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란 무엇인가 (슬라보예 지젝 지음) 슬라보예 지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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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부담스러운 소개를 받은 허준영입니다. 한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건축 실무를 하다가 UCL, Edinburgh Univ.에서 건축 디자인, VE, 건축이론을 전공하고 주로 런던을 중심으로 Design 실무를 하고 있습니다. 앞서 바통을 던져 주신 분의 소개와 다르게 독서 취향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이나 가끔 어떤 분야에 꽂히면 몰아서 집중해서 읽는 편입니다. 가능하면 업무와 관련된 분야의 책은 피하는 편이고 시간을 쪼개서 읽기보다는 주로 커피 한잔 옆에 두고 집 소파나 정원벤치에 앉아서 느긋하게 읽기를 즐깁니다.
제가 소개 드리고 싶은 책은 야수같은 그의 외모에 걸맞는 거친 매력을 가진 다소 엉뚱하면서도 직설적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의 최근 저서인, ‘폭력이란 무엇인가(Violence-six sideway reflections)’라는 책입니다. 2000년 초, 에딘버러 대학 재학 당시 국제적으로 부상하던 좌파성향의 젊은 철학자인 지젝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화두를 직접적인 수치나 끼워 맞추기식 분석없이 메모지 한장 달랑 들고 명쾌하고 간단한 비유로 2시간 가까이 명강의를 진행하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공룡처럼 비대해졌지만 실질적으로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자국의 이익에만 눈이 먼 위선적인 강대국들의 주도권 다툼을 위한 또 다른 정치의 장이 되어 버린 국제기구들의 협약과 조약들에 대해 비판하며, 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로 현존하는 정치체제에 대해서 포크레인으로 머리를 푹 파내어가는 듯이 통념을 거슬러 거칠게 청중을 몰아세우다가도 그때그때 떠오르는 명쾌한 비유로 본질에 대한 통찰을 주는 기이한 지적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자본주의 본질에 대한 직접적인 논란에 앞서 ‘50마리가 보통 한무리를 이루는 아프리카의 코끼리 때와 미국 서부의 중산층 가정이 한 해에 소비하는 물의 양이 같다는 것이 옳은 것이냐?’ 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강의를 마치면서는 명강의에 비해 약소한 강연료에 미안해하는 사회대 학장에 오히려 ‘새에게 주는 한 줌의 좁쌀이나 코끼리에게 주는 볏단처럼 성의에 대한 가치는 받이들이는 주체에 따라 달라지니, 그 질과 양으로 가치를 평가할 수 없으며, 타인에게 주는 고통도 그와 같다’ 라며 청중들에게 답을 요구하던 엉뚱한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저자의 최근 저서인 ‘Violence- six sideways refections’ 의 내용도 10여 년 전, 그가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에 기본적으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다만, 당시의 다소 거칠었던 강연 내용에 비해 좀 더 분석적으로 폭력이란 한 주제에 논점을 맞추어 저술되어 있어 Zizek의 여러 저서들의 외전으로 여겨집니다.
저자는 폭력을 객관적, 주관적 폭력으로 크게 구분하고, 눈에 보이는 물리적, 직접적 폭력에 대한 논점을 뒤로하고, 우리 사회 안에 은폐, 내재되어 있는 구조적(systemic), 모순적인 체제의 폭력성을 직설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폭력보다 공권력에 따른 정당성, 익명성, 그리고, 피해의 대상이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제도나 체제에 의한 객관적이고 내재적인 구조적 폭력의 위험성에 날 선 비판을 가합니다. 사실, 지젝의 논점을 빌지 않더라도 좁게는 우리가 속한 한국이란 울타리 안에서 제도나 관습에 저항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생애 전반에 걸쳐, 객관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직접적으로 이를 제지하거나 거부할 힘이 없는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이를 방치하거나, 혹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 및 정치 체제로부터 늘 약자의 위치에서 인내하고 적응해 갈 뿐입니다.
칸트가 ‘순수이성’으로, 프로이트나 칼 융이 무의식 세계의 ‘리비도’로 제도나 정치체제를 벗어나 인간의 이성과 욕망을 주관적인 관점에서 결정화한 것에 비하여, 저자는 유물론적 좌파 철학자답게 현 세계를 지배하는 체제나 제도에 주목합니다. 제도가 주는 자유를 니코틴이 빠진 담배, 카페인 없는 커피같은 모순되고 결핍된 ‘노예적 향락’으로 규정하고 이 결핍이 주는 내재된 폭력을 벗어날 체제나 제도 밖의 해결점을 찾기위해 자본주의의 근원적인 모순을 정조준하여 직접적으로 비난하기를 제안합니다.
종교나 인종주의로 무장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모인 테러집단인 알카에다와 같은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초 주관적 폭력이 혐오감으로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과는 달리, 이 객관적 폭력의 끔찍함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민주주의의 체제 상에서 지극히 정당하고 정상적이라는데 있다고 지젝은 말합니다. 현재 국제 사회에 현존하는 악의 없는 사회제도나 체제가 순수하게 객관적이고 체계적이며 익명성을 따르는 자본주의 민주주의의 체제 상에서 정당화된 이 ‘혐오할 수 없는 끔직함’을 지젝은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던 아이힌만에 빗대어 기술합니다. 이 내재된 폭력의 섬뜩함은, 당시 독일의 사회·정치적 구조 속에서 저항 없이 부당한 명령을 수행한 아이힌만이 실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많은 보통 사람들 중에 한명이었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소 논리의 비약은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과소비, 과다 생산과 초과된 노동생산력의 고리가 멈출 때마다 피할 수 없이 발생하는 정리해고에 따른 대량실업등도 객관적 폭력의 한 형태라고 설명합니다 이에대해 사회적 약자(대부분의 서민)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곤;
a) 카페인 없는 커피를 마시거나 - 제한적 자유에 복종하거나,
b) 그마저도 거부하고 잔을 엎거나 - 스스로 약자임을 자인하고 자기파괴적인 폭력에 의존하거나,
둘 중에 하나이고, 이에 대해 지젝은 우리가 따르는 ‘think freely, but obey’라는 기만적인 사회 질서에 정면으로 의문을 표합니다.
그 해결책으로;
a) 어떤 사상이나 제도, 혹은 종교로 규정되지 않는 인간의 근본가치에 기준을 두는 새로운 도덕과 윤리의 재창조
b) 공권력이란 폭력으로 지배받지 않는 공공성의 재확립
c) 소비와 향락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사유의 결핍을 개인의 주체적인 가치로 재정립
등을 기반으로 생태. 환경 및 빈곤문제 등 현재 세계자본주의 체제상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빠른시일 안에 해결하지 못하면 모두가 공멸할 수 있다는 자각과 함께, 가시적인 형태로 보이는 폭력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이 폭력을 초래하는지 그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분석하고 연구하기를 저자는 아주 강하게 주장합니다. 그리고 제도나 체제의 모순된 폭력에 ‘doing nothing is the most violent thing to do‘ 란 다소 자극적인 문구로 구조적인 폭력에 피해자나 가해자 위치에서 벗어나기를 독자에게 주문하면서 글을 마무리 합니다.
주제가 다소 무겁게 느껴져서 거부감이 드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200 페이지가 채 안되는 수필집 수준의 양과 지젝다운 마치 농담과도 같은 에피소드, 최근 몇년간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진 여러가지 사회, 정치적인 꼭지들을 책 중간 중간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서 서술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게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책이라 믿으며 추천해 드립니다. 와이프의 객관적, 구조적 폭력에 의한 선택적 자유를 잠시 벗어나 담배 한 개피를 피우면서 이만 짧은 책 소개를 마칩니다.
홍자성의 채근담과 쇼펜하워의 인생론 그리고, Author Miller의 어느세일즈맨의 죽음과 구로사와 형님의 영화 ‘아끼루’ + 괴테가 쓴 파우스트를 소개합니다…네권의 책과 하나의 영화가 묘하게 얽혀서 각각의 이야기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기회를 줍니다.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응용생명과학부, 교수님으로 계시는 윤병욱 박사님을 소개합니다. 과학자로 연구에 늘 매진하시면서도 후학들과 동료, 선후배님들에게 언제나 따뜻한 인품과 위트로 만나면 즐겁고 헤어지면 늘 다시 뵙기를 그리워하게되는 훌륭하신 분입니다.
흠... 지식의 내공이 상당하신 분의 서평이네요. 멋집니다. 마지막 엔딩 문장도 근사하구요. 이 책을 꼭 사서 봐야할것 같은 기분좋은 부담이 상당히 느껴지네요. 좋은책 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