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공학 Curved Bridge(곡교) 분야 세계 1인자“ - 유재홍 미 오번대학교(Auburn University)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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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홍 미국 오번대학교 명예교수 겸 고려대학교 초빙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궁금한 것은 ‘지금, 그가, 왜, 서울에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세계 구조공학 분야 최고 권위자이며 특히 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는 Curved Bridge(곡교)에 관한 연구를 진행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곡교 연구 분야 세계 제1인자로 불리는 학자. 미국토목공학회(ASCE) Fellow(특별회원). 그리고 학계로부터 곡교 분야 Bible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유 교수가 정년 제한이 없는 오번대학교 교수직을 스스로 퇴직하고 1/7밖에 되지않는 연봉을 받으며 고려대학교에서 ‘고급구조론 안정론’을 가르치고 있는 이유를 말이다. “누가 시켜서라면 했겠습니까? 학문적 동료들도 다 말렸었죠. 하지만 집사람만은 이해해줬습니다. 한국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싶다는 평생의 열망을 집사람은 알고 있었거든요. 더 일찍 오고 싶었는데, 고희의 나이가 돼서야 오게 됐네요.” 이어서, 유재홍 교수는 뜬금없이 고려청자 얘기를 꺼냈다. | |||
한국 나이로 이제 고희가 된 노학자의 표정에서는 온화함과 강직함이 동시에 엿 보였다. 나이 서른에 미국으로 유학 가 한국말보다 영어가 더 익숙한 그였지만 한국에 대한, 한국 과학기술에 대한 애정은 그 어느 국내 학자보다 뜨거웠다. “초등학교 때 일제침략을 성토하며 선생님과 함께 끌어안고 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는 목숨 사리지 않고 목화씨를 숨겨 들어왔던 문익점 선생을 가장 존경해 왔구요. 아마도 그 시절의 기억이 한국에 대한 애끓는 애정을 만들었던 것 같애요.” “그렇게 대학까지는 장학금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유학이 가고 싶은 거에요. 돈 한 푼 없는 고학생이 말이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월남전이었습니다. 13개월 동안 월남전에 참전해 생사를 오가며 월급을 모으니 간신히 비행기 값과 약간의 학비는 나오더군요. 돈이 모여지자마자 한국에 들를 것도 없이 곧바로 미국 메릴랜드 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돈이 없으니 졸업도 빨리해야 했지요. 연구조교로 일하면서 3년 만에 석·박사를 끝내버렸습니다. 아직도 그 기록은 전무후무하다고 하더군요.” | |||
“잘하는 게 공부밖에 없었고, 그걸 지금껏 원 없이 하고 있으니 참 Lucky한 인생 아닙니까? 지금껏 SCI급 논문 70여개, 프로시딩 300여개를 남겼어요. 그 가운데 모든 구조공학자들이 벤치마킹할 만한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되는 것도 4개가 있구요. 30~40년을 밤새워 공부하며 끙끙 앓던 연구과제에 대한 해답이 바로 그것들이죠. 이 솔루션들을 얻은 기쁨을 로또에 당첨된 것과 비교하겠습니까? Lucky 그 자체죠.“ | |||
유 교수는 코센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표현했다. 더불어 ‘대가’다운 충고도 잊지 않았다. 더불어 유 교수는 ‘모든 구조공학자들이 벤치마킹할 만한 결과물’이라고 말했던 4개의 솔루션이 다 60세 이후에 얻은 성과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연구의 해답을 얻고 그 분야 대가가 되는 것은 그만큼 끈질긴 인내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후배 학자들이 꼭 얘기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유 교수의 연구실에는 마치 작은 도서관을 연상시킬 만큼 책이 많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책들은 유 교수가 평생 연구에 활용해 온 귀한 것들이며 동시에 후학을 위해 고려대학교에 기증한 것들이라고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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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_김희정·자유기고가·khj@kisti.re.kr |
이런분이 계셨군요. 모든것 버리고 귀국해 후학들의 교육을 위해 애쓰시는 박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도 60세 이후까지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열정유지 비법을 깨닳아야 할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