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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틀에서 벗어나라!!

(시칠리아로 가는 25시간의 기차여행)

클래식의 도시이자 겨울의 정취가 운치 있는 눈 덮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겨울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여행지로 남을 테지만 나와 같이 봄을 신봉하는 사람에게는 계절을 잘못 택한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여름과 겨울은 확연히 다른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느 사진 속에서 본 여름철 오스트리아는 푸르른 녹음, 색색의 만개한 꽃들이 햇빛과 조화를 이루어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와 같은 밝고 경쾌한 음악이 잘 어울리는 도시였다. 게다가 낮의 길이도 길고 치안도 좋아 밤늦도록 관광을 즐길 수 있어 여행하기에 좋다고 한다.
반면, 오스트리아의 겨울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배경음악으로 나와 줘야할 것 같다. 가라앉은 공기와 안개가 항상 한 겹 정도 껴 있는 듯 한 풍경에 웅장한 건물들도 겨울잠을 자러 들어간 것 같다.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과 회색빛이 감도는 도시에 지나간 옛사랑이 떠오를 법한 쓸쓸함이 느껴진다.

살을 에는 듯 한 추위와 짧아진 낮의 길이는 홀로 떠나 온지 3달째 접어든 여행에서 처음 맞는 위기였다. 3시면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여 5시면 까만 어둠 속에 모든 것이 숨어버린다. 야경으로 유명한 런던, 프라하, 부다페스트도 아니고 보고 싶은 것은 많은데 시간의 압박과 꽁꽁 언 나의 몸, 그리고 체력의 한계는 마음까지 얼려 버렸다. 변화가 필요하다. 그것은 햇볕!! 햇볕이었다.

스페인의 남부 말라가를 여행할 때 만났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해서 아름다운 나라라며 말라가는 1년 중 2개월을 빼고는 여름 날씨여서 눈은 기대할 수 없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지도상 스페인 말라가와 비슷한 위도 상에 있다면 지금도 따뜻한 햇볕과 하늘을 볼 수 있으리라.
여행의 마지막이자 하이라이트로 남겨둔 이탈리아... 그곳의 최남단 시칠리아 섬!! 그래 이곳이다!! 이곳에 가면 뜨거운 태양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시칠리아는 눈부신 태양과 함께 마피아로 유명한 곳이다. 마피아의 소굴이자 진원지로 알려져 영화 ‘대부’의 배경이 되었던 이곳은 여행계획을 세울 때 같이 갈 친구들을 만난다면 가고 굳이 안가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변화가 필요하다. 3개월 가까이 여행하면서 무서운 소문은 소문일 뿐, 여행할 때 지켜야할 유의사항만을 지킨다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득한 터이다.
우선 이탈리아 남부 끝으로 가서 기분전환을 하고 에너지를 충전한 후에 북쪽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자. 가만, 여기서 얼마나 걸리지?
다음 날 아침 바로 기차역으로 달려가 스케줄을 확인했다. 잘츠부르크에서 새벽기차를 타고 로마 경유(아침도착), 다시 시칠리아행 기차를 갈아타고 12시간을 더 가면 된다고 한다. 25시간의 기차여행이 될 것이다.
즉흥적이고 무모한 스케줄이지만 특별한 경험이 될 것 이라는 것과 파란하늘, 눈부신 태양에 대한 기대로 야간열차에서의 위험이나 기차 안에서 보내는 하루의 지루함은 걱정보다는 설렘이었다.

예약을 마치고 잘츠부르크의 명소인 모차르트 생가와 호엔성을 짧게 둘러본 후 서둘러 짐을 챙겨 저녁 10시경 시칠리아로 가기 위한 첫 번째 기차에 몸을 실었다. 12시쯤 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국경 근처의 villach 역에 도착했다. 로마행 기차로 바꿔 타기위해 플랫폼에 내려 보니 곳곳의 노숙자들과 몇 명의 사람이 있을 뿐 한밤중의 플랫폼은 조용했다. 너무 춥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으나 그보다 이탈리아행 쿠셋에서 말로만 들었던 나쁜 사람들과 한방을 쓰게 될까 더 신경이 쓰였다.
이렇게 두렵고 무서운 순간에는 혼자 여행에 너무나 잘 통했던 행운의 부적을 꺼냈다. 그것은 ‘행복한 사고’... 머릿속에 무사히 기차여행을 마치고 시칠리아 섬의 강렬한 햇빛을 받으며 신이 난 내 모습을 상상하며 나쁜 생각을 지워갔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 믿음은 여행 내내 현실이 되었다. 우주가 내 믿음대로 움직여주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기차에 올라 지정된 쿠셋에 도착하니 문이 잠겨 있고 한참 두들긴 후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마도 내가 경계의 대상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다행히도 쿠셋에는 백인 여자1명과 커플인지 남녀가 한 침대에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요상한 광경이지만 일단 내 안전에 위협을 줄 것 같지 않으니 상관없다. 긴장을 풀고 침대에 누우니 잠이 쏟아졌다. 정신없이 자다 쿠셋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보니 벌써 아침이 밝아있다. 다른 침대칸은 이미 비어있다. 가는 동안 지나쳐 온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에서 모두 내린 모양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는 말이 있지 않나. 그래서인지 로마의 떼르미니 역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분주했다. 소매치기가 많고 위험하다는 이탈리아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역내 곳곳에 경찰들이 정복을 입고 정찰중이라 안전해보였다.
시칠리아 팔레르모 행 기차를 기다리며 로마 떼르미니 역 안을 둘러보았다. 대형서점, 지하쇼핑몰, 카페 등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현대식 역사였다. 서점에 들러 닭요리를 좋아하는 친구생각에 손바닥보다 작은 요리책도 한 권 샀다. 장기여행자에게는 아무리 탐이 나는 물건도 부피가 큰 것은 그림에 떡이다.
시칠리아행 기차를 타기 전 11시간 이상을 같이 보내야하는 옆 좌석의 동반자가 궁금하다. 운이 좋게도 50대의 다정한 미국인 부부가 기차여행을 함께 한다. 여행지에서 나이 지긋하신 외국인 부부가 손을 잡고 여행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 두 분이서 휴가 때마다 세계여행을 다니신다며 다녔던 여행지에 대해 그리고 한국에 대해 얘기했다.

외국인이 생각하는 한국은 분단국가이다. 그들에게는 한국보다 북한이 더 유명한 것 같다. 노부부는 여행을 많이 다녀서인지 한국의 자동차, IT, 전자산업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외국인들과 한국기업에 대해 얘기할 때면 아직도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기업을 일본기업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북한을 구제대상국으로 알고 있어서 그런지 한국을 후진국으로 생각해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와 산업, 미국 내 한국인에 대해 꽤 아는 것이 많은 외국인을 만나면 끝없이 대화가 이어진다. 게다가 이 노부부는 한국말을 가르쳐 달라며 의욕을 보인다. 여행을 오래 다녀서인지 인사정도는 금방 익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면서 어느덧 해가 지고 3시간 후면 고대하던 시칠리아 빨레르모역(Palermo)에 도착한다.

기차타고 바다 건너기

기차가 갑자기 정차하더니 심하게 흔들렸다. 기차가 배에 실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배에 실린 채로 해안을 건넌 후 시칠리아 섬 내의 철도로 다시 연결된다. 독일, 스웨덴, 덴마크 지역에도 이런 구간이 있다고 한다. 모르고 탔던 나는 뒤늦게 신이 나서 배안을 이리저리 돌아보았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횡재한 기분이다. 배 안에는 기차가 실릴 수 있도록 철로가 놓여 있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위층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카페테리아와 쉴 수 있는 곳도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잠시 후 들뜬 기분은 기차가 연착된다는 소식에 근심으로 바뀌었다. 결국 밤 11시가 넘어서야 도착했고 역사 안은 적막했다. 나만의 여행규칙, ‘해가 지기 전에 숙소를 찾아라! (여러 명이 함께라면 예외!)’ 에서 한참 벗어났다. 혼자 여행하면서 가장 조심했던 규칙으로 지금까지 잘 지켜왔는데 햇볕에만 생각을 집중하던 차에 도착시간을 간과해 버렸다. 게다가 이곳은 무시무시한 마피아 소굴!! 여러 가지 생각에 두려움이 앞서는데 ‘이곳도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이다’ 생각하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길에 청소하는 아저씨들이 계셨다. 그분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숙소에 도착했다. 이제 살았구나 싶었는데 벨을 눌러도 안에서는 도무지 반응이 없다. 그렇게 몇 십 분이 흘렀을까. 지나가던 차에서 낯선 여자가 내리더니 따라오라고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나는 일단 믿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천만 다행으로 숙소가 옆 골목으로 이사를 갔고 호스텔 주인의 여동생이 지나가다 우연히 나를 발견하고 구제해준 것이다.
그녀는 나를 럭키걸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그녀를 만나지 못했으면 길에서 밤을 샜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침대에 누워 여정을 되돌아보니 여행의 운이 크게 발휘된 하루였다. 가는 곳마다 귀인을 만나는 날,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며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다.

태양의 시칠리아

시칠리아 섬의 햇볕은 여행의 슬럼프를 말끔히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9월 여행을 처음 시작했을 때 보았던 유럽의 태양이 이곳에 와 있었다. 처음 유럽 여행을 떠나던 날의 설렘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다.

관광객이 많이 찾지 않는 이탈리아 최남단 빨레르모에 아시아인 관광객은 신기한 존재인가보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의 흥미로운 시선이 나를 압도한다. 재래시장에 들어섰을 때, 일제히 나에게 집중되는 시선, 다른 도시에 겪었던 관광객에게 지쳐 지겹다는 표정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그런 시칠리아 섬의 열흘 동안은 온통 사과 향 같은 신선함으로 기억된다.

버스 정거장에서 가방을 조심하라며 단속을 시키는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었고 길을 물었던 기사 아저씨는 주위 사람들과 이탈리아어 토론을 한 후 가장 영어에 능숙한 사람을 선정해서는 책임지겠다는 듯이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 주기도 했다. 마치 우리네 시골 버스의 풍경과 비슷하면서도 오지랖 넓은 이들이 포근하고 정겹다. 버스를 탈 때마다 서로서로 인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우리네 시골버스의 풍경과 닮았다. 먼 타국에서 느껴지는 ‘정(情)’, 시칠리아 섬은 그간 다녔던 유럽을 벗어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따뜻한 햇볕, 따뜻한 사람들, 겨울이지만 시칠리아에는 봄의 향기가 난다.
25시간의 무리한 기차여행을 해서라도 시칠리아에 온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안전한 여행지로 계획했던 이탈리아 북부의 추운 지방을 여행했다면 나의 지친 몸과 마음은 많은 것들을 놓치고 지나쳤을지 모른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모험을 떠나는 것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을 항상 되새기며 세상의 틀에 꼭 맞추려고 노력했던 나의 과거를 되돌아볼 때 상당한 변화였다. 시칠리아에서 만난 햇볕은 남은 한 달간의 여행을 계속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했다. 여행의 끝자락에 무언가 달라져있음을 느끼며, 새로운 여정을 향해 내딛는 걸음마다 뒤꿈치가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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