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SAFRAN그룹에서 광학 연구원 생활
- 2430
- 4
- 5
안녕하세요. 저는 프랑스 SAFRAN 그룹에서 광학 연구원으로 재직중인 유상혁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에는 2014년와서 석사, 박사학위를 마치고, 2018년부터 현재 회사에 몸 담고 있습니다. 최근에 옆 나라 벨기에에 계신 선배 박사님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코센 릴레이 독후감을 쓸 기회가 있었는데, 그 일이 계기가 되어 포토에세이까지 권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쓰신 포토에세이를 종종 읽곤 했는데, 항상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 주셔서 저도 그에 맞는 유용한 정보를 드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제가 사는 모습을 공유하며 코로나 시대를 사는 답답한 우리의 삶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려 합니다. 먼저, 저희 회사에 대해 소개하고, 회사에서 참여 중인 세상에서 가장 큰 광학 천체 망원경 ELT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프랑스에서 회사를 다니며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SAFRAN 로고 [https://www.safran-group.com/]
SAFRAN 그룹은 항공(추진체, 장비 및 인테리어), 방위 및 우주 산업 시장에서 활동하는 국제적인 첨단 기술 그룹으로, 전 세계 27개국에 2020년 기준 약 79,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룹의 핵심 목표는 항공 운송이 보다 친환경적이고 편안하며 접근이 용이하도록 보다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세계에 기여하기 위해 첨단 솔루션을 설계, 구축 및 지원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솔루션을 방위 및 우주 산업과 같은 전략적 요구를 충족하는 기술 개발에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2020년 기준 전세계 SAFRAN 직원 수 및 비율
[https://www.safran-group.com/sites/default/files/2021-07/SAF-ESSENTIEL%202021-150x220-EN-MAI-WEB.pdf]
SAFRAN 그룹은 2005년 프랑스 SNECMA (Societe Nationale d'Etude et de Construction de Moteurs d'Aviation, 국립 항공기 엔진 설계 제조 회사) 그룹과 프랑스 SAGEM (Societe d’applications generales d’electricite et de mecanique, 전기 및 기계 일반 응용 회사) 사가 합병하여 설립되었습니다. SNECMA 사는 현재 항공기 및 우주선 추진체/엔진 제작 사업을 담당하는 Safran Aircraft Engines 사가 되었고, SAGEM은 옵트로닉스, 방위산업, 항공전자공학 사업을 담당하는 Safran Electronics & Defense 사가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그룹 산하에 항공기 장비, 헬리콥터 엔진, 소재, 보안 및 R&D를 담당하는 관련 회사들이 포진해 있으며, GE Aviation과 50대50 합작사인 항공기 엔진 제조 기업 CFM International, Airbus Defense and Space와의 50대50 합작사인 우주 발사체 기업 ArianeGroup을 두고 있기도 합니다.
SAFRAN의 주요 제품군
[https://www.safran-group.com/sites/default/files/2021-07/SAF-ESSENTIEL%202021-150x220-EN-MAI-WEB.pdf]
2020년 SAFRAN 그룹의 포트폴리오는 46%의 항공/우주 추진체 사업, 42%의 항공기 전장시스템 및 방위 사업, 12%의 항공기 내장재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업의 큰 부분이 항공사업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항공기 한 대를 놓고 SAFRAN 제품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SAFRAN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
[https://www.safran-group.com/sites/default/files/2021-07/safr_ri-2020_uk.pdf]
항공기 부품에서 차지하는 SAFRAN 제품
[https://www.safran-group.com/sites/default/files/2021-07/SAF-ESSENTIEL%202021-150x220-EN-MAI-WEB.pdf]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항공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 보니 코로나19의 피해를 피해갈 수는 없었는데, 2019년 24,640백만 유로(약 33.7조원)의 매출에서 2020년 16,498백만 유로(약 22.5조원)로 매출이 큰 부분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2019년 1,983백만 유로(약 2.7조원) 및 2020년 1,073백만 유로(약 1.5조원)의 잉여현금흐름(Free cash flow)을 바탕으로 코로나 위기를 대규모 감원이나 매각 등의 큰 어려움 없이 잘 극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더불어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정부와 시민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저탄소 고효율 사업 모델로의 전환을 더욱 신속하게 추진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2030-2035년까지 지속 가능한 연료를 사용하는 항공기, 기술혁신을 통한 엔진 개선으로 연료 소비가 30% 감소한 초고효율 항공기, 수소 연료를 사용한 중/단거리 항공기, 소형 전기 항공기 및 하이브리드 지역 항공기, 하이브리드 헬리콥터 등의 새로운 모빌리티 솔루션을 목표로의 사업 모델을 설정하고, 2050년까지 고급 바이오 연료 외 합성연료 및/혹은 액체수소 사용, 고밀도 배터리를 이용하는 저탄소 에너지원의 미래 항공기 개발을 계획 중입니다. SAFRAN 그룹은 대한민국과도 45년 이상 관계를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KAI, KARI, 한화, 대한민국 국군 등과 파트너쉽을 통해 대한민국의 민간용/군수용 항공기 엔진, 전자장비, 헬리콥터 터빈엔진, 레이더, 미사일교란 장치, 파이로테크닉, 인공위성 등에 SAFRAN의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SAFRAN 한국지사를 서울에 설립하였습니다.
SAFRAN 한국 지사와 사업 활동에 관한 인포그래픽
[https://www.safran-group.com/sites/default/files/2021-07/SAF_infographics_Korea_June2021_LD.pdf]
지금부터는 제가 재직중인 SAFRAN REOSC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SAFRAN REOSC는 Safran Electronics & Defense의 100% 자회사로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35 km 떨어져 있는 Saint-Pierre-du-Perray라는 작은 도시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저를 포함한 약 180명의 직원이 인공위성, 대형 망원경 및 고 에너지 레이저/반도체 산업을 위한 고성능 광학 장치들의 개발과 생산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SAFRAN REOSC 전경
[https://www.safran-group.com/companies/safran-reosc]
SAFRAN REOSC의 전신인 REOSC(Recherche et Etudes en Optique et Sciences Connexes, 광학 및 관련 과학 연구소)는 Henri Chretien, Charles Fabry를 포함한 파리 Institute of Optics의 과학자 그룹에 의해 1937년 설립된 광학 관련 회사입니다. 1947년 세계 최초의 적외선 망원경 개발을 시작으로, 1967년 ESO(European Southern Observatory, 유럽 남방 천문대)와 첫 파트너쉽을 맺고 3.6 m 크기의 천문용 거울을 제작하였고, 1970년대 유럽 기상 인공위성인 Meteosat, 1980년대 CNES(프랑스 국립 우주연구센터), ESA(유럽우주국), Thales Alenia Space, Airbus Defence & Space 등에 각종 인공위성용 광학계를 제작하여 납품, 1990년대 VLT (Very Large Telescope) 1차 및 2차 거울 및 Gemini international telescope 거울, 2000년대 GAIA 위성 거울, James Webb 우주 망원경의 NIRSpec instrument 거울, GTC(Gran Telescopio Canarias) 거울 등을 생산하였습니다. 그리고 2017년부터 ESO에서 추진하는 ELT(Extremely Large Telescope) 프로젝트의 모든 거울들(M1~M5)을 제작 중입니다. 최근에는 한국 천문연구원에서도 참여중인 GMT(Giant Magellan Telescope) 프로젝트에서 첫 번째 off-axis ASM(Adaptive Secondary Mirror) 제작을 수주하였으며, 제가 Metrology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SAFRAN REOSC에서 현재 진행중인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 ELT는 2024년 첫 관측을 목표로 칠레 Cerro Armazones (해발 3,046m) 산 정상에 건설될 39.3 m 구경의 세계에서 가장 큰 초거대 망원경입니다. ELT는 사람 눈의 1억 배, 갈릴레오 망원경의 800만 배, VLT의 단일 유닛의 26 배의 빛을 모을 수 있어 덜 밝은 별을 더 잘 감지하고, 더 상세한 영상을 보여주며 (허블 우주 망원경보다 16배 더 선명한 영상을 제공), 우주의 유기 분자들을 더욱 더 잘 추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ELT가 첫 관측에 들어가면 우리는 은하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보다 더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ELT 조감도
[https://www.eso.org/public/images/eso1716c/]
ELT를 구성하는 직경 39.3 m의 ELT M1은 798개의 직경 약 1.5 m의 비구면 segment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segment 사이의 간격은 4 mm이며, 열팽창 계수(coefficient of thermal expansion, CTE)가 매우 낮은 독일 SCHOTT사의 Zerodur®라는 유리-세라믹 소재로 만들어집니다. SCHOTT사에서 주조 및 예비 가공 과정을 거친 segment들은 SAFRAN REOSC로 배송되어 표면 결함이 약 8 nm 이하가 될 때까지 비구면 형태로 연마 후, 육각형 형태로 정교하게 절단, IBF (Ion Beam Figuring) 등의 후처리를 거칩니다. 각 segment 한 장을 프랑스 전체 영토에 비유하자면 표면 결함은 작은 무당벌레 한 마리의 키보다 작아야 하는 수준입니다. M1 외에도 세계 최대 비구면 볼록 거울인 M2, 비구면 오목 거울인 M3, 약 2 mm 두께의 세계 최대 적응형 평면 거울인 M4, 그리고 망원경에 적응된 가장 큰 tip-tilt 기능을 가진 SiC 평면 거울인 M5 또한 SAFRAN REOSC에서 가공됩니다.
ELT의 광학계 소개
[https://www.eso.org/public/france/images/eso1704a/]
이렇게 거울들을 가공하면서 표면 결함을 수 나노미터 단위로 연마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습니다. 보통 수개월에서 많게는 1년도 걸리는데요. 연마 공정에 자동화 로봇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거울의 용도와 재질 특성에 따라 경량화 작업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표면 굴곡의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른 공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으며, 온도/습도/중력/진동에 대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고, 거울 주변을 지지하고 있는 부품들의 영향도 고려해야 합니다. 게다가 단 한 번의 공정으로 연마가 완성되는 작업이 아니라 연마-측정-연마-측정의 반복되는 공정으로 각 공정 사이에 연마가 올바르게 되고 있는지, 각종 기하광학 수치들은 올바른 값으로 수렴하고 있는지, 공정 중간에 오염이나 다른 결함이 생기지는 않았는지를 수시로 광학계를 이용해 검사하고, 올바르지 않는 방향으로 제작되고 있다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올바른 값을 향하게끔 보정하는 절차를 시행해야 합니다. 또한, 최종 제품에서 표면 결함을 포함한 metrology specification이 올바른 공간주파수 하에서 고객이 주문한 값을 만족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소속된 Optical Surface Metrology 부서는 이러한 작업들을 프로젝트 초기부터 계획하고, 더 나은 솔루션을 제공하고, 측정을 책임지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이를 위해 사용되는 interferometry, deflectometry, 3D coordinate measuring machine 등을 포함한 각종 metrology 장비들을 유지보수 및 관리하고, 오퍼레이터들을 교육하고, 필요에 따라 장비를 개선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학위를 마치고 프랑스에 남기로 결심했을 때, 저는 ELT와 같은 역사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사실에 기대 반 걱정 반이었던 반면, 주변으로부터는 프랑스에서 일을 하니 “적게 일하고 많이 쉬겠지”라는 농담 반 부러움 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정확한 비교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겪은 바를 바탕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일단 휴가는 여느 프랑스 회사와 같이 연 35일로 시작하고, 3년차부터는 근속연수에 따른 보상휴가 덕분에 연 41일로 늘어납니다. 저희는 생산 라인이 있다 보니 보통 여름 2주, 겨울 1주의 공장 유지보수 기간 동안 총 3주의 고정 휴일을 갖습니다. 나머지 5주의 휴가는 자율적으로 나눠서 쓰거나 적립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긴 일정으로 한국을 다녀올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어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넉넉한 휴가일수를 보면 “많이 쉰다”는 맞는 말 같습니다만, “적게 일한다”라는 말에는 ca depend (프랑스어로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의미) 이라 답하고 싶습니다. 저희 부서는 대부분이 갓 박사학위를 취득한 젊은 부서인데, 다들 일에 의욕이 넘치고, 밤낮없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풀리지 않던 문제를 풀었다며 주말이나 새벽에도 동료로부터 메시지가 오기도 합니다. 더불어 생산 라인이 있는 회사의 특성상 연구개발/수치해석 뿐만 아니라, 측정 장비와 관련한 엔지니어링 업무도 맡아야 하고, 장비에 문제가 발생했을 시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해야합니다. 생산일정 및 업무분장 조율 시 매니저와 오퍼레이터들의 요구사항들을 중간에서 조율해야 하는 중간관리자의 위치는 모든 충격을 흡수하는 스펀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정해진 출퇴근시간도 따로 없고, 많은 부분을 자율에 맡기지만, 업무로드가 꽤 있는 편이고, 모두가 프로젝트의 OTD(On Time Delivery)를 위해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밤낮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물론 SAFRAN은 프랑스 근로기준법을 준수합니다). 그래서 프랑스 회사에서도 업무 로드에 있어서는 진리의 부바부(한국 직장 은어로 “부서 by 부서”)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마 궁금해하실 언어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저희 회사는 외국인 클라이언트를 대할 때나 외국 클라이언트를 위한 보고서를 쓸 때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프랑스어를 사용합니다. 저는 4년간 프랑스에서 학위를 하면서 지도교수님의 배려로 보통 쓰는 영어를 쓰지 않고 프랑스어로 지내왔기 때문에 불어에는 나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회사에서 업무를 하면서 쓰는 각종 약어, 보고서용 언어는 학교에서 쓰던 언어와는 또 다른 세상이더군요. 그래서 입사 초기 1~2년차에는 적응하는 데 굉장히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도 주변 동료들이나 매니저로부터 자주 불어 교정을 받으면서 불어로만 회사생활을 한 덕분인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 수록 나아진다는 칭찬을 종종 듣다 보면 언어가 주는 스트레스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종종 한국 클라이언트 분들이 오시곤 하는데, 그 날에 맞춰 태극기가 회사 입구에 걸리고는 합니다.
초반에는 이렇게 언어로도 어려움이 많고, 회사 업무도 망망대해에 던져진 느낌이어서 일도 더 오랜 시간 했어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제 나름대로 회사 모든 사람과 친해져 적극적인 교류를 해보자는 전략을 썼습니다. 제 성격이 원래 이런 것도 한 몫 했고요. 그래서 입사 첫 해 여름에는 부서 사람들을 모두 집에 초대해서 집들이를 하거나, 여름 휴가 때 부득이하게 남아서 유지보수 업무를 하고 있던 직원들을 위해 하루는 회사 식당에서 한식으로 점심을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사진과 같이 즉석밥, 군만두, 배추김치, 깍두기, 불고기, 한국 과자, 그리고 바게트(?)의 조합으로 별로 대단할 것은 없었지만, 이 일이 회사 사람들에게 한국 문화와 더불어 저를 소개면서, 다른 부서 직원들로부터 업무적으로도 도움을 더 수월하게 받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회사 식당에서 한식을 대접했던 날
단조로운 회사생활에 활력을 준 요소가 하나 더 있으니, 같은 사무실을 공유하는 동료들입니다. 저는 저를 포함한 총 3명의 동료들과 사무실을 함께 쓰고 있습니다. 학위도, 나이도, 공부한 분야도 비슷해서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데요. 퇴근 후에 맥주를 마시거나, 수영, 트램펄린, 암벽등반과 같은 액티비티를 하거나, 서로의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나누거나, 함께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 생일 파티를 열거나, 부모님 별장으로 커플 동반 스키 여행을 가거나 하면서 더 관계가 돈독해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참 많이도 다녔네요. 심지어는 이렇게 사무실 전용 티셔츠를 제작해서 공유를 할 정도였지요. 새삼 저 같은 이방인을 위해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배려해주는 동료들의 마음이 고맙네요.
업무 외에도 사적인 부분을 공유하는 직장 동료들과 보낸 시간들 (오피스 티셔츠도 만들 정도)
마침 그 중 한 동료가 한국 관광을 다녀왔는데요. 여의도 봄꽃축제 팸플릿을 고이 가져와 집에 전시해 놓은 모습이 흥미로워 이곳에 공유합니다. 한국에서는 버려졌을 법한 축제 팸플릿이 이곳에서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 한 것을 보며 “아, 역시 예술의 한 시대를 풍미한 나라 답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 이후로 이런 동료 모임이 사라져서 아쉬웠는데, 다시 자유롭게 퇴근 후에 모임을 가질 수 있을지, 코로나 이후를 담담하게 기다려봅니다.
한국 여행을 다녀왔던 동료 Camille의 집에 전시된 여의도 봄꽃축제 포스터
프랑스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좋은 점은 앞서 소개해드렸던 연 8주간의 긴 휴가, 다른 유럽 국가로의 여행이 용이한 지리적 위치, 한국의 살인적 집값에 비해 납득할 만한 집값, 은퇴 후 비교적 안정적인 연금소득 등이 있겠습니다만, 은퇴까지는 아직은 너무 먼 이야기이고, 당장 긴 휴가는 한국을 다녀오거나, 근교 유럽국가들을 방문하며 휴식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독일, 스페인 등의 주변 국가로 자동차로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는 지리적 요건은 이곳 생활의 확실한 장점인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 휴가는 코로나 사정도 있고 해서 조촐하게 벨기에에 계시는 코센 회원이자 학교 선배인 조진연 박사님 댁에 다녀왔는데요. 친인척이 없어 자칫 고립될 수 있는 타지 생활에 가족 같은 안정감을 주기도 하고, 본받을 점이 많은 모범 가정을 꾸리고 계시는 분이라 제가 롤 모델 가정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코센 회원이자 제 학위과정 동기였던 네덜란드 ASML에서 근무중인 박선용 박사도 초대하여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쌓아 두었던 서로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다 보면 시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갑니다. 벨기에에 EU 본부가 있어서 유럽의 수도라 불리는데, 벨기에에서 이렇게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3국의 코센 회원이 모이니 마치 3자 회동을 방불케 했더라는 후문입니다.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코센 회원의 여름 휴가
그리고 제가 프랑스에서 졸업한 학교와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덕분에 학교 동료, 후배, 지도 교수님과도 계속 교류를 이어 나가고 있고, 학교 인맥 외에도 회사 그룹 내의 R&D 센터에서 근무하시는 한국인 박사님 가족을 우연치 않게 알게 되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학교, 회사처럼 가까운 곳에 마음 터놓고 모국어로 희로애락을 나누며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이웃들이 있는 것도 해외에서 생활하는 저에게 큰 행운이구나 싶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좋은 이웃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해외 생활의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한국인 이웃들
타향살이의 단점 중에 하나를 꼽자면, 다른 외국에 계시는 코센 회원분들도 공통으로 느끼실 만한 것이겠지만, 삶의 팔할을 차지하는 음식입니다. 요즘은 어느 나라나 한인 식료품점이 꽤나 잘 들어 서있고, 현지 슈퍼마켓에도 라면, 김치, 김, 된장과 같은 한국의 대표적인 식료품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긴 합니다만 어쨌든 수입 식품인지라 가격이 비쌉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작 저렴한 현지 물가의 혜택은 누리지 못하고, 반 강제적인 엥겔계수의 상승을 볼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한국의 편리한 배달음식은 고사하고, 대신에 닭 튀기는 능력만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토종 입맛은 평생 바뀌지 않을 것 같네요.
해외에서도 바뀌지 않는 한국인의 입맛
프랑스에는 고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당일치기 혹은 주말에 잠깐 짬을 내어 근교 고성에 들러 고즈넉하게 산책을 하기 좋은데요. 가장 최근에는 파리 남동쪽으로 약 40 km에 위치한 Vaux-le-Vicomte 성에 다녀왔습니다. 프랑스의 다른 유명한 성에 비해 크게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어로 “보르비콩트”라 불리는 이 성은 17세기 프랑스 건축을 대표하는 성으로 베르사유 궁전의 바탕이 된 건물이기도 합니다. 1656년 루이 14세 통치시절 재무장관을 맡고 있던 Nicolas Fouquet는 보르비콩트 성을 짓고 축하연 자리에 루이 14세를 초대하였지만 화려한 성의 모습에 왕의 질투를 사게 되었습니다. 1661년 Fouquet는 공금횡령이라는 모함으로 전 재산 몰수 및 투옥되고,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는 비운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훗날 루이 14세는 이 성을 모태로 베르사유 궁전을 짓게 됩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불꽃놀이를 관람할 기회가 되었는데 코센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나중에 프랑스에 들르신다면 베르사이유 궁전과 함께 보르비콩트 성을 비교하며 관람하신다면 매우 흥미로운 관광이 될 것입니다.
Vaux-le-Vicomte 성의 불꽃놀이
코로나 보건 위기로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일주일에 2~3회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소화를 시키기 위해 10~20분정도 집근처를 산책하는데 하늘을 보며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참 매력적입니다. 또한, 코로나 위기를 기회로 가계 식량안보에 이바지하고자 방 한 켠에 토마토, 쪽파, 각종 쌈 채소 등을 길러서 요즘 수확해 먹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재택근무 중 잠시 걷는 산책길과 직접 재배하는 식용 채소들
저에게 힘을 주는 존재를 소개한다는 것을 빠뜨릴 뻔했네요. 제 곁에는 프랑스에 오기전부터 만나 프랑스에 함께 유학을 왔고 이제는 어느덧 10여년의 세월을 함께한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그리고 우리 옆을 항상 지켜주는 고양이 별이가 있습니다. 별이가 최근에 심장이 많이 아파 큰 고비를 넘겼었는데, 부디 건강하게 행복하게 남은 생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귀여움을 담당하는 고양이 별이와 여자친구 동희
마지막으로, 제가 해외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저의 학문적 기초를 잡아 주셨던 경희대학교 정보디스플레이학과 김정호 지도교수님과 프랑스 Ecole polytechnique의 Enric Garcia-Caurel 지도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뿌리가 되어 주시는 우리 어머니 최하은 약사님께 사랑한다고, 삼형제 키우느라 너무 고생하셨다고, 그리고 최근에 많이 아팠던 별이를 살리기 위해 먼곳까지 손수 약을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긴 글 읽어 주신 코센 회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코로나에 뒤숭숭한 시기이지만 어디서든 하시는 연구 건승하시고, 또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라며, 이만 포토에세이를 마치겠습니다.
프랑스로 떠나고싶은 글이네요. 치킨이 정말맛있어보입니다... 오늘 저녁에 배민을 들어갈거같습니다. 좋은 이야기 자주자주 나눠주세요! 화이팅입니다.
다채로운 삶을 보내고 계시네요. 지나고 나면 많은 순간들이 추억으로 쌓이고, 또한 단단해진 본인의 실력을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 타지에서 항상 몸건강히 즐겁게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망원경 개발을 하는 연구원입니다. K-GMT 개발도 주관했었고요. 이렇게 만나게 되니 반갑네요. REOSC도 5년 전에 방문했었고요. Roland 사장님도 잘 계시는지.. 잎으로 긴밀하게 연락하면 좋겠네요. 제 이메일은 ykim@kasi.re.kr입니다. 김영수dream
다채로운 프랑스 생활 이야기 넘 감사합니다.
프랑스 연구실 분위기가 매우 가족적이네요. 그곳에서 민간대사 역할도 잘 수행하고 계신거 같아요.
3개국 회원님 모임 얘기도 재미나고, 음식 사진도 너무나 먹음직 스럽습니다.
식량안보를 위한 미니 텃밭도 넘 인상적입니다. 재미난 이야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