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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발견해가는 청지기

1. 회원님에 대한 소개와 학창시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미국 지도에서 캘리포니아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 캘리포니아의 가장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San Diego라는 국경도시가 나옵니다. 어려서 배우기로는 국경도시라면 검문소에 군인이 총 들고 서 있는 장면이 연상되지만, 이 곳은 북미지역에서 가장 온화한 기후를 가진 관광-연구도시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저는 샌디에고 북쪽에 살고 있고, 조금 더 위쪽의 La Jolla (스페인어로 ‘라 호야’라고 읽습니다) 에 위치한 Burnham Institute에서 Postdoc. 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라호야 지역은 생명과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유명연구소들이 즐비합니다. 우선 Scripps연구소가 있고요, 그리고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해낸 ‘요나 설크(Jonas Salk)’의 이름을 딴 Salk연구소가 있습니다. 또 생명과학분야에서 떠오르는 신흥명문대학인 샌디에고 캘리포니아대학(UCSD)도 같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지요. 제가 일하는 Burnham은 소규모로 시작해서 아직은 Scripps나 Salk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꾸준히 양질의 연구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으로 옮겨 온지는 1년 5개월이 되어갑니다. 2005년 1월 8일 결혼을 하고, 미국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던 신부에게 ‘신혼여행 가는 것’ 이라고 꼬드겨서 열흘 뒤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8월이면 한 사내아이의 아버지가 될 예정이기도 합니다. 학창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는데요, 중고등학교 시절은 남들 다 그러하듯이 평일엔 아침부터 야간자율학습시간까지 공부하고, 주말 되면 교회 가고, 주변으로 놀러 다니며 지냈습니다. 고향이 충북 충주인데, 주변에 들이나 산으로 산책 갈만한 곳이 많았어요. 딱히 튀거나 무언가를 잘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못하는 것 없는 조용한 학생이었다고(고등학교 선생님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잘한 건 아닌데, 수학이라는 학문에 지나친 매력을 느껴서 수학공부를 하겠다고 다짐을 많이 했었고요. 결국 하지는 못했습니다. 대학을 가면서 서울에서 4년간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생물학과로 진학했는데, 사실 학부시절에는 학업에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실험을 하면 한번에 이해할 수 있는 개념들을 이론으로 외우게 만드는 학과공부가 지겨워서 ‘평균만 넘자’주의로 살았습니다. 대학시절에는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접하려고 했고, 연극이나 영화나 무료공연이라면 어디든지 찾아 다녔습니다. 사실 주변에서 보기엔 심하게 방황하는 사람으로 보였는지, 늘 걱정하며 쳐다본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한 주일씩 학교에 안 나가고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학교동산에서 낮잠을 자다가 실험시간에 늦어 실험학점을 C를 맞은 적도 있고요, 아무튼 대학시절엔 별로 모범생은 아니었다고 봐야 맞지요. 그러다가 3학년 2학기 유전학 공부를 하면서 ‘아 이게 재미있는 일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멘델유전학이 보여주는 1:3 의 수학적 규칙성에 매력을 느낀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대학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3년간 열심히 공부해온 친구들에게 뒤져있는 현실을 보게 되니 ‘내가 너무 놀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학 동안 분자생물학 책 한 권을 독파하고나니 조금 눈이 뜨이는 것 같았고, 4학년 한 해 동안은 그 동안 관리되지 않았던 학점을 올리느라 바삐 지냈습니다. 96년 가을에 당시에는 아직 신생기관이었던 광주과학기술원 생명과학과에 합격했고요, 이곳에서 전 은사님이신 정용근 박사님을 만났습니다. 책에서 배웠던 것이 실험실로 오니 하나도 버릴 것이 없더군요.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서 학부시절 열심히 듣지 않았던 유기화학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아무것도 모르던 저에게 인내하시면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교수님께 늘 감사 드립니다. 그렇게 시작한 대학원 생활로 99년 석사를 마치고 2003년 여름 박사를 마쳤습니다. 중간에 2001년에는 BK21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캘리포니아 South San Francisco에 있는 RIGEL 이라는 바이오텍회사에서 9개월간 일을 했습니다(미국에서 9/11이 일어나던 해지요. 납치된 비행기중 한 대가 샌프란시스코로 오는 중이라는 뉴스를 듣고 연구원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던 시절의 9개월간의 치열한 미국바이오텍회사에서의 생활은 제 인생에 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때 팀원들과 만나고 편지도 나누고 실험에 대해 의논도 하곤 합니다. 학위를 마치던 해의 여름에 같은 학과, 같은 층의 실험실 후배였던 아내를 만났습니다. 마침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중이었고요. 그리고 1년간의 교제기간을 지낸 후 결혼하게 된 것이지요. 제 지도교수님과 아내의 지도교수님은 서로 사돈이라고 부르며 농담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2. 회원님의 연구분야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세요. 그간 이루어 놓은 연구실적과 앞으로의 연구 방향 및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대학원 학위과정 동안 Apoptosis (Programmed cell death)를 연구했습니다. 이 현상은 세포가 모세포로부터 분열하여 일정한 시기 동안 자기 역할을 한 뒤, 스스로 자살하는 프로그램으로 몇 년 전 하버드의 Dr. H. Robert Horvitz 가 이 현상을 연구한 공로로 노벨상을 탄 적이 있습니다. 학위과정 동안은 첫째로 세포를 사멸시키는 체내단백질들의 상호작용-예를 들어 효소와 그 기질의 특이성 규명-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둘째로 그 중 정말 특이하게 암세포만을 골라서 죽일 수 있는 단백질의 체내기능과 신호전달을 공부했습니다. 이 단백질은 TRAIL이라고 불리며 현재 미국에서는 임상 3기에 와있는 매우 가능성 있는 신약소재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2001년도 미국에 와있던 9개월 동안 바로 이런 단백질들의 체내억제유전자(혹은 상응하는 단백질)를 찾는 일을 배우고 익힌 것입니다. 생명과학분야에서는 이런 일을 흔히 screening이라고 부릅니다.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특이작용을 하는 유전자를 발견해내는 과정을 말합니다. 2001년 당시가 셀레라제노믹스와 미국 NIH의 인간유전체 프로젝트가 막 끝이 나면서 기능성 유전체학(Functional Genomics)의 가능성이 부각되던 시기였는데, 바로 이렇게 집적된 유전체 정보를 이용하는 분야로 미국에서는 나름대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회사에서 일을 했던 것에 지금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귀국 후부터는 바로 이런 screening system을 디자인하고, 테스트한 뒤 실용적으로 시도하는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우선 질병의 메커니즘 안에서 작용하는 단백질을 찾는 일을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얼마나 정확한 분석시스템을 디자인하는가’ 입니다. 일반적으로 질병은 자기의 작동원리가 있습니다. 앞서 기술한 ‘세포사멸’이 정확히 작동해주지 않으면 세월이 지나면서 암이나 퇴행성질환(우리가 치매라는 병으로 가장 잘 알고 있는)이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이 과정을 세포수준에서 가장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분석시스템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 분석시스템은 무엇보다도 ‘안정적일 것, 항상 동일하게 반복 될 것, 에러의 비율이 일정수준 이상 낮아야 할 것, 신호와 백그라운드의 차이가 일정 값 이상일 것’등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학위를 마친 뒤에는 이 기술적인 시야를 중점적으로 강조하여 현재의 보스에게 지원을 했고, 승인을 받아 Postdoc.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현 보스인 ‘존 리드(Dr. John C. Reed)’ 박사는 세포사멸분야에서 많은 기본개념을 세운 사람입니다. 매우 합리적이고 정확하며 ‘세포사멸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실제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신약을 디자인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저의 연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학위과정 동안 해온 일을 바탕으로 ‘질병 모델에서 유전자나 신약선도물질을 screening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하고 안정성을 테스트하여 최적화 시키는 일(Assay system design & optimization)’ 입니다. 둘째로 이 시스템을 이용하여 실제로 질병모델에서 작용하는 신약선도물질을 찾고 있습니다(Lead compound screening). 제가 이용하는 모델은 한가지는 암세포 모델이고 다른 한가지는 신경병리질환 모델입니다. 셋째로, 이렇게 발굴된 선도물질을 분석하여 체내에서 질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타깃을 찾아내고(Target identification), 화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선도물질을 최적화하는 일을 합니다(Target validation & optimization). 최근에는 한가지 종류의 screening작업을 마쳤고, 이 물질들의 기능을 규명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현재 진행중인 연구 이외의 세포 사멸을 이용한 screening 분석시스템을 전문적으로 디자인하고 셋팅하는 연구를 해보고 싶습니다. 신약개발의 초기단계인 분석시스템의 확립은 개념상으로는 매우 쉽지만, 실제 해보면 산 넘어 산을 타고 등산을 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해보면 꽤나 매력이 있는 일입니다. 사실 아직까지는 연구업적이라고 말하기에 부끄러운 수준입니다만, 정말 재미있게 일하고 있습니다. 큰 변화가 없는 한 아마도 이 일을 계속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학생 때부터 연구현장과 과학기술정책간의 괴리를 많이 느껴왔는지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과학기술정책에 관련된 일을 해서 실험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도 있습니다. 3. KOSEN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현재 KOSEN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처음에는 KOSEN에 들어가서 논문을 번역해주면 돈을 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접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시절에 돈이 궁하다 보니 아르바이트처럼 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일이 사실은 ‘번역’이 아니라 ‘분석’이고, 논문의 수준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지레 겁을 먹고 포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급히 구할 논문이 있을 때 KOSEN에 가면 쉽게 찾는 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들락날락하게 되었습니다. 도움을 받다 보니 주는 일도 어렵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일반 포탈사이트와 같은 무질서함이 아니라 통제되긴 하지만,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진 이공계인들만의 해방구처럼 생각되더군요. 미국에서 Postdoc. 생활을 시작한 뒤에는 제가 좀더 도와줄 일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한국에 비해서 접근 가능한 논문들이 많아졌고, 급히 논문을 찾으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서 보람도 생기고, 도우미로 3등 안에 들어서 상도 타봐야지 하는 욕심도 생기고(사실 한번도 못해봤습니다만), 그렇게 KOSEN과 가까워져 갔습니다. 지난 해 전문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족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모험 삼아 지원을 했는데 전문가로 선임되면서, 한층 KOSEN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지냅니다. 4. KOSEN 회원과의 교류와 관련해서 개인적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국내 과학기술자로서 KOSEN회원과 전 세계의 한민족 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와 관련하여 KOSEN에 바라는 점 혹은 KOSEN에 거는 기대나 발전 방향을 제시해주세요. 우선 KOSEN은 과학기술자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입니다. 이건 단순히 제가 속한 단체에 대한 자화자찬이 아니라, 이산경향이 있고 자아가 강한 과학기술자들이기에 쉽게 단일화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KOSEN이 바로 그러한 논의의 장, 혹은 과학기술자들의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일반화라고 뭐라 하실 분도 있겠지만 저는 과학기술인들은 그래도 더 순수하다고 믿습니다. 바로 이런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장이 더욱 많이 만들어지기를 고대합니다. 과학기술은 유사이래 꾸준히 역사발전이 원동력이 되었고 지금도 세상을 바꾸는 일에 기여하고 있는 가장 큰 영역입니다. 앞으로 KOSEN이, 바로 이렇게 세상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묵묵히 현장과 실험실을 지키고 원리를 준수하며 살려고 하는 많은 과학기술인들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또한 KOSEN의 외국 브렌치들을 중점적으로 육성하여 과학기술인들 간의 효율적인 네트워크 형성에도 도움을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5. 마지막으로 이공계 종사자로서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이공계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합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항상 중요한 역사발전단계의 한 축을 담당해왔습니다. 이런 이공계분야가 한국사회에서는 ‘기피’라는 현상으로 도외시되는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그러면서 종종 저도 실험이 안 풀려서 몇 날 며칠을 그 생각만 하거나, 심지어 꿈에도 실험이 나올 때면 피곤하고 지칠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늘 기대하는 것은 ‘나는 신이 만든 세계에서, 남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찾는 청지기’라는 가치입니다. 저는 이런 가치를 즐기고 싶습니다. 이공계가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는 것, 혹은 받지 않는 것과 무관하게 ‘내가 즐기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집중력이 자아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이유가 된다고 믿습니다. 잘하는 것이 열심히 하는 것만 못하고, 열심히 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만 못합니다. 과학기술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는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지식은 세분화 되어가기 마련입니다. 이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 과학기술과 사회와의 괴리입니다. 과학기술이 온전히 통제를 받으면서도 사회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려면 계속적으로 사회와 소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소통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자들이 ‘어렵지 않은 표현과 언어’로 사회를 이해시키는 작업입니다. 이러한 능력은 개인이 스스로 꾸준히 노력해야 얻어지지, 실험과 연구실에만 몰입해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사회이슈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기회를 가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많은 기회를 만들어 과학기술이 사회에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영향력을 줄 수 있는지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은 실패를 먹고 사는 꽃이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실험을 하면 할수록 자주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실패에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배워갑니다. ‘실패라고 쓰고, 경험이라고 읽는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실패는 쓰라리지만, 그 경험은 귀한 자산이 됩니다. 사회가 비록 성과위주의 계량성 사회로 흘러간다고 해도 흐르는 물을 거스르는 연어처럼 꾸준한 걸음을 내디디면 언젠가 자기만의 오아시스에 도착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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