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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OTO ESSAY

    프랑스 SAFRAN그룹에서 광학 연구원 생활

    유상혁 (yu7651)

    안녕하세요. 저는 프랑스 SAFRAN 그룹에서 광학 연구원으로 재직중인 유상혁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에는 2014년와서 석사, 박사학위를 마치고, 2018년부터 현재 회사에 몸 담고 있습니다. 최근에 옆 나라 벨기에에 계신 선배 박사님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코센 릴레이 독후감을 쓸 기회가 있었는데, 그 일이 계기가 되어 포토에세이까지 권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쓰신 포토에세이를 종종 읽곤 했는데, 항상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 주셔서 저도 그에 맞는 유용한 정보를 드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제가 사는 모습을 공유하며 코로나 시대를 사는 답답한 우리의 삶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려 합니다. 먼저, 저희 회사에 대해 소개하고, 회사에서 참여 중인 세상에서 가장 큰 광학 천체 망원경 ELT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프랑스에서 회사를 다니며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SAFRAN 로고 [https://www.safran-group.com/] SAFRAN 그룹은 항공(추진체, 장비 및 인테리어), 방위 및 우주 산업 시장에서 활동하는 국제적인 첨단 기술 그룹으로, 전 세계 27개국에 2020년 기준 약 79,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룹의 핵심 목표는 항공 운송이 보다 친환경적이고 편안하며 접근이 용이하도록 보다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세계에 기여하기 위해 첨단 솔루션을 설계, 구축 및 지원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솔루션을 방위 및 우주 산업과 같은 전략적 요구를 충족하는 기술 개발에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2020년 기준 전세계 SAFRAN 직원 수 및 비율 [https://www.safran-group.com/sites/default/files/2021-07/SAF-ESSENTIEL%202021-150x220-EN-MAI-WEB.pdf] SAFRAN 그룹은 2005년 프랑스 SNECMA (Societe Nationale d'Etude et de Construction de Moteurs d'Aviation, 국립 항공기 엔진 설계 제조 회사) 그룹과 프랑스 SAGEM (Societe d’applications generales d’electricite et de mecanique, 전기 및 기계 일반 응용 회사) 사가 합병하여 설립되었습니다. SNECMA 사는 현재 항공기 및 우주선 추진체/엔진 제작 사업을 담당하는 Safran Aircraft Engines 사가 되었고, SAGEM은 옵트로닉스, 방위산업, 항공전자공학 사업을 담당하는 Safran Electronics & Defense 사가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그룹 산하에 항공기 장비, 헬리콥터 엔진, 소재, 보안 및 R&D를 담당하는 관련 회사들이 포진해 있으며, GE Aviation과 50대50 합작사인 항공기 엔진 제조 기업 CFM International, Airbus Defense and Space와의 50대50 합작사인 우주 발사체 기업 ArianeGroup을 두고 있기도 합니다.   SAFRAN의 주요 제품군 [https://www.safran-group.com/sites/default/files/2021-07/SAF-ESSENTIEL%202021-150x220-EN-MAI-WEB.pdf] 2020년 SAFRAN 그룹의 포트폴리오는 46%의 항공/우주 추진체 사업, 42%의 항공기 전장시스템 및 방위 사업, 12%의 항공기 내장재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업의 큰 부분이 항공사업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항공기 한 대를 놓고 SAFRAN 제품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SAFRAN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 [https://www.safran-group.com/sites/default/files/2021-07/safr_ri-2020_uk.pdf] 항공기 부품에서 차지하는 SAFRAN 제품 [https://www.safran-group.com/sites/default/files/2021-07/SAF-ESSENTIEL%202021-150x220-EN-MAI-WEB.pdf]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항공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 보니 코로나19의 피해를 피해갈 수는 없었는데, 2019년 24,640백만 유로(약 33.7조원)의 매출에서 2020년 16,498백만 유로(약 22.5조원)로 매출이 큰 부분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2019년 1,983백만 유로(약 2.7조원) 및 2020년 1,073백만 유로(약 1.5조원)의 잉여현금흐름(Free cash flow)을 바탕으로 코로나 위기를 대규모 감원이나 매각 등의 큰 어려움 없이 잘 극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더불어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정부와 시민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저탄소 고효율 사업 모델로의 전환을 더욱 신속하게 추진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2030-2035년까지 지속 가능한 연료를 사용하는 항공기, 기술혁신을 통한 엔진 개선으로 연료 소비가 30% 감소한 초고효율 항공기, 수소 연료를 사용한 중/단거리 항공기, 소형 전기 항공기 및 하이브리드 지역 항공기, 하이브리드 헬리콥터 등의 새로운 모빌리티 솔루션을 목표로의 사업 모델을 설정하고, 2050년까지 고급 바이오 연료 외 합성연료 및/혹은 액체수소 사용, 고밀도 배터리를 이용하는 저탄소 에너지원의 미래 항공기 개발을 계획 중입니다. SAFRAN 그룹은 대한민국과도 45년 이상 관계를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KAI, KARI, 한화, 대한민국 국군 등과 파트너쉽을 통해 대한민국의 민간용/군수용 항공기 엔진, 전자장비, 헬리콥터 터빈엔진, 레이더, 미사일교란 장치, 파이로테크닉, 인공위성 등에 SAFRAN의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SAFRAN 한국지사를 서울에 설립하였습니다.   SAFRAN 한국 지사와 사업 활동에 관한 인포그래픽 [https://www.safran-group.com/sites/default/files/2021-07/SAF_infographics_Korea_June2021_LD.pdf] 지금부터는 제가 재직중인 SAFRAN REOSC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SAFRAN REOSC는 Safran Electronics & Defense의 100% 자회사로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35 km 떨어져 있는 Saint-Pierre-du-Perray라는 작은 도시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저를 포함한 약 180명의 직원이 인공위성, 대형 망원경 및 고 에너지 레이저/반도체 산업을 위한 고성능 광학 장치들의 개발과 생산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SAFRAN REOSC 전경 [https://www.safran-group.com/companies/safran-reosc] SAFRAN REOSC의 전신인 REOSC(Recherche et Etudes en Optique et Sciences Connexes, 광학 및 관련 과학 연구소)는 Henri Chretien, Charles Fabry를 포함한 파리 Institute of Optics의 과학자 그룹에 의해 1937년 설립된 광학 관련 회사입니다. 1947년 세계 최초의 적외선 망원경 개발을 시작으로, 1967년 ESO(European Southern Observatory, 유럽 남방 천문대)와 첫 파트너쉽을 맺고 3.6 m 크기의 천문용 거울을 제작하였고, 1970년대 유럽 기상 인공위성인 Meteosat, 1980년대 CNES(프랑스 국립 우주연구센터), ESA(유럽우주국), Thales Alenia Space, Airbus Defence & Space 등에 각종 인공위성용 광학계를 제작하여 납품, 1990년대 VLT (Very Large Telescope) 1차 및 2차 거울 및 Gemini international telescope 거울, 2000년대 GAIA 위성 거울, James Webb 우주 망원경의 NIRSpec instrument 거울, GTC(Gran Telescopio Canarias) 거울 등을 생산하였습니다. 그리고 2017년부터 ESO에서 추진하는 ELT(Extremely Large Telescope) 프로젝트의 모든 거울들(M1~M5)을 제작 중입니다. 최근에는 한국 천문연구원에서도 참여중인 GMT(Giant Magellan Telescope) 프로젝트에서 첫 번째 off-axis ASM(Adaptive Secondary Mirror) 제작을 수주하였으며, 제가 Metrology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SAFRAN REOSC에서 현재 진행중인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 ELT는 2024년 첫 관측을 목표로 칠레 Cerro Armazones (해발 3,046m) 산 정상에 건설될 39.3 m 구경의 세계에서 가장 큰 초거대 망원경입니다. ELT는 사람 눈의 1억 배, 갈릴레오 망원경의 800만 배, VLT의 단일 유닛의 26 배의 빛을 모을 수 있어 덜 밝은 별을 더 잘 감지하고, 더 상세한 영상을 보여주며 (허블 우주 망원경보다 16배 더 선명한 영상을 제공), 우주의 유기 분자들을 더욱 더 잘 추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ELT가 첫 관측에 들어가면 우리는 은하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보다 더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ELT 조감도 [https://www.eso.org/public/images/eso1716c/] ELT를 구성하는 직경 39.3 m의 ELT M1은 798개의 직경 약 1.5 m의 비구면 segment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segment 사이의 간격은 4 mm이며, 열팽창 계수(coefficient of thermal expansion, CTE)가 매우 낮은 독일 SCHOTT사의 Zerodur®라는 유리-세라믹 소재로 만들어집니다. SCHOTT사에서 주조 및 예비 가공 과정을 거친 segment들은 SAFRAN REOSC로 배송되어 표면 결함이 약 8 nm 이하가 될 때까지 비구면 형태로 연마 후, 육각형 형태로 정교하게 절단, IBF (Ion Beam Figuring) 등의 후처리를 거칩니다. 각 segment 한 장을 프랑스 전체 영토에 비유하자면 표면 결함은 작은 무당벌레 한 마리의 키보다 작아야 하는 수준입니다. M1 외에도 세계 최대 비구면 볼록 거울인 M2, 비구면 오목 거울인 M3, 약 2 mm 두께의 세계 최대 적응형 평면 거울인 M4, 그리고 망원경에 적응된 가장 큰 tip-tilt 기능을 가진 SiC 평면 거울인 M5 또한 SAFRAN REOSC에서 가공됩니다.   ELT의 광학계 소개 [https://www.eso.org/public/france/images/eso1704a/] 이렇게 거울들을 가공하면서 표면 결함을 수 나노미터 단위로 연마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습니다. 보통 수개월에서 많게는 1년도 걸리는데요. 연마 공정에 자동화 로봇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거울의 용도와 재질 특성에 따라 경량화 작업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표면 굴곡의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른 공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으며, 온도/습도/중력/진동에 대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고, 거울 주변을 지지하고 있는 부품들의 영향도 고려해야 합니다. 게다가 단 한 번의 공정으로 연마가 완성되는 작업이 아니라 연마-측정-연마-측정의 반복되는 공정으로 각 공정 사이에 연마가 올바르게 되고 있는지, 각종 기하광학 수치들은 올바른 값으로 수렴하고 있는지, 공정 중간에 오염이나 다른 결함이 생기지는 않았는지를 수시로 광학계를 이용해 검사하고, 올바르지 않는 방향으로 제작되고 있다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올바른 값을 향하게끔 보정하는 절차를 시행해야 합니다. 또한, 최종 제품에서 표면 결함을 포함한 metrology specification이 올바른 공간주파수 하에서 고객이 주문한 값을 만족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소속된 Optical Surface Metrology 부서는 이러한 작업들을 프로젝트 초기부터 계획하고, 더 나은 솔루션을 제공하고, 측정을 책임지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이를 위해 사용되는 interferometry, deflectometry, 3D coordinate measuring machine 등을 포함한 각종 metrology 장비들을 유지보수 및 관리하고, 오퍼레이터들을 교육하고, 필요에 따라 장비를 개선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학위를 마치고 프랑스에 남기로 결심했을 때, 저는 ELT와 같은 역사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사실에 기대 반 걱정 반이었던 반면, 주변으로부터는 프랑스에서 일을 하니 “적게 일하고 많이 쉬겠지”라는 농담 반 부러움 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정확한 비교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겪은 바를 바탕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일단 휴가는 여느 프랑스 회사와 같이 연 35일로 시작하고, 3년차부터는 근속연수에 따른 보상휴가 덕분에 연 41일로 늘어납니다. 저희는 생산 라인이 있다 보니 보통 여름 2주, 겨울 1주의 공장 유지보수 기간 동안 총 3주의 고정 휴일을 갖습니다. 나머지 5주의 휴가는 자율적으로 나눠서 쓰거나 적립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긴 일정으로 한국을 다녀올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어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넉넉한 휴가일수를 보면 “많이 쉰다”는 맞는 말 같습니다만, “적게 일한다”라는 말에는 ca depend (프랑스어로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의미) 이라 답하고 싶습니다. 저희 부서는 대부분이 갓 박사학위를 취득한 젊은 부서인데, 다들 일에 의욕이 넘치고, 밤낮없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풀리지 않던 문제를 풀었다며 주말이나 새벽에도 동료로부터 메시지가 오기도 합니다. 더불어 생산 라인이 있는 회사의 특성상 연구개발/수치해석 뿐만 아니라, 측정 장비와 관련한 엔지니어링 업무도 맡아야 하고, 장비에 문제가 발생했을 시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해야합니다. 생산일정 및 업무분장 조율 시 매니저와 오퍼레이터들의 요구사항들을 중간에서 조율해야 하는 중간관리자의 위치는 모든 충격을 흡수하는 스펀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정해진 출퇴근시간도 따로 없고, 많은 부분을 자율에 맡기지만, 업무로드가 꽤 있는 편이고, 모두가 프로젝트의 OTD(On Time Delivery)를 위해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밤낮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물론 SAFRAN은 프랑스 근로기준법을 준수합니다). 그래서 프랑스 회사에서도 업무 로드에 있어서는 진리의 부바부(한국 직장 은어로 “부서 by 부서”)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마 궁금해하실 언어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저희 회사는 외국인 클라이언트를 대할 때나 외국 클라이언트를 위한 보고서를 쓸 때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프랑스어를 사용합니다. 저는 4년간 프랑스에서 학위를 하면서 지도교수님의 배려로 보통 쓰는 영어를 쓰지 않고 프랑스어로 지내왔기 때문에 불어에는 나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회사에서 업무를 하면서 쓰는 각종 약어, 보고서용 언어는 학교에서 쓰던 언어와는 또 다른 세상이더군요. 그래서 입사 초기 1~2년차에는 적응하는 데 굉장히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도 주변 동료들이나 매니저로부터 자주 불어 교정을 받으면서 불어로만 회사생활을 한 덕분인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 수록 나아진다는 칭찬을 종종 듣다 보면 언어가 주는 스트레스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종종 한국 클라이언트 분들이 오시곤 하는데, 그 날에 맞춰 태극기가 회사 입구에 걸리고는 합니다. 초반에는 이렇게 언어로도 어려움이 많고, 회사 업무도 망망대해에 던져진 느낌이어서 일도 더 오랜 시간 했어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제 나름대로 회사 모든 사람과 친해져 적극적인 교류를 해보자는 전략을 썼습니다. 제 성격이 원래 이런 것도 한 몫 했고요. 그래서 입사 첫 해 여름에는 부서 사람들을 모두 집에 초대해서 집들이를 하거나, 여름 휴가 때 부득이하게 남아서 유지보수 업무를 하고 있던 직원들을 위해 하루는 회사 식당에서 한식으로 점심을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사진과 같이 즉석밥, 군만두, 배추김치, 깍두기, 불고기, 한국 과자, 그리고 바게트(?)의 조합으로 별로 대단할 것은 없었지만, 이 일이 회사 사람들에게 한국 문화와 더불어 저를 소개면서, 다른 부서 직원들로부터 업무적으로도 도움을 더 수월하게 받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회사 식당에서 한식을 대접했던 날 단조로운 회사생활에 활력을 준 요소가 하나 더 있으니, 같은 사무실을 공유하는 동료들입니다. 저는 저를 포함한 총 3명의 동료들과 사무실을 함께 쓰고 있습니다. 학위도, 나이도, 공부한 분야도 비슷해서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데요. 퇴근 후에 맥주를 마시거나, 수영, 트램펄린, 암벽등반과 같은 액티비티를 하거나, 서로의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나누거나, 함께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 생일 파티를 열거나, 부모님 별장으로 커플 동반 스키 여행을 가거나 하면서 더 관계가 돈독해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참 많이도 다녔네요. 심지어는 이렇게 사무실 전용 티셔츠를 제작해서 공유를 할 정도였지요. 새삼 저 같은 이방인을 위해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배려해주는 동료들의 마음이 고맙네요.   업무 외에도 사적인 부분을 공유하는 직장 동료들과 보낸 시간들 (오피스 티셔츠도 만들 정도) 마침 그 중 한 동료가 한국 관광을 다녀왔는데요. 여의도 봄꽃축제 팸플릿을 고이 가져와 집에 전시해 놓은 모습이 흥미로워 이곳에 공유합니다. 한국에서는 버려졌을 법한 축제 팸플릿이 이곳에서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 한 것을 보며 “아, 역시 예술의 한 시대를 풍미한 나라 답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 이후로 이런 동료 모임이 사라져서 아쉬웠는데, 다시 자유롭게 퇴근 후에 모임을 가질 수 있을지, 코로나 이후를 담담하게 기다려봅니다.   한국 여행을 다녀왔던 동료 Camille의 집에 전시된 여의도 봄꽃축제 포스터   프랑스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좋은 점은 앞서 소개해드렸던 연 8주간의 긴 휴가, 다른 유럽 국가로의 여행이 용이한 지리적 위치, 한국의 살인적 집값에 비해 납득할 만한 집값, 은퇴 후 비교적 안정적인 연금소득 등이 있겠습니다만, 은퇴까지는 아직은 너무 먼 이야기이고, 당장 긴 휴가는 한국을 다녀오거나, 근교 유럽국가들을 방문하며 휴식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독일, 스페인 등의 주변 국가로 자동차로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는 지리적 요건은 이곳 생활의 확실한 장점인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 휴가는 코로나 사정도 있고 해서 조촐하게 벨기에에 계시는 코센 회원이자 학교 선배인 조진연 박사님 댁에 다녀왔는데요. 친인척이 없어 자칫 고립될 수 있는 타지 생활에 가족 같은 안정감을 주기도 하고, 본받을 점이 많은 모범 가정을 꾸리고 계시는 분이라 제가 롤 모델 가정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코센 회원이자 제 학위과정 동기였던 네덜란드 ASML에서 근무중인 박선용 박사도 초대하여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쌓아 두었던 서로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다 보면 시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갑니다. 벨기에에 EU 본부가 있어서 유럽의 수도라 불리는데, 벨기에에서 이렇게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3국의 코센 회원이 모이니 마치 3자 회동을 방불케 했더라는 후문입니다.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코센 회원의 여름 휴가 그리고 제가 프랑스에서 졸업한 학교와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덕분에 학교 동료, 후배, 지도 교수님과도 계속 교류를 이어 나가고 있고, 학교 인맥 외에도 회사 그룹 내의 R&D 센터에서 근무하시는 한국인 박사님 가족을 우연치 않게 알게 되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학교, 회사처럼 가까운 곳에 마음 터놓고 모국어로 희로애락을 나누며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이웃들이 있는 것도 해외에서 생활하는 저에게 큰 행운이구나 싶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좋은 이웃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해외 생활의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한국인 이웃들 타향살이의 단점 중에 하나를 꼽자면, 다른 외국에 계시는 코센 회원분들도 공통으로 느끼실 만한 것이겠지만, 삶의 팔할을 차지하는 음식입니다. 요즘은 어느 나라나 한인 식료품점이 꽤나 잘 들어 서있고, 현지 슈퍼마켓에도 라면, 김치, 김, 된장과 같은 한국의 대표적인 식료품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긴 합니다만 어쨌든 수입 식품인지라 가격이 비쌉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작 저렴한 현지 물가의 혜택은 누리지 못하고, 반 강제적인 엥겔계수의 상승을 볼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한국의 편리한 배달음식은 고사하고, 대신에 닭 튀기는 능력만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토종 입맛은 평생 바뀌지 않을 것 같네요.   해외에서도 바뀌지 않는 한국인의 입맛 프랑스에는 고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당일치기 혹은 주말에 잠깐 짬을 내어 근교 고성에 들러 고즈넉하게 산책을 하기 좋은데요. 가장 최근에는 파리 남동쪽으로 약 40 km에 위치한 Vaux-le-Vicomte 성에 다녀왔습니다. 프랑스의 다른 유명한 성에 비해 크게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어로 “보르비콩트”라 불리는 이 성은 17세기 프랑스 건축을 대표하는 성으로 베르사유 궁전의 바탕이 된 건물이기도 합니다. 1656년 루이 14세 통치시절 재무장관을 맡고 있던 Nicolas Fouquet는 보르비콩트 성을 짓고 축하연 자리에 루이 14세를 초대하였지만 화려한 성의 모습에 왕의 질투를 사게 되었습니다. 1661년 Fouquet는 공금횡령이라는 모함으로 전 재산 몰수 및 투옥되고,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는 비운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훗날 루이 14세는 이 성을 모태로 베르사유 궁전을 짓게 됩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불꽃놀이를 관람할 기회가 되었는데 코센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나중에 프랑스에 들르신다면 베르사이유 궁전과 함께 보르비콩트 성을 비교하며 관람하신다면 매우 흥미로운 관광이 될 것입니다.   Vaux-le-Vicomte 성의 불꽃놀이 코로나 보건 위기로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일주일에 2~3회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소화를 시키기 위해 10~20분정도 집근처를 산책하는데 하늘을 보며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참 매력적입니다. 또한, 코로나 위기를 기회로 가계 식량안보에 이바지하고자 방 한 켠에 토마토, 쪽파, 각종 쌈 채소 등을 길러서 요즘 수확해 먹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재택근무 중 잠시 걷는 산책길과 직접 재배하는 식용 채소들 저에게 힘을 주는 존재를 소개한다는 것을 빠뜨릴 뻔했네요. 제 곁에는 프랑스에 오기전부터 만나 프랑스에 함께 유학을 왔고 이제는 어느덧 10여년의 세월을 함께한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그리고 우리 옆을 항상 지켜주는 고양이 별이가 있습니다. 별이가 최근에 심장이 많이 아파 큰 고비를 넘겼었는데, 부디 건강하게 행복하게 남은 생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귀여움을 담당하는 고양이 별이와 여자친구 동희 마지막으로, 제가 해외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저의 학문적 기초를 잡아 주셨던 경희대학교 정보디스플레이학과 김정호 지도교수님과 프랑스 Ecole polytechnique의 Enric Garcia-Caurel 지도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뿌리가 되어 주시는 우리 어머니 최하은 약사님께 사랑한다고, 삼형제 키우느라 너무 고생하셨다고, 그리고 최근에 많이 아팠던 별이를 살리기 위해 먼곳까지 손수 약을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긴 글 읽어 주신 코센 회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코로나에 뒤숭숭한 시기이지만 어디서든 하시는 연구 건승하시고, 또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라며, 이만 포토에세이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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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저

안녕하세요. 저는 독일 뮌헨 소재의 독일연방군사대학교 (Bundeswehr University Munich)의 열역학 연구소 (Institute of thermodynamics)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신준수라고 합니다. 현재 딥러닝 등의 머신러닝을 사용한 데이타 해석 기법을 사용하여 열유체역학에서 다뤄지는 문제들을 풀어보고 있습니다. 어느덧 독일에 와서 지낸 지도 3년이라는 시간이 되어가네요. 인생은 참 신비롭습니다. 한국에서 박사를 졸업할 때만 하더라도 제가 1년 뒤에 독일에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10년뒤 혹은 20년 뒤에 제가, 그리고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상상해 보는 것이 즐거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뮌헨을 떠나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으로 이사 간 박선용 박사와 함께 한국 음식을 만들어서 뮌헨 맥주와 곁들여 먹고 마시던 일들이 엊그제 같이 느껴집니다. 이번에 박선용 박사가 저에게 코센 릴레이북을 이어서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대상을 받은 김초엽 작가의 SF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라는 책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야기가 주는 힘을 믿습니다. 이야기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오락입니다. 단군신화가 아직까지 전해져 우리가 이야기 할 수 있듯이 그 까마득한 옛적에서부터 후대 사람들에게로 이야기를 구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요. 이야기는 오락임에 동시에 우리의 본능에 새겨져 있는 정보전달 수단이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현재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의 시대는 인류 전체의 역사를 비춰볼 때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대략 20만년 전 현인류가 기원했다고 생각하면 18세기 중반에 산업혁명이 생기고 나서 고작 30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인류의 긴 역사에 비하면 과학이 인류에 영향을 준 것은 아직 너무나도 짧은 시간입니다. 그렇기에 과학의 가능성은 아직 무궁무진하고, 그리고 또 중요합니다. 저는 그래서 Science Fiction(SF)가 과학의 시대인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수학공식들로 가득한 논문을 처음부터 들이미는 것보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 동시에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접근법이 사람들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의 직업인 연구자의 밥벌이 도구로서 수식이 가득한 논문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과학을 생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과학이 알고보니 재미있네"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김초엽 작가님 본인이 바이오센서를 설계하는 연구원이셨던 것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저와 비슷한 생각의 길을 거쳐오시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론이 매우 길었습니다. 단편집 중 한 꼭지이며 단편집의 이름과 같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꼭지의 이야기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어떤 남자가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한 우주정거장에서 어느 할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그 할머니는 머나먼 외우주 행성으로 떠나는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남자에게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설명해주며 이야기의 첫페이지가 쓰여지게 됩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몇년 후일지 모르는 미래입니다. 책에서는 우주 개척 시대가 열린 이후라고 설명합니다. '우주 개척 시대'. 사람들의, 그리고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만한 것으로 비교하면 원피스의 '대해적 시대' 다음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매력적인 단어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자신도 중2병의 화신이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왜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났을까. 100년 전 '대항해 시대' 혹은 100년 후 '대우주 시대'에 태어났으면 정말 좋았을 것 같은데. 모험과 흥미로운 것들이 가득한 세상. 그 당시의 저는 코에이의 대항해 시대2, 또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로 그런 중2병스런 욕구를 다행히 억누를 수 있었습니다. 김초엽 작가의 '우주 개척 시대'에서는 중요한 기술들이 몇가지 발명되었습니다. '워프 항법', '냉동 수면', 그리고 '웜홀 통로 항해 기술'입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2021년을 살고 있는 인류에게는 언제 개발될지 모를 꿈과 같은 기술들이지만, 이 미래의 시대에도 아직 도달하지 못한 기술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빛의 속도'로 혹은 그 이상의 속도로 날아가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물체가 빛의 속도에 가까워질 수록 그 물체를 포함하는 관성계의 시간은 매우 느려집니다. 그리고 결국 빛의 속도가 되면 시간이 정지하게 되어 그 속도를 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법칙 중 하나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이야기의 할머니는 '워프 항법' 등의 빛나는 발명으로 인해 인류가 다른 항성계들의 행성들을 정복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자신을 지구에 두고 다른 행성으로 이주한 가족들을 만나러 갈 수 없다고 남자에게 얘기합니다. 가족들이 살고 있는 행성이 웜홀 통로에서 멀어 우주선을 보낼 만한 수지 타산이 안 맞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주선이 빛의 속도로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그 시대의 우리 인류가 노벨상 10개를 한번에 타도 부족할 그런 대발명을 이루었음에도 자신의 가족을 보러가지 못하는 한 할머니의 사연을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 중 하나인 상대성이론, 또 다른 하나는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역설적으로 문제의 본질을 이야기하지만, 수백년 후일지 모를 미래의 왠지 있을 법한 이야기에 수긍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픕니다. 이야기의 말미에는 남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빛의 속도'로 날지 못하는 우주선을 타고 가족들을 향해 길을 떠납니다. 언제 도착할지, 아니 도착하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여정을 떠나죠. 하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알려지지 않은 웜홀을 중간에 만나 가족들이 살고 있는 행성 가까이에서 뱉어질지요. 그리고 가족들을 끝내 만나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죠. '인생은 참 신비롭구나'.    다음 주자로 저는 곽상훈 박사님을 추천합니다. 곽박사님은 광주과학기술원에서 박사 졸업 후, 현재 뮌헨의 Apple Mobile Deutschland 에서 디지털 하드웨어 설계엔지니어로 재직 중이십니다. ASIC 설계, GPU/CPU설계, Machine Learning Processor 설계 등의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곽상훈 박사님은 과히 만물박사라고 불리실 만하신 분입니다. 자신의 전공분야 뿐만 아니라 예술, 역사, 경제, 연예계(?) 등등의 분야의 이슈들을 언제나 섭렵하고 계시고 보따리 장수가 보따리에서 물건을 꺼내듯이 쉽게 얘기해 주십니다. 그런 곽박사님께서 어떤 책을 추천해 주실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자세히 보기

나이를 말하기 부담스러운 시대인데, 필자는 작년에 환갑을 넘겼다. 겁도 없이 은퇴 전에 한 번 더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려다가, 덜컥 MIT 가 위치한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켐프릿지로 이사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일했던 프랑스의 국제기구를 떠나 새로 조인한 일자리는 MIT에서 나온 연구자들이 만든 벤처회사다. 그냥 MIT에서 일하면 되지 왜 나와서 회사를 차렸냐고 물어보았더니, 대학은 기부금만을 받을 수 있을 뿐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배당할 수 없으니 연구비를 모으기 어렵다고 한다. 반면 회사를 차리면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나누어주는 방식으로 이익을 공유할 수 있어 연구비 모집이 쉽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필자도 약간의 주식을 받게 되었다. 이제는 주식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도록 열심히 일해서 노년을 편하게 지내야지라는 야무진 꿈도 가지게 되었다. 일장춘몽으로 그칠 지, 동상이몽일지 아직은 모른다. 이 글은 회사에서 준, 한글자판 표시가 없는 컴퓨터 자판으로 치는 내 생애 첫번 째 글이다. 속도가 늦지만, 이번의 어려움을 포기하면 평생 ‘자판 커닝’을 해야하는 신세를 바꿀 수 없을 것 같아, 신뢰하기 어려운 손가락의 기억과 싸워가며 천천히 타이핑 중이다. 그런데 최근 코센 싸이드에 ‘과학기술자와 디지털문맹’이라는 토론코너를 보게 되어 가슴이 철렁했다. “누가 내 비밀을 알고 비판하려는 것일까?” 하는 음모론이 순간 머리속에서 떠올랐다. 물론 나는 대중의 타겟이 될만큼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기에 금방 착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옮겨오면서 컴퓨터도 바뀌었고 휴대전화도 바뀌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개인 이메일을 열려고 시도했더니, “당신 컴퓨터가 바뀌었음으로 전화텍스트로 코드를 보냈으니 본인임을 인증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 휴대전화는 계약이 해지되어 SIM카드가 내 수중에 없어서 이메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자주 겪는 일이긴 하지만, 자동차 보험들려면 운전면허증 가져오라고 하고 면허증 발급받으러가면 보험증을 요구받는 무한루프에 빠지는 순간이다. 둘 중 하나가 있으면 쉽지만, 둘 다 없으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에는 모든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행정업무와 은행업무에 휴대전화를 도입하고 있다. 그래서 휴대전화가 없으면 주민등록증이 없는 것보다 더 불편한 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전 한 번 보지도 못한 공인인증서라는 것을 한국에서는 요구한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 코로나 시절에는 모든 백신 예약과 검증도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가할 정도다. 정부가 휴대전화를 다 사서 하나씩 나누어준 것도 아닌데, 무슨 권리로 휴대전화에게 그렇게 많은 권한을 주고 의존도를 높이는지 알 수가 없다. 좌우간 상황이 이러하니 나이든 사람들은 점점 사회에서 멀어지고, 같은 물건도 더 비싸게 사야 한다. 나이 먹는동안 돈을 잘 모아두었다면 형편이 괜찮겠지만, 가난하다면 디지털에서 소외된 영향을 더 크게 느낄 것이다. 은퇴후 갈 곳도 마땅히 없는데 전화기마저 편하게 사용할 수 없다면, 자기 삶이 송두리 채 무시당하는 기분마저 들 것이니까. 국가는 사회의 소통과 최소한의 계층간 갈등해소를 위해서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보통 중-고등학교 과정까지가 의무교육기간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상으로 모국어 교육을 시켜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육수준은 말을 못하거나 못알아들어서 자기 권리를 지킬 수 없거나 사회에 기본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인권의 바탕이 기본교육을 받을 권리인 것이다. 그런데 이제 기존의 문자와 문서를 상당부분 대체하는 디지털은, 개발자들에게는 기술의 영역이겠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한글 대신 침범한 새로운 언어다. 기존에 영어로 스트레스 받던 기성세대는 이제 디지털 언어를 몰라 스트레스가 한층 증폭되었다. 최소한의 디지털 기기 사용능력이 없는 것은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르는” 문맹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요즘은 유치원에 다니기도 전부터 휴대전화를 사용하는데 무슨문제냐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도시의 상황일 뿐이다. 국가는 도시로부터 발전동력을 얻지만, 사회의 생존은 농민과 어민 그리고 도시에서 배달이나 청소, 경비를 책임지는 계층에 심하게 의존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저변층이 디지털 기술에서 소외된다면 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제한이다. 모든 국민들이 교육수준과 경제적 위치에 무관하게 한 표씩 행사한다는 보통선거제가 민주사회구성의 기본임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제 국가는 마치 의무교육을 수행하듯 소외된 계층에게 디지털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 젊은 계층 엘리트들이 디지털 개발을 이끌고, 장년-노년층 권력자들이 디지털 정책을 결정한다. 결과적으로 개발자들은 더 발전된 기술만 추구하고, 정책 담당자들은 디지털이 사회에 끼칠 파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외국과 경쟁한다니 기꺼이 허가해주는 싸이클을 반복한다. 유감스럽게도 어디를 봐도 경쟁력을 높이자는 슬로건 뿐이고 한글창제 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학교에서 마치 신앙처럼 배워왔던, ‘어린 백성’을 위해 보편적 언어의 보급을 염원했던 세종대왕의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사회는 보편적 행정이나 생활에 불필요하게 복잡한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는 것들을 경계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어떤 계층을 더 편하게 시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어떤 계층을 소외시키는 것은 민주사회가 아니다. (물론 특수하고 복잡한 프로페셔널들의 시장은 자기들 마음대로 복잡하게 만들어도 상관없다.) 그래서 향후 디지털 기술과 언어가 사회의 계층과 세대간의 분열을 심화시키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자세히 보기

연구실 탐방

[Heriot Watt University] 전기화학 에너지변환 및 저장 연구실

전기화학 에너지변환 및 저장 연구실 (Electrochemical Energy Conversion and Storage (EECS) Laboratory)은 영국Heriot-Watt University의 이공대 배도원 교수님이 이끄는 연구팀입니다. 에딘버러와 두바이 양 캠퍼스(Fig. 1)에서 신재생 에너지 저장 및 변환기술 관련 폭넓은 연구를 하고 있는 Novel Energy Systems and Storage Integration (nESSI; Fig. 2 참조) 그룹 소속으로 그룹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종 기술간 결합, 특히 광전기화학과 레독스흐름전지 및 열전화학 전지 등 태양광 및 폐열의 효과적인 저장 기술을 주 연구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배도원 교수는 모스크바의 러시아 국립기술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LG이노텍 연구소에서 4년간 근무하였습니다. 그 후 스탠포드 대학교 화학공학과 촉매연구소에서 덴마크 정부 지원으로 객원 학자로도 잠시 근무하였으며, 덴마크공대 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EU의 Marie-Currie Fellowship으로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화학공학과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근무 하였습니다. 현재는 2020년 9월부터 Heriot-Watt University 에딘버러 캠퍼스에서 조교수로 근무 중입니다. EECS Lab은 nESSI 그룹 연구 주제 중 개념 검증 및 타당성 실험 등 소규모 기초 연구 주제를 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기화학적 에너지 전환 및 저장 기술은 열, 전기 및 빛 등의 에너지를 화학적 에너지로의 변환 및 저장을 가능케하는 기술로, 탄소 중립으로 대표되는 에너지 및 환경 위기 대응을 위한 핵심 기술 중 하나입니다. 2-1. 광충전 레독스 흐름전지 (Solar-rechargeable Redox Flow Battery) 광충전 레독스 흐름전지(Solar-rechargeable RFB; SRFB)는 전극 쌍과 전해액 스택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레독스 흐름전지(RFB)와 광충전을 가능케 하는 광전기화학 혹은 태양광 모듈이 결합 형태로(Fig. 3a), 태양에너지의 직접적인 변환 및 화학에너지로의 저장이 용이하며 열역학적 손실이 적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기존 RFB의 특징인 대용량화 및 장주기 안정성 등 역시 리튬이온배터리 대비 장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EECS Lab에서는 광전기화학 전극이 충전 모듈에 내장(Embedded)된 형태의 SRFB의 이론적 성능 평가 모델 개발 및 고효율 Flow-cell 반응기 설계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Fig. 1 Heriot-Watt University영국 에딘버러 캠퍼스(오른쪽) 및 두바이 캠퍼스(왼쪽) 출처: Heriot-Watt University 공식 사이트(www.hw.ac.uk) Fig. 2 연구 규모 및 특성에 따른 nESSI 그룹 연구 주제분류와 연구 담당자 2-2. 열회생 전기화학 사이클 (Thermally-regenerative Electrochemical Cycle) 세계적으로 지열 및 다양한 산업 현장으로부터 나오는 많은 양의 저등급 폐열의 활용을 위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저등급 폐열 회수에 따른 에너지 절약 비용이 연간 4천억원 가량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열회생 전기화학 사이클(Thermally-regenerative Electrochemical Cycle; TREC)은 서로 다른 온도를 갖는 용액을 활용한 열전기화학 에너지 변환/저장 기술로 서로 다른 온도 조건에서의 충전/방전 화학반응(Fig. 3b)을 기반으로 하며 기존 열전소자 대비 변환효율이 높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EECS Lab에서는 열-전기 변환 효율 증가를 위한 전해질 설계를 중점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2-3. 광전기화학적 에너지 변환 (Photoelectrochemical Energy Conversion) 기술적 성숙도 관점에서 볼 때 태양광 모듈과 연계한 전기화학적 수소 변환 기술 역시 각광받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광촉매 및 광전기화학적 물 분해 수소 변환을 기술 역시 꾸준히 연구되는 상황입니다. 인공광합성 기술 중 하나인 광전기화학적(Photoelectrochemical; PEC) 태양연료 기술은 일반적으로 광소자의 전기화학적 반응에 의한 고체/액체 계면에서의 촉매반응을 통한 광에너지의 화학적 변환을 의미하며, EECS Lab에서는 광전기화학 에너지 변환에 사용되는 반도체 소자 설계, 특히 고체/고체 및 고체/액체 계면의 물리적 특성 설계에 특화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Fig. 3c).   Fig. 3 EECS Lab 주요 연구 주제 및 관련 대표 이미지 EECS Lab은 2021년 초 공식적으로 nESSI 그룹 소속 연구팀으로 설립되었고, 2021년 9월인 현재 1명의 박사과정 연구원이 합류하였고, 3명의 석사과정 프로젝트 연구원이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매년 5-6명의 석사 프로젝트 연구원이 합류가 예상되며, 상기 언급된 주요 연구 분야 이외에도 nESSI그룹의 열화학 에너지 저장 및 태양광전지 특성 분석 관련 연구도 부분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EECS Lab은 nESSI그룹 소속 연구팀 중 지도교수와 연구원의 대화와 미팅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하며, 개개인의 연구 방향과 목표 설정에 중복이 없는 선에서 영향력 높은 연구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박사과정 연구원부터는 공용 사무실 내 개인 사무공간과 기본 IT장비들이 학교 규정에 따라 배정되며, 최근 COVID-19위험에 발맞추어 실험실 사용 시간 이외에는 재택 근무를 기본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박사과정 배정은 학과 및 학교 단위의 결정에 따릅니다. 개별 연구원 및 연구팀은 박사과정 학생 채용을 목표로 연구비를 신청할 수 없지만(하기 해외지원자 전용 기금 제외), EECS Lab은 매년 최소 한자리의 박사과정 배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 브렉시트와 제도 개편으로 영국 국적 혹은 영주권이 없는 해외 지원자들의 학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 외부 기관으로부터의 학비 및 장학금 확보를 위한 정보 및 행정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PhD과정은 펀딩 기관에 따라 3~4년 기간이며, Taught MSc course는 1년, MSc by research 과정은 Course work 없이 2년 연구 과정입니다. 우리나라 학생 및 연구원들이 지원 가능한 영국정부의 펀딩 프로그램은 하기와 같습니다. MSc & PhD GREAT scholarship: https://study-uk.britishcouncil.org/scholarships/great-scholarships Chevening scholarship: https://study-uk.britishcouncil.org/scholarships/chevening-scholarships Postdoctoral Researcher & Fellowship EPSRC Fellowships: https://epsrc.ukri.org/skills/fellows Leverhulme Fellowships: https://www.leverhulme.ac.uk/schemes-at-a-glance Marie-Curie Fellowship*: https://ec.europa.eu/research/mariecurieactions/funding *EU 프로그램이나 현재 영국 소속 기관의 참여가 가능 Fig. 4 에딘버러 시 외곽에 위치한 Heriot-Watt University EECS Lab은 Heriot-Watt University 에딘버러 캠퍼스의 이공대(School of Engineering and Physical Science) 산하 IMPEE (Institute of Mechanical, Process and Energy Engineering) 소속 연구팀으로, James Nasmyth building에 소재해 있습니다. 에딘버러 캠퍼스는 공항에서 차량으로 8분 정도의 거리이며, EECS Lab의 PI인 배도원 교수님의 사무실은 James Nasmyth 건물 3층(영국 기준 2층)에 위치해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에 관심이 있는 대학원생 및 박사후 연구원은 하단의 연락처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 EECS Lab  : https://eecs.site.hw.ac.uk/ ■ nESSI Group  : http://nessiresearch.com/ ■ 이메일  : d.bae@hw.ac.uk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