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해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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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시작은 인간이 정한 것이고, 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이 그냥 흐르는 것이라고 고집부리며 덤덤하게 새해를 맞았는데, 벌써 한 달이 갔습니다. 곧 구정이 있으니 새해는 또다시 시작된다고 위로해봅니다. 각설하고, 오늘은 실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옛날 과학은 실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사고실험’을 했습니다. 어떤 것을 가정하여 결론까지 갔는데, 모순이 생겨 가정이 잘못되었다고 결론짓는 증명법 말입니다. 관찰과 실험이 없으면 천재도 사실을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관찰된 현상을 실험으로 확인한 후 원인을 추적하는 것이 근대과학의 방법입니다.
중력에 의해 빛이 휘는 것을 영국팀이 관측하지 못했다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과학계에서 오랫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거대과학이나 미시과학은 모두 실험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속한 프로젝트는, 옆으로 통통한 8층 아파트 정도 크기의 기계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런 거대한 장비를 만들려니 기간도 오래 걸리고, 실험을 해도 결과를 직접 눈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투자자나 일하는 사람에게 쉽게 감이 안옵니다. 반면, 미시 세계는 시편이 너무 작아서 전자현미경 사진이 다른 것을 찍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더군요. 그래서 저는 양자역학이라는 것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불확정성의 원리’를 원리라고 하니까요.
실험 장비는 승용차나 책상만한 크기면 제일 좋습니다. 하얀색 가운을 입고 몇 명이 실험장비 주위에 서서 설명듣고 질문하는 장면을 떠올려 봅시다. 장비를 눈으로 보며 손으로 직접 만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담한 싸이즈로 실험장비를 만들 수 있도록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실제 장비가 아주 크거나 작은 경우에도 모조 장비를 이 정도 크기로 만들어 브리핑을 하면 프로젝트를 주는 ‘갑’이나 수행자인 ‘을’ 사이에 소통이 원만할 것 입니다. (높은 사람들 책상장식용으로 사용하느라 모조장비가 너무 작은 경우가 많습니다.)
실험의 역사추적을 위해 과거로 돌아가 봅시다. 1600년경에 있었다는 갈릴레이의 낙하실험은 없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실험이 행해졌다면 참관한 많은 사람들이 기록을 남겼을 터인데, 그의 제자가 쓴 한 권의 책에서만 언급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약 낙하실험이 없었다면, 제가 최고로 꼽고 싶은 것은 푸코의 진자실험(1851년)입니다. 이 실험은 나중에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있었던 토리첼리의 진공실험은 어쩌면 푸코의 추 보다 더 ‘아름다운’ 실험입니다. 토리첼리는 갈릴레이의 제자였는데, 스승이 돌아가신 얼마 후인 1644년에 이 실험을 합니다. 수은 760mm의 높이가 지구대기압과 완벽한 평형을 이루는 것을 보여줍니다. 당시에도 압력차를 이용한 펌프가 10m이상 깊이에 있는 물을 길어올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옛날 우리네 앞마당에 있던 수동식 펌프 말입니다. 위에서 어느 정도의 진공을 만들면 아래의 물이 대기압에 밀려 올라옵니다. 왜 펌프로 10미터보다 더 깊은 우물의 물을 길어올릴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토리첼리는 대기압의 존재를 알았던 것입니다. 대기압을 실험으로 증명하려면 11미터 정도 높이의 한쪽 끝이 닫힌 유리 기둥에 물을 담았다가 거꾸로 들어올려 물기둥이 10미터 높이에 머무는 것을 보여주면 됩니다. 하지만 물보다 13.6배 무거운 수은을 사용하여 장비 높이를 대폭 줄인, 정말 멋진 대안입니다. 책상 위에는 수은이 담긴 작은 수조가 있고, 1미터 길이의 유리 튜브에 수은을 채워 끝을 엄지 손가락으로 막고 거꾸로 돌린 다음, 수은이 담긴 수조 속에 넣은 후 손가락을 살짝 뺐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튜브속 수은이 4센티미터 정도 내려오다가 멈춘 것입니다. 정말 간단한 실험이지만, 대기압과 진공의 존재를 동시에 알려주는 실험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튜브 위 4센치미터 내의 진공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는군요. 대기 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거의 완벽한 진공이었으니 진위여부에 대한 토론이 격렬했던 것입니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는 생각이 당시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공기는 늘 빈 곳을 채우려고 하므로 그렇게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수은을 자주 만진 탓인지 토리첼리는 겨우 40의 나이에 요절합니다만, 유체 압력 실험은 프랑스로 건너가 파스칼에 의해 계속 됩니다. 토리첼리의 진공실험에 명예를 부여하여, 그의 이름 앞부분에 해당하는 철자인 [Torr]가 진공의 단위로 사용됩니다. 요즘 과학은 진도가 너무 많이 나갔기에 이런 낭만이 줄어든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간단하게 뭔가를 확인해보고 보여줄 수 있는지 고민하며 소통을 포기하지 않는 과학을 해야죠. 더 간단해야 더 이해가 쉽고 기억도 오래간다는 것을 잊지맙시다.
결론에 동의합니다.