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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이달의 주자:현성희) 델리아 오언스 저

안녕하세요, 연구실 선배인 어두림 학생의 소개로 릴레이에 참여하게 된 현성희입니다. 포스텍 철강대학원의 Casting Technology Lab에서 박사과정중에 있으며, 철강공정에서 필수적인 부자재이지만 많은 분들께는 익숙하지는 않은 몰드플럭스의 열 물성과 구조 분석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재미있는 책을 골라서 읽기 좋아하던 습관은 성인이 된 저에게 여러 형태로 참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키가 크지않을까 걱정하시어 9시에는 잠에 들도록 하시면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불빛 밑에서 몰래 이불을 덮고 책을 읽곤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대학원의 바쁜 생활에 익숙해져 잠시 독서의 기쁨을 잊을 뻔 하였지만,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독서모임 (Reader’s Club)을 통해 매달 새로운 책을 읽으며 이 시간들이 제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또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은 최근에 읽게 된 장편소설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 입니다. 은은 하고도 예쁜 표지에, “가재가 노래하는 곳” 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는 그저 아름답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로맨스소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지극히 생생하고 현실적이며 어두우면서도 아름답고 또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책입니다. 반란 선원, 조난자, 빚쟁이, 전쟁이나 세금이나 법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과 해방된 노예들을 그물처럼 건져낸 습지에서, 다인종 다문화의 마을이 자유롭게 형성되었고 그 안에서 부모형제에게 버림받은 습지 소녀 카야의 외로운 성장 이야기와 마을 소년 체이스의 죽음에 관한 살인 미스터리가 교차로 몰입감있게 전개됩니다.

전혀 때묻지않은 야생 자연 그대로인 카야는 “ 마시 걸, 습지 쓰레기 걸 “로 불리면서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 속에 철저히 고립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외롭게 자란 카야에게 유일하게 사랑을 알려주는 친구는 인종차별로 괴롭힘을 당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흑인 점핑과 그의 아내,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 테이트입니다. 인간관계에서의 받은 상처로 뒤덮이고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 카야는 사람들 속이 아닌 습지 라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단단히 서는 법과 진정한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외로움을 아는 이가 있다면 달뿐이었다. 예측 가능한 올챙이들의 순환 고리와 반딧불이의 춤 속으로 돌아온 카야는 언어가 없는 야생의 세계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한창 냇물을 건너는데 발 밑에서 허망하게 쑥 빠져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

“담요처럼 포근한 햇살이 카야의 어깨를 감싸고 점점 더 깊은 습지로 유혹했다. 가끔 알 수 없는 밤의 소리가 들려오고 코앞에서 내리 꽂힌 번개에 소스라쳐 놀랄 때도 있었지만, 카야가 비틀거리면 언제나 습지의 땅이 붙잡아주었다.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때가 오자 심장의 아픔이 모래에 스며드는 바닷물처럼 스르르 스며들었다.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더 깊은 데로 파고들었다. 카야는 숨을 쉬는 촉촉한 흙에 가만히 손을 대었다. 그러자 습지가 카야의 어머니가 되었다.”


이 책이 제게 느끼게 하는 외롭고도 씁쓸한 마음은 그저 카야가 겪는 외로움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습지’라는 한정적인 공간이 아닌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겪는 수많은 같은 형태의 외로움 때문입니다. 외모, 성별, 인종, 장애부터 시작해서 여러 이유로 편견이 한번 시작되면 그 사람은 보이지는 않는 울타리 속에 갇힌 것처럼 고립된 상황에 놓이고 다시 회복되기가 어렵게 됩니다. “마시걸, 습지 쓰레기 걸”로 불리는 카야처럼, 사람들의 다양한 편견 속에서 고립된 사람들을 사회 속으로 나올 수 있게 하려면 어떠한 노력과 도움이 필요할지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한 소녀에 대한 성장소설을 뛰어넘어, 자연에 대한 위대한 수필이라는 찬사를 쏟아내게 하는 이 작품은 실제로 습지 속에 서 있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이 매우 특별한 책입니다. 이는 이 책의 저자인 델리아 오언스의 놀라운 인생 경험 덕분입니다. 동물학을 전공하고 캘리포니아대에서 동물행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평생을 야생동물을 연구한 생태학자 델리아 오언스가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출간하였습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실제로 미국 남부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스의 해안습지를 배경으로 하였으며, 습지의 생태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시적인 문체들로 가득합니다. 첫 챕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습지는 늪이 아니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물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 하늘로 흐른다.” 이어지는 아름다운 습지에 대한 묘사에 뒤이어, “습지 속 여기저기서 진짜 늪이 끈적끈적한 숲으로 위장하고 낮게 포복한 수렁으로 꾸불꾸불 기어든다. 늪이 진흙 목구멍으로 빛을 다 삼켜버려 물은 잔잔하고 시커멓다. 늪의 소굴에서는 야행성 지렁이도 대낮에 나와 돌아다닌다. 소리가 없진 않으나 습지보다는 늪이 더 고요하다. 부패는 세포 단위의 작업인 탓이다. 삶이 부패하고 악취를 풍기며 썩은 분토로 변한다. 죽음이 쓰라리게 뒹구는 자리에 또 삶의 씨앗이 싹튼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인간들로 인해 생겨나는 진득진득하고 어두운 진흙을 헤쳐나가는 느낌이 어떨지 직접 느껴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깊은 여운과 감동을 주는 <가재가 노래하는 책>을 여러분께 소개 드립니다.

  다음 달 주자로 포스텍 창의 IT 융합공학과의 김병진 군을 추천합니다. 매우 바쁜 삶 속에서도학업, 취미, 인간관계 등 모든 일에 열정을 다하는 모습과 세상에 대한 넓은 시각,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배려를 보여주는 분입니다. 어떤 좋은 책을 소개해주실지 매우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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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을거같아서 바로 책 구매했어요! ㅎㅎㅎㅎㅎ

윤정선(jsyoon) 2020-09-01

책의 제목이 참 낭만적인데, 어두운 내용을 담고 있다니 의외네요. 게다가 동물학자가 이런 소설을 쓰다니 놀랍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