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로잔 연방 공과대학교 석사과정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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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스위스 로잔 연방 공과대학교(Ecole Polytechnique Federale de Lausanne, 로잔공대) 에서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 석사과정을 마친 김해은입니다. 디지털인문학은 정보통신과학 주로 컴퓨터과학과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을 잇는 분야로, 저는 주로 소셜미디어 분석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박사과정 진학 전 연계된 연구소에서 단기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석사 공부 시작 전 박사후연구원의 배우자로 지낸 시간 1년, 석사 공부 3년, 석사 졸업 후 벌써 1년, 벌써 도합 5년 가까이 스위스 로잔에서 지내는 중입니다.
2020년 여름쯤 베른에서 지나가다 만난 간판
스위스에 오기 전 제가 스위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얼마 없었습니다. 그나마 떠올리는 이미지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 만년설로 덮인 산. 핫초코. 드넓은 자연. 비싼 물가. 중립국 정도. 모두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결코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한여름에도 설산인 곳들이 있지만 그것은 높은 산 얘기고, 대부분의 도시에서 겨울 기온은 서울보다 높다는 것, 알프스 소녀 하이디는 스위스에서도 아주 깊숙한 산속 마을에서 자랐다는 것, 스키 리조트 카페에서 핫초코를 마시면서 산속 풍경을 보는 게 스위스에서 어렵지 않게 누릴 수 있는 호사인 것은 맞지만, 아무래도 그 이미지는 미국 브랜드인 스위스미스 핫초코의 이미지에 가깝다는 것, 확실히 물가가 무섭지만 스위스에서 고용되어 임금을 받는다면 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란 점, 그리고 스위스의 자연만큼이나 스위스가 어떻게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관리하는지가 정말 놀랍다는 점. 그리고 그밖에도 아주 많은 것들을 생활하면서 배우고 느꼈습니다. 이번 포토에세이를 통해 제 경험의 일부라도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 정말 반갑고, 어떻게 읽어주실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집에서 가까운 유채 밭의 유채꽃 시즌
튤립 축제 기간 로잔 근교의 Morges
제가 생각하는 스위스의 가장 재미있는 특징은 공용어가 4개라는 점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아무래도 각 주(칸톤)의 언어만 접하게 되지만, 스위스 연방 단위로 운영되는 철도, 생협/물류, 금융 등에서는 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로 쓰인 철로 안내판과 안내 방송, 3개 언어가 다 쓰여 있는 제품 등을 찾을 수 있습니다. (4번째 공식 언어인 로망슈어 - 스위스 깊은 산골에서 쓰이는 언어 - 는 실제로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 스위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공식 언어로 여전히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스위스는 26개의 칸톤(주)으로 구성된 연방이고, 각 칸톤의 지역색이 아주 선명한데, 이들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연방이 유지하는 나름의 원칙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철도를 건너지 말라는 경고문이 4개 언어로 쓰여 있다.
로잔 역 스타벅스의 베이커리. 이벤트 안내 쪽지에 불어와 독어가 같이 쓰여 있다.
독어권 스위스 동북부 콘스탄츠 호수 앞에서.
로망슈어는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볼 일이 없지만, 아주 깊은 산골로 들어가면 종종 만나게 됩니다.
주 경계를 넘어다니면 언어와 함께 도시 풍경도 달라집니다. 스위스도 예외없이 종교개혁을 거치며 신교와 구교의 대립이 아주 치열했는데, 그래서 같은 언어권 안에서도 종교가 갈리며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보 Vaud 주와 제네바 주는 칼뱅주의 개신교 지역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도시 풍경이 밋밋한데, 카톨릭 문화권 칸톤을 방문하면 건물에 박힌 성상, 화려한 건물 외관 장식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각 주의 공휴일 일수와도 연결되어서, 카톨릭 칸톤들에는 각자의 수호성인축일, 일반적인 카톨릭 휴일 등 다양한 축일이 있어서 공휴일 일수가 개신교 칸톤보다 많고 카톨릭 지역에서만 기념하는 축제도 있습니다.
스위스 산골 기차역에서 만난 안내판. 독어도 영어도 불어도 아니고 이탈리아어도 아닌 듯 하다.
개신교 지역인 로잔 성당에는 아무 장식이 없지만 카톨릭 지역인 프리부르에는 거리에서 성인 성상 부조를 찾을 수 있다.
장크트갈렌의 카톨릭 수도원 안쪽 성당
카톨릭문화권인 시옹의 카니발 축제
스위스 생활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여름에는 하이킹을 하러, 겨울에는 스키를 타러 산을 찾습니다. 산악철도가 잘 깔려 있어서 직접 등반하지 않고서도 해발 3000미터 봉우리에 오를 수도 있고, 같은 곳을 직접 등반해서 오르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표지판과 지도도 아주 잘 갖추어 있습니다. 겨울철 스키장에 가면 한국 스키장 최상급 레인의 실력으로 스키를 타는 네다섯살 어린이들, 아기띠를 두르고 스키를 타며 내려오는 젊은 엄마 아빠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산과 함께하는 스위스 사람들과 관광객도 접근하기 좋게 갖춰진 시설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산과 투쟁하고 또 공존하며 살아왔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산이 많은 만큼 호수도 많아, 여름이면 사람들은 호수로 모여 뱃놀이를 하고 수영을 하고 패들 보트를 탑니다.
로잔에서 프리부르에 가는 기차
티틀리스 산이 보이는 엥겔베르크
로잔 법원 앞에서 보이는 레만 호수
제네바에서 보이는 레만 호수
“어서 호수로 가자!”라고 하는 귀여운 표지판.
생모리츠의 생모리츠 호수. 꽁꽁 얼어 있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본 레만 호수
제가 지내고 있는 로잔은 Vaud 칸톤의 주도이고, 스위스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입니다. 레만 호수 너머로는 프랑스의 에비앙과 몽블랑이 보이고, 프랑스 파리까지 로잔역에서 TGV 직행으로 4시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스위스 프랑스어권에는 포도밭도 있다.
스위스 사람들은 아주 규칙을 준수하고 고지식하며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킨다고 배웠는데, 프랑스어권인 로잔에서는 사람들이 신호를 적당히 무시하며 길을 건넌다든지 약속 시간으로부터 적당히 늦게 도착한다든지 예상보다 느슨한 분위기라 의외였습니다.
스위스의 프랑스풍 음식들 - 퐁듀, 크레베, 갈레뜨 데 호아.
프랑스의 유명 영화 멀티플렉스인 pathe.
로잔공대 로잔 캠퍼스는 레만 호수가 바로 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학부와 석사과정에는 프랑스어권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박사과정 이상에서는 프랑스어를 쓰지 않는 외국인 구성원이 훨씬 많다.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은 각각 2년, 4년 프로그램이지만 석사과정은 1~2학기 더 들으며 졸업하는 게 일반적이고, 박사생의 경우 졸업 요건을 맞추기 위해 졸업을 무한정 늦추는 경우가 드뭅니다. 물가가 높기로 악명 높은 스위스답게 학교 식당 식비도 아주 만만하지는 않지만, 구성원의 소득에 따라서 식비가 다르게 책정되어 부담을 덜어줍니다. 이외에도 의료보험이나 각종 문화활동에서 쏠쏠하게 학생할인(박사과정 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로잔공대의 도서관 건물 Rolex Learning Center는 스위스의 산과 호수를 형상화한 독특한 모양으로 유명합니다. 바닥은 곡면으로 1/2층 구분이 없고 위에서 보면 구멍이 뻥 뚫려 있습니다. 아무래도 면적 당 수용 인원이 적은 편이라 도서관에서 공부할 자리를 부지런히 찾아야 해 처음에는 다소 비호감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주 오가다 보니 독특한 건물만이 줄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을 체감하게 되어 학교에서 아주 좋아하는 건물이 되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도서관 옆 전망대에 학생들이 점심 도시락을 들고 올라와 호수를 바라보며 식사를 합니다.
도서관 건물 아래 그늘에서는 매년 초여름에 학교 축제를 한다.
로잔공대는 바로 옆에 붙어있는 로잔대학과 활발히 교류합니다.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학교이기도 하고, 법, 문학, 사회과학 등 로잔공대에는 없는 학과들도 많이 있어서 여러 모로 협력연구를 합니다. 수업을 서로 교차해서 듣기도 하고, 로잔공대의 어떤 연구실은 로잔대학 건물에 붙어있기도 해서 일반적인 교류 학교보다 훨씬 끈끈하게 연계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 로잔공대-로잔대학 연합 동아리도 정말 많은 종류가 있어서, 저의 경우 동아리 활동을 통해 완전 다른 전공 쪽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로잔대학의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 전용 주차장.
가끔 로잔대학의 잔디밭에는 소와 양이 풀을 뜯으러 온다.
주중에는 수업을 듣거나 논문을 읽거나 코딩을 하거나 논문을 쓰는 등 다양한 연구활동을 합니다. 제가 속한 연구그룹은 다른 그룹과 공용 연구실을 쓰는데, 그닥 편하게 느끼는 환경이 아니라 저는 주로 집이나 도서관에서 일이나 공부를 합니다. 하루의 일을 끝내면 간단히 저녁을 먹고 운동 레슨을 받으러 로잔 시내로 나갑니다.
주중 하루는 일주일의 밀린 빨래를 하기 위해 집에 일찍 돌아옵니다. 스위스의 공동주택은 지어진 지 오래된 곳이 많아서 한 건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날짜와 시간을 정해서 한두 개 세탁기와 건조기를 나눠쓰는 게 일반적입니다. 신축 건물에는 집집마다 세탁기와 건조기와 있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아무래도 월세가 조금 비싼 편입니다.
목요일은 동아리 활동을 하는 날로, 학교의 대부분의 동아리 이벤트들이 목요일 저녁에 열립니다. 저는 3년은 합창단을, 지난 1년은 영어연극 동아리를 했습니다.
합창단 공연과 합숙 연습
영어연극 동아리의 공연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은 아무래도 파티하기 좋은 시간입니다. 시내의 술집이나 음식점은 꽉 차고, 여름에는 호숫가 바비큐장에서 모이기도 합니다. 바비큐장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비치발리볼을 하고, 돗자리를 깔고 드러눕거나 앰프를 가져와 음악을 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말은 각자의 방식대로 즐깁니다. 매주 스위스 구석구석의 산과 호수를 즐기러 가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로잔의 실내 체육시설을 활용하며 함께 운동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주로 영화를 보고, 주중에는 찾아갈 시간이 안 나는 시내의 좋아하는 카페에 갑니다.
실내 배드민턴장에서 배드민턴을 하고 나면 바로 근처에 있는 일본식 제과점 Osio 에서 디저트를 먹고 간다.
사장님이 무려 한국 분!
로잔 중심가에서는 토요일마다 장이 열려서 지역에서 난 농축산물을 구경하고 색다른 간식을 먹으며 계절감을 만끽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실내 활동이 금지되었던 코로나 락다운 기간에 할 만한 주말 나들이를 찾아다니다 발견했었는데, 지금까지도 저희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주말 일과가 되었습니다.
작년 연말 연구 그룹 연말 파티로 교수님 댁에서 먹은 퐁듀
사진과 함께 보는 스위스 유학생활 구경, 어떠셨나요? 저는 로잔에서 산 지도 벌써 5년을 채워간다는 것에 새삼 놀랐고, 사진들을 고르면서 또 새록새록 즐거웠습니다. 아직 나누지 못한 이야기도 많아서 또 다른 기회로 경험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자세한 스위스 유학 및 해외 생활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은 22년도에 코센에서 진행했던 슬기로운 유학 가이드 영상을 참고 바랍니다. 하단에 영상 첨부합니다.
보기만해도 행복하고 즐거워지네요, 타지에서 힘든점도 많겠지만 이런 추억들을 돌아보면 힘이 나겠어요! 아무쪼록 건강하게 스위스 생활 행복하게 보내세요! ^^
사진 하나하나가 다 화보네요~ 사진을 잘찍으시는건지 스위스가 저렇게 모든 곳이 화보같은지 헷갈려요 해은님의 평화로운 삶이 엿보이는 포토에세이네요 ^^
원래는 신혼여행으로 스위스를 가려고 했는데 코로나로 제주도로 갔는데, 다음번에 꼭 못가본 스위스를 가봐야겠어요. 사진만으로도 대리만족하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와~ 로잔에 다녀온거 같아요. 다채로운 풍경사진들 너무 좋네요. 확실이 스위스는 공기가 좋다는게 사진에도 느껴집니다. 쨍한 자연 풍경에 마음까지 시원해지네요. 노벨상 수상자 자전거 전용주차장 너무 귀여워요. 레만호수 앞에서 요가하는 사람들도 부럽구요. 레만호숫가에 르꼬르뷔지에가 지은 작은 집이 있다고 하던데, 혹시나 하고 봤는데 안보이는거 같네요. 호수가 커서 그렇겠지요. 도서관 건물도 유명건축가가 지은 것같은 포스가 느껴지네요. 동아리 활동 사진 보니 얼마나 활동적인 분이신지 가늠이 됩니다. 재미있는 포토에세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