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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부동 인문학 상전벽해 이공학

 약한데, 제목부터 고사성어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인문학 강좌들이 많더군요. 평생을 일하느라 앞만 보고 달려온 CEO들을 초청해서는 우아하게 인문학을 논하는 대학과정도 있더군요.  그동안 너무 성과주의에 시달렸는데, 이제는 좀 더 깊은 철학을 보라며, 사랑이니 존재니 따위를 논하는 것이죠.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장자를 뒤집고 칸트를 물먹이면서,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는 등, 다양한 레퍼토리가 있더군요.  어째 글이 인문학에 시비걸려는 태도로 좀 삐딱하게 나가죠? 은근히 화가 나서 하는 말입니다. 인문학이 무슨 나쁜 짓을 해서도 아니고, 요즘 그쪽이 장사 좀 된다고 질투나서 하는 말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네 과학기술의 처지가 좀 딱하고 힘들어서 그럽니다.

 

 고전이라고 불리는 가장 오래된 책은 호머(BC 850년경)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오래된 것들도 있겠지만, 호머의 두 작품은 영어권 고등학교에서 교재로 많이 읽습니다. 이 작품들은 서사시인데 저도 괜히 폼낸다고 영어판을  좀 읽어봤지만, 상당히 어려워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그러다가 시대를 내려오면 셰익스피어(1600년경) ,  제인 오스틴 (여류작가, 1800년경), 디킨스 (1850년경)   등의 작품을 학교에서 자주 가르칩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몰리에르(1650년경), 그리고 요즘 히트쳤던 영화 레미제라블의 원작가 빅토르  위고 (1850년경) 같은 작가가 교과서에 자주 나옵니다. 빅토 위고는 프랑스의 셰익스피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자도 잘 모르는 것을 나열하면서 아는 척 하려니 쑥스럽군요.

 

 과학기술과 관련하여 비교해봅시다. 기하학의 원조인 유클리드(BC 300년경)는 호머와 시대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문화권에서 활동했습니다. 그가 썼다는 기하학 원론(Elements)은  우리 이공계의 오딧세이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유클리드의 책은 호머의 책과 다르게 아무도 안읽습니다. 뉴톤이 만유인력을 기술해서 인류 역사에 일대 전환을 가져온 시기는 대략 1700년 경입니다. 그가 쓴 Principia라는 책은 어쩌면 인류역사상 최고의 가치를 가진 책일지 모릅니다. Principia보다 한 세대 (25년) 정도 후에, 같은 나라 영국에서 로빈슨 크루소와 걸리버 여행기가 나왔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뉴턴의 Principia보다 100년도 더 전에 나온 책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여전히 셰익스피어의 연극과 책은 왕성한 인기를 모으고 있고, 로빈손 크루스와 걸리버 여행기는 어린이들의 필독서입니다. 하지만 뉴톤의 책은 아마도 안읽습니다. 심지어 비슷한 전공을 하는 물리학과나 기계공학과에서도 이 눈부신 고전, 우리에게 성경책 같은 책을 안읽습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불편하고 미숙하고 틀린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와 더불어 개발된 완벽한 과학적 잣대를 과거의 이론들에 들여다대면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이죠.

 

 인문학은 어떤가요? 틀리고 맞고가 중요하지 않은 분야가 인문학이고, 세월은 변해도 인간의 욕심이나 사랑의 감정같은 원초적 본성은 그대로이니, 몇 백년 전 작품들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당시의 윤리와 도덕, 가치관이 현재와 틀린 부분은 좀 어색하죠. 예를 들면 요즘과는 다르게 사람 목숨 하나 죽이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형벌도 지나치게 잔인했다는 점, 여자와 아이들의 인권은 상당히 무시되었다는 점들이 다릅니다만, 이런 부분들이 바뀐 것도 뭐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성인 여성들이 투표할 수 있는 참정권을  가진 것이 아주 최근입니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인권국가를 자처하는 미국-프랑스-영국들이 제1차대전이 끝난 이후인 1920~1930년대에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줬습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 하나 할까요? 미국 아이비 리그에서 학부에 여학생을 받기 시작한 것이 1970년 정도부터입니다. 거짓말 같지만 확실한 사실입니다.  인문학적인 세상의 변화는 이렇게 더디게 변했습니다.

 

 시대를 초월해서 우려먹어도 됩니다. 아니 재탕에 삼탕까지 우릴수록 오히려 진국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가 하는 과학기술은  옛날에 배운 것만 우려먹다가는 쪽박차기 좋습니다. 변화가 너무 심하다보니 요즘은 방향을 못잡고 너도나도 다 융합간판을 걸고는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두리번 거리는 모양새입니다. 컴퓨터도 너무 빨리 변해서 어안이 벙벙하게 몇 년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도대체 전파를 아는지 모르는 지를 물어볼 사이도 없이 그냥 Wifi에 길들여져 편하게 사용하는 것이죠. 이렇게 변화가 빠르니 ‘왕년에 좀 했던 것’으로 적당히 사는 분들은, 계급장 떼고 제대로 된 정글에 풀어두면 며칠만에 시체로 발견되겠죠.  전투력을 상실한 지는 오래고, 돈주고 업체에다 연구개발 맡기고 일정관리만 하는 정치꾼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 휘하에 졸병 한 명 없이 실리콘 밸리 같은 현장에 풀어두면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썩은 통나무 같은 ‘왕년 고수’들을 내부에서 우리끼리는 비난하지만, 인문사회쪽에는 30년 전 고시나 학위  한 번으로 평생을 잘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우리쪽 삶이 너무 고달프죠. 필자도 컴퓨터로 수치해석하는 일만 25년동안 하고 있지만, 늘 새로운 프로그램 배우랴 새로운 문제와 요구에 적응하느라, 젊은 연구자들에게 자주 물어봐야 합니다.



 링 밖에서 복서에게 코치 해야 할 나이인데도, 필자처럼 여전히 링에서 선수로 뛰려니 힘든 사람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쩝니까? 기왕지사 이렇게 된 것, 링에서 죽는 것을 오히려 명예로 알고 쓰러지는 날까지 복서로 뛸 작정을 해야죠. 사실 늘 새로운 것이 쏟아지는 이공계에서 즐기며 사는 방식은 늘 깨어있는 수밖에 없어보입니다. 잠이 많은 저는 그래서 늘 걸음이 바쁘지만, 앞서지는 못해도 부지런히 쫓아가야죠. 혹시 이공계 연구자나 실무자로 사는 것이 후회스러운 분들이 있으시면, 공부하고 자기개발에 노력하여 에너지를 되찾자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일터 주변을 좀 더 예쁘고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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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간 자만이 내려올 수 있죠.
올라가보지 못한 사람은 내려오는 것도 모르고 인생이 보냅니다.
내려와 낮은 곳에서 초보자들에게 경험을 전수하며 봉사하는 것도 의미있고 보람있습니다.
카페같은 곳에서 젊은이들이 고민하는 것을 들으며 힌트를 주는 것은 경험한 자만이 할 수 있죠.

용자 과학기술자분들, 모두 힘내시길~! 일터 주변을 예쁘고 재밌게 만드는 노력, 참 공감합니다 :^)

좋은 글과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본인은 이미 링 밖에서 걸어가고 있는 자칭 한중일영 과학선비 Ocica O'Kim Ph.D입니다. 21세기에는 인문학과 과학기술학의 경계가 무너지게 됩니다. 그리스 시대처럼 수학-과학-철학이 융합되는 시대가 벌써 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문학이 과학기술학으로 유입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이 인문학으로 쳐들어가서, 과학기술학이 인문학을 먼저 유입시키고 융합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게 과학정신의 진정한 본질이라고 믿습니다. 공자의 온고지신도 과학기술자가 새로이 해석합시다. 한국에서는 논어를 인문학적으로만 해석하는데, 중국에서는 이미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있더군요. 본인은 논어를 과학기술적 내지 공학적으로 해석하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일부분은 본인의 저서 [한중일영 한자 비즈니스]/e-book/교보문고 보급중/에 과학기술적으로 해석하여 부록으로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인문학의 최고결정판이기도 한 한글의 발음문자인 "훈글"을 계발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비원어민이 한글을 쉽게 배우도록 하는 훈글입니다.
이제 인문학이 과학기술학으로 쳐들어오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인과 공학도가 인문학으로 쳐들어갑시다.그러한 방도의 일환으로, 인문선비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없는데, 토종 공학도의 본인은 과학선비라고 자칭하고 있습니다. 명칭부터 쳐들어간 모양새입니다. 서구의 고전적인 과학서적도 논어처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편석하는 일도 과학기술계에서 추구해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문학이라는 건 기초지식 없이 누구나 읽고 즐길 수 있지만, 과학기술이라는 건 기초지식이 없으면 비전공자에게는 외계어이고 전공자에게는 구식 기술이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운 걸 추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는 한때 베스트를 친 적이 있었는데, 일반인이 누구나 접근하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도록 과학이라는 내용을 눈높이를 낮춰서 누구나 생확에서 적용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면 과학도 다른 인문학 저서들처럼 대중화할 수 있겠죠. 우리만의 리그에서 우리들끼리 피터지게 다투는 건 어찌 보면 우물안 개구리가 아닐까? 하네요. 유럽이 르네상스를 열수 있었던 것도 오리엔탈 문화를 접하면서 된것이니 과학기술에서 융합이라는 것도 하나의 문화적 흐름이라고 생각하네요...

필자 전창훈입니다. 좋은 의견들 감사합니다. 우리도 인문학처럼 누구나 흥미를 가질만하게 책을 쓰고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야 인문학으로 처들어갈 수 있는데, 다들 학술논문에만 집착하는 분위기여서... 먹고사는 직업으로서의 과학기술보다 즐기는 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 일터를 좀 더 '문화적으로' 만드는 작업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5세기 전후에 있었던 르네상스를 21세기에는 과학르네상스로 다시 한 번 돌아오게 하면 좋겠습니다.^^

덧글들을 읽다보니 전박사님께서 지금 하고 계신 일들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르네상스 공돌이 코너도 사실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한 느낌이 들고, 그간의 저술활동도 그렇구요. 이런 활동을 하는 과학자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