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회사들의 굵고 짧은 삶 [전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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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시작된 IT 혁명이 90년대를 휘어잡았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 전후, 너무 의욕적이었던 벤처들이 줄줄이 망하면서 IT산업이 약간 수그러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휴대전화가 보급되고, 필름만 디지털로 바꾸어 과거의 큰 카메라들이 다시 시장에 등장하면서 IT가 한 번 더 활성화됩니다. 근간에는 애플사가 만든 I-phone이 불러온 스마트폰과 아마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전자책이 나오면서 진정한 IT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요즈음은 심심할 사이가 없는 것 같고, 독서도 전자기기를 사용하니 훨씬 덜 지겨운 것 같습니다. 책과 장난감을 동시에 만지는 느낌 때문일까요?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확실히 킨들이나 아이패드로 독서하면, 좀 더 오래 붙들고 있게 되더군요. 모두들 실시간으로 채팅을 하고 사진을 전송하는 등, 정말 사람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며 호기심을 채우고 있습니다. 물론 자기성찰의 시간이 없어 철학이 빈곤해질 것 같은 염려는 있습니다. 어쨌든 지식이나 정보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이제는 환경 탓 할 것 없이 마음껏 채울 수 있는 시절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제공해 준 회사들은 인류사에 길이 남을 기여를 한 것이죠.
그런데 정작 그 엄청났던 전자회사들을 보면, 하나같이 수명이 짧아서 없어지거나 업종을 다원화한 회사들입니다. 그 많은 업적을 남기고 자신들은 업적만큼 보상받지 못하고 시장에서 퇴출된 것이죠. 그래서 그 쟁쟁했던 회사들이, 마치 한여름 며칠간의 화려한 생을 마치고 사라진 매미들 같아 보입니다. 컴퓨터 시장에서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IBM은 최초의 대형 컴퓨터 IBM-360을 만들었고, PC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개인용 컴퓨터를 처음으로 보급했던 회사입니다. 그런데 이제 컴퓨터에서 IBM이라는 이름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생물에서 퇴화된 흔적기관을 보는 것 같습니다. 가전의 왕자 Phillips, 워크맨 전설의 Sony는 그렇다 치고, 핀란드 국민기업이라는 Nokia의 존재감은 지금 아주 미약합니다. 그리고 소니와 구색을 맞추던 일본의 내셔널이나 히타치 같은 회사는 아예 일반인들 눈에는 거의 안보입니다. 디지털 카메라는 Kodak에서 처음으로 개발했다고 하는데, 당시 플라스틱 필름에서 워낙 주도권을 쥐고 있던 터라, 안일하게 계속 플라스틱 필름에 안주하다가 망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미국 로체스터에 있던 코닥 건물들을 과학박물관으로 사용하자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참으로 허망한 일입니다. 세상은 그들의 수고로 이렇게 발전했는데, 지금 그 ‘개국공신’들은 다 숙청된 셈이죠. 물론 많은 회사들이 의료기기나 금융소프트웨어 또는 기계와 결합된 복합산업으로 업종을 전환했지만, 예전의 영광에 비하면 정말 보잘 것 없는 패잔병 꼴입니다. 거의 망할 뻔했던 애플만 겨우 사선을 넘어 다시 최고의 권력자로 컴백했고, 나머지 전자회사들은 진작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위에 예로 든 회사나 사건들은 제법 시간이 지난 일입니다만, 요즈음은 쥐도새도 모르게 사망하여 장례식도 없는 죽음이 시장에 많습니다. 스마트폰이 나오고나서 전자사전과 GPS 업체들은 거의 전멸하고 있다고 합니다. 누가 슬퍼해주는 사람들도 없이, 신병기에 제대로 대항할 시간도 없이 하루아침에 퇴출당한 것이죠.
이제 IT및 전자산업 권력의 상당부분은 미국과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왔습니다. 삼성전자와 LG 전자는 휴대전화, 모니터, TV로 세계인의 주머니와 책상, 그리고 호텔방들을 점령했습니다. 필자는 삼성전자에 몇 년을 근무해봐서 내부사정을 좀 아는 탓에, 평소 삼성전자를 인정하는데 인색한 편입니다. 하지만 필자의 인정여부에 관계없이 삼성전자는 현재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전자회사입니다. 삼성전자는 국내 기업들이 내는 총 법인세의 20%가 넘는 비중을 가진다고 합니다. 세계무대에서는 Korea라는 국가 이름보다 Samsung이라는 기업 이미지가 훨씬 더 강력합니다. 그런데 현재 시장에서 최고권력을 누리는 삼성전자가 과연 얼마나 더 오래 권력을 누릴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아주 중요합니다. 삼성전자 단일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경제 전체의 문제이며, IT 및 전자산업 재편에 관한 문제입니다. 분명 저가 제품은 전부 중국업체로 넘어갈 것입니다. 삼성전자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든지, 훨씬 더 고급기술로 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전략을 논의할 긴 시간도 없이 시장이 재편될 것입니다. 어쩌면 계속 권력을 잡기보다 연착륙을 준비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만약 코닥같이 Sudden death에 이른다면 한국경제는 패닉에 빠질 것입니다. 왜 괜한 방정을 떠는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삼성은 영원할 것이다 또는 최소한 상당기간 권력을 놓지 않을 것이다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준비가 없는 낙관론은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이익과 조직의 이익이 다른 경우가 많아서, 기존의 성공에 도취된 최고경영자들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줄 사람도 없고, 들어줄 경영자도 없을 것입니다. 빠른 성장을 위해 재벌이 필요했었다는 논리는 다소 수긍이 갑니다만, 현재 너무 커져만 가는 국내 대기업들은 언제까지 몸집 키우기로 지속가능할까요? 한국경제에 대한 새로운 진단과 준비가 필요한 싯점은, 더 늦기 전에 아주 잘나갈 때부터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런지요? 자세한 경영지표를 모르는 필자는 그저 막연한 느낌으로 지금부터 업종다원화와 덩치 줄이기 등, 진짜 구조조정을 생각해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더군다나 노동강도가 너무 높아서 조직에 애정이 충분하지 않은 직원들, 언제라도 연봉이 더 높은 곳으로 이적하려는 직원들만 많다면 더 위험합니다. 앞으로 정신차려서 계속 더 잘하자는 논리보다는, 이제 내리막으로 갈 것을 인정하고 장차 부담이 될 조직과 제품들은 서서히 접는 정책도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하는 우리는 예외일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라기보다는 신앙에 더 가까와 보입니다. 지금은 약간 냉소적이고도 비관적인 대처가 필요한 싯점입니다. 아직 권력이 있기에 이런 비관적 관점이 가능할 정도의 여유가 있을 때 준비해야 합니다. 필자의 염려가 기우이길 바랍니다만…
전창훈 님의 통찰력에 동의합니다, Nokia , Sony 등이 과거 잘 나갈때 오늘을 차마 꿈이라도 꾸었을까요? 고사성어 "거안사위(편안할때 위기를 생각하라)" 가 생각나네요. 그런데 잘나가고 있는것을 놓아버리는것이 인간심리상 쉽지는 않을것 같네요, 항상 글 잘 읽고 있습니다.-경기도 용인에서-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기에 우리가 돌아봐야하는 거지요.
전자산업에도 흥망성쇠가 반복되고 있으니 삼성도 얼마나 갈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할 겁니다.
전문화되는 것은 바람직하나 거대해지는 것은 마뜩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경제를 뒤흔들 만큼 큰 존재가 되었다는 게 부담스럽네요.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할 수는 없을거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