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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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지은 선생님의 추천으로 코센의 릴레이북에 참여하게 된 심보은이라고 합니다. 저는 환경공학과 공공정책학을 전공하면서 우리들의 사회활동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환경변화로 우리 사회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역동적인 지식생태계를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미션을 가지고 하윤상 공동대표와 함께 (주)나이오트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 너머의 모든 존재가 동일한 수준의 건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을 꿈꾸며, 이러한 비전을 연구로 풀기 위해 공부하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답을 연구로 접근하는게 맞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하였습니다. 이 질문의 답을 하는데 많은 선배연구자와 그들의 연구가 도움되었지만, 오늘 소개해드리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내가 왜 연구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연구에 임해야 하는지를 정립할 때 가장 큰 도움을 준 감사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김승섭 교수님은 사회가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관계성을 탐구하는 사회역학의 관점으로 질병을 바라보며 사회가 어떻게 우리 몸을 아프게 하는지를 다양한 연구결과를 빗대어 이야기합니다. 의학을 공부했던 그는 병든 사람들에 대한 답답함 때문에 의학의 길 대신 보건학자로서의 길을 선택합니다. 현대의학의 괄목할만한 성과로 이제는 암이 불치병이 아닌 시대에 사는 우리지만 의료기술만으로 모든 사람들이 건강한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질병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보건학자이자 사회역학자로서 이 문제에 접근합니다. 개인의 질병이 개인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가설은 우리가 어떤 사회시스템을 구축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냅니다.
이 책은 저자가 한국사회의 주요한 사회문제들을 연구하며 발견한 결과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집니다. 쌍용 해고노동자들에 관한 건강연구에서 저자는 해고노동자의 50.5%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걸프전 참전 군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병률이 22%임을 생각하면 해고로 인한 그들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각한 단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그들의 심각한 PTSD 발병률과 연이은 죽음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며 국내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기업의 정리해고는 시장경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지만, 해고자의 재기는 국가의 역할임을 제시합니다. 본 책에서는 혐오발언, 구직자 차별, 가난, 참사가 우리 몸에 어떻게 남는지를 제시하고, 동유럽국가 안에서 IMF 구제금융프로그램과 평균수명과의 관계 데이터를 통해 국가의 결정이 개인에게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렇듯 이 책에서는 자신의 연구물과 동료연구자들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있어 국가의 역할을 제언합니다.
김승섭 교수님은 미국에서 박사과정 학생으로 공부하던 시절, 데이터를 분석하여 질병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의 관심 밖에 이야기인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 데이터를 만드는 것은 고된 일 일 수밖에 없죠. 저자가 이러한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켜켜이 쌓인 연구의 데이터와 많은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과학적 입증을 통해 밝혀진 이론들이 새로운 연구영역을 만들어가고 그 영역 안에서 견고한 지식의 탑이 쌓였을 때 우리가 변화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고민이 있던 박사생에게 “데이터가 없다면 역학자는 링 위에 올라갈 수 없다. 그러나 역학자가 적절할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면 싸움이 진행되는 링 위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p.109)”라는 보스턴 보건대학원에 있던 리처드 교수의 답변은 역학자로서 연구하는데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저자의 두 번째 책인 《우리몸이 세계라면》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책을 시작합니다. “글을 쓰는 시간보다 준비하는 시간이 더 길었던 책입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논문과 책을 읽으며 여러 학자들의 글을 만났습니다. 직접 뵌 적 없는 분들이지만, 공부하면서 줄곧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을 쓰다 막다른 벽에 막혀 답답해할 때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서 길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학자들의 그 보이지 않는 노력에 빚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차별없이 건강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우리는 연구합니다. 한 명의 연구자의 연구가 완성되기 위해 수 많은 선행연구가 필요합니다. 하나의 논문에는 수 많은 연구자의 이론과 데이터가 존재하는 것임을, 그리고 나의 연구가 다른 이에게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연구의 힘을 알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지난 9월 저자가 10년 동안 연구하며 논문을 통해 들려주기 어려웠던 현장에서의 질문들을 정리해 놓은 글로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고려대 다양성위원회 소책자 Diversitas 28호>를 발간하였습니다.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해당 글의 원문을 첨부합니다. (원문 링크 : https://bit.ly/3F83TfZ)
제가 다음 필진으로 초대할 나이오트의 하윤상 공동대표는 기후위기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함께 논문을 읽고 그 지식을 나누는 연구산악대라는 학습커뮤니티를 통해 만나게 된 귀한 인연입니다. 경영학과 행정학을 전공한 하윤상 대표와는 이전의 삶에서 어떠한 연결고리도 있지 않았지만, 사회문제의 대안을 연구로 해결한다는 가치에 공감하여 지난 1월부터 함께 체인지메이커와 연구자를 위한 지식학습플랫폼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하윤상 공동대표와 어떤 연구생태계가 구축되어야 계속해서 변화하고 풀기 어려워지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대응할 수 있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하였습니다. 물론, 그 해답을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안에 세워진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새로운 연구를 시작한 단계입니다. 많은 선배연구자와 동료분들이 함께 고민하는 문제임을 알기에 하윤상 대표의 추천 책을 통해 우리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