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행복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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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학생들 진로지도와 생활을 다루는 프랑스 잡지를 읽어보았습니다. 어떤 기사 하나가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3년이 지난 한 고등학교의 이과반 졸업사진에서 임의로 몇 명을 선정해서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취재했습니다. 재수-삼수하다가 겨우 어떤 학교에 정착한 학생, 처음부터 일이 쉽게 풀려 괜찮은 대학에서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학생, 실력이 모자라지만 의사가 되고 싶어서, 의대진학이 좀 더 쉬운 인근 국가로 도피유학을 가서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등 아주 다양했습니다. 그들에게 공통으로 물어본 마지막 질문은 만약 시간을 거꾸로 돌려 고등학교 졸업 시로 돌아가서 다시 진로를 정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놀랍게도 6명이 모두 현재의 선택에 만족해하며, 다시 기회가 되어도 동일한 선택을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필자는 그 기사를 읽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말한 기준의 하나는, 현재의 과정이 내 능력에도 잘 맞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필자가 미국과 프랑스라는 서양사회에서 20년을 살아오면서 느낀 점과도 일치합니다. 그들이 진로를 선택할 때, 사회에서 얼마나 알아주는지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지, 잘 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당연한, 그러나 이론적으로만 당연한 이야기를 이들은 일상현실에서 실현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더 신기한 것은 부모들이 대체로 아이들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더 높이 가도록 심하게 독려하지 않습니다. 여기도 학벌에 따른 서열이 결코 한국보다 못하지 않은 사회임에도 말입니다. 물론, 여러가지 다른 조건들이 원인이 될 것입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은퇴연금이 아직은 믿을만하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함부로 아랫사람들을 다룰 수 없는 등의 문화와 제도적 보장이 있다는 점이 다르긴 합니다.
그래서 느끼는 것은, 이 사회에서는 지위별로 대체로 어울리게 사람들이 그 위치에 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성별로도 어울리게 그 위치에 가 있습니다. 괜히 이런 이야기로 마치 우리 사회는 아직 너무 멀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피차 불편한 이야기이니 이쯤에서 관두고, 우리 아이들이 자기 적성과 소질이 뭔지를 알게 해주는 장치들은 좀 개발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어느 사회나 어린 나이에 자기 적성을 아는 것은 어려울 것인데, 다만 적성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사회에서 잘나가는 분야인가라는 외부적 요인은 중요도를 좀 아래로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대박나는 분야가 나중에 쪽박차는 경우는 아주 많았으니까, 약싹빠르게 생각해봐도 외부적 인자는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맞습니다. 한참 인기있던 컴퓨터공학은 이제 정원 채우기를 걱정하는 처지이고, 40세 넘은 사람들까지 몰리던 한의학도 어려워졌고, 변호사가 6급 공무원으로 취직하니 하는 기사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모여들던 의과대학을 졸업해도 이제는 미래가 불투명합니다. 최고의 신부감으로 추앙받던 여교사들은 요즘 교권추락으로 자괴감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반면, 인기에 무관하게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돈도 훨씬 많이 벌고 인생도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살고 있으니 세상물정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구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한다고 답이 안나옵니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좋아서 그리고 그렇게 나쁘지 않은 분야여서 선택했다고 하는 것만큼 강력한 동기부여도 없을 것입니다. 다 이해되는데, 막상 내 자식에 적용하려면 힘들다구요? 이해됩니다. 그러나 진정 자식들을 살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요? “남따라 살기보다 너의 인생을 살아라!”고 말해줍시다. 남 대신 사회의 험한 일해주는 봉사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진짜 승자가 되고 행복해지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기사의 내용에 공감가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막상 내 자식에 적용하려면 힘들다구요?"라는 부분까지 말입니다. 사회적 합의점, 우리 사회 다수가 이런 방향으로 생각하고 실천해야지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