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이달의 주자: 김명진) 데이비드 에저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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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애매한 김명진입니다. 공대를 나왔지만 대학원에서는 과학사(좀더 정확하게는 기술사)를 공부하다 말았고, 지금은 여러 곳의 대학에서 과학기술사와 과학기술학 관련 교과목들을 강의하는 비정규직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계기로 접하게 된 책들을 쌓아놓고 언젠가는 몽땅 번역하고 말리라는 야심(?)에 불타는 번역가이자, 강의 준비를 하며 때늦게 알게 된 사실들에 무릎을 치며 그런 내용을 찔끔찔끔 글로 써 책으로 펴내기도 하는 저술가이며, 과학기술 민주화의 문제의식을 추구하는 연구자와 실천가들의 공동체인 시민과학센터의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요즘은 영 감이 멀어 보이는 주제인 ‘냉전 시기 과학’에 빠져서 관련 주제의 책과 논문들을 열심히 긁어모으고 읽고 강의하고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시점에서 거의 고고학적인 관심사에 가까워 보이는 그런 주제에 초점을 맞추게 된 계기는, 바로 그 시기를 이해해야 오늘날 우리가 처한 과학기술의 제반 상황과 문제들을 좀더 잘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제가 해온 작업과 관련해 1990년대 한국의 과학 출판을 이끌었던 번역 집단 ‘과학세대’를 새로운 형태로 되살리는 문제를 놓고 고민을 하는 중입니다.
요즘은 예전처럼 영화를 많이 못 보지만, 개인적으로 SF영화를 좋아해서 웬만한 작품들이 나오면 열심히 챙겨보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그런데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고전 SF영화들을 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피라미드처럼 생긴 거대 건축물에서 거주한다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한다거나, 은색 제복 같은 걸 입고 다닌다거나 하는 양식화된 설정이 그것인데요, 이걸 보면 좋은 방향으로든(유토피아) 나쁜 방향으로든(디스토피아) 불과 몇십 년 뒤 미래에는 현재 우리가 사는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게 될 거라는 영화 작가들의 예측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요즘 많이 열리는 ‘해방 XX년 사진전’ 같은 걸 보노라면, 가령 1980년대 서울 거리가 좀 촌스러워 보이긴 해도 많은 측면에서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지금으로부터 불과 20-30년 뒤에 우리가 지금과는 크게 다른 모습으로 살게 될 거라는 미래 예측에 자연스럽게 회의가 듭니다. 지금까지 봐왔던 SF영화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이 가는 미래를 그려냈던 작품은 국내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2006년작 <칠드런 오브 맨>이었는데요(이 영화의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만든 다음 작품이 재작년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던 <그래비티>입니다), 이 작품에서 그려내는 2027년 영국 사회의 외양은 인종적 편견이 극단화됐다는 점만 빼면 현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설이 좀 길었는데요, 이 얘기는 제가 추천드리려는 데이비드 에저턴의 책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정동욱·박민아 옮김, 휴먼사이언스, 2015)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The Shock of the Old, 즉 ‘오래된 것들의 충격’입니다. 영국의 저명한 기술사가인 저자는 기술의 역사, 그리고 기술과 사회의 관계에서 오직 ‘새로운 것’만을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세간의 경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생각을 해보죠. ‘기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머릿속에 뭘 떠올릴까요? 가령 많은 사람들에게 아이폰, 국제우주정거장, 핵발전소는 기술이지만, 인력거, 수차, 옥수수 품종은 기술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20세기의 대표적인 군사기술이라고 하면 핵폭탄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같은 걸 연상하지, 대포나 소총 같은 걸 떠올리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전자의 시대에 후자 같은 걸 가지고 전쟁을 하겠다는 군대를 시대착오적 집단으로 치부하기까지 합니다.) 이걸 보면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철저하게 ‘첨단기술’에 치우쳐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전기, 철강, 선박 같은 오래된 분야는 너무 공기에 가깝게 익숙해져서인지 요즘은 별로 기술 같이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기술을 바라보는 이러한 시각은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를 엄청나게 왜곡하고 있습니다. 미래학자들은 우리가 ‘무게 없는’ 정보화사회, 네트워크사회에 접어들었다고 오래 전부터 떠들어 왔지만, 정작 그처럼 긴밀하게 연결되고 세계화된 네트워크사회를 떠받치는 것은 해상운송을 통한 물동량의 비약적인 증가(표준화된 컨테이너라는 어처구니없이 간단한 ‘혁신’과 결합한)와 대량의 값싼 비정규직노동에 의존하는 택배 서비스입니다. 군사 전략가들은 핵폭탄이 20세기 중반 이후 전쟁의 양상을 완전히 바꿔 놨다고 얘기해 왔지만, 핵폭탄은 (다행히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이후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었고, 20세기 대부분의 전쟁들에서 가장 많은 인명을 살상한 것은 고전적인 대포와 값싸게 대량생산된 소총이었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는 우리가 가진 ‘상식’에 반하는 이러한 사례들로 가득합니다. 요컨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에서 ‘오래된 기술’들에 의해 떠받쳐져 있음에도 우리의 시선은 온통 새로운 기술, 미래의 기술에만 맞춰져 있고, 이는 기술정책의 영역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가령 여전히 ‘첨단’에 속하는 핵발전에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쏟아 부으면서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기술(가령 태양광이나 풍력)에 대한 투자에는 극히 인색한 현재의 모습이 한 가지 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는 기술의 과거를 주로 다루고 있지만, 이를 통해 기술의 미래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보기 드문 책입니다. 몇 가지 선별된 첨단기술 분야들(IT, BT, NT 등등)에 대한 집중적이고 획기적인 투자만이 바로 ‘우리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반드시 읽어보실 것을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다음 주자로 찜하고 싶은 분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한재각 박사님입니다. 저와는 대학원에서 과학사를 공부하던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이고, 시민과학센터 초창기부터 오랫동안 같이 활동을 해온 동료이기도 합니다. 게을러서 줄곧 글줄만 파고 있는 저와는 달리 현실 개입에도 관심이 많아서 대학원 박사과정을 다니면서 실천 지향의 연구소에서 활동을 함께 했던, 여러 모로 존경스러운 친구입니다. 멋진 책을 소개해 줄 것으로 믿고 바통을 넘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