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기간이라 축구공 기하학을 생각해봤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만들어진 정보들을 그 당시 설럴설렁 넘어갔다가, 이번엔 마음먹고 열공해서 정리해보았습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기하학은 상상과 시각을 연결시켜주는 원초적인 분야입니다. 여기서는 축구공을 설명하는 도구로 ‘텐트’를 준비해봤는데, 전달이 매끄러울지 걱정이군요. 다면체 이야기부터 시작합시다. 여러 개의 평면들로 구성된 울퉁불퉁한 입체를 다면체라고 합니다. 이때 표면이 전부 동일한 도형이면 정다면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다면체를 구성하는 요소 평면은 어쩔 수 없이 정다각형이 됩니다. 뒤집거나 돌리거나 대칭을 유지하는 입체가 되려면 정다각형 요소를 사용할 수 밖에 없겠죠. 그래서 ‘동일한 정다각형 여러개로 표면이 구성된 입체’라고 정다면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몇몇 가족이 어울려 캠핑을 왔습니다. 텐트는 기존의 천막형이 아니라, 한 변의 길이가 어른 키만한 큰 플라스틱판들입니다. 플라스틱판들이 접히진 않지만, SUV 차량 지붕에 싣고 오니 얇아서 부피는 크지 않았습니다. 햇빛이 적당하게 투과되는 반투명 플라스틱 재질은 외관도 아름답고, 방수도 완벽해서 비를 맞아도 축 늘어지지 않는 최신특허품입니다. 이제 막 캠핑장에 도착했으니 텐트를 쳐야죠. 우선 정삼각형 프라스틱 판들을 꺼냈습니다. 정삼각형 6개를 부채꼴로 둥글게 펼쳐두니 정육각형이 되었읍니다. 폴대는 한가운데, 6개의 삼각형이 서로 만나는 꼭지점에 세웁니다. 이제 삼각형 바깥쪽은 땅에 놔두고 폴대가 위치한 중심부분만 들어올린 후, 모서리 이음새를 테이프로 붙이면, 아주 색깔이 화사하고도 모던한 텐트가 될 순간입니다. 그런데 6개의 정삼각형 각도의 합이 360도, 이미 완벽한 평면을 이룬지라, 가운데만 들어올려보니까 삼각형 지붕들이 서로 약간씩 겹치네요. 가장자리를 약간씩 휘어접어서 테이프를 붙이려니 판이 너무 두껍고… 이걸 어쩌죠? 그때 머리 좋은 우리 집 아빠가 한 장의 플라스틱을 뺍니다. 그리고 둘러 선 다섯명이 한장씩 붙잡고 기울여 들어올리고 서로 만난 측변마다 테이프로 붙였더니, 드디어 밑 바닥은 정5각형을 이루고 가운데 위는 뾰족한 형태의 멋진 5각 지붕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벽을 만들어야 하는 이 복잡한 공사는 잠시 미루고, 좀 더 크기가 작은 아이들 텐트부터 만들어줍시다.
정삼각형 두 개로는 텐트지붕을 만들 수 없습니다. 두 장의 정삼각형 두 모서리를 다 연결하여 붙이면 두 개의 삼각형이 그냥 포개져버리고, 한쪽 모서리만 연결하면 끝변이 열려 팔락거리니까, 탄탄한 지붕을 만들려면 최소한 정삼각형 플라스틱 3 개가 필요합니다. 한 점에서 만나게 3개의 정삼각형을 바닥에 두고 가운데만 들어올려 폴대를 세우면, 가운데가 뾰족하고 밑변은 정삼각형을 이루는 지붕이 됩니다. 정삼각형 플라스틱 한 장을 바닥에 깔면, 이 텐트가 정4면체입니다(그림 1). 이제는 정삼각형 4장을 세워서 지붕을 만들어 볼까요? 그러면 바닥은 정사각형이 됩니다. 똑같은 지붕을 하나 더 만들어, 하나는 지붕으로 들어올리고 다른 하나는 거꾸로 돌려서 대칭에서 붙이면 정8면체가 됩니다 (그림2). 여기까지 정리해보면 정삼각형으로 정다면체를 구성하려면 사용가능한 플라스틱판 갯수는 3, 4, 5의 세가지로만 제한됩니다. 6장 이상이면 각도의 합이 360도가 넘어서 안되고, 2장이면 밑변이 연결된 폐곡선을 만들수 없으니까요.
그러면 정삼각형 말고, 다른 도형으로도 정다면체를 만들 수 있을까요? 한 꼭지점은 다 만나야 하고, 반대편 모서리들은 서로 연결된 폐곡선을 이루어야 한다는 조건은 동일합니다. 그래서 정사각형을 이용하면, 2개로는 여전히 안되고, 정사각형 4개가 만나면 벌써 360도가 되어 또 안되겠죠? 정사각형 3개만 지붕으로 만들 수 있고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가장 흔한 정6면체입니다 (그림 3). 정5각형은 어떨까요? 한 모서리 각도가 108도, 세 각의 합이 360 도보다 작아서 정오각형 3개로는 가능합니다. 이렇게 정오각형 3개로 지붕을 만든 ‘텐트’가 정 12면체입니다 (그림 4). 오각형으로 이루어져 상당히 복잡해보이지만, 동일한 지붕4개를 만들어 돌려붙이면 됩니다. 그런데 6각형 이상이 되면 3개만 모여도 360도가 넘어버려 정다면체 구성요소가 될 수 없습니다. 즉, 정다면체를 구성할 수 있는 평면은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오각형의 3가지만으로 제한됩니다. 그리고 3가지 평면으로 만들 수 있는 정다면체는 위에서 언급된 4, 6, 8, 12 면체 그리고 뒤에 나올 정20면체, 총 5 종류밖에 없다는군요. 이런 사실을 고대 그리스인들은 벌써 알았다니, 뒤로 나자빠질만한 놀라운 사실입니다.
자! 이제 다왔습니다. 아까 정삼각형 5개로 만든 지붕 있는 곳으로 다시 가서, 5각 지붕을 높이 들어올립니다. 5각형 바닥이 키만큼 위로 올라오게 말입니다. 이제 바닥의 5개 변에 똑같은 정삼각형 플라스틱을 하나씩 붙입니다. 그러면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의 진영처럼 5각의 천막지붕이 있고 처마 밑에 삼각형 5개가, 중국집 문앞에 늘어진 발 (그림 5의 빨간색 부분)처럼 빙 둘러 달린 꼴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동일한 5각 지붕을 하나 더 만들어 거꾸로 돌린 다음 54도 돌려서 끼우면 정 20면체가 만들어집니다 (그림 5). 이 입방체는 정삼각형 5개로 이루어진 지붕, 정삼각형 5개로 수직으로 늘어진 이빨 빠진 벽, 그리고 동일한 모양을 뒤집어서 이빨 빠진 벽을 살짝 돌려 채운 한쌍으로 만들어집니다. 총 꼭지점 수는 지붕에 하나, 바닥에 하나, 벽의 윗쪽(오각지붕 처마)에 5개, 아래에 5개로 총 12개가 되고, 사용된 정삼각형 플라스틱판 숫자는 20개 (지붕 5개, 벽 5+5개, 뾰쪽한 바닥 5개) 입니다. 재미있게도 모든 꼭지점에서 5개의 정삼각형이 동일한 각도로 만나기 때문에 다 만들고나면 어디가 지붕이고 어디가 바닥인지, 구별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이제 식사준비를 하면서 배낭을 열고 무를 꺼낸 후, 동일 형태로 깎아봅니다. 아주 어렵게 완성된 후, 각 꼭지점들을 공평하게 쳐내면, 5개의 정삼각형이 만나는 12개의 꼭지점은 모두 정오각형으로 변합니다. 반면, 3개의 꼭지점이 잘려나간 20개의 정삼각형들은 정육각형으로 변합니다. 이 형태로 오각형은 까만 색, 육각형은 하얀 색 가죽조각으로 바느질해서 바람을 불어넣기 직전의 축구공인, 약간 울퉁불퉁한 “깎인 정20면체”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림6). 이제 바늘을 꼽아 펌프질로 바람을 넣고나면, “밥 준비될 때까지 축구하고 놀아요!” 하고 애들에게 던져줄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따라오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어떻게 좀 공부가 되셨는지요? 설명이 복잡해보이면, 머리속에 그림을 그리면서 몇 번 반복해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세계 최강 전차군단을 태극전사들이 뒤집어버렸으니, 정말 짜릿했습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이 기대되는군요. 그나저나 반전이 거듭되고 있는 이번 월드컵에서, 결국 어느 나라가 우승컵을 들어올릴 지 궁금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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