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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기술 (Appropriate Technology)

비엔나에서 열린 유럽-한국 컨퍼런스(EKC-2014)에 다녀왔습니다. 유럽 내 한인 과학기술자들과 한국의 연구자들이 모여서 거의 모든 과학기술분야를 토론하는 ‘백화점 컨퍼런스’입니다. 비슷한 행사가 매해 여름, 유럽(EKC)과 미국(UKC) 캐나다(CKC)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전문적 학회는 아니지만, 과학기술 트랜드와 해외 거주 한인 과학기술자들의 전공별, 연령별 분포를 알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작년 영국에서 개최되었던 EKC-2013에 한국의 한 교수님이 오셔서 ‘적정기술’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가셨습니다. 후속조치로 올해에는 이 분야 세션이 별도로 열렸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적정기술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터인데, 저에게는 생소한 분야였습니다. 적정기술이란 아프리카 같은 낙후된 지역을 도와주면서 도출된 최적안인 것 같습니다. 내용인즉슨, 낙후지역을 도와줄 때 그들의 필요를 문화와 능력까지 전반적으로 고려해서 도와주고, 기술도 전수해주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자립적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이끌어주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 주민들의 어둡고 더운 주거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서방에서 재료를 날라다가 지붕을 개량해주는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간단하게 개선해주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보내어진 물건을 사용하면 유지-보수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지에서 조달가능한 재료와 기술을 사용하면 개선이나 유지-보수도 용이합니다. 그래서 적정기술은 ‘지속가능형 맞춤개발’입니다. 요즘 적정기술은 의미를 더 넓혀, Inclusive Development라는 용어도 사용하더군요. Excluded 된 지역이나 인종이 없이, 모두 다 포함시켜 개발하자는 의미입니다.

작년에 이어 두번 째 이 모임에 참석하면서 두가지를 느꼈습니다. 이 모임은 상당히 인기가 좋았고 학회 참석자들의 관심도 높았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사안을 바라보던 저는, 우리에게도 이타심이 많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큰 부담이 안된다면 남을 기꺼이 도울 의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생각할 시간이 많으면, 남이 받을 도움보다 자신의 부담을 더 심각하게 느껴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타적 행위는 충동에 맡길 필요가 있습니다. 도와야 한다는 충동이 드는 순간, 마음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러고나면 오히려 자신이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어, 내면의 이타심을 더 많이 꺼낼 수 있으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것 입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포함되어 유기적으로 한다면 훨씬 효과적이겠죠.

두번 째 생각은, 앞에서 이야기한 이타심 극대화와는 전혀 다른 생각입니다. 우리는 적정기술이라는 이름으로 낙후지역에게 맞춤형 기술, 지속가능형 기술, 생선이 아니라 고기 잡는 기술을 전수해주며 보람을 느낍니다. 그런데 발전된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적합한 적정기술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가 남을 돕는 일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은 무엇일 지 생각해볼 기회는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장에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그리고 정부로부터 더 많은 연구비를 받기 위해 우리는 닥치는대로 제안서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순위대로 권력을 행사합니다. 과연 이 기술이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합니다. 우리는 건배와 덕담이 이어지는 잔치에 초대받기를 원하지만, 파티가 끝나고 청소를 할 때는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룩한 과학기술은 한껏 부풀려 자랑하지만, 부작용에 대해서는 안일한 낙관론으로 일관합니다.

이제 발전된 사회에게 적정기술이란 무엇일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건물은 높아져만 가도 되는지, 스마트 폰에는 더 많은 기능을 더 많이 담기만 하면 되는지, 이런저런 영양제는 많이 먹을수록 좋은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이런 담론을 과학기술계가 외면한다면, 적정기술은 관료와 경제학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우리는 그저 하수인에 머물 것입니다. 미래를 그린 공상만화에는 나쁜 과학자들이 권력을 쥐고 사람들을 통제하는데, 현실에서 과학기술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영혼 없는 머슴이 되어가는 분위기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가야 할 방향을 직접 모색하고 드라이브할 적극성이 있는지, 그리고 그런 결정이 가능한 혜안은 있는지 심히 의심스러운 때입니다. 그래서 노벨상을 받아도 아마 관료들의 효율적인 지원의 결과로 평가될 확률이 높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자기가 주인이 아닌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제 아프리카를 위한 적정기술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맞는 적정기술도 같이 고민해봐야 할 때입니다. (현실적인 문제로, 연구펀드를 제공하는 공무원에 이공계 출신이 더 많이 들어가는 일이 중요해보입니다. 고위공직자들 중 이공계가 상당히 많았다면, 세월호 사고 대응도 좀 달랐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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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에 힘을 넣어주시는 글이네요.. 저도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적정기술 뿐 아니라 모든 과학기술정책에 많은 이공계인이 활약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김혁(fomalhout) 2014-08-05

전박사님! 정말 좋은 통찰이네요. 과학, 기술하는 사람들은 적정기술을 어떻게 구현할까에만 매몰된 고민을 하기 쉬운데요. 사람들을 동기화시켜서 개발된 적정기술에 참여시키고 후원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보게 만드는 글입니다.

전박사님, 적정기술을 주제로 좋은 말씀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EKC를 통해 담론을 이어가게 될텐데요, 전박사님의 조언이 방향성 선정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I-DREAM 다른 멤버들에게도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비엔나 강)

윤정선(jsyoon) 2014-08-18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이기술의 목적과 파급효과를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겠지요. 그러고보면 과학기술계도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던거 같습니다. 그러려면 연구비에서 자유로운 연구가 가능해야겠지요. 아니면 말씀대로 공무원들이 제 역할을 하던가요. 그러나 현재의 구조로는 쉽지 않을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