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체파리의 비법 (이달의 주자:정준호)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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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체체파리의 비법』이라는 책입니다. 이름부터 독특하지요. 장르는 SF입니다. 한국에는 공상과학소설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과거의 SF에 등장했던 ‘공상’들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현실이 되었는지, 또 지금의 과학 이론과 개념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마냥 공상으로 치부할 수도 없는 장르가 ’과학 소설’인 SF입니다. 체체파리의 비법은 그 중에서 특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바로 과학, 그리고 소설이라는 도구를 통해 사회 문제를 얼마나 날카롭게 통찰하고 우리에게 비춰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1970년대 미국에는 나선파리라는 기생형 파리가 있었습니다. 척추동물의 피하에 산란하고, 애벌레는 숙주의 살을 파먹으며 자라나는 파리였지요. 나선파리 감염 때문에 주변에 감염이 일어나 가축들이 죽기도 하고, 체중이 줄거나 가죽에 상처가 나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때문에 나선파리는 목축이 중요한 산업인 미국 남부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었지요. 그 때 등장한 기술이 바로 불임충 방사법(sterile insect technique)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지카 바이러스 유행 때문에 모기 개체수 조절에 쓰기도 하지요.
불임충방사법은 사육장에서 키운 수백만마리의 나선파리(혹은 기타 곤충) 수컷을 방사선에 노출시켜 불임으로 만든 다음 자연상태에 방사하는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일명 씨 없는 수박을 만드는 셈이죠. 나선파리는 일생 동안 한번만 짝짓기를 하고, 이후 저장한 정자를 통해 계속 수정란을 산란하기 때문에, 처음 짝짓기에 불임 수컷과 정상 암컷이 짝짓기를 하게 되면 무정란만을 산란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개체수가 줄어드는 것이지요. 하지만 일단 다량의 곤충을 사육장에서 키워야 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매주 사육장에서 5,000만 마리에 달하는 불임 파리를 생산했고, 결국 1966년 나선파리 박멸에 성공합니다. 이 모델은 나선파리가 유행하는 다른 중남미 지역으로도 수출되었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일생 동안 짝짓기를 한번만 하는 체체파리(수면병의 매개체)도 같은 방법으로 방제하고 있습니다.
『체체파리의 비법』은 이런 배경에서 출발합니다. 만약 똑같은 일이 사람에게도 일어난다면? 남성들이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여성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면? 사교 집단이 등장해 여성들에 대한 인종 청소를 정당화한다면? 그리고 극단적인 폭력으로 한 쪽 성이 사라진 세상은 어떻게 될까? 작가는 SF적 상상력을 통해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 극대화된 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그 뿌리에 정교한 논리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무지가 놓여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더불어 이 34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단편 속에는 숨막히는 반전도 숨어 있지요.
2016년 현재 한국에서 젠더 문제는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낮은 여성 연구자 비율, 연구 주제에서 여성의 문제가 낮게 대변되는 문제, 기존 실험 모델의 남성 편향성들’이 조금씩 언급되기 시작하는 중입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젠더 문제는 사회문화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젠더 문제는 분명 과학기술 분야 속에도 존재합니다. 또 현대 사회에서 사회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과학기술은, 역으로 젠더 문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특정 약품을 통해 직접 성 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다거나, 혹은 체체파리의 비법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특정 성이 ‘멸종’당하는 미래가 등장 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변화하는 세계, 그리고 과학기술계에 30여년 전 쓰여진 SF는 많은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걸까요?
제가 추천하고 싶은 다음 주자는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의 최강신 교수님입니다. 이론물리학을 전공하시고 <빛보다 느린 세상 - 수식없이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쓰시기도 했습니다. 스크랜튼학부는 자유전공 학부로 과학과 사회에 대한 다양한 토론과 글쓰기를 진행하는 곳으로, 다른 과학 기술 분야의 학생들과 연구자분들께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실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바통을 넘겨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