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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에서의 10일간 입체영상촬영 [김영균]




입체 관련 전문업체인 A사의 이대표가 어느 날 나에게 기술감독으로 촬영현장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입체 관련해서는 이전에 이대표와 개발 일을 같이 했기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던 터였고, 경영자로서 실무 일에 멀어져 있었던 터라 흔쾌히 수락했다. 단, 촬영은 오래 전 연구소 수준의 샘플촬영만 했었기에 첫 촬영은 보조형태의 참석으로 양해를 구했다.
드디어 첫 촬영 일정이 잡혔다. L사의 입체홍보영상을 피지에서 10일간 촬영한다는 것이었다. 이말과 더불어 이대표는 이번 촬영의 문제점도 이야기 하였는데, 촬영 팀의 수준이 너무 낮아 프로덕션에 문제재기를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과 촬영에 동원되는 카메라들이 대부분 시제품들로 아직 준비가 덜 되어있어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반면, 촬영현장에 처음 참여하는 나로서는 ‘뭐 별 문제야 있겠냐’는 생각을 하며 피지로 출발했다. 워낙 많은 인원과 부수 물품, 고가의 촬영장비들로 세관신고도 해야 했기 때문에 출국 절차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피지 행 비행기에 탑승. 피지까지는 10시간 정도 소요된다기에 설렘도 뒤로한 채 잠을 청했다. 비행기 창문 밖 구름너머로 햇빛을 맞으며 드디어 피지의 난디 공항에 도착했다.



 

 난디 공항의 첫인상은 시골의 그저 그런 조그마한 공항, 그리고 태양빛이 따갑다는 것뿐이었다. 피지에서는 겨울이라고 하는데도 살갗에 닿는 햇빛은 거의 살인적이었다. 출국장으로 나오자 환영하는 악사들의 모습과 노래 소리에서 비로소 여기가 피지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일행들 각자가 짐을 나눠서 출국절차를 밟았는데, 나 역시 카트 하나를 챙겨 출국절차를 밟기로 했다. 그런데 설마 내가 맡은 짐이 종이팩 소주가 가득 든 것일 줄이야!!! X-Ray를 통과하자 다른 쪽으로 끌려 가 뭣 모른 채 박스를 개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종이팩 소주를 가리키며 이게 무엇이냐고 묻는데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라 잠시 당황했으나, 이미 그게 술임을 알면서 묻는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다른 한 사람이 자일리톨 껌 통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닌가. 이때다 싶어 웃으며 협상을 시작했고, 껌 한 통으로 무사히 통과하게 되었다. 아마도 한국사람들이 항상 소주를 많이 갖고 들어오기에 그랬던 것이라 생각된다. 잠시 부끄럽단 생각도 들었다. 공항을 나오자 입구에는 여행사에서 마련한 차량이 대기 중이었다. 차량에 올라 피지의 풍경을 감상하며 첫 숙박지면서 가장 오래 촬영할 상그릴라스 피지안 리조트로 이동하였다.




 

피지의 풍경은 가끔 보이는 야자수와 원주민, 허름한 낯선 집들을 빼면 옛날 우리 시골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동 중, 피지는 독립 전 영국의 식민지였기에 인구 70%이상이 인도인이고 원주민은 소수라는 가이드의 이야기에서 피지의 아픔과 현상황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숙소에 도착해 각자 2인 1실로 방을 배정받고 짐을 풀고, 내일부터 시작될 촬영을 위해 카메라들 조정과 장비 셋팅 준비로 호텔측에서 마련해준 회의장에 모였다. 숙소는 3층짜리 건물이었고 산호 해변을 바라보고 쭉 늘어선 형태다. 그런 건물이 넓은 공간에 여러 채 있고, 방은 베란다를 열면 산호 해변이 펼쳐지는 모습이었다. 회의장으로 향하던 중 잠시 본 피지의 바다는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회의장에 장비들을 풀어두고 식사를 먼저 하기로 한 일행은, 피지에서의 첫 식사인 만큼 테이블마다 다른 메뉴를 시켜 뭐가 괜찮은지 보기로 했다. 본인이야 워낙 돌아다닌 경험도 많고, 식사를 가리지 않는지라 괜찮았는데 많은 수가 식사 후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다. 카메라와 장비들 점검 및 셋팅은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는데, 이러한 상황은 마지막 날까지도 지속되었다. 결국 10일동안 피지의 낭만과 여유로움은 마지막 날 짧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느껴보지 못했다. 다음날 일찍 식사를 마친 일행은 숙소와 멀리 떨어진 골프장이 아름다운 호텔로 첫 촬영을 위해 이동하였다. 먼저 골프 치는 모습과 피지 전통 고기 잡는 모습을 촬영하는 신을 찍기로 했다.




 

첫날의 촬영은 그런대로 무사히 진행되었다. 그런데 둘째 날부터 촬영기술회의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우리 기술팀 쪽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이에 격분한 촬영팀도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한것이다. 프로덕션 쪽에서 이런 상황을 중재 하고 원만하게 진행되도록 해야 하나 처음 접한 상황이라 그런지 중재와 화해보다는 본인들이 더 나서서 분란을 키우는 형상이 되었다. 내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영상의 퀄리티를 위해서는 기술팀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물론 말의 표현상 문제가 있었어도, 일차적으로 아슬아슬하게 상황은 정리가 되었지만 결국 끝까지는 가지 못했다. 며칠 후 기술 팀 총 책임자였던 이대표는 자신의 이름은 넣지 말라고 했고, 다툼 끝에 촬영에서 빠지게 되었다. 물론 촬영은 계속되어야 했기에 필자가 나서서 설득, 기술 팀 실무진은 촬영을 지원하게 하였고, 필자와 이대표는 남는 근거리용 카메라를 가지고 우리만의 촬영을 하였다. 이렇게 피지에서의 입체 촬영은 세라톤 호텔에서 막을 내렸고, 마지막 날 오후 처음으로 피지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번 촬영의 결과는 기술팀의 우려대로 발주자에게 실망을 안겨줬고, 실패로 결국 막을 내렸다. 입체영상 촬영은 아직까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단순 이해를 기반한 촬영이 아닌 기술적 요소들을 필요로 하기에 기술감독의 역할이 2D 촬영과 같은 단순 기자제의 관리역할을 벗어나 촬영 현장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입체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입체가 단순히 양안의 차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양질의 컨텐츠(영화를 비롯한)가 거의 없는 이유는 입체 영상의 기술적 본질을 이해하고 습득한 시나리오 작가나 촬영 팀들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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