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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의 모든 것

2011년 9월 15일, 전국 순환 정전. 일명 9·15사태를 겪은 국민들은 이번 여름을 유난히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가뜩이나 여름마다 ‘블랫아웃(대정전)’이란 소리를 질리도록 듣던 국민들에게 ‘원자력발전소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사건’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로 다가왔다. 이 사고로 이미 원전 3기가 가동 정지 상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블랙아웃,
어떻게
생길까

흔히 ‘정전’이 된다면 우리 집에 전기가 며칠 간 들어오지 않는 상황만을 생각한다. 불편한 것을 조금만 참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태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이미 전기라는 에너지를 기반으로 만들어 둔 사회 전체가 기능을 중지하기 때문이다. 전기가 없으면 주유기가 움직이지 않아 자동차에 기름을 넣을 수 없고, 정수시스템이 멈춰버리면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다. 만약 겨울철에 블랙아웃이 일어났다면 난방도 할 수 없다. 도시가스나 석유 보일러도 전기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2~3일 이상 지속되는 대규모 정전은 도시를 지옥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 블랙아웃의 직접적인 원인은 다양하다. ‘자연재해’, 또는 ‘우연찮은 사고’도 원인이 될 수 있다. 발전소 1~2곳이 갑작스럽게 멈추거나, 전력거래소에서 실수로 전력수요를 잘못 계산하거나, 천재지변으로 고압전선이 차단되는 경우 등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블랙아웃이 생기는 근원적인 이유는 ‘전기가 부족한 상황’이다. 블랙아웃의 무서운 점은 멀쩡한 지역까지 함께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국가적으로는 전기에너지가 충분해도 한 지역전력망에서 전기가 부족하면 일단 그곳에서 블랙아웃이 일어난다. 그리고 주변에 영향을 미쳐 차례로 전력망이 사망한다. 그리고 정전지역이 점점 넓게 퍼져나간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전기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쓰면 되지 않을까. 가전제품 출력이 약해지거나 일부에서만 전기가 끊어지면 되지 않나. 왜 조금 전기가 부족하다고 전체가 전기를 아예 쓸 수 없게 되는 걸까. 일상생활에서는 건전지 같은 ‘직류전기’가 아니라 플러그와 전선을 통해 들어오는 ‘교류전기’를 쓴다. 교류전기는 일정한 주파수에 맞춰 전기가 파도처럼 흐름을 타고 움직인다.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가정으로 전기를 보낼 때 220 V의 전압을 초당 60번의 리듬(60 Hz의 주파수)에 맞춰 실어 보낸다. 만약 어떤 원인 때문에 전기 공급이 부족해진다면, 전기는 그 특성상 전체 전력량을 유지하기 위해 저절로 주파수가 떨어지게 된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전자제품은 모두 이 전압과 주파수에 맞춰 움직인다. 그리고 ‘최저 작동전압’이나 ‘최저 작동주파수’가 정해져 있다. 대부분의 장비는 보통 규격 전압이나 주파수보다 10~20 % 이상 차이가 나면 동작을 멈춘다. 정밀기기는 그보다 더 작은 차이가 나도 정지하거나 고장나버린다.
그러니 이 기준에서 크게 벗어난 전기가 가정으로 들어오면 전기란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전기란 흐름이다. 한 쪽에서 전기를 소비하는 부하회로(저항)가 있어야 전압이 발생하고 전기가 흐른다. 전력망을 유지해주는 장치와 전자제품이 모두 멈춰버린다면 다시 정상적인 전기를 보내도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고가 ‘우리 집’이 아니라 전력망 전체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블랙아웃은 전력망에서 전압과 주파수가 심하게 변하면서 발생한다. 일부지역이라도 전기 사용량이 공급량보다 많아지면 전력망 전체의 전압과 주파수가 크게 떨어진다. 그 결과 전력망을 관리하는 시스템마저 정지해 보리면 결국 전력망 전체가 ‘사망’한다. 이것이 블랙아웃이라고 불리는 현상의 정체다.
전기를 공급하는 고압 송전선도 블랙아웃을 일으킬 수 있는 큰 변수가. 전기 사용량이 공급량을 초과하면 초고압 송전선 내부에서 전압이 급격히 저하되며, 송전능력도 떨어진다. 만약 일부 고압 송전선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다른 송전선으로 전력수송량이 몰리다보니 그 송전선 내부에서 전압이 급격히 저하되며, 송전능력도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낮아진 전압은 송전능력을 더 낮추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블랙아웃 현상은 더 빨리 진행된다.

블랙아웃,
어떻게
복구하나

블랙아웃을 예방하는 방법은 발전소를 충분히 짓고, 지역에 따라 전력예비량에 차이가 생기지 않도록 안전한 전력관리시스템을 갖추는 것뿐이다. 만약 국가전체의 전기공급량이 부족하다면 일부러 전기공급을 끊어서라도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 전기 사용이 가장 많은 오후 2~4시에 전기 공급을 중단하는 ‘제한송전’을 하거나, 지난 9.15 정전사태와 같은, 전국을 수십 개 구역으로 나눈 다음 한 곳씩 돌아가면서 전기를 차단하는 지역순환정전도 방법 중 하나다. 블랙아웃은 충분한 발전량을 확보하고 있어도 발생할 수 있는데, 천재지변으로 고압송전선이 끊어지거나, 전력관리시스템이 고장나도 전기 부족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럴 때는 즉시 문제가 생긴 전력망을 외부 전력망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최선이다. 만일 우리나라 전체가 블랙아웃에 빠져든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측은 ‘일반 가정이라면 하루 정도면 전기를 되살릴 수 있지만, 변수가 많은 만큼 수일 이상이 걸릴 가능성도 이TEk'고 설명한다. 공장이나 산업체 등 모든 시설을 완전히 복구하려면 최소 3일 이상, 길게는 10일 이상 걸릴 수 있는 셈이다.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까. ‘발전기만 다시 켜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기가 있어야 발전기도 다시 켤 수 있다. 그러니 우선 ‘발전기를 켤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때는 블랙아웃이 벌어지는 것과 반대의 순서로 전력망을 조금씩 살려 나가야 한다.
우선 발전소와 연결된 외부 전력망을 모두 차단한 다음, 자체기동발전기를 이용해 인근 전기를 복구하고,m 남는 전기를 주변 전력시설로 보내 발전기와 변압기 등 전기 생산에 꼭 필요한 시설부터 자체 전기 공급을 시작하면서 전국을 차례로 살려 나가는 것이다. 자체기동발전기는 댐의 수문만 열면 동작을 시작하는 수력발전기, 보조배터리를 이용해 빠른 시간 안에 발전을 시작할 수 있는 ‘가스터빈발전기’등이 주로 쓰인다.
하지만 일반 가정집의 경우는 하루 정도면 다시 전기공급을 받을 수 있는데, 전력거래소는 국가전체 전력의 80 %를 하루 안에 복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정도 전력만 있어도 시민들의 일상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다. 다만 전국의 전력시스템을 100 % 되살려 내려면 최고 3~4일, 길게는 일주일 정도가 필요하다.
이렇게 시간이 필요한 까닭은 원자력발전소 때문이다. 원전은 한 번 중단되면 철저한 안전점검 등을 거쳐야 하므로 재가동에 적어도 며칠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한 번 블랙아웃에 빠져든 대규모 공장도 마찬가지로 하루 사이에 다시 가동을 시작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일단 일반 가정집부터 전기공급을 시작하고, 그 사이에 원전을 복구하고 대형 공장이 복구되는 대로 전기공급을 이어 나가는 식을 대응한다면 일반 시민의 불편은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게 한전 측 입장이다.

올 여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올 여름 우리나라는 안전할까? 우선 블랙아웃 사태까지 갈 우려는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전력관리 시스템은 전압과 주파수 유지율이나 정전시간 등 전기품질 면에서 꽤 뛰어나다. 모든 전력망을 한 곳에서 일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위급 상황에서는 제한송전, 순환송전 등을 하며 견뎌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과거와 같은 순환정전 사태가 벌어질 수는 있지만, 전국 전력망이 꺼지는 ‘블랙아웃’사태는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원전 부품 위조사건으로 전력공급이 크게 준 올해 여름에도 하계대비 전력 수요량은 지난 해(2012년)에 비해 143만 kW 증가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해마다 듣던 ‘사상 최악의 전력난’이란 문장이 올해처럼 실감나게 다가오는 해도 찾기 어렵다. 한국전기연구원 측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석유화학, 철강 등 전기 다소비 산업 비율이 높아 전력소비가 많은 구조”라며 “전력관리 기술 개발과 함께, 산업체에서도 전기요금이나 사용량 등을 현실화 할 수 있도록 차등누진세 등의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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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이라니 말만 들어도 두렵네요..이번 여름은 무사히 지나갔지만 마지막 말처럼 전기요금에 대한 현실적인 방안이 하루 빨리 도입되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