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전체 (이달의 주자: 황정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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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의 원재광 서기관님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한국천문연구원의 황정아 입니다. 저는 대학원생 시절에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위성 시리즈의 4번째 위성인 과학기술위성 1호에 실린 우주물리 탑재체를 만들었던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도 인공위성과 관련된 연구들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대중강연에도 간간이 나서고 있는데, 사회자의 저를 소개하는 멘트 중 늘 빠지지 않는 것이 드라마 ‘카이스트’의 실제 롤모델이었다라는 것입니다. 저 자신은 물리학과에서 가장 다이나믹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인공위성을 만드는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했고, 지금도 인공위성과 우주환경을 연구하는 제 분야가 저한테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하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처음 코센릴레이북에 관해 전해 들었을 때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제일 먼저 했습니다. 요즘 들어 갑자기 여러 가지로 일이 몰려서 좀 과부하가 걸리는 상태였는데, 이참에 읽고 싶지만 미루고 있던 책을 좀 제대로 집중해서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제가 추천해 드릴 책은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워낙 유명한 책입니다. 심지어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에도 올랐으니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지요. 저는 이 책을 과학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그래도 뭘 좀 아는 체 하고 싶었던, 치기만 가득했던 과학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접했습니다. 사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 다시 펼쳐보는데 내용도 완전히 새로운 걸 보면, 그 때는 정말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번에 이렇게 저한테 갑자기 숙제가 주어져서 불현듯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보니 이 책의 무게감과 저자의 정신세계가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도 해서 물리학자로서 저의 길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의 원자물리학자로서 그 유명한 불확정성 원리(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또한 양자역학의 창시와 발전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공로로 1932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기도 했지요. 이 책은 저자가 당대의 저명한 동료 물리학자들과의 대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의 청년시절부터 노년 시절까지의 시간의 흐름과 주변 환경 및 시대적 변화에 맞추어서 그 당시의 시대상과 청년-장년-노년을 거치면서 성숙해가는 하이젠베르크의 철학과 인품, 학문적인 고민들이 마치 잘 어우러진 비빔밥 상차림처럼 잘 차려져 있습니다. 저자에 대한 단편적인 교과서적 지식밖에 없던 저로서는 이러한 저자의 사적인 대화 내용들을 따라 가는 것이 여간 흥미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몰래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엿보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입니다. 하물며 이번 대상은 그 이름도 유명한 하이젠베르크, 양자역학의 처음과 그 응용의 결정판인 원자폭탄 기술까지 이어지는 모든 영역에 공로가 있는 바로 그 대단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저자와 다른 원자 물리학계의 석학들의 20편에 이르는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자면, 이 사람의 업적뿐 아니라 성품에 대해서 막 존경심이 생기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책에서만 보아오던 저명한 학자들- 보어, 파울리, 아인슈타인, 막스플랑크, 페르미 등-과 하이젠베르크의 대화 내용을 보면서 참 부럽기도 하고 절로 감탄이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들 학자들이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에 집중할 때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몰입해서 정력적으로 몇 달이라도 모여서 토론을 하고, 계산을 해서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한편, 구체적인 문제의 해결 방안이 나왔을 때는, 그 해결법이 국가에, 그리고 전 인류에 미칠 영향을 통찰하는 데 또다시 문제 해결을 할 때만큼의 많은 시간을 들여서 고민하고 성찰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을 ‘부분과 전체’라고 번역한 번역자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하이젠베르크에 대해서 일반 대중들이 흔히 생각하는 의혹은 그가 제2차 세계대전 전시 상황에서 나치 정권하의 독일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협력했던 사람이라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이 책에서 나오는 막스 플랑크와 하이젠베르크의 대화, 페르미와 하이젠베르크와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해답이 있습니다. 왜 그가 미국으로 도망가지 않고(충분히 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으로 폐허가 될 것이 뻔한 고국에 계속 남기로 결정하는지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생명이 위험해지고 인간의 존엄성이 땅에 떨어지는 전시 상황에서 과학자는 자의던 타의던 결국은 국가에 협력하지 않을 수 없게 되겠지만, 그는 연구자로서 인류를 위해서 어느 방향으로 기술을 발전시켜야 할지 또는 무기화를 늦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를 동료 물리학자들과 끊임없이 토론하면서 판단합니다. 이탈리아인이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미국의 원자물리학계를 선도했던 페르미, 독일인이면서 미국으로 이민 가지 않고 독일에 남아서 전후의 독일의 재건을 위해 힘을 쏟았던 하이젠베르크,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각자가 판단하고 책임져야 할 몫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과학자가 당연히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진지하게 토론하고 논쟁하는 학술적인 분위기는 사실 좀 부럽기도 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과학을 이렇게 열띤 토론을 하면서 오랜 시간을 들여 공들여서 진행하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유럽이라는 공간의 자유로운 분위기, 1920-1930년대라는 원자물리학이 꽃피는 시기였다는 시대적인 배경을 생각하면 차이는 분명해지지만, 우리 나라의 과학자들이 처한 현실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그들의 순수한 기초학문에 대한 열정과 그러한 열정을 허락하는 사회는 참 대단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학문적 문제에만 장기간 집중할 수 있는 정신적 자유가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보어가 했던 많은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충직함이 명석함을 만든다는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천재적’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 일에 엄청난 시간을 들여서 집중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던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이런 유명한 석학들의 ‘인간적이고 철학적이며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한 각자의 견해들과 고민들을 잠시나마 들여다볼 수 있어서 참 즐거웠습니다.
미국 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의 위대함은, 지금까지 알려져 있었던 모든 육지를 떠나, 그 때까지의 지식으로는 되돌아가는 일이 불가능해지는 바로 그 지점에서, 더 멀리 서쪽으로 뱃머리를 돌린 그 결단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에서도 실질적인 신세계는 지금까지 과학이 서 있었던 그 밑바탕을 박차 버리고, 허공에 뛰어들 각오가 되어 있을 때에만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한때는 뉴턴의 역학으로 충분했던 자연 현상이, 맥스웰의 전자기학이 있어야 설명이 되고, 또다시 원자물리학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양자역학이 도입되어야 했던 것처럼, 과학자는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교량의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대학 때 처음 배울 때는 참 어렵게만 느껴졌던 양자역학이, 이렇게 과학자 개인의 생각과 삶을 들여다 보면서 생각하니 왠지 한층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저는 역시 물리학자가 되길 참 잘했다 싶습니다. ^^
제가 추천하고 싶은 분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한선화 원장님입니다. 원장님은 제가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KWSE) 활동을 처음 시작했던 몇 년 전에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몇 번의 만남과 페이스북을 통해 원장님의 열정적인 삶의 모습을 알게 되고, 여성과학자로서 저의 롤모델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활동들로 늘 바쁘시면서도 삶의 여유를 즐기시는 모습,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 참 좋아 보입니다. 평상시 꾸준히 책도 많이 읽으시는 걸로 아는데요. 어떤 책을 소개해 주실지 매우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