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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와 여성인력

현재 34개국이 가입된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실업률은 3%, 한달 최저임금은 100만원 정도로 나옵니다. 유럽지역의 평균 실업률은 12% (독일은 예외적으로 낮아 5%), 프랑스의 최저임금은 200만원 정도입니다. 일본의 실업률은 4%, 미국은 7%인데, 일본이나 미국의 한달 최저임금은 120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위의 숫자로만 보면 우리나라는 실업률은 아주 낮고, 최저임금도 그런데로 높은 편입니다. 쉽게 말하면 고용시장의 상태가 아주 좋다는 것이죠. 하지만 유럽기준으로 실업률을 엄격하게 계산하면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현재 수치의 4배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한 번 봅시다.

복지제도가 잘 갖추어진 나라는 실업자에게 수당을 지불합니다. 실업수당은 실업기간과 실업 전에 받았던 임금과 관련되어 변하기 때문에 복잡한데, 정성적으로 쉽게 설명해봅니다. 일단 실업이 되면 실업을 정부에 보고합니다. 그러면 일정기간동안 실업수당을 주며 정부에서도 일자리를 찾아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가 실업기간이 길어지면 수당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죠. 실업자에게 딸린 자녀들이 있으면 가족수당은 따로 나옵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자녀 네 명을 키우며 부부가 일안해도 (간신히) 먹고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좌우간 유럽국가들에서는 ­일을 할 수 있는 나이면 남녀가 다 취업을 하려고 하고, 아니면 실업을 신고합니다. 쉽게 말하면 수당을 받으려고 악착같이 실업자임을 정부에 알리는 것이죠. 한국에서는 그럴 이유가 별로 없으니 정부가 실업자들을 모두 파악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입니다.

요즘 청년실업이 큰 이슈인데도 OECD 통계에서 한국의 청년실업률(15세에서 24세)은 9%라니 놀라운 일입니다. 하기야 청년실업률을 따지려면, 우리나라의 경우 25세에서 30세 정도로 나이구간을 정해야 할 터인데, OECD 통계는 거의가 학생일 15세에서 24세까지로 청년실업률의 나이구간을 정한 것도 이상하군요. 아마도 다른 나라들은 대학진학률이 그렇게 높지 않은 이유때문일 것 같습니다.

실질적 실업률이 얼마인지는 뒤로 두고, 다른 이야기를 해봅시다. 과거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실업이 걱정 없던 시대였습니다. 고성장 시대인데다가 기혼여성들은 대부분 일을 하지 않고 가정살림만 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기혼여성들이 일하던 직종은 교사, 간호사, 약사 정도였습니다. 기혼여성 변호사, 의사, 고급공무원, 교수들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정상은 아닌, 엄청난 실력 또는 에너지가 있거나 아니면 좀 ‘드센’ 여성으로 생각하던 때였습니다. 경제는 팽창하고, 가정당 대표선수 한명만 일하는 경제구조였으니 실업이 전혀 이슈가 아니었죠. 지금은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여성들도 노동시장에 뛰어들고, 제조업보다 3차산업이 많아져서 남성 근로자가 유리한 직종이 줄어들었습니다. 남녀가 고용에서 같이 경쟁하는 시대가 된 것이죠. 스펙이 좋은 남녀끼리 만나 결혼할 확률이 높으니, 어떤 집은 ‘고소득 남편’과 ‘고소득 아내’로 구성되고, 다른 집들은 ‘저소득 남편’과 ‘저소득 아내’ (또는 저소득 남편-무직 아내)로 구성될 확률이 높아서 가구별 빈부격차도 더 커지고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남자들은 쳐들어오는 여자들 때문에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함락되지 않은 성이 있습니다. 과학기술계는 아직도 생물-화학, 전산 같은 분야를 제외하면 여성인력 숫자가 많지 않습니다.

물리, 기계, 전자, 재료 계열 전공자들은 여성들과 같이 공부해본 적도 드물고, 여성 엔지니어들과같이 일해본 적은 더 드물 것입니다. 저는 프랑스에서 두 명의 젊은 여성 엔지니어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상당히 이상하더군요. 하지만 역시 경험이 중요합니다. 몇 년이 지난 후인 지금은 아주 편해졌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우리 직장을 떠나게 되어, 조촐한 고별 파티에서 제가 작별인사와 덕담을 하는 순서를 맡았었습니다. “근 25년간 구조해석 일을 하면서 여자와 일해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원래 가졌던 편견을 바로잡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동석했던 몇 명의 다른 여성 동료들이 입을 삐쭉거렸습니다. 아시아권에는 아직 여성 엔지니어들이 너무 없다보니, 상당히 마초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기계관련 엔지니어들의 약 10% 정도는 여성입니다. 남녀에게 이성이 애인이나 부부만이 아니라, 동료도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계가 여성인력들을 늘리지 못하면 사회에서 더욱 소통이 어려운 분야로 남을 것입니다. 원래 하는 일도 소통이 어려운데, 남자들만의 성역이면 더욱 대중들과 멀어질 것입니다.

20년 전 쯤에 삼성전자 선임연구원 승진을 위한 발표에서, 여성 연구원 숫자를 늘려야 된다는 주제발표를 제가 했었습니다. 전공이나 연구와 무관한 주제라고 야단을 맞지는 않았지만, 인사담당 중역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내었었습니다. 그리고 7년전쯤, 모교인 카이스트 기계공학과에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도 “훌륭한 학과가 되려면 논문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재학생의 20%를 여학생으로 채우라”라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요즘 공학이나 과학이 근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에, 과학기술계에 여성인력을 많이 유치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며, 발전적인 일입니다. 소통에서도 좋고 융합에서도 좋고, 감성 엔지니어링에서도 좋습니다. 연구현장이나 제조현장도 훨씬 밝아질 것입니다. 요즘 공학이나 과학에 “인간을 위한…”이라는 슬로건을 많이 내거는데, 그 인간이 남자에만 국한되면 안되겠죠. 안전모를 쓴 우리의 딸들이, 도면을 옆구리에 끼고 용접불꽃이 튀는 현장을 누비는 것이 지금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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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자한테 '남자가 어떻게 아이를 이렇게 잘 보냐'고 물어봤더니, '당신도 프랑스 여자랑 살아보라'고 답했답니다. ㅎ

윤정선(jsyoon) 2013-12-12

20년전 삼성에서 여성 연구원 수를 늘려야한다고 설파하신 혜안이 놀랍네요. 세상이 서서히 변하는 걸 보면서 저도 좀 오래 살았구나 하는 걸 느낍니다. 요즘은 여성들이 직장생활 할 수 있는 여건이 많이 좋아졌어요.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이었어요. 남녀공학이었는데, 학교에서는 문이과를 나누면서 남자반은 문과 1반과 이과 2반, 여자반은 문과 2반과 이과 1반을 계획하고 있었대요. 그런데 신청결과를 보니, 여자반은 반반으로 나뉘어졌어요. 그 후 선생님들은 어쩔 수 없이(행정의 편의, 원래의 계획대로 하고자), 이과를 신청한 여학생들에게 설득을 하시더라고요. 여학생이 이과를 진학하면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고요. 그에 따라 많은 여학생들이 자신의 꿈이나 재능과는 상관없이 선생님의 설득에 넘아갔답니다.
그래서 학창시절 진로에 대한 경험과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 일을 하시는 분들의 경험담이나 사례 등을 많이 접할 수 있어야, 폭넓은 분야에서 여성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을 테니까요. 융합과 소통, 감성의 시대에 함께 일하며 서로에게 자극과 격려가 되는 동료들이 더욱 많아지길 빕니다. ^^

이공계에 남성들이 많아서 그런지 코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남자분들이신데요, 박사님 말씀처럼 이공계 여성인력이 늘어나서 코센에서 활동하는 여성회원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

이예지(ae6410) 2016-10-12

연구현장이나 제조현장이 밝아진다는 말도 좀 그렇구요, 밝아져서라기보단, 재능 있는 과학자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러 여건들 때문에 꿈을 포기하여 인력손실이 생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거죠. 예전부터 만연했던 사회 시스템을 빨리 바꾸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