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철학
2010-04-06
전창훈 : cjun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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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에 모자철학이라는 제목의 수필이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글쓴이가 망가진 모자를 수리하러 모자점에 갔더니,
그 주인은 머리둘레 크기로 사람의 지능을 가름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천연덕스럽게 글쓴이에게 당신은 머리 싸이즈로 볼 때
아주 평범한 (특별히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주인의 턱없는 단정에 글쓴이가 마음이 상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모자점 주인은 머리 크기로, 신발점 주인은 신발의 마모 형태로,
그리고 치과의사는 치아의 상태로 사람을 평가하려고 한다고 글쓴이는 지적합니다.
결론에 가서는, 이런 자기 시각에 갖힌 편견은 사실이라는 다양한 국면을
포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중대한 걸림돌이며 한계가 된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넷에서 찾아서 다시 읽어봤더니, 어떻게 이렇게 높은 수준의 내용을 중학교 때 배웠는지,
한국 교육수준이 높음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당시 기억으로는 이 글이 해방 전후 무렵 한국의 노신사가 쓴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조사해보니 영국의 Gardiner라는 저널리스트가 쓴 수필을 한국이 이상배라는 분이 번역했더군요.
번역문체가 너무 부드럽고 품위가 있었기에 글쓴이가 한국인인 것으로 착각한 모양입니다.
각설하고, 오늘은 제 자신의 모자철학이 아니라, 모자만 이야기하려구요.
몇 년 전부터 주말에 외출 할 때, 머리를 감고 나가기는 싫고,
그냥 나가려니 머리에 폭탄 맞은 것 같고 해서 모자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사재기 시작한 모자가 거의 50 개에 이르렀습니다.
아내와 애들에게 핀잔을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식구들이 그 많은 모자를 바꿔 쓰고 다닙니다.
특히 겨울에 뇌졸증 예방을 위해서는 뒷머리 부분을 따뜻하게 하라잖아요?
그래서 모자를 뒤로 지긋이 눌러 쓰고 다니는데, 그러다가 안쓰면 정말 머리가 시립니다.
겨울에 방문한 러시아의 페테레스부르그에서는 약 3/4 정도가 머리에 뭔가를 쓰더군요.
약간 덜 추운 영국의 맨체스터는 1/4 정도, 하지만 이곳 남불에서는 겨우 1/10 정도만
겨울에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리 모통이에 서서 몇 분간 조사하여 통계를 낸 결과입니다.
옛날에는 남성 정장에 꼭 모자가 들어갔구요, 모자를 쓰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동서양이 마찬가지였죠? 우리나라는 갓을 쓰고, 서양에서는 중절모를 쓰고,
지금도 가톨릭 미사에서는 여성들이 머리에 두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모자가 점점 벗겨졌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모자로 모양을 내기보다 헤어스타일 자체에 돈을 들이고 있습니다.
머리에 뭔가를 쓰냐마냐가 종교분쟁으로까지 번져서 프랑스에서는 아랍계 여성들의
두건문제로 논쟁이 뜨겁습니다.
모자나 두건이 도마위에 오른 이유는 얼굴을 가려서 눈을 서로 못맞추게 한다는 것이죠.
서양에서는 아이 컨택이 아주 중요합니다. 심지어 야단을 맞을 때도 애들은 야단치는 부모의
눈을 똑바로 봐야 합니다. 안 그러면 뭔가 숨기는 것이 있거나,
꼴보기 싫다고 외면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어른을 엄청 화나게 합니다.
우리 경우는 반대죠? 야단맞으면서 쳐다보면,
"어디서 눈을 치켜 떠? 아직도 너가 잘 했단 말이야?"라고 곱배기로 혼나겠죠.
어쨌든, 겨울철에는 모자를 좀 써보라고 권하려는 것이 오늘의 단순한 주제입니다.
심장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머리 뒤로 올라간답니다.
화가 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는 말을 하는데, 원래 많은 피가 거꾸로 올라갑니다.
아이 컨택을 해치지 않으면서 머리도 따뜻하게 하려면 창없는 빵모자를 권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머리 속을 먼저 채우고, 보호해야겠죠?
고3인 아들에게, 빈 머리 보호는 의미가 없으니
모자를 쓰려면 우선 공부를 많이 해서 머리부터 채우라고 일러두었습니다.
그 조언 탓인지 전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머리를 사용하여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니, 머리를 잘 보호하십시다.
이 글이 나갈 즈음이면 빵모자 이야기는 한참 지나간, 따뜻한 봄날이길 기원합니다.
너무 딱딱한 이야기만 해오던 것 같아서 이번 호에는 약간 옆으로 샜습니다.
이쁘게 봐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