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O 사피엔스의 시대 (이달의 주자: 김동광) 폴 뇌플러 저
- 3736
- 4
- 0
이 책을 쓴 폴 뇌플러는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캠퍼스의 세포생물학 교수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연구하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점을 소상하고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는 <니치(The Niche)>라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활발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생명공학에 대한 비판적 담론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GMO 사피엔스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호모 사피엔스와 유전자조작생물인 GMO를 조합한 말인데, 가까운 미래에 이른바 바람직한 유전 형질을 선택해서 만들어질 가상의 맞춤아기를 뜻하지요. 그런데 딱히 '가상'이라는 말을 붙이기 어려운 것이 뇌플러가 처음에 소개하는 세부모체외수정으로 태어난 아기도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유전자변형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난세포질 이식이라는 기법으로 젊은 여성의 난세포질을 이용해 나이든 여성의 난자를 건강하게 만들어서 수태가능성을 높이려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이든 여성의 난자는 젊은 여성의 난자 세포질이 더해진 일종의 키메라 난자가 되지요. 미국에서만, 2001년 미식약청이 금지하기 전까지 이미 12-36명의 유전자 조작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이미 유전자가 조작된 아기들이 우리 곁에서 자라고 있는 셈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중심 주제인 맞춤아기 이야기는 사실 그리 새롭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크리스퍼-Cas9이라는 강력하고 간편한 유전자 가위가 발견되면서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가능성이 갑작스레 높아졌습니다. 실제로 2015년 중국의 연구자들이 사람의 배아를 편집하는 실험을 했다고 발표하면서 그 과학적 가능성과 윤리적 쟁점을 놓고 학계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요.
그렇다면 유전자 편집을 통해서 완벽한 아기를 제조하려는 갈망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수 있다는 전망이 왜 문제가 될까요? 질병이 없고, 바람직한 형질을 가지면 좋은 게 아닌가요? 뇌플러는 최초의 시험관 아기부터 이 책의 핵심 주제인 맞춤아기까지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 즉 "더 나은" 인간을 향한 갈망에 우생학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는 점을 제기합니다. 그것은 '완벽한' 아기의 정의를 누가 내리는가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지요.
우생학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항상 완벽함이나 우수함의 정의가 기존 사회 체계에서 지배적 지위를 가지는 집단이나 세력에 의해 독점된다는 점입니다. 나치의 사례에서 가장 단적으로 나타났지만, 우생학의 역사는 나치 이전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지금도 변형된 형태로 끊임없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이른바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개인이나 집단의 번식을 막는 소극적 우생학이든 능력의 향상과 증강을 목적으로 삼는 적극적 우생학이든, 국가가 강제하는 우생학이든 개인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은밀한(backdoor) 우생학이든 모든 우생학은 지배체제와 그 가치의 유지, 즉 현상유지에 복무합니다.
또한 우수함이란 항상 현재의 조건에 기반한 특이성을 가지고 있으며, 무수한 이변이 속출해서 이변이라는 용어 자체가 무색해지고 있는 오늘날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현재의 조건이 언제까지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설령 현재의 조건을 완벽하게 계산해서 가장 적합한 인종을 설계하는데 성공했고, 그 결과 모든 인류가 최적의 유전형을 갖추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조건 변화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결과는 파국에 가까울 것입니다. 또한 지적 능력이 뛰어난 인류를 지향했지만, 그 결과 예측할 수 없었던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가령 머리는 좋지만 정신병이 걸릴 경향성이 높거나,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는 정서적 능력이 뒤지고 잔혹한 성격의 인류가 탄생한다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유전자 가위와 같은 생명공학의 눈부신 발전에 따른 새로운 기술적 발전 가능성과 함께 그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점들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제가 추천하는 다음 주자는 홍익대학교 김훈기 교수님입니다. 서울대학교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석사학위(과학사),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과학관리학)을 받았습니다. 동아사이언스가 발행하는 월간 <과학동아>의 기자 및 편집장, 동아일보 과학면 팀장, 인터넷 과학 신문 <더 사이언스>의 초대 편집장을 역임하는 등 과학 저널리즘 분야에서 13년간 활동한 경력도 있습니다. 2012년 텃밭보급소가 운영하는 과천도시농부학교 1기를 수료했고, 한살림 모심과살림연구소에 연구기획위원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강의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홍익대학교 교양과 교수입니다. 저서로 『시간여행』, 『유전자가 세상을 바꾼다』, 『생명공학과 정치』, 『물리학자와 함께 떠나는 몸속 기氣 여행』, 『합성생명』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