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자세히 들여다 보기
2011-03-07
전창훈 : cjun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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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랑스 주간지 Le Point이라는 잡지에서는
'프랑스인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50페이지가 넘는 특집기사를 실었습니다.
잡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제법 자세히 읽어보았는데,
아주 재미있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프랑스 사회학자들이 진단한 결론은 대체로 아래의 두가지였습니다.
첫째, 세계무대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축소되었다.
둘째, 그 원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화를 이루는데 실패했거나 늦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분위기는 세계화를
시대현상(What it is)으로만 보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야 할 길(What should be)로 보는 것에
많은 지식인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제와서 갑자기 방향전환을 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 뒷북이라는 느낌입니다.
그 기사 후에 이들이 말하는 세계화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세계화란 영어화, 그리고 미국화입니다.
하지만 좀 더 객관적으로 보면,
세계화란 미국, 유럽, 아시아 3개 대륙의 다른 시스템을 이해하고
모두가 납득할만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도출하여 자기 나라를 바꾸기도 하고,
그 표준화된 방식에 따라 다른 나라와 교류, 교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FTA 같은 것이 가장 전형적인 세계화의 산물입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자기들과 핏줄과 언어가 비슷한 미국을 잘 이해하면서도
영어화를 추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이것을 그들의 가장 큰 실수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세계화의 큰 축인
아시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너무 모자랐다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프랑스 세계화의 함량부족인 부분입니다.
유럽대륙에는 아랍이민이 많고, 영국에는 인도이민이 많다보니,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한국, 일본, 중국 이민자가 미국에 비해 현저히 낮습니다.
그러니 아시아 3국에 대한 이해도
미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곳이 유럽입니다.
사실 유럽은 양차대전 후에 경제를 어느 정도 살렸고,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냉전을 극복한 후에는
다시 유럽에서 전쟁이 없도록 하는 일에 매진해 왔습니다.
그래서 철천지 원수같은 이웃나라들이 이제는 손을 잡고
유럽연합이라는 합의체를 이끌어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을 유로화에 끌어들이면서, 유럽연합은 유엔보다는 훨씬 강력한 연대를 가지는
'운명공동체' 건설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
하나만 끝나면 다 되는 것이 아니죠.
그동안 아시아의 변화를 간과한 것입니다.
남의 집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우리 사정을 이야기해 볼까요?
우리는 미국식 세계화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내부,
즉 아시아 내부의 자유로운 거래시장을 아직 만들지 못했습니다.
먼나라인 미국과 유럽과의 FTA 이야기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한-중-일 시장에 대한 조율은 없습니다.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고생해서 밀어 올려두면 굴러내려가버리는 돌이 됩니다.
이웃과의 화해가 아주 중요합니다만,
우리는 당장 남북문제로 골치가 아파서 엄두가 안납니다.
일본과 축구하면, 독립운동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도 사실 저에게는 참 코믹하게 보입니다.
다른 축으로는 유럽에 대한 이해가 아주 부족합니다.
미국식은 표준화-규격화 되어있습니다.
언어도 영어만 알면 되고, 방식도 심플합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말하자면 강남 같은 나라입니다.
벌판에다 쭉쭉 밀어서 건설한 '계획형 국가'인 셈이죠.
반면 유럽은 강북입니다.
기존에 있던 건물 놔두고 그 옆으로 길을 내고 가게를 만들고 하다보니
길은 좁고 구불구불하며, 시스템이 복잡하며 옹졸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유럽이 한가지만 하고 다른 것을 못하여 뒤졌다는 지적처럼,
우리도 미국화만 달성했다고 세계화에 앞섰다는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좀 안일하다는 생각입니다.
구절양장 고갯길 같은 유럽을 알아야 하며,
멀리만 바라보는 눈을 낮춰 아시아를 좀 더 자세히 봐야 합니다.
유럽에 대한 이해가 낮은 것에는 동의하겠으나,
아시아도 잘 모른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독자들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아시아 이웃나라들을 비지니스 파트너로 볼 뿐,
친구로 보는 시각이 모자라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무시하면서 계속되는 비지니스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여기에다가 아랍권에 대한 이해마저 논한다면,
거의 앞이 캄캄한 수준입니다.
우리 세계화의 현주소입니다. 아니, 앞으로 갈 길이라는 표현이 맞겠군요.
이 글은 모처럼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의 어느 호텔방에서 마감시간에 쫓겨 쓰고 있습니다.
전날 저녁, 5년만에 들러본 교보문고 서가에서 좀 놀랐습니다.
언어별 외국어 책이 싸여있는 비율이 우리 세계화의 메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영어 참고서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더군요.
일본어와 중국어도 제법 많은데
독일어-불어-러시아어-아랍어로 내려가면서
책장의 크기는 지수함수적으로 줄고 있었습니다.
불어 코너는 약간 과장한다면 우리 집 서재보다 더 빈약했습니다.
이 상태가 현저히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으니, 우리 같은 후발주자들은 일단 선택과 집중에 매진해야죠.
그러나 너무 지나치면 넓힐 수 있는 시기를 놓치고 계속 집중에만 매달려 있게 됩니다.
표준화-단일화라는 우산 아래,
다양화-현지화라는 디렉트리가 포함되어 있는 패키지를
세계화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구불구불한 뒷거리에는 낡은 집들이 예전 모습에서 별로 변하지 않은 채 널브러진
강북 길이 강남대로보다 더 정감있게 느껴져서 저는 강북 길을 오래 걸었습니다.
동반자들이 더 많으면, 그 길 산책이 더욱 재미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