하고 있는 일본 회사들의 사정이나 기술력은 물론이고요.” 이러한 값진 정보나 자료를 취합, 분류,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이 체계화된다면 대한민국의 기술 발전에 좀 더 유익한 자료가 될 것이다. 나아가 KOSEN을 통한 상호간의 커뮤니티가 부족한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KOSEN 회원의 전공 분야별, 혹은 지역별 community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마련하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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