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이야기 (이달의 주자: 정인경) 애니 레너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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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란 어떤 책일까요? 여러분들은 좋은 책을 만나면 어떻게 하십니까? 제가 아는, 어느 편집자는 자기 돈으로 책을 사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진짜 좋은 책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책의 척도는 자기 주머니를 털어가면서 다른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라는 것이죠. 여기서 소개하려는 애니 레너드의 『물건 이야기』가 저에게 그런 책입니다. 한때 『물건 이야기』가 품절되었을 때는 절판될까봐 마음을 졸였고, 중고책이 나오면 무조건 사뒀다가 지인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요.
저는 『물건 이야기』를 참 아프게 읽었습니다. 환경 관련 책 중에서 『물건 이야기』만큼 강렬하고 오래토록 마음에 남은 책은 없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 일상생활에서부터 많은 변화가 일어났죠. 알루미늄 캔 음료를 사서 먹지 않기 시작했고, 더운 물을 아껴 쓰고, 노트북이나 휴대폰을 자주 교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특히 옷이 싸다고 세일기간에 마구 사들이던 습관을 버렸습니다. 예전처럼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 라벨이 붙어 있는 티셔츠를 생각 없이 버릴 수 없게 되었죠. 그 라벨을 보면 저임금과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제 3세계 노동자들이 떠올라서 가슴을 쿡쿡 찔렀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제 책상 위에는 많은 물건들이 있습니다. 책과 노트북, 프린터, 휴지, 연필, 안경, 신문지, 가방 등등. 이런 물건들은 사는 것도 일이지만 버리는 것도 일입니다. 그린피스 출신의 환경 운동가인 애니 레너드가 관심을 둔 것은 쓰레기였습니다. “내가 오늘 버린 쓰레기봉투는 내일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리가 옷과 책, 전자기기를 재활용해서 잘 버리기만 하면 문제가 없는 것일까? 그녀는 자신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하나의 물건이 만들고 버려지는 기나긴 과정을 추적했습니다. 쓰레기장은 물론 공장과 병원, 대사관, 대학, 세계은행 사무실, 정부기관 등을 찾아다니며 ‘물건 이야기’를 재구성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확인한 것은 물건을 둘러싼,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불합리한 문제들이었습니다. 가전제품은 고치는 것보다 사서 쓰는 것이 비용이 덜 들었고, 멀쩡한 물건들이 쓰레기가 되어 그냥 버려졌습니다. 지구 전체가 환경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싼 일회용품으로 쓰레기장이 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생산? 유통? 소비? 폐기? 각 단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원을 ‘취하고-만들고-버리는’ 전체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구 환경과 생태를 고려하지 않고, 상업적 이익만을 취하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말입니다. 애니 레너드는 콩고, 아이티, 방글라데시의 현장을 누비며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얼마나 불평등하고 처참한 상태에 놓여있는지를 알려주며, 깃털이 아니라 몸통, 자본주의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물건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가 괴로울 수밖에 없는 것은 패트병으로 물을 마시고 해외 직구로 물품을 구입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물건 이야기』를 끝마치며 애니 레너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첫째, 진보를 다시 정의하자! 진보는 경제 성장이 아닙니다. 진보의 척도는 건강, 행복, 친절, 평등, 긍정적인 사회관계망, 교육, 깨끗한 에너지, 시민적 참여 등입니다. 둘째, 전쟁을 없애자! 우리 삶과 환경을 파괴하는 것으로 전쟁만큼 한 낭비가 없습니다. 셋째, 물건의 가격에 ‘외부화된 비용’을 반영하자! 싸다고 구입하는 물건에는 노동자들의 스트레스와 질병, 환경파괴, 미래 세대의 피해 등 ‘외부화된 비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건에 제대로 된 가격을 책정해야 과다소비를 막을 수 있습니다. 넷째, 물건보다 시간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며 살자! 맞습니다. 우리는 물건보다 시간이 더 비싼 것이고, 시간보다 사람이 더 비싸다는 것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적은 시간을 일하고, 더 적게 벌고, 더 적게 물건을 사고, 더 적게 버리고, 더 많은 시간을 공동체와 시민 활동과 지구를 돕는 일을 하며 사는 세상, 우리 모두 그런 세상을 꿈꿔봅시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다음 주자는 김동광 박사님입니다. 과학기술사회학을 전공하신 김동광 박사님은 이 땅에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몸소 실천하는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민과학센터에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며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까지 지낸 바 있는, 과학기술학(STS)의 전방위적 연구자입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오해』나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와 같은 좋은 과학책을 수십 권이나 번역한 과학저술가이기도 합니다. 학문과 일상의 정치화에 오래토록 내공을 쌓은 김동광 박사님이 어떤 책을 소개하실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정인경 박사님께서 쓰신 글을 보고 이 책을 구매했습니다. 다행히 아직 품절은 아니여서 다행입니다^^.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