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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광 해양공학자

1. 회원님에 대한 소개와 학창시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석유산업으로 유명하고, 얼마 전 허리케인 ‘리타’로 유명해진 도시 휴스턴에 살고 있는 유상수라고합니다. 2003년 겨울 Texas A&M대학에서 해양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마친 후 FMC Technologies에 근무한지는 2년 정도 되었습니다. 예쁜 두 딸-현아(아홉 살)와 은혜(다섯 살)-와 듬직한 대희(15개월)를 둔 세 아이의 ‘간 큰 아빠’이고요. “학교” 초등학교 3학년, 이제 아홉 살이 되는 큰 딸 현아의 1997년부터 2003년 겨울까지의 대답입니다. 현아가 기억하는 아빠는 언제나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늘 학교에 다니는 아빠를 보면서 ‘회사’라는 단어는 너무나 생소한 말이었고, 2004년 3월 회사에 입사한 이후에도 익숙하지 않은 현아와 저희 가족들은 지금도 아빠 어디 계시냐는 질문에 “학교에 계세요.” 라고 대답을 하곤 합니다. 1992년 여름에 인하대학교 선박해양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수중음향학(Underwater Acoustics)’이라는 새로운 분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돌고래 소리 연구하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죠!! 그 이후 해군사관학교 교수부 공학처에서 3년 동안 교편을 잡고, 한 학기동안 경남대학교 기계공학부에서 강의도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벚꽃으로 유명한 진해에서 해군사관생도들과의 학업과 운동, 그리고 많은 행사를 통해 얻은 추억은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으로 남습니다. 그 이후 주위의 많은 분들의 추천으로 1999년 Texas A&M 대학 해양공학과에 입학하여 2003년에 해양석유개발을 위한 부유식구조물의 운동해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친구들이 대리를 거쳐 과장이 되어 회사경력을 쌓는 동안 남들이 보면 공부가 적성인양(?) 거의 25년간을 학교에서 보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기타와 찬양, 그림, 농구광이었고 국사와 국민윤리 등에 알레르기가 있었습니다. 그저 수학과 화학을 너무나 좋아했던 평범한 이과학생이었고, 미래에 대한 특별한 계획 없이 고등학교시절 훌륭하신 화학선생님의 영향으로 화학을 전공하려 하였으나, 시험에 낙방하여 전혀 관심도 없었던 선박해양공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전기지원에 떨어져 고민하던 제게 현재 현대중공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한 친구가 인하대 후기전형에 선박해양공학과를 쓴다며 함께 가자고 하기에 친구 따라 무심코 썼던 전공이 저를 이곳 텍사스까지 오게 할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잠실고등학교라는 지역적 이유로 1986년에는 ‘86 아시안 게임’, 1988년에는’88 서울올림픽’으로 인하여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고등학교 3학년 생활을 잠실운동장에서 보내면서 가졌던 뒤늦은 후회(당시는 즐거웠지만)와 연로하신 부모님께 경제적인 부담을 드리지 않으려는 마음에 학업과 장학금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학부 조기졸업 이후 전액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서 들어간 대학원 석사생활! 그 당시 국내에서는 거의 들어보기 힘들었던 수증음향이라는 분야에서 지금은 서울대에 계신 지도교수님의 MIT유학 이후 한국에서의 1호 제자로서 교수님의 학업에 대한 열정과 기대에 부응하고자 눈물의 대학원 생활을 보내야 했습니다. 교수님의 기대에는 못 미치던 제가, 좋아하는 농구를 하면 농구장까지 오셔서 찾으시며 “자네는 체육과 학생인가?”라고 물으셨고, 어쩌다가 연구실에서 기타를 치노라면 “아예 전공을 바꾸지 그러나?”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학교 교정에 누워 낙담하던 제게 그 당시 같은 교회 친구였던 아내는 늘 용기를 주었고, 2년간의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지금의 제가 이곳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석사시절 지도교수님께서 보여주신 열정과 관심 때문이었고, 이제는 어렵게 지냈던 그 2년간의 대학원 생활을 얼마나 교수님께 감사 드리는지 모릅니다. 석사과정 이후에 해군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을 가르치는 저를 보며 아내는 엄하셨던 제 석사 때 지도교수님보다 더하다면서 훈련에 지친 생도들에게 학과수업을 너무나 강조하는 제게 옛말을 하곤 했습니다. 역시, 스승님께 배운 “학업에의 열정”이 그대로 전해졌나 봅니다. 그 당시 유학을 함께 가자고 제안했던 친구에게 혼자가라는 거절의 대답을 들었었지만 그 친구가 지금은 아내가 되어 늘 옆에 있습니다. 그 당시 혼나 가며 매일이 멀다 하고 즐겨 했던 단체운동 농구가, “팀워크”를 강조하는 현재 미국회사에서 근무하는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기도 합니다. 2. 회원님의 연구분야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세요. 그간 이루어놓은 연구실적과 앞으로의 연구방향 및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석유 및 가스개발 분야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특히 해양석유개발에 사용되는 플랫폼들의 운동을 해석하고, 그 바다에 설치된 플랫폼들이 허리케인이나 싸이클론 등에 파손되지 않고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근해의 석유/가스 매장량이 고갈되고 먼바다로 나가면서 수심이 깊어지는데 이때 플랫폼들의 운동해석은 기존의 운동특성과는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플랫폼 운동해석법을 제시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산업체의 관심을 “설계조건에 맞는 시스템을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구현하는가”라고 한다면, 제 연구는 기존의 보수적 설계(conservative design)를 좀 더 정확한 해석을 기준으로 원가를 절감하는 설계로 제안하는 내용입니다. 전통적으로 해양공학분야는 “맘모스 엔지니어링(Mammoth Engineering)”이라고 불렸던 것처럼 상당히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일해야만 하는 분야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향후 연구방향 및 계획은 좀더 여러 전문분야가 겹친(cross-discipline 혹은 inter-discipline) 분야의 연구를 하려고 합니다. 3. KOSEN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현재 KOSEN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KOSEN과의 인연은 KOSEN의 눈부신 활동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작년(2005) University of California at Irvine에서 있었던 재미과학기술자협회 학회인 UKC2005(United States-Korea Conference 2005)에서 KOSEN의 한선화 박사님과 윤정선 연구원님을 만남으로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생활을 하면서 활동적인 한국 분들을 만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었는데, 이 두 분의 전문성과 확신 있는 KOSEN에 대한 홍보는 저에게 매우 긍정적인 첫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학회에서 돌아온 이후 곧장 KOSEN에 가입을 하였고, KOSEN 전문가 분석, 리포트 검토, 학회 안내, 분석자료 추천 등 다양한 분야에 경험을 하나씩 해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해양공학 KOSEN 전문가에 선정되어 활동을 한층 넓히게 되었습니다. 그 첫 KOSEN과의 인연을 돌이켜 보건대 KOSEN은 그 두 분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모두 성실히 제공하는 베스트 단체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주변에 알고 있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분들에게 KOSEN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4. KOSEN 회원과의 교류와 관련해서 개인적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국내 과학기술자로서 KOSEN회원과 전 세계의 한민족 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와 관련하여 KOSEN에 바라는 점 혹은 KOSEN에 거는 기대나 발전 방향을 제시해주세요. 여러 다른 단체에 소속하여 활동하면서 한가지 느끼게 된 것은, “관계가 있는 단체 간의 네트워크 형성”이었습니다. 실제로 개인과 개인이 만나 좋은 관계를 맺는 것도 시간과 노력이 걸리듯이, 한 단체와 또 다른 한 단체가 서로 새로운 관계를 열어나가는 것은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이 듭니다만, 특히 KOSEN이 한민족과학기술자네트워크를 강조한 단체이므로 기존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과의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예를 들면, 1971년에 설립되어 미국 내 과학기술자들의 네트워크 형성에 많은 노력과 업적을 이룬 재미과학기술자협회(KSEA, www.ksea.org)와 KOSEN과의 협력은 좋은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기존 단체 대 단체와의 관계가 많이 형성되었으면 합니다. 둘째로, 지난번 한국내에서 있었던 KOSEN Festival처럼 회원들간의 친목도모 모임이 미국 등 외국에 있는 회원들 내에서도 있었으면 합니다. 결국, 새로운 회원들은 “재미있고 유익한” 모임에 점점 더 모일 것이고, 회원들간의 행사는 이러한 요소들을 한층 북돋우리라 생각이 됩니다. 실제로 현재 KOSEN에서 하는 행사들을 보면서 준비하시는 분들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하곤 합니다. 그 이유는 KOSEN의 행사들이 여러 모로 다른 단체와는 달리 많은 부분에 잘 정돈된 균형을 유지하며 발전하는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5. 마지막으로 이공계 종사자 혹은 과학도에게, 또는 이 길로 접어들고자 하는 후학에게 힘이 담긴 격려를 해 주신다면. 제 자신이 젊은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후학”이라는 단어에 부담이 되지만, 이제 학창시절을 보내시거나 학위를 마치고 학교나 직장에서 새로운 경력을 쌓으시는 분들과 나누고 싶은 것을 네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팀워크”와 “리더쉽”의 개발. 얼마 전 재미과학기술자협회 주관으로 젊은 과학도/공학도를 위한 글로벌 리더쉽 세미나를 Texas A&M 대학에서 주최하면서 미국의 대기업 벡텔(Bechtel)에서 부사장으로 근무하시는 최광철 박사님의 강연내용에 강조된 내용이었으며, 많은 공감을 느끼는 내용이라 강조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가능하면 개인운동보다 단체운동을 많이 하라는 조언도 하시더군요. 제게 농구가 도움이 되었듯이…… 둘째, “전문단체활동.” 회사와 학교생활을 모두 경험하면서 한국사람인 저에게 부족한 것은 국제학회 참여나 전문단체활동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언어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실제 글로벌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전문적 지식을 공유하고, 타 문화와 세계적 분위기를 배울 수 있는 전문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러한 전문단체에서 위원회 임원이나 자원봉사자로 적극 활동하게 되면, 전문적 지식 외에 중요한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발표능력 개발.” 자신의 아는 바를 잘 표현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전달 내용을 잘 전달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선전도 되지만, 전체 구성원의 지식을 한층 높여줌으로써 한 팀의 기술적 진보 혹은 문제해결이 빨라질 수 있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많은 강연 경험과 청중으로부터의 코멘트, 지적, 질문 등을 통해서 발전된다고 생각합니다. 산업체에 근무하면서 매일매일 느끼는 것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를 팀 내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할 수 있느냐가 제 숙제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공학자로서 혼자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늘 팀의 한 일원으로서 일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발표능력 개발의 필요성은 여러 프로젝트나 공동연구를 수행해 나가면서 점점 더 느끼게 되는 점이기도 하였습니다. 넷째, “마음가짐.” 몇 해 전 가족들과 아칸소 핫스프링스 여행 중 IBM에서 은퇴한 한 할아버지 댁에서 며칠을 함께 머물며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분께 여쭈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마음가짐이지!” 그 분은 마음가짐(attitude)이라는 답을 즉석에서 말씀하셨고, 몇 가지 그 분의 귀중한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지금도 늘 제 마음속에 남아있는 단어입니다. 끝으로, 제가 더 많은 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더 많은 내용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신 KOSEN가족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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