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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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만 유행이 있는 것이 아니고, 과학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유행도 패션처럼 돌고 도는 것 같습니다.
필자가 과학이라는 말에 약간의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70년대말부터 살펴보면,
당시에는 입자물리학이 유행이었습니다. 입자물리학에서 노벨상도 많이 나오고
가속기로 때려서 뭔가를 쪼개보던 미시 세계가 인기 있던 시대였습니다.
쿼크인지 뭔지 하는 입자들을 발견했다고 대서특필되고 하더니
슬슬 인기가 내려앉았습니다. 그 후폭풍으로 스트링 이론이니 하던 이야기들이
들리더니 이제는 상당히 조용해진 상황입니다.
80년대 후반, 90년대에 들어와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고체 물리학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이때는 반도체 주위에 있던 과학들이 힘을 얻었습니다. 거기에 초전도체 연구도
고체물리학에 많은 관심을 더하게 만들었습니다. 에너지 준위니 하는 말들이 많이 들리던 시대죠?
거기다가 집적도, '황의 법칙' 등등 해서 떠들썩하던 반도체 분야와 고체 물리학도 어느 순간 조용해졌습니다.
90년대 중간쯤 들어와서는 생명과학이라는 분야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라는 직업, 의학이라는 분야, 그리고 약사와 제약분야의 먹거리는 영원하다는
실증적 통계를 중심으로 생명과학이 엄청난 힘을 받았습니다.
줄기세포 이야기는 이제 아주 지겨울 정도가 되었죠?
그런데 이 분야도 너무 많은 변수에 윤리문제까지 겹치면서 약간 시들해져 가고 있습니다.
학생들도 연구보다는 의대나 약대 가는 과정으로 생물이나 화학분야로 몰리고 있습니다.
생명과학과 비슷한 시기에 조용하게, 그러나 알차게 실속을 차린 부분이 있습니다.
나노 과학입니다. 한때 나노라는 말이 안붙은 과학실험실이 없을 정도로 나노는
가장 흔하던 실험실 간판 이름이었습니다. 필자는 별 성과 없이 돈만 많이 쓴 나노과학에 별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지만, 덮어두었던 결과들이 몇 십년 후 또 다른 분야와 만나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정리하면, 위에 열거된 입자물리학, 반도체, 생명과학, 나노 테크는 전부 미시적 세계를 더 알아보려는 시도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던 과학이 이제 갑자기 방향을 전환하여, '녹색'이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있습니다. 에너지와 그린이 2010년부터 한동안 유행을 타고 힘을 받을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현상은, 이 분야는 과거에 아주 재래식으로 분류되던 낙후한 분야였으며,
스케일이 엄청 크다는 것입니다. 지구 온난화 같은 주제를 다루는 세미나에 가보면
지구에 대기를 더한 크기를 논합니다. 시간도 입자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몇 마이크로 초가 아닌
몇 백년 단위입니다. 10의 -9승인 나노세계에서 10의 +9승인 세계로 갑자기 전환하고 있는 것이죠.
좁아진 넥타이가 다시 넓어지고, 긴 치마가 짧아지는 패션계 유행처럼,
과거 냉전시대의 우주개발 경쟁 당시의 거대 싸이즈로 다시 돌아간 것이죠.
가장 유행에 둔감할 것 같은 과학도 이렇니, 세상이 참 요동이 심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장차 어떤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좋을까요?" 또는 "미래에는 어떤 분야가 뜰까요?"라는
학생들의 질문을 받으면 "자네가 좋아하는 분야가 뜰꺼야!"라고 이야기해줍니다.
물론 필자는 그 학생이 무슨 분야를 좋아하는 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답하는 것입니다.
중심이 똑바르면 실리가 없더라도 명예나마 지킬 수 있는데,
시류에 흔들리다가 이익이라도 얻으면 다행이지만, 실리마저 놓치면 정말 남는 것이 없어집니다.
이제 젊은 세대는 과거 '생계형 과학'을 벗어던지고, '취미형 과학'을 해보길 권합니다.
밥은 누가 먹여주냐구요? 좋아서 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데, 설마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칠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