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이달의 주자:김리라) 장 폴 사르트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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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 드리고 싶은 책은 제 전공분야만큼이나 고전적인,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입니다. 철학이라는 단어가 조금 무거워 보일지 모르지만, Ph.D. 에도 붙어있는 philosophy의 어원을 따져보면 ‘지혜(sophia)를 사랑한다(philos)’ 는 뜻입니다. 굉장히 많은 사상들이 철학을 이루고 있지만, 결국 공통적으로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살 것 인가와 같은 가치관으로 묶입니다. 제가 대학 시절 우연히 알게 된 사르트르에게서 신선한 충격과 위로를 받았듯, 각자가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상과 그 철학자를 마주하게 된다면 살아가는 데 있어 세대와 국적을 초월하는 크나큰 지지와 따뜻한 위안을 얻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가 사랑하는 철학자 사르트르의 사상을 담고 있는 책, 구토를 소개합니다.
작품은 사르트르 본인을 투영한 주인공, 30살의 철학 교사 로캉탱의 소소한 일기로 전개됩니다.(나이 지긋한 교수일 줄 알았는데, 내용 중후반에서 주인공이 서른 살이라는 것을 읽었을 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요!) 사실 내용은 소소하다 못해 사소하고, 너무 일상적이고 자세하기까지 하여 조금 지루하고 따분할 지 모릅니다. 로캉탱은 프랑스 부빌의 지역에 머물며, ‘드 로르봉’ 이라는 역사 속 인물의 전기를 쓰고 그에 대한 자료 수집을 합니다. 그 와중에 산책을 하며 거리, 미술관, 도서관 등 도심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사물들을 바라보며 사색합니다. 그렇게 사람들과 사물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하고, 사물들과의 접촉에서 알 수 없는 구토를 느낍니다. 구토는 호숫가의 조약돌에서 시작하여, 마로니에 나무의 뿌리를 보며 고조화 됩니다. 그리고 주변의 무수한 존재들과 그것들의 무의미함, 어떠한 특정 목적 없이 ‘그냥 있음’, 비슷한 존재들의 무한함에서 오는 존재의 잉여를 느끼며 존재와 그 본질에 대한 갈등이 극대화됩니다. 이 과정에서 사르트르의 유명한 명제 ‘존재가 본질을 앞선다’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존재에 대한 허무감에 로캉탱은 ‘과거에 존재’했던 인물인 로르봉에 대한 전기를 쓰는 일을 그만두고 현재의 존재들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그는 다시 안식을 찾으려 옛 연인을 찾아가지만 그녀는 그에게 이미 질린 상태였고, 그는 부빌에서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떠나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책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는 대목이 나옵니다. 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생각조차 존재를 자각하게 만들어 갈등이 심화되는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사르트르는 ‘존재’라는 단어 자체에 굉장히 집착을 하고 이의 무한한 여분과 그 무의미함에 허무감을 구토로 표현하였습니다. 이 책은 여기서 끝이 나지만, 사르트르의 사상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우리에게 오히려 허무함 보다는 희망을 줍니다. 모든 존재는 그 본질을 앞선다. 즉, 우리는 이 세상에 이미 존재하고 있고, 본질적으로 구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현재 순간순간 존재함으로써 그 본질과 의미를 창조해 나갈 수 있는 대자적 존재라는 희망을 줍니다. 저 역시도 어떻게 살 것인지, 우리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지 한창 고민하던 시절 사르트르를 만나 얼마나 위안을 얻고 고민을 덜었는지 모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큰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이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회의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고민 끝에 누군가는 극단적인 선택을 마음먹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에게 정해진 운명이나 본질 따위는 없고 우리는 그저 자유롭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앞으로도 내가 존재해야 그 삶의 의미를 계속적으로 창조하고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또한, 사르트르가 아니더라도 이 글을 통해 자신만의 철학이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철학자는 누가 있을지 찾아 보는 건 어떨까요?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감동적일지도 모릅니다
다음 릴레이북 주자로 저에게 늘 힘이 되어주는 대학 친구이자 지금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연구원으로 있는 박솔 양을 추천합니다. 대학시절부터 그 바쁜 와중에도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지금도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면서 꾸준히 독서를 하는 솔이는 어떤 책을 추천할지, 어떤 마음으로 추천을 해줄지 기대가 됩니다.
저한텐 너무 어려운 책이네요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