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처음처럼
2007-03-12
김병훈 (hy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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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원님에 대한 소개와 학창시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과 김병훈입니다”
요즘 사무실에서 전화 받으면 자동으로 제 입에서 튀어나오는 인사말입니다. 임용된 지 100일 조금 넘은 까닭에 전화를 받으면서 저를 소개하는 인사말이 어색하긴 합니다. 2006년 10월 중앙인사위원회 기술직 사무관 박사 특채시험에 운 좋게 합격하여 현재 환경부에서 유해화학물질 국제 업무(OECD, UNEP, WHO 등)와 환경성질환 연구센터 지정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신의 기업이라는 공기업의 경쟁률에는 못 미치지만 제 나름대로는 힘든 경쟁률을 뚫고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늘 처음처럼’ 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공직에 임하고 있습니다.
전 욕심이 많아서 하나로 만족을 못합니다. 저의 이력들을 돌아봐도 그런 것 같아요. 배움의 시작은 한양대 생물학과에서 유전학과 생화학을 공부하면서 부터입니다. 3학년 때 처음 환경이라는 학문에 접하면서 환경에 관심을 가졌고, 4학년 때는 대학원진학과 원래의 꿈이었던 교직에의 갈망(교생실습 후에는 교직을 가려고 마음먹었었죠~)에 잠시 고민하기도 했었답니다.
그러나, 공부가 하다만 것이 아까워서 이내 포항공대 환경공학부에서 석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책으로만 공부하던 생화학이나 환경관련 분야를 직접 실험을 통해서 배워나가니 좀 더 해봐야겠다라는 욕심이 생겨, 박사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박사학위 때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공부 방향을 바꾸어 지금도 이슈화가 되고 있지만 다이옥신과 같은 내분비계 장애물질에 관한 분석 및 모니터링 연구가 박사 학위 테마였죠.
포항에서의 석박사 생활은 다들 생각하실 수 있는 것처럼 기숙사 생활이라는 점이 최대의 장점이자 단점이 되었습니다. 장점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었다(?)라는 것이죠. 단점은 무엇보다도 포항의 지리적 여건 때문에 좀 답답했었다라는 점입니다. 또한 서울-포항의 교통요건이 좋지 않은 덕분에 연애를 하기 힘들었다는 건 가끔 포항을 탈출하고픈 유혹을 느끼게 만들었죠. 학부 후배인 아내를 대학 복학해서 만난 후 7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는데, 7년 연애 중에 3번 정도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했었습니다. 1년에 적게 만날 때는 12번, 즉 월에 한번씩 보니 연애가 제대로 될 리가 있었겠습니까? 지금의 아내는 왜 그때 저를 매몰차게 내치지 못했을까라고 가끔 후회를 하곤 합니다 (^^;;).
2. 회원님의 연구분야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세요. 그간 이루어 놓은 연구실적과 앞으로의 연구 방향 및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2003년 졸업과 동시에 잠깐 포닥생활을 하고 2004년에 바로 삼성SDI 중앙연구소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환경분석이 전공인 사람이 웬 전자 관련회사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전자회사에도 분석업무는 필요했고, 또한 당시에 EU에서 시작된 전기 전자 제품 내 특정 유해물질 규제인 RoHS와 관련하여 환경규제 및 환경분석과 관련된 지식이 필요한 사람이 필요했던 상황이어서 바로 스카우트 비슷하게 취업이 되었던 것입니다. 회사에서 약 3년 동안 주로 브롬화 난연제와 관련된 분석법 개발을 담당하였습니다. 난연제란 방염제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쉽게 말하면 불에 타지 않게 하는 제품에 첨가하는 화학성분을 지칭합니다. 최근에 브롬화 난연제의 일부가 인체 위해성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규제가 시작된 까닭에 제품내 분석방법을 개발하는 게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었습니다. 학위때 난연제와 구조와 성질이 유사한 다이옥신, PCB등을 분석하고 모니터링 했던 연구가 회사에서도 실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사에서의 후반부는 실제적인 연구보다는 환경규제가 대기업에 미치는 영향등에 실제적으로 대응을 해야 했기 때문에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전기전자산업진흥회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관련 국제 회의에 참가해서 환경 분석의 경험을 토대로 환경규제와 관련된 국제 동향 등에 대해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해외 동향을 국내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환경부에 임용된 지는 이제 3개월 조금 넘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계획만을 잠깐 말씀 드리면, 제가 지금까지 쌓아온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행정지식을 겸비한 국제적 기술관료가 되는 게 꿈이랍니다.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늘 처음처럼’이라는 저의 좌우명을 가지고 열심히 배우려고 합니다. 코센 회원님들. 앞으로 저를 더욱더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3. KOSEN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현재 KOSEN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석사2년 차인 98년도에 처음으로 국제 학회를 나갔습니다. 그것도 달랑 혼자. 당시는 해외 연수가 그리 활발하지 않던 시기였고, IMF시작된 이후라 학교건, 연구소건 모두 해외 출장 및 연수를 금기(?)시 하였었죠. (솔직히 지금 해외를 자유자재로 지원을 받아서 나가는 후배들이 마냥 부럽습니다^^). 그러나, 석사과정 중에 국제 학회에 포스터 발표라도 중요한 경험이라는 지도교수님의 전폭적 지원 하에 미국의 올란도로 국제 질량분석학회에 참가를 하였습니다. 아직 어린(?) 학생이 국제학회에서 아는 사람이 있을 리도 없고 열심히 공부를 끝내고 학회를 끝내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제 포스터 앞에 서있는데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봐 주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인 모임이 있다고 언제 어디까지 몇 시에 오라고 말씀하시고는 가셨습니다. 17명이 모인 단촐한 한국인 모임에서 그 형님은 한국에서 달랑 혼자 온 저를 가여이(?) 여기셔서 다음날 본인 가족과 함께 올란도 디즈니랜드 구경까지 제의하셨고 저는 당연히 좋다고 승낙하여, 디즈니랜드를 실컷 구경하고 귀국할 수가 있었습니다. 헤어질 때 너무 고맙고 죄송해서 한국가면 선물이라도 하나 사서 꼭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하고 귀국을 했습니다.그러나, 한국에 와서는 메일만 한번 보내고 어느덧 세월이 2-3년이 확 지나가버리더라고요. 물론 미안한 마음만 간직하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그러다가 박사 3년차였던가요? 박사과정의 일상이 늘 그렇듯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위하여 자료조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국내 자료는 그럭저럭 모았지만 해외 동향자료를 하나도 발견할 수가 없더라고요. 해외 정책사례라던지 기술적 보고서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그 형님이 생각나서 염치 불구하고 메일을 보냈죠. 그랬더니 얼마 되지 않아서 코센이라는 곳을 알려주시더군요. 생긴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해외에 있는 과학자들이 경험담이나 보고서를 올리는 곳이라고 가입하라고. 물론 그날 당장 가입하고 제가 원한 보고서를 찾음은 물론, 회원으로 지금은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답니다. 참 그 형님께서는 광주과기원의 대학 교수님을 하고 계시지요. 가끔 광주에 출장 갈 때 연락을 드리는데 아주 반갑게 맞아주신답니다. 물론 선물은 아직도 못드렸구요. 밥도 한끼 못 사드렸습니다. 다음에 광주가면 꼭 신세 갚을 예정입니다.
지금은 코센에서 환경분야의 전문가로서 활동은 하지만 열심히 활동은 못했었습니다. 까닭은 삼성에 있을 때 전문가로서 위촉이 되었는데, 하루 일과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의 보안유지 관계상 관련 보고서검토나 파일 uploading이 불가능해서 코센 전문가일은 가끔 집에서 하느라 거의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환경부로 옮긴 이후로는 다행이 업무와 연결되어서 여러 가지 자료도 찾고 일을 전문가로서의 일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4. KOSEN 회원과의 교류와 관련해서 개인적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국내 과학기술자로서 KOSEN회원과 전 세계의 한민족 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와 관련하여 KOSEN에 바라는 점 혹은 KOSEN에 거는 기대나 발전 방향을 제시해주세요..
불가능하다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1년에 혹은 격년에 코센 회원들이 크게 만나는 학술대회 같은걸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알기론 친목도모모임 성격으로 만나는 모임이 한두 번 있고, 가끔 설명회 비슷하게 하는 것 같은데, 코센 관련 과학자들이 모이는 큰 자리가 있었으면 합니다. 국내 혹은 국제 학술대회와 같이 열려도 괜찮고 따로 해도 괜찮고요. 우선 전문가들만이라도 만나서 본인의 업무소개나 동향소개를 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합니다.솔직히 제가 말은 쉽게 하지만 이런 모임 개최가 많이 힘들다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온라인상의 발전은 오프라인을 토대로 더욱 발전된다는 걸 감안한다면, 언젠가는 추진하실 거라 믿습니다.
5. 마지막으로 이공계 종사자 혹은 과학도에게, 또는 이 길로 접어들고자 하는 후학에게 힘이 담긴 격려를 해 주신다면.
대학원시절에는 공부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교직에의 갈망을 버리지 못해서 개인적으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만나는걸 매우 좋아한답니다. 교생 실습후 아이들이 편지로서(이때는 email이 활발하지 않던 시절이라 일일이 편지로 왕복을 했었죠), 궁금한걸 물어오면 답변해주고 가끔 학교에 초대되어 일일 선생님으로 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대학원 시절 ‘과학문화재단’과 우연히 인연을 맺어 과학문화봉사단으로서 청소년들의 과학에 대한 궁금증을 인터넷상으로나마 풀어주는 역할을 3년 정도 하였고 지금도 가끔 그때 인연으로 만난 아이들 혹은 교생실습 때의 제자들과 연락을 주고 받는답니다. 그 친구들이 이젠 모두 대학생이거나 대학원생이지요. 몇몇 친구들은 저를 보고 이공계로 쫓아왔는데, 이 친구들에게는 주변의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흔들림 없이 ‘늘 처음처럼’이라는 마음 가짐으로 본인이 원하는 것을 끝까지 이루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코센의 광장community 시삽을 맡고 있는 cooleyhi입니다. 우선 박사특채로 공무원의 길로 들어오신 것을 축하합니다. 님의 글을 읽어보니 제 경력경로와 대부분 일치하더군요. 그 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살려 공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시고, 또 코센과 광장에서도 많은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