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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 강양구 저

 저는 번역가 노승영입니다. 학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인지과학을 전공했으며 컴퓨터 회사에서 번역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2007년에 번역에 입문하여 인문·사회 분야 위주로 지금껏 39권을 번역했으며 요즘은 과학책을 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제가 번역한 책 중에서 과학 분야로 묶을 수 있는 책으로는 크레이그 벤터, 『게놈의 기적』(추수밭, 2009); 제임스 B. 나르디, 『흙을 살리는 자연의 위대한 생명들』(상상의숲, 2009); 제롬 케이건, 『정서란 무엇인가』(아카넷, 2009); 앨릭스 오미러, 『기적을 좇는 의료 풍경, 임상시험』(책보세, 2010); 멜러니 선스트럼, 『통증 연대기』(에이도스, 2011); 로버트 P. 크리스, 『측정의 역사』; 마크 챈기지, 『자연모방』(에이도스, 2013); 마틴 브레이저,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반니, 2014); 조너선 갓셜, 『스토리텔링 애니멀』(민음사, 2014);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숲에서 우주를 보다』(에이도스, 2014); 에밀리 오스터, 『산부인과 의사에게 속지 않는 25가지 방법』(부키, 2014); 루크 도멜, 『만물의 공식』(반니, 2014) 등이 있습니다.
저는 요즘 과학책을 번역하면서 대중 과학책을 읽는 재미를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과학책을 읽으면서 지식뿐 아니라 깊은 성찰을 얻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는 것은 그동안 종교와 철학의 전유물이었으나 이제는 과학이 그 역할을 넘겨받은 듯합니다. 성찰하는 과학과 과학에 대한 성찰이야말로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책은 강양구 기자의 『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뿌리와이파리)입니다. 과학, 기술, 사회라는 세 바퀴가 조화롭게 돌아가기를 바라면서 과학과 기술의 여러 문제를 살펴본 책으로, 2006년에 출간되어 2013년에 23쇄를 찍었을 만큼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2014년에는 『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 2』가 출간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과학·기술의 이슈를 중심으로 관련서 두어 권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는데, 일단 책을 정해놓고 내용을 발췌하는 것이 아니라 이슈와 연관된 책을 찾아서 소개한다는 점이 이채로웠습니다. 이렇게 쓰려면 과학과 기술에 대한 배경 지식을 평소에 쌓아둬야 할 뿐 아니라 과학책도 분야를 망라하여 방대하게 읽어둬야 할 테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듯합니다. 저는 요즘 《경향신문》에 과학책 서평을 쓰고 있는데, 강양구 기자처럼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스냉장고라는 것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고서 처음 알았습니다. 100여 년 전에 조용하고 간편한 가스냉장고가 쓰이고 있었으나 제너럴일렉트릭을 비롯한 대기업들은 전기 시스템을 확대하여 전기 제품의 수요를 늘리기 위해 가스냉장고를 퇴출시키고 전기냉장고를 보급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기술적으로 우월하고 편리한 제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요인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라는 주제가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습니다. “전기냉장고와 가스냉장고의 한판 싸움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과학기술의 산물들이 꼭 기술적으로 우월하고 편리해서 ‘살아남은’ 것은 아닙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가스냉장고가 희생됐듯이, 우리가 사용하는 과학기술 인공물의 역사 속에는 복잡한 정치·경제·사회적 요인들이 얽히고설켜 있습니다.”(53쪽)
올해에 에볼라가 유행하여 전 세계를 공포에 빠뜨렸는데, 이 책에서는 세계화와 지구온난화 때문에 전염병이 다시 등장하고 있으며 창궐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합니다. 에볼라가 잠복기가 긴 질병으로 변이하면 지구촌 전체를 순식간에 감염시킬 수 있다고 예견하기도 합니다. 전염병이 인간의 활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0세기에 인류는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을 박멸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습니다. 의학의 발전으로 인류는 잠시나마 ‘승리’한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1세기가 시작된 지금 전세는 역전된 듯합니다. 특히 나름대로 균형을 이뤘던 열대우림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많은 세균과 바이러스가 우리 앞에 등장할 징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에볼라는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지요.”(110쪽)
올해에 출간된 2권에서는 전염병이 인류 종말 시나리오 1순위라는 과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변종 바이러스의 연구에 대해서도 우려를 제기합니다. 제약회사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에볼라 바이러스의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을 기피하는 현상도 꼬집습니다. “만약 에볼라 바이러스가 아프리카를 넘어서 미국이나 유럽 같은 부자 나라를 덮친다면 가난한 나라를 괴롭힌 전염병을 홀대한 대가를 혹독히 치르게 되는 셈입니다. 실제로 최근 에볼라 바이러스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돈만 좇는 제약 기업의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죠.”(2권 171쪽)
1권과 2권을 함께 읽으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자가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지 않고 겸허하게 생각의 변화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1권에서는 광우병 위험을 경고하면서 채식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에 반해 2권에서는 채식이 오히려 개인의 건강이나 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잡식 동물로 진화해온 인류가 채식만, 혹은 고기만 고집하는 것이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지구가 이스터 섬처럼 몰락하지 않으려면 겉흙과 같은 지역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으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그에 맞는 식습관을 찾아야 해요. 우리가 육식뿐만 아니라 채식도 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2권 199쪽) 그러면서 자신이 채식에 대해 ‘변심’한 까닭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의 첫째가는 미덕이라고 생각하기에, 저자의 이런 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과학책 번역가를 자처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제게 기본적인 상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이 책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2권의 부제 ‘세상과 대화하는 과학, 그 희망의 길을 찾아서’처럼 이 책이 과학과 세상의 소통에 이바지하길 기대합니다.

 제가 바통을 넘기고 싶은 분은 이 책을 쓴 강양구 기자입니다. 2003년부터 《프레시안》 기자로 일했으며 이른바 황우석 사태에 대한 보도로 ‘앰네스티언론상’, ‘녹색언론인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프레시안》에서 강양구 기자의 기사와 서평을 읽을 때마다 예리한 시각과 차분한 어조에 감탄한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휴직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에 유학 가 있는데 조만간 한국에 돌아와 좋은 기사로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대합니다.

하희 신윤섭 이연경 장경애 이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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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빌게이츠가 소변을 정화시킨 물을 마시는 사진이 포함된 기사가 생각나네요. 시장원리와는 상관없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술 개발이 좀 더 활발히 이루어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