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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사이언스 (이달의 주자: 강양구 기자) 김명진 저

 <프레시안>에서 일하는 강양구입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출판사에서 잠깐 과학·환경 책을 만들다, 2003년부터 12년째 과학·환경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호흡이 짧은 기사로 미처 쓰지 못한 내용을 독자와 소통하고 싶은 욕심에 <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 1, 2>(뿌리와이파리),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사이언스북스) 같은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과학자가 꿈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이 때문이었죠. 그런데 대학을 다니면서 제가 공부하는 과학기술이 사회와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대다수 시민은 물론이고 과학기술을 공부하는 이들조차도 그런 사실에 관심이 없음이 답답했죠. 어렸을 때부터 꿈꿨던 과학자 대신에 과학, 기술, 사회가 서로 상호 작용하는 모습에 주의를 환기하는 일을 하고 있는 데는 바로 이런 사정이 한몫했습니다.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학교 다닐 적에 그다지 공부를 못한 것도 한 이유였던 것 같아요. 과학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넘치는 선배나 친구를 보면서 ‘과학은 이들에게 맡겨 둬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꼭 하고 싶은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과학·환경 담당 기자를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흔히 기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로 ‘진실 보도’를 꼽는 이들이 많습니다.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기자가 해야 할 일로 진실 보도만큼 중요한 일이 바로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중요한 목소리를 널리 알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귀담아 들을 만한 이들의 목소리를 독자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편입니다. 이 중에는 취재 중에 만났던 이들도 있고, 책으로 접하는 저자도 있고, 또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도 있죠.

오늘 소개할 책을 쓴 <할리우드 사이언스>(사이언스북스)의 저자 김명진 선생님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입니다. 사실 단순히 지인이라고 소개하기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 거의 20년 가까이 교류해오고 있으니까요. 대학에 다니면서 과학 기술 사회의 관계를 깊이 고민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선배 가운데 하나죠. 보통 대학 때 여러 고민을 같이 나누며 긴밀히 교류하던 사이라도 각자의 삶에 치이고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기 마련이죠. 그런데 김명진 선생님과는 예전처럼 자주 사적인 교류를 나누진 못하지만, 여전히 같은 고민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김명진 선생님은 예전에 그랬듯이 지금도 저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대학 때처럼 1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같은 책을 읽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지금은 주로 글과 책으로 (그리고 가끔씩 자막까지 직접 입혀서 소개해주는 영화와 다큐멘터리로) 자극을 줍니다. 이 자리에서 소개할 <할리우드 사이언스>는 바로 그런 자극의 일부를 갈무리한 책입니다. 김 선생님이 과학, 기술, 사회의 관계를 이모저모 성찰할 수 있는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책이죠.

물론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그냥 소개만 하는 책은 아닙니다. <할리우드 사이언스>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매개로 현대 과학의 이모저모를 성찰할 수 있는 일종의 ‘과학 비평’을 시도하는 책입니다. 과학 비평,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이 있겠죠? 우리는 시나 소설, 영화 심지어 정치, 경제, 문화를 비평하는 데는 아무런 거부감이 없습니다. 심지어 특별한 자격이 없는 이라도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서 자신의 견해를 내놓는데 거침이 없죠. 그런데 유독 과학 또 기술만은 특별한 자격을 갖춘(예를 들어, 박사 학위) 소수의 전문가만이 발언할 자격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더 괴상망측합니다. 정작 이런 전문가의 발언은 과학기술 정책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니까요. 저는 이런 현실이 바뀌려면 과학기술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견을 갖춘 좀 더 많은 사람이 과학기술에 대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할리우드 사이언스>에서 김명진 선생님은 훌륭한 과학 비평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이 책은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명왕성 파일(The Pluto Files)>을 소개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태양을 도는 아홉 개의 행성으로 꼽히다 하루아침에 그 지위를 박탈당한 명왕성을 둘러싼 논쟁을 다뤘죠. 알다시피, 명왕성의 행성 지위를 놓고서 논쟁을 벌이던 과학자들은 2006년에 투표로 그 가부를 결정했습니다.

파장이 만만치 않았죠. 명왕성이 행성 지위를 잃은데 격분한 일반인들이 과학자에게 “언제부터 과학적 사실을 투표로 해서 정했느냐”고 묻기 시작한 거죠. 평소 ‘과학은 자연을 그대로 반영하는 특별한 지식’이라고 되뇌어 온 과학자들은 이제 그런 주장에 익숙해진 일반인들로부터 똑같은 논리로 “면박을 당하는 굴욕을 경험하게”(70쪽) 되었죠.

 

“과학자들은 과학의 지위를 드높이고 이를 통해 과학에 돌아가는 사회적 자원을 늘리려는 생각에서, 과학에 내재한 불확실성보다는 과학의 위대한 성취가 밝혀낸 불멸의 진리를 강조하는 경향을 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주장 속에는 과학 또한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이며 역사성과 사회성을 갖는 활동이라는 어찌 보면 자명한 인식이 빠져 있고, 그런 주장을 반복적으로 주입 받은 일반인들은 과학의 내부 작동 방식에 대한 잘못된 인상과 (현존하는) 과학이 가질 수 있는 힘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갖게 된다.” (71쪽)


대중이 과학 활동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 그 부메랑은 결국 과학기술자가 맞습니다. 오늘날 과학기술 연구를 뒷받침하는 많은 자원이 시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공 재원에서 나온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 더욱더 그렇죠. 지금 필요한 일은 과학자 자신도 들여다보기 쉽지 않은 과학에 켜켜이 싸인 역사의 흔적을 드러내고, 또 당대의 과학 지식과 과학 활동을 둘러싼 열띤 논쟁을 대중 앞에 활짝 펼쳐 보이는 것이죠. 그리고 김명진 선생님과 <할리우드 사이언스>는 결코 쉽지 않은 이 작업의 한 본보기를 우리 앞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연구 분야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기술의 이모저모를 좀 더 깊고 넓게 보고 싶은 과학기술자, 또 현대 과학기술이 사회와 맺고 있는 관계를 한눈에 조망하고 싶은 독자라면 <할리우드 사이언스>는 꼭 읽어야 할 필독서입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김명진 선생님이 앞서 펴낸 20세기 과학기술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야누스의 과학>(사계절)도 함께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과학기술이 모두 20세기의 유산이라는 걸 염두에 둔다면 그것에 얽힌 수많은 사연에 귀 기울이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 중 하나니까요.

 

 

 짐작하시겠지만, 제가 바통을 넘기고 싶은 분은 바로 <할리우드 사이언스>와 <야누스의 과학>의 저자 김명진 님입니다. 김 선생님은 대학에서 과학기술의 역사를 공부하고 나서, 지금은 여러 대학에서 강연하며 저술과 번역 작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김 선생님의 주요 활동 공간은 대학이 아니라 과학기술 민주화 운동을 주창하며 1997년에 만들어진 시민 단체 시민과학센터입니다. 시민운동가마저도 어떻게든 박사 학위를 따서 대학으로 들어가려고 안달을 내는 상황에서 (부끄럽게도 저 역시 깜냥도 안 되는데도 박사 학위(과학기술학)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작 학계에서 신뢰받는 젊은 학자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죠. 김명진 선생님 같은 독립 연구자가 많을수록 과학기술과 사회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더욱더 풍성해지리라 확신합니다. 다시 한 번 그를 응원하면서 바통을 넘깁니다.

하희 신윤섭 장경애 이정모 노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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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사이언스라는 제목은 헐리우드 액션을 떠오르게 합니다. 운동선수가 헐리우드 액션을 해서 우승을 차지 하는 것처럼 과학자들이 명예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발견을 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하는 행위를 풍자하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맞는지 아닌지는 직접 책을 읽어봐야 알겠습니다. ^^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