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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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진법은 10진법이다.
컴퓨터는 2진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구소련이 컴퓨터를 개발하면서는 3진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미국이 개발한 2진법 컴퓨터에 밀려 결국 세상에 빛을 보지는 못한 모양이다. 그 외에도 영미단위계 중 하나인 Yard는 3feet를 말하는 것이니, 3진법의 흔적이 있습니다. 4진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DNA가 4진법이라고 한다. A, C, G & T로 표기되는 네 가지 다른 요소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5진법이 사용된 흔적이 있을까? 아래에 구슬 4개가 달리고 윗줄에 하나씩 알이 달린 주판이 5진법이며, 반장 선거하면 개표시에 사용했던 ‘바를 정’(正)자 표기도 전형적인 5진법이다. 6진법은?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넓이 단위인 ‘평’이 가로-세로 6자라고 합니다. ‘자’는30센티미터가 약간 넘는데, 영미 단위인 ‘피트’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 흥미롭다. 7진법에는 달력에 있다. 요일이 7일마다 반복되니 7진법이다. 평년은 365일까지 있어 7로 나누어지는 가까운 숫자는 350+14=364다. 일년동안 모든 요일이 돌고나면 항상 하루가 남는 것이다. 그래서 2011년 1월 1일은 토요일인데, 2012년 1월1일은 하루가 밀려 일요일이 되었다. 만약 윤년이 오면 그 다음 해 같은 날은 요일이 두 개 밀리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과 공휴일이 해마다 하루씩 밀린 요일로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하자.
8진법, 9진법의 예는 찾지 못했다. 아마도 흔치 않을 것이다. 제일 많은 것은 역시 10진법, 인간의 손가락이 10개이다 보니 셈을 하기에 가장 좋다. 그 다음이 12진법, 16진법, 20진법, 24진법, 60진법 등이 있다. 16진법의 흔적은 프랑스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불어는 1부터 16까지는 고유한 철자를 가진다. 하지만 17부터는 10에 7을 더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열개씩 셀 때는 10, 20, 30, 40, 50, 60까지 고유한 단어가 있지만 70은 60에 10을 더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러니 불어에는 16진법과 60진법의 흔적이 동시에 있는 것이다. 20진법은 아마도 손가락과 발가락을 더하면 20개인 탓에 생겨났을 것이다. 오징어 ‘한 축’, 달걀 한 꾸러미가 20마리다.
오늘 여기에서 좀 더 집중적으로 생각해보려는 진법은 12진법이다. 동양에서는 12지가 있고 서양의 dozen 이 12개로 이루어진다. 현재 가장 중요하게 12진법이 사용되는 곳은 12개월과 12시간이다. 왜 12진법이 사용되었을까? 여러가지 학설이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여러 숫자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2는 2, 3, 4, 6으로 나누어진다. 굉장히 중요한 것은 3으로도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10은 겨우 2, 5로만 나누어진다. 옛날에 추수를 하거나 사냥을 하거나 총 수확을 서로 공평하게 나누는 제도는 진법을 통하여 쉽게 구현되었을 것이다. 12는 나눔에 있어 아주 좋은 숫자다. 예를 들어 보자, 피자 한 판을 시켜 10조각으로 나누었다면, 친구 여러 명끼리 나눠 먹기가 쉽지 않다. 오직 2명이나 5명이 모였을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12조각으로 나누어 두었다면, 2명, 3명, 4명, 6명이 모여도 공평하게 나누어 먹을 수 있다. (12는 5로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결점이 있다.) 숫자 12가 나누기에 적합하여 우리는 12개월로 이루어진 1년을 여러 종류로 나누어 생활에 활용한다. 2로 나누어서 우리는 일년을 상반기-하반기로 부른다. 어떤 대학들은 학사력을 3으로 나누어Trimester 제도로 운영된다. 그리고 4로 나누어 우리는 1-4분기, 2-4분기 등으로 업무나 실적을 나누어 계산한다. 춘하추동의 계절도 일년을 4로 나눈 것이다. 물론 6으로 나누어 2달에 한 번씩 격월제로 어떤 일을 하기도 한다. 12는 홀수인 3과 짝수인 4로 동시에 나누어진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그런데 원래 서양 달력은 1년이 10개월 이었다고 한다. 중간에 7월과 8월이 들어가서 12개월로 늘어났고, 율리우스 캐샤르(시져)와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하여 7월과 8월의 이름을 July & August로 개명했다고 한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이야기지만, 원래가 10개월이었다는 증거가 있다. 우리가 10월이라고 하는 October의 Octo-는 8을 나타내는 접두사다. 다리가 8개여서 문어를 Octopus라고 한다. 12월은 December인데, dec-은 10을 나타내는 접두어다. 그래서 10년을 decade라고 한다. 즉, 7월부터는 다 두 달씩 밀려서 8월이 10월이 되고, 10월이 12월이 된 것이다.
24진법(하루 시간)이나 60진법(분, 초)은 12진법에 다른 숫자를 곱한, 12진법의 아류에 속한다. 특히 60진법은 12에 5을 곱하여 12진법에서는 불가한, 5로 나누어지게 한 진법이다. 옛날 함부라비 왕은 하루 종일 타는 촛불을 만들어 1/3이 탈 때까지는 백성들이 자고, 다른 1/3동안은 일하고, 마지막 남은 1/3은 쉬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3으로 나누어지는 하루 시간을 구성하려면 12시간이나 24시간 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군대에서는 24시간제를 사용하여 오후 3시를 15시라고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냥 오후 3시라고 말한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민간인들도 전부 24시간제로 말한다. 24시간제가 편한 경우는 시차계산의 경우다. 12시간으로 표시되는 일반 눈금으로 표시된 시차시계들을 많이 보았는데, 시차를 이해하기에 아주 불편하다. 예를 들면 서울이 시계로 8시를 가리키고 있고, 다른 도시가 10시를 가리키고 있다면, 그 도시가 오전 10시인지, 오후 10시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차를 표시하는 시계들은 반드시 24시간을 숫자로 표시하는 디지털 시계를 걸어두어야 할 것이다.
숫자와 진법은 언어보다도 더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일 것이다. 지금이 몇 시인지, 돈이 얼마 남았는지, 도착하려면 얼마의 거리를 더 달려야 하는지, 지금 내 몸무게와 협압은 얼마인지, 가고 싶고 보내고 싶은 대학의 커트라인은 얼마인지, 지난 주에 산 주식은 지금 얼마나 올랐는지, 출근 복장을 위해 내일 아침 온도는 얼마가 될 예정인지를 알고 싶은데, 이 모든 것이 전부 숫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지겨운 숫자에 정을 좀 붙이려고 노력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