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Entangled Life) 멀린 셸드레이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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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보경 선생님의 소개로 귀중한 지면을 이어받은 김지은입니다. 저는 경희대학교에서 영미문학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젠더/페미니즘, 생태, 문화비평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페미니스트 철학자 루스 이리가레와 식물 철학자 마이클 마더의 《식물의 사유》(2020) 그리고 호주 생태철학자 발 플럼우드의 《악어의 눈》(출간 예정)을 번역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인류세 시대에 지구가 보내는 생태위기 시그널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이를 위해 어떤 인식론적·존재론적 전환이 필요한지 상상하고 실험하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이런 점에서 아래 소개드리는 책은 제가 꿈꾸는 ‘인식적 지도 그리기’의 일환입니다.
1. 단절된 세계를 연결하기: WWW에서 WWW로
지난 3년간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단절의 파괴적 힘을 강렬하게 경험했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과도 직접 얼굴을 맞대고 소통할 수 없는 비극적 상황에 직면했던 것이지요. 이처럼 대면이 불가한 상황을 극복하고 비대면 교류라는 대안을 모색하고자 인터넷 네트워크망(WWW: Wolrd Wide Web)을 활용한 메타버스가 추진력을 얻으며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코로나가 경고한 생태위기는 우리 인간에게 기술발전 그 이상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지금껏 망각해온 또 다른 WWW 즉, 우드와이드웹(Wood Wide Web)의 중요성과 가치입니다. 우드와이드웹은 식물이 땅속에 자리 잡고 주변 생명(체)과 상호적 협동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균근(菌根) 곰팡이 네트워크로, 지구 식물의 90퍼센트 이상이 이 네트워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기술 중심의 WWW가 아닌 곰팡이 중심의 WWW, 바로 이것이 제가 오늘 소개드릴 멀린 셸드레이크(Merlin Sheldrake)의 저서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가 기술하는 지구 생태계의 비밀이자 경이로움입니다.
2. 우드와이드웹의 공유 시스템
생태위기의 논의에서 통상적으로 주가 되는 것은 식물과 동물입니다. 그러나 영국의 젊은 생물학자인 멀린 셸드레이크는 식물과 동물에 가려 지금껏 잘 부각되지 않았으나 생명의 시작이자 허브인 곰팡이에 주목합니다. 실제로 식물이 땅으로부터 질소 등의 영양분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먼저 곰팡이에 의존해야 하고, 이후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낸 에너지원을 곰팡이에게 제공함으로써 곰팡이의 은혜에 보답합니다. 이처럼 식물과 곰팡이의 관계는 서로 필요한 것을 내어주는 호혜적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식물과 곰팡이는 결코 일대일로 혹은 배타적으로 교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무수히 많은 종류의 곰팡이가 한 식물에 거주할 수도 있고, 반대로 여러 식물이 하나의 곰팡이에 의존할 수도 있고, 다수의 식물이 다수의 곰팡이 네트워크와 동시에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셸드레이크는 다양한 식물과 곰팡이가 참여하여 만들어내는 우드와이드웹의 핵심은 단연 공유와 연결이며, 그 속에 생명과 진화의 비밀 그리고 생태위기 탈출의 열쇠가 숨어있다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잎이 없는 식물인 수정란풀(Monotropa uniflora)은 광합성을 할 수 없는 식물이기에 단독으로 생존할 수 없지만, 균근 곰팡이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식물이 생성한 탄소를 얻고 땅 속의 무기영양소를 받아 생명을 이어나감으로써 다른 식물과 함께 숲을 더욱 풍요롭게 만듭니다. 셸드레이크는 광합성 능력을 상실한 수정란풀이 자연에서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곰팡이를 통로이자 매개로 삼아 식물 사이에 물질이 공유된 덕분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때 곰팡이는 “식물 사이의 상호작용을 중재할 수 있는 엉킨 그물망의 브로커”(274)인 셈입니다.
누군가는 곰팡이를 한 식물의 잉여 탄소를 다른 식물에게 마음대로 퍼주는 도둑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정란풀처럼 다른 존재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아야만 하는 개체인 균타가영양체(mycoheterotroph)가 식물종의 무려 약 10퍼센트에 달한다는 점에 주목해봅시다.만약 이러한 공유와 연결이 없다면 균타가영양체는 생존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전체 식물종은 빈곤해질 것이고 그로인해 숲은 지금에 비해 한없이 단조로워질 것입니다. 또한 균타가영양체의 일부 종은 어느 특정 시기에만 다른 식물에게 나눔을 요청하고 그 이후에는 적극적인 공여자가 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드와이드웹의 공유 시스템이란 실로 생태계의 미래세대를 위한 장기적 투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식물과 곰팡이의 교류는 분명 ‘가장 강한 종만이 살아남는다’는 진화론적 사고에서 이탈한 공생의 사례입니다. 이처럼 지금 당장의 독점과 지배보다는 상호협력과 공유를 통해 지속 가능한 공존방안을 모색하는 우드와이드웹의 지혜는 무한경쟁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소비하려는 인간에게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합니다.
3. 내부공생설과 수평적 유전자 교환
우드와이드웹에 담긴 공생과 공진화(co-evolution)의 결실은 비단 식물과 곰팡이의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는 진화생물인 인간의 진화에도 필수적입니다. 1967년 미국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는 단세포 유기체가 삼킨 박테리아가 그 유기체에 완전히 흡수되어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잔존하여 공생하면서 진핵생물로 진화한다는 내용의 내부공생설(endosymbiosis)을 제시했습니다. 초기 이 가설은 학계에서 수차례 기각되었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 이를 증명하는 사례들이 다수 발견되면서 생물학계의 정설로 수용되었습니다.
내부공생설이 중요한 이유는 수직적 계통과 분화를 강조한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 진화론에 가려져 있던 생명의 근원적 비밀 즉, 한 박테리아는 다른 박테리아로부터 떨어져있는 독립된 생물학적 섬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기 때문입니다. 내부공생설에 따르면 박테리아의 게놈은 닫힌계를 이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계통이 다른 박테리아를 수평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패턴과 가능성을 지닌 생명존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수평적 유전자 교환은 진화의 갈래가 수직적으로만 분화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합쳐지고 융합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그렇다면 내부공생설이 함의하는 수평적 유전자 교환이 왜 중요한 것일까요? 셸드레이크는 지의류를 통해 수평적 유전자 교환의 경이로움을 설명합니다. 지구 표면적의 8퍼센트를 뒤덮고 있는 지의류는 곰팡이 균류와 조류(혹은 광합성 박테리아)로 이뤄진 다세포 유기체로 공생과 공진화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곰팡이는 스스로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대신 척박한 환경에서 잘 적응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 조류(혹은 광합성 박테리아)는 광합성 능력은 있지만 극한 환경에서의 생존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비광합성 유기체인 곰팡이와 광합성 유기체인 조류가 만나 지의류로 결합하면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상호 충족시킴으로써 사막과 남극과 같은 여러 극한 환경에서도 굳건하게 살아남는 다중극한생물이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지의류는 우주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갑자기! 분류학적으로 거리가 먼 유기체들이 함께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혼성 생명체”(150)로 탄생한 지의류는 공생과 공진화의 산증인으로, 그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증명합니다. 홀로 존재할 때보다 함께할 때 더 강한 생명력을 갖는 것입니다.
4. 생명, 얽히고설킨 관계
지의류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유기체는 아무리 작을지라도 결코 홀로 탄생하고 존재하고 진화하고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설령 가능하다할지라도 그 기간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선호 여부를 떠나서 모든 유기체는 언제나 늘 이질적인 다른 존재와 함께 존재하고 바로 그 이질성이 놀랍도록 창의적인 DNA 패턴을 만들어냅니다.
우드와이드웹, 내부공생설과 수평적 유전자 교환, 지의류의 사례는 일방향의 지배와 점령이 아닌 양방향의 교류와 공유 속에 꽃피는 공생과 공진화의 얽힌 관계가 이미 생명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어쩌면 이 점이 셸드레이크가 책의 원제를 ‘얽힌 생명’이라는 뜻의 ‘Entangled Life’로 삼은 이유가 아닐까요? 곰팡이를 통해 낯선 존재와의 얽힌 관계를 사유하는 셸드레이크의 《작은 것이 만든 거대한 세계》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읽혀, 오늘날의 생태위기를 초래한 인간(종)중심주의에 날카로운 균열을 가하길 기대하며 이 책을 추천합니다.
제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심보은 선생님을 다음 필진으로 초대합니다. 학부에서는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공공정책학을 전공한 심보은 선생님은 환경문제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인간의 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양방향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제가 바라본 심보은 선생님은 자신의 문제의식을 학문의 틀 안에서만 검증하고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작고 크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진중하게 고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의식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확산하기 위해 나이오트의 일원으로서 연구산악대를 공동운영하고 있습니다. 앎과 삶의 일치, 그리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연구생태계를 꿈꾸는 심보은 선생님을 다음 릴레이북 필진으로 추천하며 그 여정에 여러분을 함께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