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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이달의 주자: 김훈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저

   20대 후반에 처음 『월든』을 만났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새롭게 고민이 시작되던 때였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환경단체에서 일을 했고, 자연스레 생태학과 관련된 읽을거리를 찾다가 눈에 들어온 책이었어요. 조금 훑어보다 금세 덮었습니다. 숲속에 은둔하며 사는 어느 낭만주의자가 쓴 글이려니 생각했지요.
 소로(1817-1862)를 단순한 낭만주의자라고 여긴 것이 큰 오해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기는 40대 후반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고전읽기 강좌를 운영하면서 제가 선택한 책이 그나마 익숙한 『월든』이었어요. 수업준비 때문에 열심히 완독했습니다. 관련 논문들도 찾아 읽었고요. 그리고 자발적으로 몇 차례 더 완독했습니다. 읽을수록 감탄했어요. 20년 전 눈에 들어오지 않던 구절들이 (나이 탓인지)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월든』을 읽었고 훌륭한 교양도서로 추천해 왔습니다. 19세기 미국 북동부를 중심으로 급성장하던 자본주의 시대, 물질문명과 인간의 끝없는 탐욕에 대항하기 위해 홀연히 월든 호숫가로 떠나 2년간 절제된 생활을 실천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꼰대 아냐?’ 사실 처음 완독했을 때 느낌은 이랬습니다. 과학기술 덕분에 편리한 생활에 익숙해지고 어떻게 하면 안락한 노후를 준비할 수 있을지 늘 걱정하는 저에게 잘못 살고 있다며 계속 훈계하는 투로 서술했기 때문이죠. 가령 “집이라는 불필요한 재산을...보유하면 장례비용을 넉넉히 마련한다는 이점밖에 없다”라든지 “인생에서 가장 가치 없는 노년기에 자유를 누리기 위해 인생 최고의 순간인 젊음을 돈 버는 데 허비하는 모습”이라는 문구에서 그랬어요. 특히 ”고전을 원어로 읽지 못하는 이들은 인간의 역사에 대해 아주 불완전한 지식을 갖게 된다”라는 대목에서는 반감마저 들더군요.
 하지만 두 번 세 번 읽으면서 반감은 경외감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일단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의식주만 확보하며 사는 절제력이 과연 가능할까 싶었어요. 남은 시간에는 오로지 영적 성숙을 위한 실천이었고요. 호수에서의 목욕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독서와 산책으로 마무리하는 생활이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낮에는 최소한의 식량을 얻기 위해 몸소 농사를 지었지요. 제가 또 한 번 감탄한 부분이 바로 농사에 대한 그의 생각과 표현에서였습니다. 농경은 “성스러운 기술”이며 “콩을 심어 얻는 것은 콩만이 아니다...콩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드척을 위해서 자라지 않는가?”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소로는 무척이나 신중한 작가였습니다. 그는 1846년부터 집필을 시작해 무려 일곱 차례나 고쳐 쓴 후 1854년에야 『월든』을 출판했어요. 이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집중적으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월든』의 후반부에는 호수와 동식물에 대한 박물학자 수준의 섬세한 묘사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월든』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다소 다른 느낌을 전해주는 것 같아요.
『월든』에서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영성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이 명확히 제시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고귀한 영성에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고독하고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로가 세상과 등지고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은둔형 인간은 아니었어요. 『월든』에서 구체적으로 묘사되진 않지만 소로는 노예제 폐지를 위해 남다른 활동을 펼친 실천가였어요. 위험을 무릅쓰고 틈틈이 노예의 탈출을 도와주기도 했고, 과격한 군인 한 명이 노예소유주를 살해하고 무기고를 습격한 죄로 잡혀 교수형에 처하기 전날 그를 지지하는 대중연설을 홀로 감행하기도 했어요. 『월든』은 저에게 잔잔하면서도 거대한 여운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가 추천하는 다음 주자는 한겨레신문 오철우 기자님입니다. 사실 기자라는 직함으로는 너무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시죠.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는데, 석사와 박사를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마치셨어요. 신문사 초창기 시절에는 다방면으로 기사를 작성하다가 어느 순간 과학에 올인하고 계시죠. 현재 국내 최고 수준의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의 운영자이시고요. 옮긴 책으로 『온도계의 철학』, 「과학의 언어』, 『과학의 수사학』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갈릴레오의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박사논문을 다듬어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분단체제 프레임 전쟁과 과학 논쟁』을 출판했습니다. 누구나 관심을 갖고 있지만 누구도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는 과학 주제를 두고 뚝심있게 고민과 글쓰기를 행하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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