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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와 선수

““그 자리에서 지켜 보기가 여기에서 뛰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것, 잘 알아요!” 테니스 요정 샤라포바가, 우승 후 저 멀리 관중석에 앉아있는 코치를 향해 마이크에 대고 크게 내밷은 말이다. 벌써 몇 해 전이어서, 그 대회가 US 오픈인지 프랑스 오픈인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녀는 87년생이라고 하니 현재 나이 만27세, 아마 이 말을 했을 당시 20세가 갖넘었을 것이다.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고 우쭐할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인생을 저렇게 많이 알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었다. 아름다운 외모와 큰 키 그리고 텅 빈 머리로 먹고사는, 운좋은 인생일 것이라는 편견을 가졌던 필자가 부끄러웠다.

코치와 샤라포바 본인 모두에게 아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그 날 결승전 경기였을 것이다. 그랜드슬램 대회의 상금은 우승자에게 2백만불이 넘게 돌아가지만, 준우승자는 딱 절반이다. 그러니까 그 한판 경기는 백만불이 넘는 도박판인 것이다. 그런데 테니스 경기는 전통적으로 그 누구도 경기 도중에 선수에게 조언을 주거나 접촉할 수 없다. 부상이 있을 때 의료진들이 잠깐 만날 수 있는 정도다. 그래서 코치는 늘 관중석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본다. 그것도 선수가 부담을 느낄까봐 조금 멀리 앉는다. 자기가 자식처럼 키운 선수를 시합에서만큼은 멀찌감치 떨어져 한 명의 관중으로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수험장에 자식을 들여보낸 부모들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지만, 자녀가 고사장으로 들어가고나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테니스 경기는 코치 눈앞에서 경기가 벌어진다. 그래서 관중석의 코치는 아마 고문당하는듯한 정신적 괴로움을 겪을 것이다. 제대로 못하면 당장 뛰어내려가서, “뭐하고 있어? 연습한대로 똑바로 하란 말이야!”라고 고함을 지르고 싶을 것이고, 잘하고 있으면 경기가 빨리 끝나길 바랄 것이다. 그런데 양쪽이 피터지게 싸울수록 더 기뻐하는 관중들 속에 앉아 그저 경기를 지켜봐야 하니, 이 글을 쓰면서 상황을 상상하는 필자 가슴이 막 답답하다.

샤라포바의 이야기인 즉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기는 공을 후려패면서 뛰니 마음고생이 덜했지만, 관중석에 앉아서 보는 당신은 얼마나 힘들었겠냐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남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속이 터질 때가 많다. 뭔가 열심히 한다고 밤늦게까지 돌아다니지만 벌이가 시원찮은 남편을 보는 아내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좋다는 학원만 골라 보내주는데도 성적은 겨우 중간을 맴도는 수험생을 둔 부모들 마음 또한 그럴 것이다. 마치 불구인 다리로 공을 차는 것같이 문전처리가 미숙한 대표팀 경기를 바라보는 축구팬들 마음도 비슷할 것이다. 여러 번 재촉을 했는데도 날자를 넘겨 제출된 팀원의 허접한 보고서를 받게 되는 팀장 마음도 그럴 것이다. 차라리 뭔가를 직접 하는 사람에게는, 일이 어려워도 시간만은 잘 간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더디다. 다 했다는 결과를 보면, 겨우 이 정도를 하느라 그렇게 시간을 끌었는지 정말 이해가 안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본인이 그일을 직접 맡는다고 상황이 많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생각할 때는 일사천리일 것 같던 일들을 막상 벌이고보면, 진흙탕에 빠진 소달구지처럼 느려서 사람 마음을 뒤집어 놓는다. 세상일이 쉬울 때는 운이 좋거나 때를 잘만난 것이지, 내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란 생각은 대부분 착각이다. 남들이 하는 일은 쉬워보이고, 진도를 못빼는 인간들은 다 얼간이 같지만, 막상 해보면 만만한 일은 거의 없다.

자식이나 후배들의 좋은 퍼포먼스를 원한다면, 비판에 익숙한 코치형 리더보다는 같이 뛰는 주장형 리더가 더 효율적이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줄이고 같이 공부하는 부모가 되자는 이야기다. 샤라포바 같이 일찍 철든 선수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말이다. 상대의 사정을 충분히 듣지 않고 진도에만 집착하면 일은 않되고 미움만 커진다. 소통이 막힌 상태에서 도와준다고 나서봐야, 상처에 소금 뿌린다는 오해만 받는다. 쉬워보이는 일을 맡은 후배에게, “넌 참 운도 좋아!”라고 말하기 보다, “만만하게 보지말고, 혹시 어려우면 말해!”라고 대화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 코치와 선수는 그 둘 각자의 능력뿐 아니라, 서로간의 궁합도 좋아야 한다. 연구현장에서 사수와 조수 관계도 각자의 역할을 잘알고 도울 때, 출근길이 활기차고 근무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시원찮은 선수를 꾹참고 지켜봐야 하는 코치는, 신의 한수를 가르쳐주기 전에 화이팅을 한 번 외쳐주자. 그리고 스스로가 이겨내도록 좀 더 지켜보자. 자식이든 후배든, 결국 그가 나를 이기고 넘어서야 사회가 잘되고 내 노년도 평화로울 것이다.

노트) 국가간 대항전인 데이비스 컵 테니스 대회에서는 코치가 코트에 나서 선수들에게 조언을 준다. 단체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테니스 대회는, 단식이든 복식이든 경기도중 선수들이 코트를 떠나지 않아야 하며, 누구의 조언도 받지 않고 스스로 경기를 풀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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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훈(htlaz) 2014-12-08

역지사지로 상대에게 배려해야 한다고 하나 지나치고 후회될때가 많읍니다 사실은.글을 읽고 다시금
맘을 다잡읍니다.좋은 글 감사합니다.손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