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제약회사 (이달의 주자: 서민) 벤 골드에이커 저
-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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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제약회사>의 저자인 벤 골드에이커는 <배드 사이언스>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비과학적인 것들을 비판함에 있어서 골드에이커는 늘 제대로 된 근거를 갖추었고, 또 풍자와 해학을 곁들여 읽는 내내 저를 즐겁게 했습니다. 저 또한 그런 글쓰기를 하고 싶었는지라 배울 점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 책 중 한 챕터가 바로 제약회사 비판이었는데, 거기에 성이 안찼는지 아예 책 한권을 새로 썼습니다. <불량제약회사>는 그러니까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부도덕을 다룬 종합보고서입니다.
그 의미와 재미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읽히지 않았습니다. 다루는 주제가 좀 무거운데다 500쪽에 달하는 분량이 독자들의 선택을 저어하게 만든 탓이겠지요.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골드에이커의 해학과 재치는 이 책에서 더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것들은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이 책이 별로 읽히지 않는 현실은 좀 안타깝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콜레스테롤에 대해 우리는 ‘악의 화신’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왜일까요? 물론 콜레스테롤은 관상동맥을 막아 심근경색을 일으키는 원흉이긴 합니다. 하지만 콜레스테롤이 무조건적인 악은 아니며, 적당한 농도는 유지돼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콜레스테롤을 적대시하는 건, 콜레스테롤 저하제를 팔기 위한 제약회사의 음모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요. 약을 처방하는 것은 의사다, 의사들은 도대체 무얼 하기에 제약회사가 이끄는대로 끌려다니는가? 이 책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한 연구자가 국제학회에 참석하는 의학협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그들 대부분은 제약회사의 후원금 없이는 거기에 참석하러 떠날 수 없었다고 했다. 또 3분의 2는 제약회사 돈을 받는 것에 아무런 윤리적 거리낌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404쪽) 소위 말하는 제약회사의 리베이트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이 리베이트가 종종 문제가 되곤 하지요. 물론 의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울러 그들은 그 돈이 자신의 처방행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고도 확신했다.” (같은 쪽) 이게 사실이라면 제약회사가 지금까지 했던 일들은 다 헛된 일이겠지요. 실상은 정 반대입니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제약회사로부터 뭔가를 받으면 그 노력에 부응하는 답례를 하는 게 인지상정이니까요.
당연히 정부는 돈을 직접 주는 것을 규제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이 책에는 제약회사가 어떻게 리베이트를 제공하는지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나열돼 있습니다. 제가 가장 놀란 것은 제약회사가 의사들을 위해서 논문을 써준다는 사실이지요. 그 논문은 당연히 의사의 이름으로 나가고, 더 당연한 일이겠지만, 논문 내용은 제약회사가 개발한 약에 호의적입니다. 의사로서도 이게 나쁜 일은 아닙니다. 안그래도 논문실적 쌓기가 어려운 판국에 자기 이름으로 된 논문이 유명학술지에 실리는 건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요. 논문대필이긴 하지만 제약회사는 절대적으로 비밀을 지킬 것이기에 걸릴 염려도 없습니다. “세계 어느 곳의 학자도 대필된 학술논문에 이름을 올렸다가 징계를 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381쪽)
이 책을 읽고 나면 약을 먹기가 싫어질지 모릅니다. 우리가 먹는 약이 제약회사의 음모로 인해 부작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식약청의 승인을 얻었고, 먹을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처방을 내린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모든 것에는 음과 양이 같이 있기 마련, 제약회사가 인류사회에 공헌한 것도 꽤 많을 겁니다. 다만 ‘음’에 대한 비판을 지속적으로 해주는 골드에이커 같은 분들이 있기에 제약회사가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사실 골드에이커가 이런 일을 해서 얻는 개인적인 이익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 그분이 지금이라도 제약회사랑 손을 잡는다면 엄청난 돈을 받을 수 있을 테고, 제약회사의 이사 자리에 오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요. 그럼에도 지속적인 비판을 하는 골드에이커를 보면서 이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 것, 그게 바로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보람입니다. 저와 같은 보람을 느껴보시려면 이 책을 고르시길 권합니다.
제 다음으로 추천하는 주자는 정준호 선생님입니다. 런던에서 기생충학을 공부했고, 나이 스물아홉에 국내 학자가 쓴 최초의 ‘제대로 된 기생충학 대중서’인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를 썼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권의 번역서와 저서를 쓰면서 기생충학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기생충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그가 있기에 제가 걷는 길이 외롭지 않습니다. 그간 말하지 못했지만, 이 기회를 통해 말씀드립니다. 정준호 선생님, 고맙습니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사람들이 자꾸 다이어트 보조제를 먹으라고 한다고요. 다이어트의 핵심은 적게 먹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 많이 생각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