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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의 탄생 김종영 저

안녕하세요. 심보은 선생님의 추천으로 코센의 릴레이북에 함께 하게 된 하윤상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한인과학기술자네트워크 라는 코센의 명칭에 눌려 제가 이걸 쓰는 것이 맞을까 하는 고민도 되었지만, 함께 연구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분투하시는 모임이라는 것을 의지해서 저의 고민과 또 책에서의 영감을 함께 나누고자 릴레이북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경영학과 행정학을 전공하면서 디지털 전환기에 플랫폼 기업들이 가지는 공적인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아가 공공영역의 플랫폼적 전환에 대해 연구하는 ‘플랫폼 거버넌스’라는 연구주제를 가지고 연구해왔구요. 박사학위논문을 쓰기 직전 이 이론을 실제로 적용해서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해보기 위해 (주)나이오트를 창업해서 추천해주신 심보은 선생님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기후위기 논문학습플랫폼인 ‘연구산악대’와 기후위기 연구자 부트캠프인 ‘연구원정’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추천드릴 [지민의 탄생] 이라는 책은 대학원에 있는동안 지식과 연구에 대해서, 그리고 연구자와 연구의 역할을 고민하던 중에 제게 큰 영감을 주었던 책입니다. 연구자들이 아니면 읽어보지 않는 학회지와 그것을 예상하고 쓰게 되는 상아탑 속 학술논문의 시대에, 이 책에서 제시하는 ‘지민’이라는 정체성과 ‘지식정치’라는 개념은 연구와 지식이 사회문제의 해결과 진보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오래된 진리를 이 시대에 다시금 소환하는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크게 4가지의 사례에 사례연구를 수행하면서 ‘지식정치’와 ‘지민’의 개념에 대해 십수년간 탐구해 온 내용들을 소개합니다. 삼성백혈병 사태, 광우병 촛불 사태, 황우석 사태, 4대강 사업 등 지난 10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주요한 이슈가 되었던 문제들에 있어서 각 사례들을 ‘지식정치’의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어떻게 국가와 기업, 지식엘리트로 이루어져 있는 지배지식동맹과 당사자와 시민연구자, 언론으로 이루어져 있는 시민지식동맹의 경합을 통해 지식정치가 형성되어 왔는지를 체계적으로 소개합니다.

본 책에서는 지식정치에 대해 ‘펄펄 끓는 얼음’이라는 개념을 들어 소개하고 있는데요. 얼음과 같이 냉철하고 이성적인 영역의 과학에 대해 다루는 의제들이지만 동시에 뜨겁고 논쟁적이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의 영역들이 뒤섞여 있다는 점에서 극단의 두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 지식정치의 영역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일련의 사회문제들은 사실 이러한 지식정치의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그것을 온전하게 해결하는 것은 이 두 성격을 모두 끌어 안은 채로 분투하고 씨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죠.

지식정치의 뜨겁고도 차가운 성격만큼이나 이 책에서 다루는 이슈들 또한 논쟁적이기 때문에 자칫 각 이슈들에 대해서 과학적 판단 이전에 먼저 이념적인 판단을 전제하고 접근한 편항적인 연구들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어느 편이 옳냐라는 것을 따지기에 앞서 각 이슈들에 있어서 지식의 역할과 연구자의 역할, 그리고 그 연구들을 학습하고 이를 통해 성장하는 ‘지민(知民, Intellectual Citizenship)’이 등장하는 현상에 대해 포착합니다. 한편에서는 삼성의 반도체 공정과 백혈병과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피해자 아버지의 사례를 조명하는 동시에 황우석 사태에 있어서는 BRIC과 시민과학센터만큼이나 황우석의 편에서 나름의 지적체계를 형성한 ‘황빠’라는 그룹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하면서 시민들이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해서 행동하는 과정들에 대해 기술합니다.

어쩌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현상들은 진보 혹은 보수로 나누는 이분법과 또 다른 결에서 ‘시민’과 ‘전문가 혹은 연구자’를 가르는 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PUS(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의 이상과 같은 시민의 지적 학습 뿐만 아니라 시민이 지식을 통해 학습하게 될 때 나타나게 될 여러 층위의 현상들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사실 이것은 절대다수의 대중들에게 지식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되게 될 때에 어떤 민주주의적 이상 만큼이나 그로 인해 나타나게 될 부작용과 이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견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사례들은 출간연도(2017년)로 인해 다소 철지난 이슈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여기서 마주하는 시민과 연구자 사이, 그리고 지식과 정치 사이의 복합에 대한 통찰은 여전히 큰 시사점을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이 책 자체는 한편으로 학계와 연구계가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전환 앞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묵시와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대학의 상아탑 안에서 학자들끼리 오가던 학술지와 논문들이 인터넷 상에 업로드되고 누구든 그 지식에 접근해서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은 일입니다. 전문가와 대중 사이의 경계가 선명하게 그어지고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전문가의 견해와 가르침을 일방향적으로 필요로 하던 시대가 어느덧 언제 어디서든 지식에 접근하고 학습하며 현장과 전문성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통찰을 만들어내는 시대, 경영학계에서는 십수년전부터 말해오던 Prosumer(Provider + Consumer)의 시대를 우리는 상식으로 받아들입니다. 사실 지민의 탄생에서 이야기하는 ‘지민’이라는 존재는 이제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식이 되고 있고, 하지만 동시에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마주하게 되는 증거들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마치 PD와 감독들, 소수의 작가들만 만들어낼 수 있었던 영화와 드라마 및 콘텐츠 시장이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비롯한 플랫폼들에 의해 공급의 주체들과 질서가 완전히 변화하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지민(Intellectual Citizenship)의 관점에서 유튜브 크리에이터들과 웹툰 및 웹소설 작가들을 바라본다면 예민(Artistic Citizenship)의 탄생이 가져온 근본적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대학원과 학계의 코앞에 다가온 근본적 변화의 실체를 이 책이 묵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보실 때도 어떤 ‘옳고 그름의 기준’보다도 ‘현상’의 측면에서 시민과 전문가, 지식과 정치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파악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동시에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큰 통찰은 저자이신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님의 연구 그 자체입니다. 김종영 교수님이 쓰신 또 하나의 저서인 [지배받는 지배자]에서는 한국 대학원생들의 미국 유학 현상과 유학파 엘리트에 대해 15년 간 추적연구해오면서 한국 엘리트 지식인들을 ‘한국 학계의 상징자본을 갖춘 지배자’인 동시에 ‘미국 학계의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피지배자’의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현상을 예리하게 분석해냅니다. [지배받는 지배자]가 한국 학계와 연구계의 한 단면을 보여준 연구물이었다고 한다면 [지민의 탄생]은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학계와 연구계가 나아갈 한 단면으로서 ‘지민’과 ‘지식정치’의 영역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두 저서에 흐르고 있는 문제의식과 고민이 연구자로서의 교수님 개인이 가지는 근본적인 질문과 진심과 맞닿아 있고, 그것이 십수년의 치열한 학습과 전문성, 그리고 연구자로서의 학술적 엄밀성과 만나게 될 때에 연구물 그 자체로 ‘펄펄 끓는 얼음’과 같은 모습을 발견하시게 된다면, 연구자로서도 연구란 무엇이고 연구자란 무엇인지, 우리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해 큰 통찰을 가져다 주는 연구이자 저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다음 필진으로 추천하는 박정현 선생님은 제 오랜 친구인 동시에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연구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자적 삶을 두고 치열하게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학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였지만 1년 동안의 몽골 봉사활동과정에서 마주하게 된 사막화 현상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목도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환경대학원에 진학하여 현재 박사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현장과 지식이 있어야 할 자리들에 대해 예리한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펄펄 끓는 얼음과 같은 연구와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는 분이기도 합니다. 박정현 선생님이 어떤 책과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통찰을 던져주실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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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선(jsyoon) 2023-01-03

오! 이런 책이 있었네요. 매우 궁금해지는데요. 매우 지적인 책소개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