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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떠난 스쿠터 여행, 소금창고에는 향이 없다.

<전라북도 진서면 곰소 염전>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고 했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는가를 묻는 시구는 이상하게도 듣는 순간 가슴에 와 박힌다. 연탄불을 지피는 집들도 많이 줄어 예전에 자주 보던 연탄수레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럼에도 눈이 많이 온 날이면 어김없이 동네 경사길에는 누군가 부셔놓은 연탄재가 있었다. 너는 한 번이라도 넘어지려는 사람의 손을 잡아 준 적이 있는가?

모항을 나와 격포로 가는 길에, 우연히 곰소 염전에 멈췄다. <로드무비>라는 영화에서 처음 소금창고를 보고 언젠가 꼭 소금창고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스쿠터가 머문 염전 입구에는 실바람에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만 보이는 낡은 소금창고가 있었다.

바람이 슬쩍 스치기만 해도
풀썩 주저앉으며 고꾸라질 폐 소금집이
뼈를 드러낸 채 숨을 고르고 있다.
(중략)
한때는 내 영혼도 소금창고였으면 했다.
짜디짜게 절여 타협하지도 풀어지지 않은
불멸의 다른 이름이었으면 했다
썩지 않는 것보다 썩는 것이
영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안 지금은
육망의 바다를 두고 기꺼이 썩기로 한다
이제 썩을 수 있는 자유보다 눈부신 것은 없다

김인자의 <소금창고> 중에서

어느새 낡은 시대의 유물처럼 연탄재가 일상의 주변에서 숨어버린 것처럼, 소금창고는 이 시대의 낡은 고통과 닮아 있다. 비와 눈, 바람에 철처럼 녹슨 나무는 백년이 넘도록 소금눈물을 흘린 탓인지 검게 변했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짠내가 젖어올 것 같은 소금창고, 세상의 모든 식탁에서 흰 눈 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매일 먹는 소금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시간이 너무 길었다.

염부는 말했다. 소금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라 했다. 염부의 젖은 장화 끝에 눈물처럼 말라붙은 소금기는 그가 짊어졌던 햇살만큼 밝았고, 그의 눈가 주름만큼 짰다. 염부가 지고 있는 것은 단지 소금이 아니라 바다의 눈물이라서 그랬을까.
그날의 날씨도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는 일기예보가 더 이상 예보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된 요즘, 염부는 먼 하늘의 색과 새의 나는 높이를 보고, 공기 중의 습기 냄새를 맡아 염전을 돌본다고 했다. 나와 소금 고랑 하나를 두고 나란히 걷던 염부의 발걸음은 여행자인 나의 걸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는 삼 대째 이 염전을 지켜왔다고 했다.
“우리 애는 소금이 싫답디다.”
하는 한숨 없는 염부의 공허한 한 마디가 먼저 소금창고로 들어갔다.

빨갛게 갈라진 속살을 드러낸
폐 염전에서도
물떼새 목을 축이고
도요새 지친 날개 쉬었다 간다.

염부의 아내 눈물 말려 번 돈
땅 떼기 조금 사서 밭농사 지어야지
소금물에 절어둔 희망
구름 낀 날에도 보스스 말라간다.
짠 내 쓴 내 나는 애옥살이 지겨운 염부
아내의 목숨 줄 같은 돈 다 털어 도망간 날
골프장 포크레인 위협에
소금창고 애면글면 지켜온 세월 쉽게도 무너진다.
서걱서걱 함께 울어주는 갈대밭에 누워
하늘 보는 그녀 위로 소금별에 쏟아진다.

김정린의 <소금창고> 중에서

와 보기 전에는 모든 염전이 바다와 면해 있다고 생각했다. 바닷물을 염전에 올려 햇볕에 말려야 소금이 나올 텐데, 이 넒은 염전을 바닷물로 채우는 것도 일이다 싶었다. 염전의 중간 중간에는 지하에 몸을 숨긴 너와집이 보인다. 지붕 아래를 들여다보면 안에는 큰 바퀴 달린 수차만 덜렁 놓여 있다.

수차는 바퀴지만 제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다. 제 자리에서 멀리 바닷물을 불러들이는 수차, 염부의 발이 하루가 저물도록 수차를 돌려대면 소금을 걷어낸 염전에 다시 바다가 들어온다. 그리고 염부의 일은 하늘을 바라보고, 불러온 바다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 그가 소금 알갱이가 생길 때까지 할 수 있는 건 볕이 쉼 없이 바다를 말려주길 기다리는 것, 그리고 불청객 비가 내리지 않도록 걱정하는 것뿐이다.
해가 긴 여름에는 소금을 걷는 횟수가 많아지고, 요즘처럼 해가 짧은 겨울에는 그나마 비가 안 오면 다행이라고 했다.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2300mg의 소금은 반드시 섭취해야 한다. 한 사람에게 고작 티스푼 한 숟갈 분량이지만 이 시간 숨 쉬고 있는 모든 사람이 매일 먹는 소금은 적지 않은 양이다. 그 소금을 수백 년 전부터 해왔던 방식, 기다림으로 얻는다는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해가 질 무렵, 염전에는 일손이 바쁘지 않다. 거둬야 할 소금은 오전에 이미 작업을 끝냈고 새로 채워둔 바닷물이 잘 말라갈 수 있도록, 혹시 이물질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들여다보는 정도면 오후의 염전은 한가하다.

염전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하자 염부는 흔쾌히 길을 열어주었다. 사각형으로 잘 다듬어진 염전을 따라 들어가니, 삼 대가 이곳에서 보냈을 청춘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예전에는 사금파리를 하나하나 깔았다는 염전 바닥에는 흔히 보았던 타일이 열 맞춰 가지런히 정렬해 있었다. 손수 하나씩 놓았을 타일 사이로 오후의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다. 보통 열흘에서 보름 정도 기다려야 소금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데, 간간이 침전된 소금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간절한 마음이 생겨났다. 비가 올 것 같으면 염전의 물을 해주로 빼야 한다고 했다. 빗물이 섞이면 소금의 농도가 연해져 천일염으로서는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곰소 염전의 소금은 순도가 좋기로 유명해서 여기 소금으로 만든 젓갈까지 더불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의 염전도 점점 줄어 이제는 여기서 보이는 정도의 염전만이 실질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염전에서 소금 나는 줄은 알았어도 그 소금을 누가 만드는지, 소금 만드는 일이 어떤 일인지, 염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내가 차마 안타깝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고됨이 소금 알갱이처럼 알알이 차 있었다.

아무리 내딛고 올려 밟아도 제자리지만
평생 그 걸음으로
수차를 밟는 염부
등을 뚫고 소금이 맺힐 때까지
염전은 자기 살을 태운다.
아픈 시늉도 없이
수차 또한 삐걱이며 돌고 또 돌고 돌아
전라인 바닷물이 여름 내내 땡볕에
피 말려 소금을 만들어내는
아, 쓰라림의 환희
번쩍이는 건 발 밑에 있다.
놀라워라, 있다.
죽을 때까지 그 걸음으로 내딛는 염부와
고통의 제자리걸음 밑에서 아픈
시늉도 없이 돌고 또 도는 수차 밑에
땡볕이.

김중식의 <수차> 중에서

내가 서 있는 이 발 아래가 금보다 귀하다는 소금이 있던 자리.
바다가 들어왔다가 나가면 염부의 땀과 바다의 눈물이 섞여 사금파리 사이사이로 하얀 소금이 온다는 염전에서, 기다림이 온전히 소금기둥이 될 시간이 지나면 태양은 생명의 미미한 원천을 남겨주었다. 소금은 그토록 짠데, 염전에는 짠 내가 없다. 항구에만 가도 바다내음이 완연하건만, 이곳을 다녀간 바다는 염부의 주름을 늘려줄지언정 한 줌의 바닷 내도 남기지 않았다.

여행은 길 위에서 시작되어 길 위에서는 끝나는 것인가 보다. 그래서 여행에는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게 아닐까. 제자리에서 도는 수차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생의 수차도 내 신발의 밑창이 닳아가는 만큼 돌고 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태양이 부리는 마술로 태어나는 귀한 것, 빛 자리에 남겨진 하얀 소금 결정처럼 내 생의 수차가 돌던 그 자리에도 어떤 하얀 결정이 남아 있겠지.

염전의 바닥에는 온갖 지층의 신비로운 패턴이 존재한다. 물속에 잠겨 있는 건열, 구멍이 성성한 현무암질, 금방이라도 쓸려 갈 것 같은 사암층, 그리고 발이 빠지면 놓아주지 않을 것 같은 진흙까지 그 색깔도 다양하다. 염전가의 길을 조심조심 걸어가다 눈길을 끄는 식물을 발견했다. 순우리말로 ‘통통마디’라고 하는 함초다. 염부는 배 아플 때 먹으면 좋다며 허허로운 미소를 짓는데, 염전 가운데에는 절대로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함초는 지구상에서 가장 무거운 식물이라고 한다. 민물에서 싹이 나서 염분을 빨아먹고 성장하는 독특한 체질이다. 바닷물이 꼭 필요하지만 바닷물에 잠기면 고사해버린다. 칼슘과 미네랄 성분이 많아서 약초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지만, 염부에게는 반갑지 않은 손님 같다. 5억 년 전 고생대 식물로 그 모습이 거의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온 질긴 생명은 붉은 잎을 빳빳하게 세우고 소금장군처럼 반짝거렸다.

염치 불구하고 소금창고를 보여 달라고 했다. 약간은 귀찮은 표정을 지었지만 들고 있는 카메라를 보고는 부서질 것 같은 소금창고 문을 열어주었다.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창고 안에는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소금 무더기가 높게 쌓여있다. 슬그머니 소금을 집어 혀 끝에 대니 집에서 먹던 소금보다 훨씬 짜다 못해 쓴맛이 났다. 바다가 이토록 짠 것인지, 소금이 원래 이 정도로 짠 것인지 모르겠지만 곰소 염전의 소금은 정말 짜다.

낡고 오래된 창고 안에는
소금덩이들이 무더기로 부러져 있다.
(중략)
시도 때도 없이 녹아 흘러버리는 소금을 어찌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런 탓에 소금물은 그렁그렁 녹아내리기 일쑤였다.

무심코 열어본 소금창고에서는
짜디짠 소금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창고의 문은 여간해서 닫히지 않았고
곁에 있던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
(중략)
이맛살과 눈주름이 폭삭 내려앉은 창고 안에는
넘실넘실 녹아나가는 소금물을
꾹꾹 눌러 말린 소금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박성우의 <소금창고> 중에서

어디선가 바람이 한 줄기 불어왔다. 창고에 쌓여있는 염부의 키를 넘긴 소금산 너머에서 부는 바람이다. 나무로 된 소금창고는 함부로 침입하는 바람에도 빗줄기에도 강건하게 버텨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염부는 이 소금창고가 백년이 넘었다며 대견하다는 듯이 판자를 어루만졌다. 그가 아이였을 때, 그가 소년이었을 때, 그가 청년이었을 때, 그가 지금처럼 노인이 되었을 때 언제나 그는 이 소금창고에 있었고, 그래서인지 그의 땀은 이 소금처럼 짤 것 같았다.

염부에게는 모든 것일 소금창고, 그는 자기의 가장 귀한 보물창고를 나무로 만들었다. 소금창고는 나무가 아닌 다른 것으로는 만들 수 없다고 했다. 소금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소금을 견딜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어떤 강철도 소금을 견딜 수는 없다고 한다.

간만에 비집고 들어온 햇살에 눈이 부신지 소금 알갱이들이 하얗게 부서졌다. 검은 소금꽃이 핀 소금창고에는 향이 없다. 바다의 기억을 잊어버린 것처럼 소금은 무향의 하얀 빛만 반짝이고, 이내 창고 문이 닫히면 어둠 속에서 단잠에 빠져드나 보다.

염전 앞에 덩그마니 서 있는 소금창고는 낡은 고통을 닮았다. 바다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육지의 염전에는 바다의 출렁거림만 남아있다. 생이 불현 듯 출렁거릴 때, 소금창고에 찾아가보자. 그때는 꼭 스쿠터를 타지 않아도 좋겠다. 염전에 가보지 않고 바다의 눈물이 어째서 그렇게 짠지 함부로 말하지 말라. 바다가 속살을 드러낸 갯벌에서는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 하얀 슬픔. 향기 없는 그 슬픔의 원형을 보아야만 바다가 피워낸 마른 버즘의 향을 기억하리라.

소금창고
-나병춘-

소금이 가고
소금이 오는 곳
태양이 오고
달이 가는 곳
그곳에 가면 소금창고가 있다

하늬바람 건들바람에도
삐걱거리는 곧 허물어져버릴 것 같은
상여 같은 집

온종일 수차가 돌다
해 떨어지면 수차가 멈추는
수평선 땅거미 따라 걸음을 멈추는
약간 삐닥하게 우뚝 선 집이 있다

태양의 기울기로 지탱되는
바람의 무게로 불끈 다시 일어서는
가끔가다 천둥번개가 호통치면
팽창한 물 창고가 되기도 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서럽게 빛나는 소금을 지키는
오래된 세한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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