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회라니(이달의 주자: 원재광) 데글러스 애덤스 외 1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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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각 박사님의 소개로 이번 달 코센릴레이북 주자가 된 원재광입니다. 어릴 적부터 막연히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가지다가 대기과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졸업 이후 기상청이라는 국가기관에서 지구를 관측하는 인공위성과 관련된 일 등을 10여 년째 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으로서 과학기술 연구 아닌 관련 정책을 입안하고 이행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겠네요.
매일의 기상변화를 관측하고 자료들을 분석하며 법칙을 도출해 예측하는 기상·기후 과학 분야에서 지내다 보니 ‘과학기술은 대상인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하고, 인식하느냐는 문제에서 출발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객관적 파악’의 중요성과 함께 ‘감성적 인식’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죠. 실질적으로 전체 지구를 대상으로 하는 관측 자료 없이도 기후변화를 분석하지만, 전 국토의 일부인 수도권에 대한 기상예보 또는 관측의 미흡으로 무능한 기술집단이라는 뭇매를 종종 맞다 보니 생긴 습관일 수도 있겠습니다.
작년에 아내가 '타인에게 추천할 책 10권을 뽑아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집에 있는 책들을 둘러보고 개인적으로 끄적거려 놓았던 기록들을 살펴보며 10여 권을 골라보았죠. 지금 소개하는 『마지막 기회라니?』도 그중에 포함되었던 책입니다. 80년대 후반 BBC가 멸종위기에 처한 여러 동물들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였고, 여기에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작가인 더글러스 애덤스와 동물학자 마크 카워다인이 출연하였습니다. 소개해 드리는 책은 그들에 의해 쓰인 기록입니다. 2002년에 『마지막 기회』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판되었을 때 인상 깊게 읽었고, 리처드 도킨스의 서문이 추가된 재발간 판본 『Last Chance to See』를 구해 2009년에 다시 인상 깊게 읽어봤습니다. 그리고 2010년 다시 번역·출판되었으며, 코센릴레이북 서평을 계기로 세 번째로 인상 깊게 읽었죠. 여기에서 ‘인상 깊게’라는 표현은 ‘박장대소를 하며, 가슴이 찡해지며, 인류라는 종임을 부끄러워하며, 그리고 글로 남길 수 있는 감동에 대해 감탄하며’ 등을 묶어놓은 표현입니다.
저자들은 마다가스카르의 여우원숭이, 북아프리카 흰코뿔소, 뉴질랜드의 카카포, 인도네시아 코모도섬의 왕도마뱀, 양쯔강의 분홍돌고래 바이지, 로드리게스 섬의 큰박쥐 등을 찾아 나섭니다. 이 동물들은 아주 외진 곳에서 극히 소수들만이 살아남았고, 저자들이 2-30년 전 환경에서 그런 지역으로 여행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웠던 듯합니다. 그 여정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어려움 – 먼 거리 여행의 불편함, 낯선 지역민들과의 의사소통 곤란, 극히 소수인 개체들을 찾아야만 하는 노력, 그리고 여러 제3세계 저개발 국가들의 어처구니없는 관료제도 – 들이 내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죠. 인도네시아에서 비행기로 코모도왕도마뱀을 보러 가는 여정에서의 황당한 에피소드가 다음과 같이 소개됩니다.
‘나는 이런 종류의 비행기 여행을 무모할 정도로 즐거워한다. (중략) 일단 비행기에 탄 다음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으므로 난기류에 휩쓸린 고물 비행기에서 우지끈 뚝딱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라도 그저 마음 편히 앉아 미친 듯이 웃는 수밖에 없다. (중략) 마크는 조종실의 기기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유심히 살펴보더니, 한참 만에 그중 절반은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큰소리로, 그리고 조금 신경질적으로 웃으면서, 아마 그편이 나을 거라고 말했다. 장비가 작동하면 오히려 조종사들의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고 속이나 썩힐 테니 차라리 저대로 버텨주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중략) 마크는 뒤에 앉은 사람들에게 이 항공사의 비행기가 추락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유, 물론이죠. 그들은 대답했다. 하지만 걱정 말아요. 벌써 몇 달째 심각한 사고는 없었으니까.’
책 대부분을 썼을 더글러스 애덤스의 문체는 ‘지독히도 냉소적인 영국식 유머’입니다. 작가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작품들에서도 드러나는 문체는 이 책에서도 재미와 가치를 이끌어 가는 핵심 요소로, 선진국과 저개발국의 차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 작가와 과학자의 차이 등 건조할 수 있을 소재들이 참으로 발칙하고 도발적이며, 또한 순진한 척(?)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로부터 독자의 미소 또는 헛웃음이 나오게 되죠. 세상에 한그루만 남아있는 나무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소개되기도 합니다.
‘그 나무는 완전히 멸종된 줄 알았던 라무스 마니아라는 야생 커피나무의 일종이었다. 1981년 레이몬드 아퀴스라는 모리셔스 출신 교사가 로드리게스 섬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모리셔스에서 멸종됐다고 알려진 열 가지 식물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때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저기요, 선생님. 그 나무 우리 집 뒷마당에 있는데요.” (중략) 로드리게스에서는 모든 나무를 땔감으로 여겼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베어 가지 못하도록 주변에 울타리를 쳤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게 특별한 나무인 모양’이라고 생각했고, 울타리를 넘어가 가지를 잘라내고 잎을 따고 나무껍질을 벗겨갔다. (중략) 첫 번째 울타리가 소용이 없다고 판명되자 이번엔 주변에 가시철망을 둘렀다. 그리고 첫 번째 철망 주변에 두 번째 철망을 두르고, 두 번째 주변에 세 번째 철망을 두르며 울타리가 반 에이커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지구 상에 홀로 남아 널찍한 땅에서 3겹의 철조망 속에 혼자 살아야 하는 나무에 투사되는 고독감으로 인해 가슴 아프면서도 웃음이 나오더군요. 이런 종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던 저자들이 200여 마리 남아있다는 로드리게스 큰 박쥐를 만나러 가는 과정에 모리셔스에서 만난 한 동물보호 운동가는 그런 걸 왜 보러 가냐고 계속 투덜거렸다고 합니다.
“왜 그 녀석들을 못마땅해 하는지 모르겠네요.” (중략) “그건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네, 그래도 수백 마리가 있죠. 야생 상태에 에코 앵무가 몇 마리나 있는지 알아요? 열다섯 마리에요! 희귀하다는 건 그런 걸 말하는 거예요.”
200마리 vs 열다섯 마리~ 어떠한 종을 대상으로 하기엔 지극히 낯설고 비현실적인 숫자여서 웃음이 생겨난다는 게 미안하고 어색합니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이 모호한 웃음 이상의 무엇,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이 아닌가 싶습니다. 끈질기게도 시니컬한 저자의 성찰은 다음처럼 발칙하게 풀어집니다.
‘(중략) 그래도 고릴라의 경우엔 같이 나가서 저녁을 먹으며 수백만 년 밀린 가족사 얘기를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었다. 그들은 물론 방계일 뿐이다. (중략) 우리는 영장류 가문에서도 유인원 집안이다. 성공해서 잘살게 된 만큼 어느 모로 보나 못사는 친척들을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집안.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유인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중략) 우리가 유인원이라고 칭하는 건 고릴라와 두 종류의 침팬지, 그리고 보르네오와 수마트라 섬에 사는 오랑우탄 등이다. (중략) 지금은 진화의 계통도에서 고릴라와 침팬지가 우리와 갈라진 시점이 다른 유인원에 비해 훨씬 최근이라는 학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중략) 그러므로 (유인원이) 고릴라와 오랑우탄을 아우르는 분류라면 우리도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이 같은 냉소와 달리, 마흔 마리가 남아있다고 하던 카카포에 대해 어쩌지 못하는 심정을 묘사하는 글에서는 짠함 표현 못할 미안함을 느꼈지요.
‘(중략) 그러다 마침내 유럽에서 사람들이 건너와 정착하면서 고양이와 개와 담비와 주머니쥐를 데려왔을 때, 키위 새와 타카히, 그리고 밤 앵무새인 카카포까지 뉴질랜드의 날지 못하는 많은 새는 갑자기 죽기 살기로 뒤뚱거리며 달려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중략) 이 녀석은 시대에 뒤떨어진 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의 커다랗고 둥그런 녹갈색 얼굴을 보고 있으면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녀석을 끌어안고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감성은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를 버무린 생뚱맞음에 가깝습니다. 매년 멸종되는 종이 얼마고, 한반도의 몇 배나 되는 열대우림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한쪽 귀로 흘려듣는 인류가 도대체 무엇을 알고 느끼며, 또한 무시하고 지내고 있는지를 유인원의 감성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책 뒷부분에 마크 카워다인의 글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됩니다.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 나는 이것 말고 더 필요한 이유는 없다고 믿는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코뿔소와 앵무새와 카카포와 돌고래를 지키는 데 인생을 거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그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더 가난하고 더 암울하고 더 쓸쓸한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 이상으로 감성의 동물입니다. 저자들은 그 어떤 종의 멸종 또는 그 위기도 ‘불쌍하다’, ‘안타깝다’는 식의 문장을 이끌어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풍부한 냉소 속에서도 글이 주는 울림은 꽤나 묵직하구요. 멸종에 처한 동물들을, 그들이 처한 현황을 있는 그대로 가능한 뻔뻔한 날 것 그대로 냉소적으로 적어 내려가는 것 자체가 코믹 SF 문체 이상의 감성을 전달하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들이 중국을 방문했던 1988년, 약 200마리가 남겨진 것으로 기록되었던 양쯔강의 분홍돌고래 바이지가 결국 2006년에 멸종되었다고 중국정부에 의해 발표되었답니다. 어디 이것 뿐이겠습니까... 상황들이 절대 좋아지지는 않았을 것 같은 지금 이러한 글쟁이들이 또 없을까 하는 갈증이 느껴집니다. 억지 아이러니 하나를 덧붙이자면, 『마지막 기회』가 절판되어 지인들에게 소개할 수 없었을 때 꽤나 좌절을 느꼈습니다. 다행히 이번 기회에 재발견한 『마지막 기회라니?』가 『Last Chance to See』를 우리 글로 볼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라는 게 나름 의미 있다고 느낍니다. 코모도왕도마뱀의 독 보다 지독한(!) 입 냄새, 결코 희지 않은(?) 북아프리카 흰코뿔소, 접대용(?) 바이지의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은 이 책을 한번 잡아보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자로 추천해 드리는 분은 한국천문연구원의 황정아 박사님이십니다. 황 박사님은 근래에 제가 접하게 되는 과학기술자 중에서 가장 폭넓은 범위의 대중 활동을 하시는 분 같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네요. 성실한 연구자, 엄격할 것 같은 어머니, 그리고 추진력 있는 기획자? 등등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코센웹진을 통해 늘 에너지가 넘치는 황 박사님으로부터 좋은 책 한 권 소개받고 싶네요.
"그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더 가난하고 더 암울하고 더 쓸쓸한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 더 공허하게 와닿습니다. 덕분에 좋은 책 한권을 알게되었습니다. 칼 세이건은 이 넓은 우주에 지적생명체가 인간뿐이라면 공간의 낭비가 아닐까란 말이 문득 생각나네요. 지구의 지적 생명체는 허락된 공간을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