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제약회사 (이달의 주자: 서민) 벤 골드에이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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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제약회사>의 저자인 벤 골드에이커는 <배드 사이언스>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비과학적인 것들을 비판함에 있어서 골드에이커는 늘 제대로 된 근거를 갖추었고, 또 풍자와 해학을 곁들여 읽는 내내 저를 즐겁게 했습니다. 저 또한 그런 글쓰기를 하고 싶었는지라 배울 점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 책 중 한 챕터가 바로 제약회사 비판이었는데, 거기에 성이 안찼는지 아예 책 한권을 새로 썼습니다. <불량제약회사>는 그러니까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부도덕을 다룬 종합보고서입니다.
그 의미와 재미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읽히지 않았습니다. 다루는 주제가 좀 무거운데다 500쪽에 달하는 분량이 독자들의 선택을 저어하게 만든 탓이겠지요.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골드에이커의 해학과 재치는 이 책에서 더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것들은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이 책이 별로 읽히지 않는 현실은 좀 안타깝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콜레스테롤에 대해 우리는 ‘악의 화신’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왜일까요? 물론 콜레스테롤은 관상동맥을 막아 심근경색을 일으키는 원흉이긴 합니다. 하지만 콜레스테롤이 무조건적인 악은 아니며, 적당한 농도는 유지돼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콜레스테롤을 적대시하는 건, 콜레스테롤 저하제를 팔기 위한 제약회사의 음모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요. 약을 처방하는 것은 의사다, 의사들은 도대체 무얼 하기에 제약회사가 이끄는대로 끌려다니는가? 이 책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한 연구자가 국제학회에 참석하는 의학협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그들 대부분은 제약회사의 후원금 없이는 거기에 참석하러 떠날 수 없었다고 했다. 또 3분의 2는 제약회사 돈을 받는 것에 아무런 윤리적 거리낌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404쪽) 소위 말하는 제약회사의 리베이트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이 리베이트가 종종 문제가 되곤 하지요. 물론 의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울러 그들은 그 돈이 자신의 처방행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고도 확신했다.” (같은 쪽) 이게 사실이라면 제약회사가 지금까지 했던 일들은 다 헛된 일이겠지요. 실상은 정 반대입니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제약회사로부터 뭔가를 받으면 그 노력에 부응하는 답례를 하는 게 인지상정이니까요.
당연히 정부는 돈을 직접 주는 것을 규제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이 책에는 제약회사가 어떻게 리베이트를 제공하는지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나열돼 있습니다. 제가 가장 놀란 것은 제약회사가 의사들을 위해서 논문을 써준다는 사실이지요. 그 논문은 당연히 의사의 이름으로 나가고, 더 당연한 일이겠지만, 논문 내용은 제약회사가 개발한 약에 호의적입니다. 의사로서도 이게 나쁜 일은 아닙니다. 안그래도 논문실적 쌓기가 어려운 판국에 자기 이름으로 된 논문이 유명학술지에 실리는 건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요. 논문대필이긴 하지만 제약회사는 절대적으로 비밀을 지킬 것이기에 걸릴 염려도 없습니다. “세계 어느 곳의 학자도 대필된 학술논문에 이름을 올렸다가 징계를 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381쪽)
이 책을 읽고 나면 약을 먹기가 싫어질지 모릅니다. 우리가 먹는 약이 제약회사의 음모로 인해 부작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식약청의 승인을 얻었고, 먹을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처방을 내린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모든 것에는 음과 양이 같이 있기 마련, 제약회사가 인류사회에 공헌한 것도 꽤 많을 겁니다. 다만 ‘음’에 대한 비판을 지속적으로 해주는 골드에이커 같은 분들이 있기에 제약회사가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사실 골드에이커가 이런 일을 해서 얻는 개인적인 이익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 그분이 지금이라도 제약회사랑 손을 잡는다면 엄청난 돈을 받을 수 있을 테고, 제약회사의 이사 자리에 오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요. 그럼에도 지속적인 비판을 하는 골드에이커를 보면서 이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 것, 그게 바로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보람입니다. 저와 같은 보람을 느껴보시려면 이 책을 고르시길 권합니다.
제 다음으로 추천하는 주자는 정준호 선생님입니다. 런던에서 기생충학을 공부했고, 나이 스물아홉에 국내 학자가 쓴 최초의 ‘제대로 된 기생충학 대중서’인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를 썼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권의 번역서와 저서를 쓰면서 기생충학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기생충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그가 있기에 제가 걷는 길이 외롭지 않습니다. 그간 말하지 못했지만, 이 기회를 통해 말씀드립니다. 정준호 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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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사람들이 자꾸 다이어트 보조제를 먹으라고 한다고요. 다이어트의 핵심은 적게 먹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 많이 생각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