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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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독일 뮌헨 소재의 독일연방군사대학교 (Bundeswehr University Munich)의 열역학 연구소 (Institute of thermodynamics)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신준수라고 합니다. 현재 딥러닝 등의 머신러닝을 사용한 데이타 해석 기법을 사용하여 열유체역학에서 다뤄지는 문제들을 풀어보고 있습니다. 어느덧 독일에 와서 지낸 지도 3년이라는 시간이 되어가네요. 인생은 참 신비롭습니다. 한국에서 박사를 졸업할 때만 하더라도 제가 1년 뒤에 독일에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10년뒤 혹은 20년 뒤에 제가, 그리고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상상해 보는 것이 즐거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뮌헨을 떠나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으로 이사 간 박선용 박사와 함께 한국 음식을 만들어서 뮌헨 맥주와 곁들여 먹고 마시던 일들이 엊그제 같이 느껴집니다. 이번에 박선용 박사가 저에게 코센 릴레이북을 이어서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대상을 받은 김초엽 작가의 SF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라는 책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야기가 주는 힘을 믿습니다. 이야기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오락입니다. 단군신화가 아직까지 전해져 우리가 이야기 할 수 있듯이 그 까마득한 옛적에서부터 후대 사람들에게로 이야기를 구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요. 이야기는 오락임에 동시에 우리의 본능에 새겨져 있는 정보전달 수단이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현재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의 시대는 인류 전체의 역사를 비춰볼 때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대략 20만년 전 현인류가 기원했다고 생각하면 18세기 중반에 산업혁명이 생기고 나서 고작 30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인류의 긴 역사에 비하면 과학이 인류에 영향을 준 것은 아직 너무나도 짧은 시간입니다. 그렇기에 과학의 가능성은 아직 무궁무진하고, 그리고 또 중요합니다.
저는 그래서 Science Fiction(SF)가 과학의 시대인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수학공식들로 가득한 논문을 처음부터 들이미는 것보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 동시에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접근법이 사람들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의 직업인 연구자의 밥벌이 도구로서 수식이 가득한 논문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과학을 생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과학이 알고보니 재미있네"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김초엽 작가님 본인이 바이오센서를 설계하는 연구원이셨던 것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저와 비슷한 생각의 길을 거쳐오시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론이 매우 길었습니다. 단편집 중 한 꼭지이며 단편집의 이름과 같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꼭지의 이야기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어떤 남자가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한 우주정거장에서 어느 할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그 할머니는 머나먼 외우주 행성으로 떠나는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남자에게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설명해주며 이야기의 첫페이지가 쓰여지게 됩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몇년 후일지 모르는 미래입니다. 책에서는 우주 개척 시대가 열린 이후라고 설명합니다.
'우주 개척 시대'. 사람들의, 그리고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만한 것으로 비교하면 원피스의 '대해적 시대' 다음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매력적인 단어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자신도 중2병의 화신이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왜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났을까. 100년 전 '대항해 시대' 혹은 100년 후 '대우주 시대'에 태어났으면 정말 좋았을 것 같은데. 모험과 흥미로운 것들이 가득한 세상. 그 당시의 저는 코에이의 대항해 시대2, 또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로 그런 중2병스런 욕구를 다행히 억누를 수 있었습니다.
김초엽 작가의 '우주 개척 시대'에서는 중요한 기술들이 몇가지 발명되었습니다. '워프 항법', '냉동 수면', 그리고 '웜홀 통로 항해 기술'입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2021년을 살고 있는 인류에게는 언제 개발될지 모를 꿈과 같은 기술들이지만, 이 미래의 시대에도 아직 도달하지 못한 기술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빛의 속도'로 혹은 그 이상의 속도로 날아가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물체가 빛의 속도에 가까워질 수록 그 물체를 포함하는 관성계의 시간은 매우 느려집니다. 그리고 결국 빛의 속도가 되면 시간이 정지하게 되어 그 속도를 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법칙 중 하나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이야기의 할머니는 '워프 항법' 등의 빛나는 발명으로 인해 인류가 다른 항성계들의 행성들을 정복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자신을 지구에 두고 다른 행성으로 이주한 가족들을 만나러 갈 수 없다고 남자에게 얘기합니다. 가족들이 살고 있는 행성이 웜홀 통로에서 멀어 우주선을 보낼 만한 수지 타산이 안 맞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주선이 빛의 속도로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그 시대의 우리 인류가 노벨상 10개를 한번에 타도 부족할 그런 대발명을 이루었음에도 자신의 가족을 보러가지 못하는 한 할머니의 사연을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 중 하나인 상대성이론, 또 다른 하나는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역설적으로 문제의 본질을 이야기하지만, 수백년 후일지 모를 미래의 왠지 있을 법한 이야기에 수긍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픕니다.
이야기의 말미에는 남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빛의 속도'로 날지 못하는 우주선을 타고 가족들을 향해 길을 떠납니다. 언제 도착할지, 아니 도착하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여정을 떠나죠. 하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알려지지 않은 웜홀을 중간에 만나 가족들이 살고 있는 행성 가까이에서 뱉어질지요. 그리고 가족들을 끝내 만나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죠. '인생은 참 신비롭구나'.
다음 주자로 저는 곽상훈 박사님을 추천합니다. 곽박사님은 광주과학기술원에서 박사 졸업 후, 현재 뮌헨의 Apple Mobile Deutschland 에서 디지털 하드웨어 설계엔지니어로 재직 중이십니다. ASIC 설계, GPU/CPU설계, Machine Learning Processor 설계 등의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곽상훈 박사님은 과히 만물박사라고 불리실 만하신 분입니다. 자신의 전공분야 뿐만 아니라 예술, 역사, 경제, 연예계(?) 등등의 분야의 이슈들을 언제나 섭렵하고 계시고 보따리 장수가 보따리에서 물건을 꺼내듯이 쉽게 얘기해 주십니다. 그런 곽박사님께서 어떤 책을 추천해 주실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작가가 바이오센서 연구원이셨다니 상당히 개연성있는 소설일거 같습니다.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