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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재미-인기 없는 이공계

필자는 여기 코센웹진의 칼럼을 통해, 오랜시간동안 여러가지 하고싶은 말들을 참 많이도 한 것 같다. 어떻게 이공계 내부의 문제를 모아 우리 스스로가 깨닫고, 우리들이 연구와 일을 통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이 칼럼에서 필자가 주로 붙잡으려는 소재며 주제다. 그럼에도 약간 허전한 마음이 있다. 필자 자신의 실명으로 공개되며 한 기관의 사업이라는 틀 속에 얌전하게 자리해야 하는 글이기에 너무 속살을 내보이는 표현이나 내용을 말할 수 없는 한계가 한쪽에 있다. 다른 한쪽으로는, 필자가 뭔가 제대로 짚지 못하고 헛다리만 긁는 한계도 있었을 것이다. 가려운 곳은 정작 손이 안닿는 곳인데, 쉽게 팔이 뻗어지는 부분만 딱지가 앉도록 긁어댄 것이 아닐까 하는 반성도 해본다.

이공계
피해의식

글이 이렇게 시작되니 무슨 장엄한 폭탄선언이라고 할 기세지만 그런 것은 전혀 아니고, 좀 더 문제를 제대로 보고 명확한 진단을 해보자는 이야기다. 그래서 오늘 필자가 생각해낸 근원적 문제 중 하나는 '인기'다. 현 시대에 이공계는 상당히 심한 피해의식 속에 산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다른 직업들이 우리보다 무지하게 좋다고 말하기 어렵고, 우리 중에 성공한 사람들도 우리가 부러워하는 타 분야의 거물들만 못할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 피해의식의 근원에는, 우리도 (또는 우리 중에도) 충분히 공부도 잘하고 사회적으로 대접받을만한 인품을 갖춘 사람들이 있는데, 제대로 대접을 안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대접'이라는 것을 우리는 돈으로만 주로 생각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좀 더 복잡하다. 돈과 연결되어 있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직업의 안정성 같은 문제들 말이다. 옛날에는 공무원이나 기술자나 거의 비슷한 수준의 안정성이 있었다. 다만 공무원은 언제나 '안정적 갑'이라면, 기술자는 '안정된 을'이라는 것이 좀 누추해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정된 을'도 아니고, 많은 분야에서 '불안한 을'이며, 조금 안정된 국책 연구소라도 정치권에 늘 '휘둘리는 을'이다. 분명히 불안정성이 우리의 피해의식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불안정성은 언제부터인가, 개방화와 짝을 이루어 등장한 거창한 구호 '세계화'와 함께 전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어두었다. 불안정성은 이공계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공계
르네상스는
도래할까?

필자는 우리의 피해의식 심층에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인기 없음'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공부나 일이 일상에서 멀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도 어렵고, 우리 스스로도 그렇게 만든 부분이 있어, 이공계는 일반인들의 일상에서 너무 멀다. 그래서 '재미 없음'과 '인기없음'을 무슨 부적이나 주홍글씨처럼 몸에 지니고 다닌다. 온 나라가 프로들과 아마추어를 다 합해서 온통 오디션 대회와 노래부르기 대회로 들떠있을 때나 드라마나 영화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좋은 직업을 가진 주인공에 이공계가 얼굴을 내미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옛날 카이스트 드라마를 예외로, 그리고 의사를 우리 내부의 '표준형 이공계'로 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게 스마트폰이 사회를 도배해도, 그들을 개발한 이공계 공로자들은 표면에 없다. 그냥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영도력 아래에서 모두 한 것이다. 그나마 옛날에는 진대제 같은 사람이 덜 지겨운 이공계 스타 역할을 해줬지만, 황우석 교수 사태 및 사퇴 이후에는 이마저도 아주 조심스러운 모양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우주인의 '먹튀'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그녀에게 필자마저 돌을 던지고 싶지는 않지만, 최선의 처신이 아니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워보인다.)

필자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한두명의 이공계 영웅을 띄워서 우려먹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를 들면, 왜 우리 사회는 그 흔한 토론프로나 시사토크에 이공계 전공자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없는지 모르겠다. 이공계 관련 주제여도 좋고, 아니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일반 시사나 상식을 다루는 코너라면 이공계가 못할 일이 없다. 그리고 요즘 관심의 대상인 에너지나 환경 같은 이슈라면 당연히 이공계 전공자들이 더 가깝게 나설 수 있다. 대중접촉이 너무 제한되는 문화를 가졌으니, 일반인들은 우리를 편협되고 재미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수학은 입시를 위한 변별력으로만 필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외부의 편견도 문제지만, 수도사 같이 '면벽'을 좋아하는 우리 이공계 내부 문화도 문제다. 시사프로그램에 제법 인지도 있는 이공계 학자가 나선다면 다분히 논문 안쓰는 타락한 연구자로 평가될 가능성이 농후하며, 그런 그에게는 대중들의 관심을 잡아두는 일보다는 관련 학자들에게 비판받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아마 엄청 지루하게 흐르다가 몇 회 못가서 종방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 유럽현지를 돌면서 수학의 역사를 탐방한 교육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 것이다. 필자도 관심을 가지고 봤는데, 연극배우가 나서서 진행하였다. 그런 프로그램에는 좋은 목소리와 연극적 재능은 물론이지만, 수십년을 수학과 씨름해 온 학자적 관록과 직관, 그리고 역사를 현재까지 이어주는 역사적 연대감이 더 중요하다. 내용을 몰라서 써준 원고를 읽으며 소화해나가는 프로그램으로 감명을 받기는 어려웠다. 우리나라에는 그 정도 나레이션도 소화할만한 수학자가 한 명도 없었던 것일까? 연극적 재능은 없고 방정식만 잘 풀어야 진정한 수학자인가? 그런 사람들만 넘쳐서 논문으로만 경쟁해야 수학수준이 높아지는가? 내부에서의 경쟁에서만 이기려면 그럴 지 모른다. 그러나 재능 있고 머리 좋고 열정 있는 젊은 이들을 끌어오지 못하고, 우리끼리 이불 안에서 만세만 부르면 아무 소용없다.

인재풀의
황폐화를
극복하는 방법

글이 너무 길어졌다. 우리는 소통-재미-인기에서 너무 멀다. 다행히 정부의 지원으로,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위의 세 가지 기술을 못 갖추었어도 그런대로 잘 먹고 살고 있다. 그러나 갈수록 심해질 인재풀의 황폐화는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고 인기 있게 만든다는 것은 타락이 아니라, 전 국민을 과학화하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투표가 결정한다. 지금은 갈릴레이가 교황을 거슬렸던 몽매의 중세가 아니기에, 이공계 미래도 소수의 천재 과학자보다 대다수 국민의 관심과 지지에 달렸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앞으로는 더욱 더 '민심이 천심'인 시대가 될 것이다. 우리가 소통-재미-인기의 해답을 찾는 3차 방정식을, 천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경계조건을 전제로 하여 잘 풀어봐야 한다. 우리끼리의 이불 속 만세가 밖으로, 거대한 함성으로 들리게 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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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신(hsk04) 2013-11-11

그러고 보면, 이공계에 소통-재미-인기를 갖춘 분이 별로 없네요. 그 중에서 꼽으라면, 카이스트 뇌과학과의 정재승교수를 꼽을수 있겠습니다. 과학콘서트와 한겨레신문사 주관의 토크 콘서트에서 활약중입니다.

최규태(choekt) 2013-11-12

저는 환경공학을 공부하고 현재 조그만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전창훈 박사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불교에서 스님은 도를 닦는 일 외에도 중생을 계도하는 역할이 크다는 생각을 하는데, 학문의 발전에도 그 질을 높이는 데 열심인 분들도 필요하지만 발전된 지식을 대중에게 전파하여 대중이 보다 풍요로운 삶의 질을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분들도 많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정선(jsyoon) 2013-11-12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인데요, 과학기술이란 분야가 인기와 재미로 승부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학문 자체가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어렵기 때문이지요. 예로부터 인기있었던 직업은 어느정도 보수가 보장되며 안정적인 직업이었던거 같아요. 과학기술인들에게 노후 연금까지 지급되는 안정적인 직장을 제공해준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몰릴거라 생각됩니다. 프랑스에서는 매스미디어에 과학기술자들이 많이 참여하는지요? 잘 되고 있다면 우리나라도 보고 배웠으면 좋겠네요.

이성수(lase34) 2014-04-17

수학관련 다큐멘터리 이야기에 저도 한 표 던집니다.
글에서 이야기한 이유 말고도, '상직적인' 이유에서라도 관련분야의 재능있는 과학자가 진행하는 것이 더 좋다고 보여집니다. 윗 글에서 관련 대목을 읽는 내내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란 다큐멘터리가 떠오르네요... 아마 전창훈 박사님도 같은 것 또는 유사한 류의 해외 명 다큐들을 염두에 두시고 글을 쓰셨으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해외의 사례들을 봐서 알겠지만, 과학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다큐 등을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