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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한상원 저

안녕하세요. 올해 2월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문학과 석사를 졸업하고 잠시 휴식기를 가진 한보경입니다. 이재준 선생님의 소개로 책을 추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영문학 고전 전공으로 졸업했지만, 고전이나 최신 작품 상관없이 다양하고 재미있는 작품을 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유토피아와 관련하여 논문을 썼는데, 그 계기로 유토피아에 대한 담론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꼭 유토피아가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유토피아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제가 소개할 책은 충북대학교 철학과 한상원 교수님이 쓴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입니다. 책 표지에 파울 클레의 그림인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가 있습니다. 책에 따르면, 발터 벤야민은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에서 이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그는 얼굴을 과거를 향해 돌린다. 사건들의 연쇄가 우리 앞에 나타나는 곳에서, 그는 폐허들로 뒤덮여 있으며 이 폐허들을 그의 발 앞에 쌓아놓은 유일한 파국을 본다. 그는 그 자리에 머물러 죽은 자를 깨우고 파괴된 것들을 모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천사의 날개를 사로잡은, 그가 날개를 닫을 수 없을 만큼 강한 폭풍이 천국으로부터 불어온다.”(22-23쪽)

클레의 천사는 뒤에 있는 폐허를 지켜봅니다. 벤야민이 활동했던 시기를 고려하면, 이 폐허가 상징하는 바는 전쟁에서 죽어간 사람들과 파괴된 도시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사는 과거의 폐허를 재건하고 싶어 하지만 폭풍이 밀려와 앞으로 떠밀려갑니다. 벤야민은 폭풍이 진보를 의미하고 그 폭풍이 천사를 앞에 있는 미래로 이끌어 간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천사는 왜 미래로 가면서 과거를 계속 되돌아보는 것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 저자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칼 마르크스,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을 비교 분석합니다.

역사적으로 대다수 민중은 피지배계층으로 지배계층에게 많은 수탈을 당했습니다. 이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현재의 모든 고통이 신의 뜻에 의한 것이니, 현실의 고통이 끝나면 모두가 신에 의해 구원될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민중이 겪는 수모와 고통을 신의 구원을 위한 희생이라는 기독교 교리로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와 반대로,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인해 역사가 진행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계몽주의자들과 부르주아들은 빠른 속도로 사회를 발전시키고, 기술의 발전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과거의 것들을 무시하고 오로지 기술과 산업의 성장만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칼 마르크스는 부르주아가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는 것이 인간의 생산력을 약화하고 인간소외를 야기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인간의 계급 투쟁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동력이라 여기며, 미래는 인간이 개척하고 투쟁한 결과물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역사를 이끌어가고 이상적인 미래를 만들어가는 주체로 보는 마르크스의 시각은 미래로의 진보를 신봉하는 지식인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마르크스는 변화한 미래를 꿈꿨습니다. 역사에 관하여 전자는 종교적인 시선으로 후자는 계급투쟁에 관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그들은 지금 현실보다 미래가 더 좋아질 것이고 그런 미래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새로운 천사가 진보라는 폭풍을 타고 앞으로 향해가는 것처럼 말이죠. 어떻게 보면 부조리한 현실을 살아가는 지식인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좋은 미래를 위해 과거와 현재를 희생해야 할까요? 혹은 현실에서 억압받으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당장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지나쳐도 될까요? 벤야민은 클레의 천사가 과거의 폐허에서 파괴된 것들을 모으는 것처럼, 우리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기억하면서 현재 억압받는 이들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읽기 쉽지 않지만, 우리가 역사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책에서는 낙관적인 미래를 막연히 기다리거나 혹은 참혹한 과거를 지우지 말고 억압받은 자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역사관을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제주 4.3 사건, 5.18 광주 민주화운동 등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현재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도 우리가 어떻게 사건들을 기억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연 저자의 말처럼 우리도 미래로 나아가면서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는 클레의 천사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여러분이 꿈꾸는 미래와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의 역사를 생각하며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릴레이북 주자로는 경희대학교에서 영미문화를 전공하신 김지은 선생님을 추천합니다. 김지은 선생님은 현재 경희대학교에서 박사 수료 이후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페미니스트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와 마이클 마더의 책 『식물의 사유』를 공역하였고, 『유토피아 문학』, 『도래할 유토피아들』, 『우리는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가』, 『교차 2호: 물질의 삶』, 『위기의 시대, 인문학이 답하다』, 『문학인 2022 가을』에 공저로 참여하였습니다. 현재 말과활아카데미에서 다양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호주 생태학자 발 플럼우드의 『악어의 눈』을 번역하였고 곧 출간 예정이라고 합니다. 김지은 선생님은 문학작품 분석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연구자가 사회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화두를 던지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지은 선생님이 추천할 책이 매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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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흥미롭고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한보경님의 리뷰를 읽고나니 책을 꼭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그냥 민주주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그리고 저는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를 현실과 아예 유리된 가상의 개념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당대의 시민 사회의 선택 및 정치과정으로 한 시공간은 유토피아를 지향하게 될 수도, 디스토피아를 경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비극은 동시대의 디스토피아고 절망이고 슬픔입니다.
그래서 저자의 말씀처럼 항상 현재와 현실이 중요하며 그 속에서 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여기 계신 지식인 분들께서 약자와 시민사회와 정치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참여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위 때문에, 분야가 달라서, 학자라서, 흙탕물 튀기는 정치와는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생각지 말아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실제로 코로나 이후 많은 서민들은 실제 오늘날 디스토피아와도 같은 하루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 또한 소시민으로 아무것도 할 수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자 합니다.
출근 길에 지하철에서 부족한 식견으로 몇자 글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현실의 고통이 지나면 더 좋은 미래가 올것이라는건
개인마다 노력을 해서 더 나은 계발을 하고,
집단에서도 공통의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치면,
목표달성의 미래가 찾아오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 및 고통이 그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일련의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고통이 꼭 누군가의 희생과 억압을
필요로한다면 지금의 시대상처럼 나만 아니면 된다는
방법으로 이기주의를 야기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억압받은 자들을 존중하고 기억하자는
취지는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좀 더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을 갖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들이 많이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