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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우주를 보다 (이달의 주자: 이정모)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하고 있는 이정모입니다. 독일에 살던 시절에는 본(Bonn) 대학의 자연사박물관이 어린 딸의 놀이터였는데 2002년 귀국하고 보니 주변에 자연사박물관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2003년 서대문에 자연사박물관이 생긴 다음에는 계절마다 놀러(!)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 관장을 새로 공모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접하고 과감히 직장을 바꿨습니다. 요즘 아주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저마다 천착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시각이 좁아지기 쉬운데 다행히 저는 어릴 때부터 <과학동아>를 즐겨봤습니다. <네이처>나 <사이언틱아메리칸>과 마찬가지로 사이언스 매거진은 유난히 ‘진화’에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덕분에 학교에서 단 한 번도 진화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지만 진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지식을 키울 수 있었죠. 우리나라에 <과학동아> 같은 잡지가 30년 동안이나 발간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그런데 <과학동아>를 펴내는 동아사이언스의 장경애 미디어본부장이 별다른 인연도 없는 저를 코센릴레이북의 다음 주자로 추천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일기 같은 과학책 한 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 책은 바로 '숲에서 우주를 보다' 입니다.

 저자 헤스컬 교수는 옥스퍼드와 코넬에서 공부한 생태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입니다. 현재는 테네시 주 산악지대에 위치한 미국 시워니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가르치고 있지요. 해스컬 교수는 오래된 숲 가장 높은 단구면의 호박돌 사이에 지름 1미터가 조금 넘는 가상의 원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이 원을 숲 전체를 내다보는 창으로 삼았지요. 이 창은 참나무, 단풍나무, 백합나무 등 여남은 종의 활엽수들이 있고 바닥에는 기름진 흙이 덮여있습니다. 하필 그곳이어야 하는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저 정처 없이 숲을 걷다가 앉기에 적당한 바위가 있어서 이곳을 선택한 것이지요. 그는 간단한 규칙을 세웠습니다. 이곳을 자주 찾아서 한 해 동안의 순환을 소란피우지 않고 지켜본다는 것이지요. 아무것도 죽이지 않고, 어떤 생명도 옮기지 않고, 땅을 파헤치거나 그 위에 엎드리지도 않고 오직 눈과 귀를 이용해서만 관찰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1년에 걸친 관찰 일기입니다.
1월 1일의 일기 제목은 <결혼>입니다. 겨울이니 숲은 음침하고 무기력하게 보이지요. 그의 눈에는 지의류가 보입니다. 지의류는 겨울에도 생리기능을 발휘하며 생기를 뿜어내니까요. 지의류는 온기를 얻기 위해 연료를 태우지 않고 주위 온도에 따라 생명 활동을 조절합니다. 이 모습을 보고 저자는 <장자>의 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세찬 폭포수 아래에서 헤엄치던 남자가 이렇게 얘기하지요. “천명에 따라 이뤄지게 한 것입니다. 나는 소용돌이와 함께 물속에 들어가고 솟는 물과 더불어 물 위에 나오며 물길을 따라가며 전혀 내 힘을 쓰지 않습니다.” 지의류는 장자보다 4억 년 앞서서 원리를 깨달았죠.
지의류 색깔이 다양한 이유는 그 안에 있는 조류, 세균, 균류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색깔은 수 억 년 전 결혼의 결과이지요. 예를 들어 엽록체는 1억 5천만 년 전 조류 안에 둥지를 튼 세균의 후손입니다. 미토콘드리아 역시 한때는 자유롭게 살아가던 박테리아였지요. 결국 우리 몸도 수많은 세균의 결혼의 결과물인 셈입니다.
8월 1일의 제목은 <영원과 코요테>입니다. 영원은 도롱뇽의 일종입니다. 진홍색 벨벳처럼 마른 살갗에는 독성이 있어서 포식자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땅을 느긋하게 돌아다니지요. 덕분에 살갗이 말랐습니다. 걷는 모습을 보면 척추와 팔다리가 휘는 게 꼴사납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생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갓 부화한 새끼는 목에 깃털 달린 아가미가 있습니다. 물속에서 몇 달간 곤충과 갑각류를 먹으며 삽니다. 늦여름이 되면 아가미가 녹고 허파가 생기며 살갗이 질기고 붉어지죠. 그리고 뭍에서 1~3년 삽니다. 애벌레처럼요. 한 번 더 탈바꿈하면 생식기관과 두툼한 꼬리가 생깁니다. 그러면 다시 물로 돌아가 10년 정도 삽니다. 영원처럼 작고 약한 동물이 오래 살 수 있는 이유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활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은 코요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코요테 새끼는 4월 초에 태어납니다. 늦가을이 되면 어미의 굴에서 가까우면 십여 킬로미터 멀면 백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납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인간이 도착하기 전 코요테보다는 늑대가 더 많았습니다. 늑대는 자기보다 큰 동물을 사냥했죠. 아메리카의 최고 포식자였습니다. 인간이 두려움을 가진 것은 당연했습니다. 백인은 인디언에게 늑대 가죽으로 세금을 내게 했고, 세금을 내지 못하면 ‘모진 채찍질’로 처벌했습니다. 늑대는 덫, 독약, 총으로 몰살을 당했습니다.
이에 반해 코요테는 쥐와 토끼 같은 작은 포유류를 먹이로 삼았습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기보다는 이리저리 쏘다니기를 좋아했습니다. 인간이 밀고 들어오면 밀려갔습니다. 인간의 절대적인 적이 아니었고 최상위 포식자가 아니라서 개체수가 많았기 때문에 박멸하기도 어려웠죠.
그런데 늑대가 사라지고 나자 코요테는 늑대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최고 포식자 자리로 올라섰습니다. 그러자 인류의 사냥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작은 숲에서 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훌륭한 생태학 책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과학적 탐구와 문학적 글쓰기가 훌륭히 결합된 모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글은 아름답습니다. 물론 번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을 다시 읽다가 최근에 본 영화 <인터스텔라>가 생각났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그리고 있는 영화입니다. 기후 변화로 인류는 더 이상 지구에서는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NASA의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인류가 살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습니다. 물론 지구인은 모두 구하자는 게 아닙니다. 천 개의 수정란을 가지고 가서 새로운 지구를 개척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그런데 작가와 감독은 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행성을 찾는다고 해서 인류가 그곳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인류는 생태계에서 작은 구석 가운데 하나만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인류를 둘러싼 수많은 빈틈을 다른 생명들이 가득 채우고 있어야만 생태계가 유지되고 인류도 살 수 있는 것이지요. 헤스컬 교수의 그 작은 숲에서 본 것처럼 말입니다.
인류도 당연히 언젠가는 멸종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속도를 늦출 수는 있겠지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브랜드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We should not think of us as individuals but as a species. 우리는 개인으로서의 인류가 아니라 종으로서의 인류를 고민해야 한다.” 생명들은 저마다의 구석을 차지하고 삽니다. 인류도 마찬가지야 하죠. 하지만 인류는 주변의 생물들을 사라지게 하고 있습니다. 과연 인류가 혼자 살 수 있을까요? 우리도 헤스컬 교수처럼 집 가까운 곳에 1 평방미터쯤 되는 ‘자연으로 통하는 창’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제가 바톤을 넘길 사람은 <숲에서 우주를 보다>의 번역자 노승영 선생님입니다. 그는 저와 같은 동네에 삽니다. 우연히 트위터를 통해서 같은 술집에 드나든다는 것을 알았고 금세 술친구가 되었죠. 그리고 요즘은 같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노승영 선생님은 환경운동 단체에서 일했고 IT 관련 특허를 갖고 있으며 요즘에는 가장 바쁜 번역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제가 그를 추천하는 이유는 그의 삶의 자세가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책을 번역할 때는 꼭 작가의 이전 책을 미리 읽고, 번역하는 동안에는 작가와 소통합니다. 그래서인지 영문학과 출신인데 과학적인 안목이 전문가를 뛰어넘습니다. 완전한 이해와 완벽한 이해를 꿈꾸며 치열한 작업을 하지만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넉넉합니다. 그의 책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하희 신윤섭 이연경 홍점규 장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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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와 같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 인류도 지의류와 영원처럼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적응하여 사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추천하신 책의 번역자를 다음 주자로 지목하시다니 황금인맥을 가지고 계십니다. 벌써 그 다음 코센릴레이북이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