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있는 엔지니어 새뮤얼 C. 플러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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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문턱에서 코센 서평코너의 선두주자로 지명되어 정말 가문의 영광입니다. 저는 현재 외국생활 20년째를 넘기고 있는 유목민 엔지니어이며, 대략 미국에 10년 그리고 프랑스에 10년째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국내외적으로 한인 과학기술자들과 소통하고 싶어 코센에 ‘르네상스 공돌이’라는 칼럼도 몇 년째 연재 중 입니다.
어린시절로 잠시 돌아가보면, 중학교 때는 노느라 정신 없었고, 고교 때는 학교생활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공부를 딱히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따랐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세계명작 등의 고전을 읽기보다는 제목과 작가를 외우는 것으로 독서를 대신했습니다. 명작이나 고전은 왜 그리도 할 말들이 많은지 책이 너무 두껍더군요. 대학 때 ‘까르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려고 여러 번 시도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여학생들 앞에서 잘난 척 하기 위한 의도가 가장 컸지만, 순수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용만 긴 것이 아니고 등장인물들의 러시아어 이름도 너무 길어 중간에 이르니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더군요. 잘난 척도 참을성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나이들어서는 젊을 때 못다한 독서를 벌충이라도 하려는 듯 제법 많이 읽었습니다만, 감수성이 무뎌진 탓인지 ‘인생의 책’이라고 소개할만한 책은 금방 떠오르지 않는군요. 한동안 과학기술 역사책과 미술관련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논문공장이 된 요즘 과학기술분야가 너무 문학-역사-철학-예술과 분리된 것 같아 접목을 생각해보려고 했었죠. 조만간 여기에 대한 책을 써보려고 합니다. 책 제목은 “가짜 융합은 가라! “ 정도가 어떨까요?
오늘 소개하려는 책은, 최근에 제가 열심히 읽은 “교양 있는 엔지니어”(생각의 나무) 라는 책 입니다. 토목공학사와 영문학 석사를 한 미국인 엔지니어가 비교적 오래전(1987)에 쓴 책을 최근(2007)에 국내에서 번역된 것으로 읽었습니다. 이런 책이 국사학 전공자에 의해 번역된 것이 아쉬웠고 (저도 번역서를 출판해봤지만, 번역 품질은 좋습니다.) , 내용이 무거우면서도 구체성이 결여되어 반추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대학 연구원이다보니, 제가 미국 엔지니어 사회를 충분히 몰라서 저자 의견을 추상적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엔지니어와 윤리, 인문학과의 결합 가능성, 새로운 커리큘럼에 관한 토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엔지니어 교육이 5년과정이면 전공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인문학을 좀 더 가르칠 수 있어 좋겠지만, 미국 대학 사정상 불가하다고 아쉬움을 표합니다. 학사-석사를 연계하여 6년짜리 커리큘럼을 짜면 이런 문제가 없어질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아픈 부분은 “엔지니어는 영혼이 없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사실 질문 이라기 보다 엔지니어는 영혼이 없는 존재다라는 단정을 약간 누그러뜨리느라 질문형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저자는 엔지니어 편인데도 이런 비판을 에둘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저 연봉만 많으면 되고, 승진 빨리 하면 좋고, 테뉴어만 받으면 최고이고, 프로젝트만 따오면 행복한 기계적인 인간들이 되고 있지 않은지요?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저는 이공계 관련 발표만 들으면 짜증이 납니다. 속으로 혼자 생각하죠. ‘저렇게 지루하게 발표하는 것도 참 재주다…’ 우리가 알아서 기는 머슴노릇에 너무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요? 이 책을 읽으며, 엔지니어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싶은 욕망을 실현하며 “르네상스 공돌이” 시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좌우간 모든 이공계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저는 아는 사람도 많이 없어, 충남대 김형신 교수께 다음 바통을 넘기려고 합니다. 김교수님도 저처럼 흔쾌히 받아 주시길 바랍니다.
먼저 저도 전창훈 박사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엔지니어이기 전에 문학-역사-철학-예술등 여러 학문이 어느정도 융합된, 상식이 통하는 바른 엔지니어가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꼭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전 박사님, 처음 뵙습니다.
좋은 책 소개감사드리며, 엔지니어가 인문학을 알아야 하는데 동감합니다.
그런데 왜 인문계 출신자들이 이공계학문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문제아니 Issue가 되지 않는 거죠?
미학을 전공한 어느 교수가 글을 올렸는데 인문학은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보게하는데 해답은 주지 못한다고요.
이공학이 그 답을 준다고요... 저는 공감하며 제가 이공계임을 자랑스러워합니다. (화학공학과 석사)
저는 저 자신을 "비즈니스 디자이너" 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비즈니스 커뮤니티를 만들고 운영 중입니다.
커뮤니티 모임 안에서 얻어진 다양한 정보와 인맥을 가지고 Good Biz응 디자인합니다.
그 중에 특히 인문학과 예술을 전공한 여성분들을 주축으로 이공계 전공자가 모인 브릿지 비즈니스 커뮤니티를
매월 갖고 있는데 진정한 융합이 일어나는 것을 매번 경험합니다.
이공인이 인문인이 잇는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인문인이 이공인이 있는 곳으로 오는 것이 아닌
"이공인과 인문인이 서로 만나 자유롭게 얘기하고 토론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공간이 있으면
융합은 일어 날 것 입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 만나 뵙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필자 전창훈입니다. 인문학 하는 사람들이 우리쪽으로 오면 좋죠. 그런데 배고플 때만 가능한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이미 절대빈곤을 벋고 나면, 사실 이공계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는 분야죠. 물론 더 높이 올라간 철학에서는 이공계나 인문학의 구별이 의미가 없어지겠지만, 소통능력의 차이때문에 인문학자들이 우리를 재미없는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간보다 자연과 소통하려고 애쓰다보니, 언어보다는 수식으로 소통하니까요. 좌우간 누가 먼저 오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서로 만나는 접점을 가진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우리 학문의 가장 중요한 대상과 고객은 우리 자신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겠습니다.
이 책을 꽤 오래전에 선물받아서 읽어보았는데 참 안타깝게도 한국의 영문번역서가 가지는 단점을 골고루 가졌더군요.
내용을 영어로 그대로 번역하니 철학적인 고민이 느껴지더군요.
그러나 한국말로는 글쎄요.
우리말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재미교포가 번역한건가 싶을 정도로 우리말 느낌을 살리지 못하더군요.
참 안타까웠습니다.
군데군데 줄긋고 그 느낌을 살려 각주를 달다가 왜 한국의 번역서 수준은 이러한가하며 궁금증에 빠지게 되더군요.
만약에 이 책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번역한다면 최소한 이 분야의 이 나잇대의 이 저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절학을 고민한 사람이어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번역서가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원문을 충실히 독해하는데 그친다는 겁니다.
가장 많은 영문번역, 그 가운데서도 원문이 미국책인 이 책조차도 그러한데
다른 나라 말일랑은 할 것도 없겠지요. 그럴 경우 아주 딴 얘기 딴 느낌이 되기 일쑤이지요.
원저자의 고민과 철학적이지 못한 공학도가 인간과 대자연을 얼마나 무례하게 대하는지 그러지 않으려면 도시를 바꾸고 세상을 기계로 도배하는 공학도들에게 철학과 인간미를 심어줘야지 비인간적 비자연적 개발의 굴레에서 벗어난 새로운 틀을 짤 수 있지 않는가하는...
개발위주, 변화와 갈아엎기 위주의 사고만 하고 그런 일만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일이란 식의 이과생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자성하는 내용이더라는 걸 하마터면 못알아들을 뻔 했었거든요.
우리나라 번역서들 대다수가 원문읽고 싶어지게 만들어서 외국서적의 원문을 읽게하고
실제로 원서구입을 유도한다는 점 하나만큼은 자부하게 만드는 힘이 있더이다.
올려주신 덧글들을 보니 번역이 좋진 않나봅니다. 읽어야되나 말아야되나 고민이 생기네요.ㅎㅎ... 전박사님 같은 분이 재번역해주시면 안될까요? ^^
읽어보고싶네요..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