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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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은 정치와 아주 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치와 지극히 가까운 것이 과학기술입니다. 가깝다기보다는, 좀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정치가 과학기술을 하수인으로 부려먹는 것이죠. 몇 번을 당하고 나더니, 이제는 과학기술계에서 국회의원을 많이 배출하자는 운동도 생겼습니다. 아마 새정권 들어서면 과학기술부가 부활할 확률이 높겠죠? 그리고 선심공약과 더불어 새정부 초기부터 세종시와 더불어 과학계에 헛바람이 좀 들어갈 지 모릅니다.
역대선거를 보면, 두가지 공통점을 보입니다. 첫째는 항상 지방출신 대통령이 당선되었지만, 집권 후에는 서울에 더 많은 혜택과 부를 집중시키는 정책을 고수했습니다. 두번 째는 선거 전에는 항상 과학기술을 중시하겠다고 하고선, 당선 후에는 연구단지부터 갈아엎는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가장 집단화가 안되어 정부 지시대로 따르기만 하는 '순수한' 과학기술인들은 언제나 당하기만 했습니다.
과학기술이 정치적이라는 논제에서는, 미국의 사정도 비슷합니다. 아폴로 계획은 애시당초 소련에 뒤졌다는 정치적 의도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NASA가 대통령 직속으로 세워졌습니다. 닉슨대통령 때만 달에 몇 번 가고는 다시 안가고 있습니다. 달에 다시 간다면 달착륙이 거짓말이라는 음모론도 한 번에 잠재우고, 여러가지 실험과 기지 운용 등 실질적인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터인데도, 의미가 없다고 일축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달에 가봐야 정치적으로 별 이득이 없다는 것이죠.
최근에 과학기술계 내부에서 제기된 출연연 개편 공청회 소식들이 저에게도 날아오고 있습니다. 출연연 구조를 또 바꾸고 그 위에 무슨 관리기관들을 올려놓는 것들은 공무원들 일자리 창출과 정치교수들 신문에 얼굴 내는 일 외에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하기야, 많은 한국의 출연연들은 연구수행보다, 연구 관리를 위주로 하더군요. 연구는 주로 기업체에 외주를 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일정도 바쁘고, 기술을 수입해서 약간 바꾸고는 '한국형' 무슨 장치 라는 이름을 붙이거나, 세계최초라는 딱지를 붙여 선전하기 바쁜 연구소들이 많으니 그렇게 바람을 자주 불어서 솎아내야 할 필요도 있겠죠. 너무 비판적인가요?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다른 것인데,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렀습니다.
우선은, 총선-대선에 무관하게 연구소 구조를 몇 년간 동결하는 법안이 필요합니다. 대통령 임기와 동일하게, 연구소 구조는 5년마다 바꿀 수 있다고 하고 그 시기는 대통령 임기 중간에 오도록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과학기술 결과물이 국가의 자산이 되어야지, 정권의 홍보물이 되려다가는 제2, 제3의 황우석 박사 사건들이 또 터집니다. 황교수팀도 정권의 압박이 덜했더라면, 차분하게 연구해서 정직하고도 좋은 결과를 많이 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연구소들 간의 장벽이 너무 높아 교감도 없고 집단화 (나쁜 말로 하면 집단 이기주의)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관료들에 맞서 싸울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제안 하고 싶은 것은, 연구소 간 안식년 교환연구를 실시해보라는 것입니다. 연구소에서는 외국에 안식년 보내는 것이 필요한데, 돈도 많이 들고, 연구원 자녀들 영어교육시키는 것으로 아예 경도되거나 골프 실력 늘리는 프로그램이 될 확률이 높으니까, 부담이 될 것입니다. 또 언어도 익숙하지 않은 외국에 단기간 안식년 나간다는 것도 사실 부담스런 일입니다. 그러니 국내에서 연구소들 간에 안식년 연구를 주고 받으면 어떨까요? 연구소들 간에 상호 이해 증진에, 연구원들 안목도 넓어지고, 융합연구는 자동으로 될 것이며, 잘 활용하면 인사문제까지도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구원들 간에 좀 껄끄러운 일이 생겼다면, 좀 피해서 다른 연구소에서 연구하다가 돌아오면 되고...
제가 연구소간 안식년 제도를 추천드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집단 이기화나 인사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문가인 연구원들이 다양한 시각을 제공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후쿠시마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찬반론이 거셉니다. 저도 주위에서 그런 토론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경이 원자력인 분들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토론에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원전에 대해서 호의적인 편임에도 불구하고, 이 분들과는 대화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화가 어려운 이유는 환경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자력 관련분야를 전공하고 그 곳에서 평생 일을 하면서, 원자력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이야기를 평생 들으며 살아온 분들이라면, 정말 대안이 없지 않을까요? 이런 분들이 풍력이나 태양 에너지를 연구하는 곳에서 1년만 보내고 와도 시각이 많이 유연해질 것 같습니다. 가장 객관적이어야 할 과학이, 자기가 믿는 신앙만 따르려는 종교인 처지가 된다면 사회가 제대로 된 방향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원자력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른 에너지원에 마음을 열어두고도 원자력을 지지하는 것과, 원자력 외에는 모르기 때문에 원자력만 주장하는 것과는 천양지차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구소간 안식년 제도가 한국에서 현실화될 수 있을까요? 또 만약 실현된다면 지원자들은 있을까요? 익숙한 장소에서 파워를 키워서 높은 자리를 꿰어차는 것이 대부분 연구원들의 목표라면, 패잔병들 유배보내는 제도로 굳어지지는 않을까요? 과학은 정치로부터는 독립가능하겠지만, 여전히 문화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겠군요, 우리는 과학 자체가 아니라, 과학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래도 과학적이고도 합리적인 좋은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 역시, 과학기술인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알 빙고!(Real bingo)
연구소간 안식년 교환연구제도 정말로 굿아이디어 입니다.
학제간 통섭이나 산업영역간 융합이 절싱히 요청되는 현실을 고려할때 실현되어 정착되면 R&D 역량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 같습니다. 승급조건으로 연구소간 안식년 이행에 가점을 부여하면 서로가 하려고 할겁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출세 지향적인 '폴리페서'와 함께 '폴리리서처'도 많은데 어차피 이분들이 나중에 폴리~~~가 되더라도 도움이 되는 훌륭한 방안이라 판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